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시리아 난민들
[사진1] 소산(Sawsan)과 압델 말렉 알-자셈(Abdel Malek al-Jasem) 부부와 그들의 가족
"난민 수용/재정착은 우리 나라(캐나다)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부 색이나 언어, 종교나 배경으로 캐나다인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타리오 주(Ontario 州)의 작은 마을 벨빌(Belleville)의 작고 붐비는 교실에서, 시리아 태생의 압델 말렉 알-자셈(Abdel Malek al-Jasem)이 아주 중요한 영어 단어들을 배우고 있다.
외투, 장갑, 털모자, 스카프와 부츠. 압델 말렉 알-자셈(Abdel Malek al-Jasem)은 이 단어들을 공책 위, 아랍어 뜻 옆에 휘갈겨 쓴다. 캐나다에서의 삶에 적응하려면 그 모든 복장들이 필요할 것이다. 자셈 (Jasem)은 작년 10월에 캐나다에 도착했다. 캐나다에 오기 전, 자셈(Jasem)과 그의 가족은 시리아 하마(Hama) 외곽 지역 마을에서의 폭격을 피해 레바논에 갔고, 그 곳에서 4년을 있었다. 자셈(Jasem)과 그의 부인에게는 2쌍의 쌍둥이를 포함해서, 대학생 정도 연령의 남자 아이부터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까지, 11명의 자녀가 있다.
[사진2] 압델 말렉 알-자셈(Abdel Malek al-Jasem)이 영어 수업시간에 그의 ESL(*역주: English as Second Language: 제 2언어로서의 영어) 선생님인 아누 그린우드(Anu Greenwood)와 함께 웃고 있다.
자셈(Jasem) 가족은 그들의 새로운 나라(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불안했고, 겁을 먹고 있었다. 대서양을 횡단(*역주: 레바논이 있는 중동에서 캐나다가 있는 북미로 가려면 대서양을 건너야 함)하기 위해 자셈(Jasem) 가족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자셈(Jasem) 가족은 캐나다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제, 자셈(Jasem) 가족의 도정(道程)은 영어를 배우고, 학교에 가고, 일을 찾는 것이다.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는 자유당이 다수인 새 정부의 우선순위 중 하나로 시리아 난민의 재정착을 지정했다. 캐나다 정부는 2월 말까지 시리아 난민 25000명의 재정착을 목표로 세웠다. 2월 말까지 26,000명이 캐나다에 도착했고, 이 중에 8567명이 민간 후원을 받았다. 원래 정부는 2015년 말까지 난민 25000명 재정착 달성을 목표로 했지만, 이는 결국 2월 달로 미뤄졌다. 캐나다 정부는, 2016년 말까지, 최소 25,000명의 정부-지원 난민을 수용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역주 참고: ‘캐나다 트뤼도 총리, 난민 2만5000명 수용 약속 지켜 ‘, http://news1.kr/articles/?2587508 )
[사진3] 2015년 12월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가 공항에서 난민들을 만났다.
“난민 수용/재정착은 우리 나라(캐나다)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부 색이나 언어, 종교나 배경으로 캐나다인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인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공유된 가치관, 열망, 희망과 꿈으로 우리는 캐나다인을 규정합니다" 라고 트뤼도 총리는 작년 12월 토론토-피어슨 국제 공항에서 진행된, 비행기에서 내리는 난민들에게 코트를 제공하는, 잘 홍보된 행사에서 말했다.
자셈(Jasem)과 자셈의 자녀들은 그들의 새로운 국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있다. 1월에는 스케이트 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캐나다의 추위와 눈을 싫어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고 말했다.
“고향의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모든 것이 파괴됐어요,,,, 돌아가봤자 아무 것도 없어요,” 자셈(Jasem)네 교실에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자말 브사트(Jamal Bsat)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셈(Jasem)은 그의 옛날 옷장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자셈(Jasem)은 캐나다에서는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야 된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난민 수용은 어떻게 작동하나요?(캐나다의 난민 수용/재정착 방법)
온타리오 주(Ontario 州) 픽턴(Picton)에 위치한 자셈(Jasem) 가족의 첫 번째 임시 거처는 토론토 라이어슨 대학교(Ryerson University)의 Lifeline Syria Challenge(*역주 참고 - 토론토 대도시권에서 2년 넘게 1000명의 시리아 난민 후원을 조직/조정하고 있는 시민 주도 단체 (Lifeline Syria)의 라이어슨 공통체, 홈페이지
:http://www.ryerson.ca/lifelinesyria/about/index.html)에서 조직된 후원자들에 의해 마련됐다.
