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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난센이 뽑은 올해의 사건 TOP8.





난민인권센터는 2017년 난민의 날을 맞아, 지난 1년간 난센이 만난 난민들의 실제사례를 허구없이 재구성했습니다. 활동가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한국 사회의 차가움을 느끼게 했던 사례 여덟가지를 나눕니다. TOP8 을 뽑았지만, 어떤 특정 사례가 특별히 'TOP'인 것은 아닙니다. 고통에 순위를 매길수는 없으니까요. TOP8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들에겐 여전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저는 핸드폰도 가질 수 없나요?"


난민 인정 소송 중인 G.

휴대폰을 잃어버려 불편을 겪다가 희망의친구들 휴대폰 지원사업에 선정된 기쁨도 잠시,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100일이상의 체류기간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말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소송 중인 G에게 한번의 체류연장때마다 3개월 이상은 주어지지 않기 때문. 아이 이름으로 개통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마저 5살 이상의 아동이어야해서, 두살배기 아들이 있는 G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난민신청자들, 특히 소송중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은 순식간에 돌아오는 짧은 체류만료일이 원망스럽습니다. 출입국의 지침에 따라 주어지는 체류기간의 한도는 바뀌고 또 바뀝니다. 체류 관리가 엄격해지면 질수록 체류 연장 기간이 짧아지고, 더 엄격해지면 신분증을 반납하고 소송을 진행해야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100일이 채 되지 않는 체류기간을 허가받으면서 신청자들이 겪는 체류의 불안은 생각보다 큽니다. 휴대폰 하나 마음 놓고 가질 수 없다는 것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속에 그려지시나요? 난민신청과정에서 체류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으로 이행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2

난민신청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낸다구요?


 이의신청 기각 통지서를 받으러 간 H는 통지서를 받고 사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이민특수조사대에 체포되어 조사받은 후 본국으로의 송환을 앞둔 신세가 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놀란 H는 난민인권센터 활동가와의 연락, 변호사 선임에 대한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국에서 당신을 보내라고 했다”는 설명에 H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난민신청 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건데….'


 함께 갔던 친구가 "이상해요. H가 아직도 건물 밖으로 안 나왔어요"라고 난센에 연락해주지 않았더라면, H는 아무도 모르는 중에 박해의 위험이 있는 본국으로 돌려보내졌을 것이다. H는 난센의 개입으로 강제송환은 면했지만,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칠수있다”라는 근거와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이유로 6개월 넘게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다.



 난민법은 제3조에서 강제송환금지원칙을 천명하고 있고, 이 강제송환금지원칙은 “난민신청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난민신청자란 대한민국에 난민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으로서 난민인정 신청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인 사람뿐만 아니라 난민불인정결정이나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의 기각결정을 받고 이의신청의 제기기간이나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의 제기기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까지를 포함합니다. (난민법 제2조 4호)

 난민신청자에 대한 정부의 강제송환 시도는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아무에게도 조력을 요청하지 못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진행되는 송환은 막을수가 없습니다. 난민인권센터는 H님의 사건에 대해 이민특수조사대와 난민과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납득할만한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강제송환이 금지된다는 원칙은 어느 순간에라도 지켜져야 합니다. 납득할만한 증거와 근거 없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에는 외국인보호소 장기구금자에 대한 송환도 잇따라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4년을 보호소에 갇혀 지내면서 난민재신청을 준비하던 J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재신청을 희망했던 J님은 계속해서 재신청서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절차를 모두 마친 난민'으로 분류되어 송환되었습니다. 관공서들이 모두 문을 닫는 토요일 밤에요. J님은 본국으로 송환된 뒤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J님의 친구들과 난센은 수소문할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난민신청자 강제송환,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3

"우리 가족, 소송할 수 있는건가요?"


