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권센터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17년 법무부 예산 중 난민과에서 요구한 난민관련 예산(안)을 확인한 결과, "난민전문통역인 교육 콘텐츠 개발"이라는 새로운 항목으로 7,650만원의 예산이 편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예산이 법무부와 기재부를 거치는 과정에서 삭감되지 않고 국회를 통과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불완전한 통역으로 인해 난민인정심사과정에서 난민들이 받게 될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난민전문 통역인 과정 개설과 이를 위한 예산편성이 시급합니다.
(난민인권센터 행정정보공개청구, 법무부 난민과 2016. 5. 25.)
난민신청자는 박해를 피해 급박히 본국을 떠나는 과정에서 증거자료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난민인정심사에서 신청인의 일관된 진술은 사건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신청인의 진술이 난민인정심사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하는 만큼 정확하고 전문적인 통역은 난민면접 및 재판과정에서 필수적입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난민 지위의 인정기준 및 절차 편람과 지침’ 제192항에서도 “(iv) 신청인은, 관계기관에 자신의 사안을 제출하기 위하여, 능숙한 통역인의 조력을 받을 것을 포함한 필요한 편의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국내 난민인정심사 및 소송 절차에는 통역인의 자격을 규제하는 제도가 없으며 전문적인 통역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이지은 교수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난민재판의 원고 본인 및 증인신문 통역 녹음자료를 분석해 2012년 「난민재판 통역의 질에 대한 고찰: 통역인의 역할에 관한 사례연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분석결과 통역인의 불충분한 언어구사 능력으로 신문사항과 답변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상황이 드러났습니다. 아래는 이지은 교수의 논문에 실려 있는 이란어 통역사례입니다.
9 판: 그러면 알리가 하는 일이 판사라 그랬는데 판사의 일이 어떤 거예요? 10 통: 판사라 하셨는데 어떠한 일을 하시나요? 11 증: 판사는 음.. 모든 것이요 모든 걸 다 해요. 제 말은 강도, 불법 상인이나 음주자 또는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 다요. 그곳 판사들은 나눠져 있지 않아요. 판사들은 모든 일을 @@@. 모든 범죄들. 12 통: 그 판사는 지금 모든, 모든 잘못은 사람이@@ 13 판: 예? 뭐라고요? 14 통: 모든 사람들을, 만약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 판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울임체: 이란어-한국어 번역 *@@: 발화 청해 불가 |
(이지은, 난민재판 통역의 질에 대한 고찰: 통역인의 역할에 관한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통역인의 불충분한 한국어 구사 능력으로 인해 증인의 진술은 대부분 생략된 채 전달되었습니다. 다른 사례에서는 자의적으로 질문 및 진술을 하거나 신청인에게 진술방향을 조언하는 등 통역인의 역할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전문적인 통역인은 발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를 넘어 발화를 주도하고 왜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난민신청자가 지게 됩니다.
난민법 시행령 제 8조(통역) 제 1항에서는 “법무부장관은 외국어에 능통하고 난민통역 업무 수행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으로 하여금 난민신청자 면접 과정에서 통역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 8조 제 3항 제 1호에서는 “난민전문통역인이 없거나 긴박한 경우에 난민신청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능통한 사람에게 통역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실시한 후 통역“하게 함으로써 난민전문 통역인을 단순히 소정의 사전교육을 이수한 외국어 능통 구사자와 구분짓고 있습니다.
난민전문 통역인 교육의 필요성이 난민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음에도 이를 위한 교육과정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난민전문통역인은 통번역기술을 보유할 뿐 아니라, 난민인정절차, 법률용어, 통역인 윤리 등에 관해서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아동, 여성,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 대한 고려 및 문화적 중개자의 역할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 또한 필요합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2012년-13년 법무부 난민전문통역인 교육과, 2013년 동천·UNHCR·이화여대 통역번역연구소 주관의 공동교육이 실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8-9시간에서 최대 30시간 정도의 단기 집합교육으로 통역기술을 향상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난민 전문 통역인을 ‘위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대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10-12주 이상의 체계적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난민전문통역인 양성의 발판이 될 난민전문통역인 교육 콘텐츠 개발 예산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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