[사진4]파들 아흐마드(Fadl Ahmad)와 라마즈(Ramaz)가 온타리오 주(Ontario 州) 픽턴(Picton)에 위치한 그들의 임시 거처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라이어슨 대학교((Ryerson University)가 설립하고, OCAD 대학교, 토론토 대학교, 요크 대학교가 이후에 합류한 프로그램인 Lifeline Syria Challenge는, 캐나다 내 시리아 난민에 대한 성공적 민간 후원 유형의 선례를 만들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민간 후원 난민을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에 있어 아직 상한을 정하지 않았다. 라이어슨(Ryerson)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 가족당 (후원자) 10명 정도로 이루어진 (후원) 그룹들은 주택, 영어 수업, 진료 약속, 쇼핑 같이 난민들이 새로운 집에서의 삶을 개척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한다.
2월 말, 라이어슨(Ryerson) 프로그램은 87개 후원자 팀과 시리아 난민 가족 15팀(총 93명의 시리아 난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라이어슨(Ryerson) 프로그램의 사무 총장인 웬디 쿠키어(Wendy Cukier)는 민간 후원을 받은 가족들이 정부-후원 난민으로 캐나다에 온 이들 보다 더 잘 지낸다고 말했다.
정부-후원 난민들은 1년간 재정 원조를 받는다. 민간 후원을 받는 가족의 경우, 지원은 1년 이상으로 연장될 수 있다. 난민은 도착하자마자 캐나다 영주권자가 되며, 의료 서비스 같은 캐나다 사회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된다. 일하기 시작하면, 난민들은 여느 캐나다 주민들과 같이 규칙을 따르고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몇 년 내에, 완전한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사진5] 학교에서 집으로 달려오는 길
캐나다에 오기 위해서, 난민들은 보통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 난민 등록이 되어있어야 한다. 후원 협약 보유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어 있는 Lifeline Syria에게 이것(난민들이 '난민' 등록되어 있는 것)이 필수는 아니지만 권고된다.
일부 난민들은 캐나다에 친척들이 있는데, 이는 난민 신청을 가속화 할 수 있다. 난민들은 캐나다이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으며, 여성과 가족 단위인 경우, 정부-후원 난민으로서 캐나다에 입국할 확률이 높다. 각 난민은, 민간 후원 난민이든 정부 후원 난민이든, 생체 인식, 안전과 보건을 포함한 보안 검색 절차를 밟아야 하며 일부는 비자 공무원들과 면담을 한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는 2016년 말 전까지 10,000명 정도의 시리아 난민을 재정착시킬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가게 되는 시리아 난민들 또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난민 등록을 해야 하며, 소수만이 미국으로 재정착할 것을 추천 받는다. 미국에 가족이 있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후에, 美 국무부가 인계를 받고, 국토안보부가 개별 난민 신청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승인 절차는 18-24개월 정도 걸리며, 미국의 한 관리가 말하기로 “미국으로 오는 여행객에 대한 가장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나서, 난민들은 50%의 확률로 입장을 허가 받는다. 일부 정치인들은 미국 (난민 수용)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멈추고 싶다고 발언했다.
한편, 쿠키어(Cukier) 사무총장은 라이어슨(Ryerson) 프로그램이 당면한 문제는, 언제 멈출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월에 쿠키어(Cukier)는 “난민 지원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우리 몫을 다하지 않았나?’라고 말해야 할까요”라고 말한 바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캐나다에 적응하기
집 들이 몇 키로 미터씩 떨어져 있고, 도로들에는 점점이 농장들이 있는, 눈에 뒤 덮인 시골인 픽톤(Picton)에 자셈(Jasem) 가족은 적응하고 있다.
