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지
5월을 끝으로 난센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곧 후기로 전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은지
5월에는 많은 분들이 난센을 방문해주셨습니다.
학생, 기관 및 기업 관계자, 연구자 등등..
모든 분들을 뵙고 싶지만 인원과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보니
선착순으로 만나게되고
만나게 되더라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지는 못합니다.
난센에 방문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난민이나 난센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보통 한국에서 난민분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난센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물어봅니다.
최근에 받았던 질문 중에 가장 어려웠던 질문은
'난민 인권은 무엇이다'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해낼 재간이 없어서 열 문장도 더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ㅎㅎ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난센까지 오게 된 사연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똑같은게 없어요.
난센에 방문하시는 난민분들이 그런 것처럼요.
계기는 다 다르지만 난센에 흘러오게된 공통점을 비추는 작업을 하고 있고,
계속해서 우리가 엮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5월을 비롯하여 올 상반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는
난민분께서 난민협회를 만드시는 과정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듣는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는 난민당사자 운동이 힘들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그 말들에 뺨이라도 때리듯 국적과 인종, 젠더와 종교 등을 초월한
난민 협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간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다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건 너무나 반가운 일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하나하나 쌓아갈 활동을
다만 조용히(때로는 요란하게) 지지하고자 합니다.
(난민당사자 운동이 국내에서는 힘들것이라고
이야기했던 멍청한 이야기들에 콧방귀를 함께 끼며!!!)
그리고..
5월을 마지막으로 류은지 활동가가 활동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을 사람으로서 류은지 활동가가 난센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쌓아온 고민들이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게 소중이 모두어 난센에 녹일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사무국을 떠나지만 난센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명으로
앞으로도 함께 할 류은지 활동가의 새 출발을 함께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연주
일을 시작한지 이제 2달. 저는 육아를 병행하고 있어 일주일에 정말 짧은 시간 난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번 5월에도 계속 많은 분들이 난센을 찾으셨고, 또 장기간 구금되어 있던 난민을 송환하는 사건들이 줄줄이 발생하면서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는 걸려오는 전화도 한통 제대로 받기 힘들면서 내가 지금 난센 활동이 가당키나 한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저의 고민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난센의 구조적인 이슈로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고, "아기가 우리 중에 제일 약자니까" 라고 하며 퇴근을 재촉하고, 엄청나게 배려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정말 행복하게 든든하게 조금씩 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5월 말, 오랜시간 난센에 활동해 온 동료가 난센을 떠납니다. "대체불가 류은지!" 오랜시간 지금의 난센을 만들어왔던 류은지 활동가의 흔적은 난센 여기저기에 너무나 깊게 남아있어서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고 허전할지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난센 구성원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모여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고 다시 으쌰으쌰를 다지는 귀한 문화도 남겼어요(우리는 이 시간을 륭륭타임이라고 불렀답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도 그는 함께 하는 동안 너무나 의지했던 저의 '쉼'이고 '숨'이었어요. 활동하면서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때, 처음 맞이하는 상황들이 긴장되고 두려울때, 그는 늘 손을 꼭 잡아주면서 "괜찮아" "잘했어" 격려하고, 부담을 덜어주었어요. 힘든 결과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잦은 일을 하면서 정말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덕분에 이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무거움을 내려놓아 가며 웃으며 일할 수 있었고, 항상 든든함을 느끼며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류은지 활동가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고, 고맙습니다.
이슬
5월의 어느 토요일, 외국인보호소에서 4년여를 지내던 J님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연락을 전해 받았습니다. 난민신청자가 보호소를 만나면, 보호소가 난민신청자를 만나면 절차가 전부 끝날 때까지 신청자가 보호소에서 나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J님은 절차를 다 마치기까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분이고요. 결국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런 이후에도 본국으로는 갈 수 없다고 하던 분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그분이 누군지 자세히 알지 못하고, 얼굴도 뵌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오기 훨씬 전부터 난센과 소통하던 분이었거든요. 하필 관공서가 일하지 않는 토요일에, 어떻게 된 일인지 여기저기 수소문하는 동안 무력감이 저를 스물스물 감쌌습니다. 밤 9시 반 비행기를 타고 본인이 동의해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담당자에게 전해들은 10시 반엔 ‘나는 그분을 잘 모르잖아’ ‘가고싶어서 갔을거야’ 라고 스스로 위로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어요.
‘왜 그 사람은 4년이나 보호소에 있기를 선택했을까, 왜 어떤 나라들은 자국민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가 됐을까, 그 사람이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한 그 삶은 도대체 어떤 삶이기에 보호소라는 감옥을 선택하게 한걸까.’ 모르겠어요.
‘그냥 미친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나 같은 보통사람이 아닐 거야. 뻔뻔하고 뺀지르르-한 사람이어서, 인생의 아무 희망도 꿈도 없고, 햇빛보고 산책가고 요리하는 일상조차 누리고싶지 않은 그런 이상한, 밥 주고 재워주면 그냥 헤헤거리며 10년이라도 갇혀있을 수 있는 그런 미친사람이었을거야.
그런 사람이었다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그 분의 4년에 대해 괜히 슬프지는 않을거니까요. 아는 사람도 아니면서 오지랖 넓게 눈물이 났는데, 이 나라에서 한 명쯤은 J님의 4년을 안타까워해 줄 눈물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싶었어요. 아마 그날 마음졸이며 전화기 붙들고 노트북앞에 앉아 발을 동동굴렀던 난센 활동가들은 다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테니,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고 있다 하면 조금 괜찮은걸까요.
류은지활동가가 사무실에 없는 건 아직도 실감이 안나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데, 어느 날 빈자리가 느껴질 때가 갑자기 찾아올거고 저는 그 때 코가 찡해져서 씰룩거려야할지도 모르겠지만… 김연주 활동가 말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쉼과 숨이 되어주었던 류은지활동가가 자신만의 숨을 쉬고 쉼을 누릴 수 있기를 마음다해 바라요. 륭륭, 고생했어요.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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