 J는 아내와 자녀 둘을 키우는 가장이자 난민신청자이다. 한달에 백만원 남짓 버는 돈으로 네 가족이 먹고, 입는 것도 어렵건만 난민신청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려면 법원에서 가족단위 소송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소송을 진행해야 해서 신청비용만 200만원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기저기에 돈을 빌리러 다녔지만 주위 사람들 사정도 다 매한가지였다. 결국 J는 가장인 자신의 이름으로만 소송을 진행했고, 다른 가족들은 소송을 진행하지 못해 미등록체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미등록체류를하던 아내와 아이들이 구금되었고 아이들은 구금시설의 극한적 상황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차심사, 이의심사를 진행하는 공무원이 신청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심도있는 심사가 이루어질 수 없어 난민신청자들의 이의신청/소송제기 비율이 높습니다. 법무부 1차심사와 이의신청심사에서 납득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한 난민신청자들은,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에서 자신의 사건을 제대로 보아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소송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소송구조제도가 있어 난민신청자들이 형편에 맞게 비용을 부담하며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신청자가 늘면서 소송구조가 받아들여지지 않기 시작하여, 지금 소송을 진행하는 신청자들은 변호사비용, 통역비용, 인지대와 송달료 등 소송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며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변호사 없이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가족단위로 소송할 수 없기 때문에, J님처럼 가족 구성원 한명 한명 당의 비용을 납부해야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감수해가며 진행하는 소송에서도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쉬운일이 아닙니다. 난민에 대한 싸늘해지는 시선은 작년 행정소송 승소자 3명이라는 수치에서도 드러났습니다. 





#4

"난민 인정 받으면 뭐하나요"


이야기 하나. 

난민인정을 받고 한국에 거주한지 10여 년 째. 언제까지나 매달 나가는 월세를 감당할 수도 없고, 전세를 구할 목돈도 없어 안정적인 주거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B는 은행에서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다며 주택청약가입을 권유받아 계좌를 만들게 되었다. 이후 난민인권센터와 함께 임대주택에 입주를 위해 수소문 해보았지만, 귀화를 하지 않으면 입주 자격이 없다고 한다. B는 귀화를 위해 열심히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이수했지만, 마지막 면접단계에서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귀화를 위한 면접 시험을 도와줄 수 있는 단체를 수소문해보았지만, 대부분의 정부 및 시민사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난민이 아닌 다른 이주자를 대상으로 운영되어 어떻게 시험을 대비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야기 둘.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중도입국청소년 A. 한국에 입국하여 다문화 학교 입학 후 한국 적응을 위한 언어, 문화 교육을 받았다. 이후 일반학교에 진학하였지만, 여전히 수업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한국어. 부족한 한국어를 보충하기 위해 난민인권센터가 무지개청소년재단 등 중도입국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언어 프로그램을 수소문해보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다수 국적 출신 언어로 진행되어 사실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어려웠다.


 2013년 7월 난민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난민 인정자의 처우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법에 명시되어 있는 처우 권리가 사실상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도 정착의 과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한국에 '다문화' 열풍이 불고 중앙정부 및 지자체 단위에서 이내에 정착하는 이주자에 대한 프로그램을 무수히 많이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이 해당 서비스에 접근하기에는 사실상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중도입국난민청소년의 경우도 정착을 위한 집중적이고 전문적인 개입이 시급합니다. 현재 다문화가족지원법에 근거하여 결혼이주자 가족에 한해 지원되고 있는 이중언어지원, 방문 한국어 지원, 문화, 취업 정보 제공 및 교육 등에 대한 서비스는 난민에게도 꼭 필요한 사회적 처우입니다.






#5
"난민신청자 생계비,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죠?"


  난민 A는 한국이 난민신청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한다는 소문을 듣고 생계비 신청을 했다. 기쁘게도 지원금을 받는 대상에 선정되었지만, 왠일인지 두 달간 지급되다가 중단되었다. 난민지위심사를 위한 면담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이유도 알리지 않고 중단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방법이 없어 소송으로 다투어 중단결정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다시 아무런 조사도 없이 지급중단결정 통지만 받았다.

  난민신청자들은 신청 후 6개월 이후가 되어서야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정부에서 난민신청자들을 위한 생계비 예산을 두고 있지만 전체 신청자의 5%만 받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생계비 신청에 대한 홍보도 잘되지 않아 생계비가 지원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보릿고개를 넘는 신청자들이 많습니다. "신청 후 6개월까지는 생계비를, 6개월 이후에는 취업허가를." 언뜻 보기에는 공백이 없어보이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신청자들. 언제쯤 이런 공백이 메워질 수 있을까요?