1월의 어느 오후, 자셈(Jasem) 가족의 막내는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놀며, 핫 초콜릿이 든 머그잔들을 엎을 정도로 위험하게 가까이 가면서, 떠들썩하게 집을 뛰어 다녔다.
[사진6] 외출 준비 중
서서히, 하얀 풍경에 대비되는 환한 노랑색의 학교 버스를 타고 다른 자녀들이 집에 돌아 왔다. 10대 남자아이들은 집으로 껑충껑충 뛰어 오면서 그들의 어린 동생들을 팔로 감싸 안았다.
딸 아이 하나는 학교에서 배운, 좋아하는 표현인 “잘했어, 잘했어, 잘했어"를 반복해서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안녕, 잘 지내니? 나는 잘 지내” 를 연습했다.
레바논에서 도살업자로 오랜 시간을 일을 한, 십대 아들은 학교를 가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후원자가 말했듯이, 주말마다 외출하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직업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레바논의 친구들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했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자셈(Jasem)네 후원자 중의 한명인, 지역 미술관 관장 칼린 몰턴(Carlyn Moulton)은 그 아이가 일을 얻을 수 있도록 시내 맥도날드 매니저와 이야기를 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눈은 흥분으로 반짝였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캐나다로 온 이민자들은 캐나다 서부에서 더 쉽게 취업했으며, 다수의 이민자들이 서비스 분야에 고용되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그들의 후원자에게 부담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일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사진7] 알 하산 가족(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라니아(Rania), 푸지(Fusie), 나시미(Nasimi), 바탈(Batal), 알리(Ali)
“너는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할거야”라고 칼린 몰턴(Carlyn Moulton)은 말했다. “맥도날드 매니저가 될 수도 있을 걸”
다른 아들은 최근 학교에서 모의 유엔 회의에서 발언을 했다. 주제는 난민과 실향민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캐나다 아이들은 ‘우리 집이 폭격을 당했어’라고 말하는 사람, 난민을 현실에서, 처음으로 만난 거에요.” 몰턴이 말했다. “아이들은 깊히 마음 아파 했어요”.
‘모든 사람은(이) 똑같이 가치 있어요’
몇몇의 가족들은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들을 캐나다로 데려올 수 있었지만, 과정 중에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와야 하기도 했다. 토론토에 가까이 있는 지역사회이자 무슬림 인구가 많은 미시소가(Mississauga)에, 알 하산(Al Hasan) 가족은 1월에 도착했다.
[사진8] 시리아 난민 후원자인 발레리 프링글이 난민인 나시미 알 하산이 새 신발을 신는 것을 돕고 있다.
캐나다로 오기 전 4년 동안, 하산 가족은 레바논의 방 한 칸에서 온 가족이 살았다. 지금, 하산 가족은, 이란에 하나, 터키에 하나 있는, 두 명의 딸들을 캐나다로 데려오기 위해 몹시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에 도착한 달도 아닌 도착한 날, 하산 가족은 후원자와 간 쇼핑에서 너무 많은 것을 사서, 물건들을 위층으로 옮기는 데에 고생을 했다. 간 칠면조 고기와 빵으로 가득 찬 봉지들이 새로운 토스터를 들고 있는 아이의 밑에 축 늘어졌다.
캐나다 정부의 내부 시민권 및 이민국이 발표한 2012년 자료는 1993년에서 2007년 사이에 캐나다에 도착한 민간 후원 난민들이 정부 후원 난민들보다 더 잘 지낸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간 후원 난민들은 캐나다에 재정착 이후 2년 뒤, 낮은 확률로 사회복지에 의지하며, 높은 소득을 가지는 경향을 가졌다.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에, 알 하산 가족이 매일 힘들어하고 걱정했던 것은 ‘어떻게 해야지 엘리베이터에 식료품 봉지들을 갖다 놓을까’와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저 기도하면서 이 상황에서, [소위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라고 불리는] 미치광이의 손이든, 이슬람의 이름으로든, 아무도 더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우리에게 이건 진짜 터무니 없는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그냥 죽고 있어요”, 집안의 가장인 바탈 알 하산(Batal al-Hasan)이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저 죽는 것이 바로 당장 멈추기를, 그리고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고통 받지 않기를, 그리고 국가가 다시 살아나서 재건하기를 희망해요. 신의 뜻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저 죽는 것이 멈추고 변화하기를 바라요. 우리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요.”
