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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의 정지된 비상>, 국경의 비인간성에 대한 명상
김현철(대학생)
지난 겨울 기상 악화로 인해 제주도 공항에 수많은 사람들이 묶여있던 일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모여 있었지만 전광판은 오직 결항이라는 글자만을 띄우고 있었다. 언제 그들에게 허가가 내려질 지 모르기에 어느 누구도 그 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상 조건은 악화됐지만 출발선상에 머물러 떠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절망감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떠한 선택을 했어야만 했을까.
<황새의 정지된 비상>은 이와 같이 경계선을 두고 떠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난민들을 다룬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허가를 기다리는 난민들이 모여있는 그리스 국경지대의 마을이다. 이 마을의 별칭은 ‘대기실’이다.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이 허가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마을에 난민을 취재하고 있는 한 저널리스트가 찾아온다. 이 마을에서 저널리스트는 세상을 등지고 감자를 팔아 연명하는 늙은 농부에게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한때 저명한 정치인이었으나 몇 년 전 사라져 자취를 감춰버린 그가 마을에 숨어 살고 있었다. 저널리스트는 이전까지 난민의 현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농부의 정체를 밝히고 본국으로 송환시키려고 시도하며 비로소 난민들의 삶과 마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은 국경의 의미란 무엇인지 무엇이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드는지 묻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움직인다. 국적과 민족은 물론이고 나이, 성별, 종교까지 모두 다양한 이들이 대기실까지 밀려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다. 죽음이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지난 삶의 모든 것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안정적인 삶과 재산뿐만 아니라 떠나온 그 곳에 대한 감정과 기억들까지도.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들은 안전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어두운 밤 도망치는 그들을 비추는 달이 없어지기를 바랄 정도로 절박하다. 생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가로막고 심지어 위협하는 것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이라는 경계선이다.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었지만 불법이 되고, 그들은 난민이 된다.
취재를 돕는 장교는 저널리스트를 국경으로 데리고 간다. 국경에 서서 한 쪽 다리를 들어올리며 여기서 한 발짝을 내디디면 그는 외지에 있게 되고, 경계를 넘은 사람이 되며,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다리를 들고 균형을 잡기 위해 양 팔을 드는 모습은 마치 황새가 비상하기 직전의 모습 같다. 하지만 황새는 자유롭게 날아갈 수 없다. 국경은 이들에게 함부로 넘을 수도 또 계속 남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죽음의 경계선이다. 바로 뒤에서 죽음이 몰려오기에 어디로든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움직일 수도 없다. 경계를 두고 어느 곳에도 소속될 수 없는 그들은 좌표를 잃어버린 채 고립된 대기실에서 부유한다.
그들 중 어느 누가 국경을 긋는 것에 동의한 적 있을까.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선이 그어지고 선을 기준으로 국적뿐만 아니라 삶 또한 규정된다. 국경은 단순히 국가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감독은 자신은 배신자가 아니라며 자해를 하는 쿠르드인과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 시위하는 쿠르드인을 함께 보여준다. 쿠르드인이라는 이유로 학살당하고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그들에게 민족은 또 다른 국경이다. 민족, 종교, 성별과 같은 사회적, 개인적 기준들은 이처럼 하나의 경계선이 된다. 이러한 기준들은 너무나도 쉽게 개인 또는 집단을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규정한다. 이러한 기준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는 기제로서 적용되어 그들에게 폭력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편히 쉴 수 있는 ‘집’에 도착하기까지 자신의 삶을 걸고 무수히 많은 국경을 넘어야만 한다.
사라지기 직전, 정치인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우리가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침묵을 지켜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은 조용히 관망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말을 덧대는 것 자체만으로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기에 특별한 대사나 편집도 없이 롱테이크로 조용히 그 사태를 사람들에게 들이민다.
이러한 침묵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국경을 두고 갈라진 마을이 강을 두고 화합하는 장면이다. 하나의 마을이었지만 국경이 그어진 날부터 그들은 죽음의 위험을 감수한 채 가족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저널리스트의 팀은 이 강을 두고 갈라진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순간을 영화로 담는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결혼식은 가장 화려한 의례다. 세상에서 가장 밝고 기쁜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할 의례에서 모든 소리가 숨을 죽인다. 오직 그들을 가르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카메라는 시적이지만 비극적인 침묵의 순간을 천천히 기록한다. 총성이 울리고 모두가 도망치는 가운데 신랑과 신부가 다시 강둑으로 와 손을 들어 서로를 바라보고 손을 머리 위로 든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듯이.
저널리스트가 처음 정치인을 찾아냈을 때, 그는 연의 우화에 대해 말한다. “태양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대지가 불타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야만 할 때가 찾아올 것이다. 그 때에 모든 인류가 한 소년이 날린 연줄을 잡고 우주로 떠날 수 있다.” 모든 경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에 대하여 우화는 말하고 있다. 강가의 결혼식을 치른 밤, 정치인은 강물이 울부짖으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매일 밤 들린다고 고백한다.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사태의 목격자로서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에 헤매다가 국경에서 경비대에 붙잡힌다. 경비대에서 풀려난 새로운 해의 첫 날에도 국경의 강은 침묵하고 있었다. 장교는 저널리스트에게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국경 너머
로 사라졌다고 전한다.
결국 연에 대한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았다. 저널리스트는 정치인과 함께 있었던 아이에게 연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하라 말
한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작은 희망조차 살펴볼 수 없다. 우리는 왜 이 순간을 가정할 수 없을까. 모두가 연줄을 타고 하나가 되어 우주로 오르는 순간을. 좌절하고 있던 그의 곁에서 일꾼들이 전신주에 오른다. 지상에서는 어느 곳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그들이 마치 하늘로 날려 올린 연줄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전신주는 지상과 하늘의 중간 지점에서 멈출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날아갈 수 없다. 삶이 허락되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시간은 그 곳에 박제되어 있다.
몇 년 전 정치인은 사라지기 직전에 아내에게 음성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행복하고 정치적으로도 유망했던 그가 떠난 이유는 정치인이 환멸을 느낀 것은 이러한 사태를 딛고 서있는 자신이라는 존재였다. 자신은 이 세상에 방문객이기에 아무 것도 진정으로 자신의 소유라고 믿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난민이 아닌 그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고 시간마저 빌려야만 하는 존재들이었다. 자신의 행복이 다른 이의 절망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정치인은 스스로 국경을 너머 난민이 됐다. 오늘 날 우리는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나. 살아남기 위하여 발길을 옮기고,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이름없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문을 열어 그들을 도와야 할 이유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정치인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진정 우리가 ‘얻은’것인지 되려 묻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도 정치인처럼 난민이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낄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딛고 서있는 현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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