#6

"아빠한테 가고싶어요. 그러려면 5개월 20일이 필요하대요"


  12살 R은 작년 10월에 엄마와 함께 난민신청했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R, 엄마와 체류연장을 하러가면 늘 3개월이 주어진다. R은 3개월이 넘는 6개월을 받고싶다. 아빠를 보고싶어서다. 아빠는 스페인에 있는데 스페인에 가는 비자를 받으려면 최소한 5개월 20일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한다. 엄마가 출입국사무소에 전화도, 직접 찾아가기도 해서 사정해봤지만 안 된다고 한다. 아빠를 보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R은 모르겠다.


  한국에 온 난민들이 난민신청하면 G-1비자(기타비자)가 주어집니다. R은 학생이지만 G-1비자를 학생비자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G-1비자는 국내에서 변경이 안되는 종류라서, 해외에 나가서 새로운 비자를 받아 입국해야 하지요. R에겐 딱 6개월 정도만 주어져도 좋을텐데, 요즘 신청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3개월, 3개월, 3개월.... "3개월마다 주사맞는 것 같다. 살기 위해서, 여기 살기위해서 3개월짜리 주사를 계속 맞는 거다."라고 했던 어느 신청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3개월, 짧은시간이지요. 어느 새 지나있는 시간입니다. 3개월짜리 체류기간을 가지고서는 삶의 많은 영역이 제한됩니다. 학교도, 직장도 3개월에 한 번씩 빠져야합니다. 그러니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3개월은 너무 짧으니까요.

안정적인 체류기간, 오랜 시간 절차를 진행하며 기다려야 하는 난민신청자들이 바라기엔 큰 욕심인걸까요?






#7

"국적이 없다는 것, 상상할 수 있나요?"


한국인 배우자와의 혼인신고를 위해 구청을 찾은 O는 현재 미혼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를 본국에서 받아와야 혼인신고가 가능하다는 얘길 들었다. 본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온 O가 본국 정부로부터 행정서류를 받을 수 없는건 당연한 이야기. 결국 O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얻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O는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혼인신고를 위해 적어도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무국적자'는 말 그대로 '어떤 나라의 국적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한 국가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행정적인 공백이 생긴 경우, 제도가 바뀌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의 국적을 증명할 어떤 서류도 없는 경우, 국적 취득과정에서 국적이 모두 취소된 상태 등 한 사람이 무국적이 되는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요.

국적이 없다는 것, 상상이 되시나요? 무국적자이기에 겪는 문제들은 삶의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병원에서, 학교에서, 관공서에서, 도서관에서, 무언가를 예약할 때에도. 한국에 살면서 필요한 모든 행정절차에 제약이 생기는 것입니다. 국적보유자가 한번에 마칠 수 있는 절차도 무국적자들은 열번, 스무번, 백 번 문을 두드려 열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국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무국적자들이 한국에 태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난민신청자들의 아이들입니다. 부모님의 나라에도 한국에도 등록되지않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지요.


  지금, 여기에서 온 아이들과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날을 꿈꿔봅니다.





#8

"나는 왜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요?"


이야기 하나. 

난민신청자 S는 본국에서 박해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왔다. 난민신청자로 한국에 사는 동안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게 된 S는 출입국사무소에 결혼비자를 문의하러 갔는데, 결혼비자를 얻으려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본국의 한국 대사관에서 신청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결혼비자를 신청할 수 없게 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출입국사무소에서 아내에게 묻는 대답에 가슴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S. 출입국에서 "왜 이런사람과 결혼했느냐. 이 사람 G-1(기타비자, 난민신청자들은 G-1비자를 받음)이다, 추방 될 사람이다. 이 남자가 당신보다 나이도 어리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관공서에서 여러번 이런 질문과 이야기를 들었고, 들을 때 마다 마음아파한다며 S는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 둘. 

재신청을 하러 간 N은 "체류연장은 재신청 다음 날 해도 괜찮다"는 직원의 말에 다음 날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했다. 그 날 방문하니 담당자가 "거기에 앉지 말라"고 하여 20분가량 서 있었다. N은 평소 허리디스크로 입원을 몇 차례 했었고, 20분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힘들었다. 이후 출입국 직원은 "너 구금시킬거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왜 "불필요한 재신청을 했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


  난민신청자들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겪는 일들 중, 난민인권센터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것은 이런 사례들입니다. 사람과 사이에서라면 무례하고 언짢을 이야기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중에서도 가장 지위가 취약한 난민신청자라는 이유로 쉽게 오가는것 같아서요. "나는 왜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요?" 누구도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지요. 난민인권센터는 난민신청자들이 어디에서든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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