하산의 딸 중 하나는 캐나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에는 정말 많은 자유가 있어요, 나는 진짜 진짜 행복해요.”
[사진9] 온타리오 주(Ontario) 미시소가(Mississauga)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 건물 밖에서 나시미(Nasimi)는 눈 속에서 놀고 있다.
“요르단에서, 이 아이는 외출을 하지 못했어요. 그냥 집에만 있었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죠. 자유고 뭐고 전혀 없어요” 가족의 후원자 중 한 명이자 통역가 역할을 하는 마리엘라 바라지(Mariela Barazi)가 말했다.
'따뜻하고, 환대하는 캐나다'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난민에 대한 캐나다의 여론은 엇갈린다.
1월에는, 한 남성이 밴쿠버(Vancouver)에 있는 캐나다 무슬림 협회 센터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밖에 서있는 난민들에게 페퍼 스프레이(*역주: 호신용 분사 액체)를 뿌렸다. 트뤼도 총리는 이 공격을 비난했다.
2월 말에 발표된 앵거스 라이드 기관(Angus Reid Institute, *역주: 2014년에 설립된 캐나다 초당파∙ 비영리 여론 조사 기구)이 실시 한 1507명의 캐나다인 대상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정부의 난민 정책을 지지하며, 44%가 반대했다. 42%의 응답자는 ‘캐나다는 당장 시리아 난민 수용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들이 해결되면 시리아로 다시 돌아갈 것이냐는 물음에, 자기 가족들의 새 집은 캐나다라고 하산(Hasan)은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 정착하고 싶어요” 하산은 말했다. “ 미래에 시리아를 방문할 수 있게 되고, 방문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삶을 일굴 수 있는 곳에 정착하고 싶어요.”
[사진10] 라니아 알-하산(Rania Al-Hasan)은 미소지으면서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벙어리 장갑을 들고 있다.
“여기(캐나다)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치 있어요“
대략 2개월 후의 진행 사항
3월 초에, 자셈(Jasem) 가족은 픽턴(Picton)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집의 임차인은 자셈(Jasem) 가족의 후원자들이다.
새로운 보금자리에는 뒤뜰과 벽난로가 있고, 이이들은 학교에 걸어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자셈(Jasem) 가족은 후원자들로부터 그 집을 살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싶어했던 아들, 아흐메드(Ahmed)는 여름에 픽턴(Picton)의 현지 레스트토랑에서 일하게 됐고, 지금은 몇몇의 형제들과 함께 현지 카누∙카약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벨 말렉 알 자셈(Abel Malek al-Jasem, 자셈네 아빠)는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물톤(Moulton, 자셈네 후원자)는 아벨 말렉(Abel Malek)씨가 농장에서 일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셈(Jasem)네 친척들의 일부도 캐나다에 도착해서 자셈(Jasem)네 길 반대 편에 이사를 왔다. “(자셈(Jasem) 가족에게 있어)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물톤(Moulton)이 말했다. “정부-후원을 받아서 왔다면 이 중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교장 선생님은 최근에 자셈(Jasem)네 어린 자녀들이 영어도 빨리 배우면서, 학교에서 굉장히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셈(Jasem) 가족은 이제 차를 가지고 있고, 곧 교통편 때문에 더 이상 후원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폭탄을 피해 집에서 나오고, 도망치고,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던 레바논에서의 예전 현실과는 천양지차인 지구 반대편에서 생화랗고 있다.
자셈(Jasem) 가족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엄청나게 지쳐있었다"고 물톤(Moulton)은 말했다. “모두가 어떤 일을 겪었을 지를 상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자셈(Jasem 가족이 약간의 회복 기간을 갖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얼마 안 있어서, 그들은 고된 일상을 맞이할 거에요.”
원문기사: 애슐리 골드(Ashley Gold), BBC 뉴스, 토론토, 2016년 3월 4일
http://www.bbc.com/news/magazine-35447113
번역: 박소현 (난민인권센터 통번역 자원활동가)
감수: 김지예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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