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4월부터는 난센식구가 되었습니다.
접고 싶은 순간들마다 먼저 가신 분들의 다독임과 위로가 있었기에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떨리고 두려운 법인데, 따뜻하게 맞아주신 난센 식구들 덕에 출근길이 즐거워요.
욕심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할 것들을 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주중엔 공부를 시작했고 친구들도 만났으며, 주말엔 결혼식 같은 이런저런 봄 행사로 바삐 다녔습니다.
분명히 한 것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기억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봄의 선선한 바람과 형형색색의 꽃들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내 마음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는 아직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뇌가 과부하 한 것인지 생각하기가 아주 귀찮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몇 가지 생각에 집중해서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동기를 갖는 것이 저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날짜에 '날로 새롭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에너지는 생각을 가능케 한다'란 동기를 가져서
'바빠도 여유로울 수 있다!'를 기꺼이 실천하는 4월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지난달부터 탐(김성인 사무국장)이 사무실에 자주 나오지 않게 되시며 세대 전환의 움직임이 꿈틀꿈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장 탐이 하던 역할을 해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잘 몰라 륭륭(류은지활동가)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던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탐이 했던 역할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어떻게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 하나씩 이야기하는데 공부해야할 것도, 묵묵히 견디며 통과해야할 것도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다보니 일은 눈덩이 처럼 밀리고 한숨이 푹푹 나왔던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어렵고 구멍난 상황들을 묵묵히 이해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시는 동료들(쟤,붱,단)이 있어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요즘은 한참 총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총회 준비를 하며 지난 한해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해 나갈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들이 되었어요. 난센이 지속가능한 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다양한 분들과 나누고 생각을 함께 녹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운영위원회와 총회 뿐만 아니라 온라인 등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 난센에 관심을 기울여주시는 많은 분들의 의견을 가능한 여쭙고 싶습니다.
요즘은 다시 한번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 이 분야의 활동가들이 대부분 3년 이상의 활동을 꿈꾸지 못하는지, 다양한 분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난센에 남아 활동을 꿈꿀 수 있도록, 또 많은 분들이 이 분야에서의 꿈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활동의 구조를 만드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6년째 주말농장을 하며 농약, 화학비료, 비닐 없는 3무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려는 작은 실천이지요.
농사에 경험 많으신 주변 분들로부터 이러저러한 말들을 듣습니다.
유기농은 불가능하다. 벌레들 좋은 일 시키려고 농사짓느냐. 주변 밭에 피해를 준다 등등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기도 생기지만, 내가 하는 방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커져가는 나의 자부심은 친환경적이지 못한 주변 분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내가 선택한 가치와 방식은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걸로 끝나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신념이라도 내 마음속에서 빠져나와 남들을 향할 땐 폭력의 도구가 됨을 경험합니다.
비슷한 경험을 활동가로서 하곤 합니다.
내가 시민운동을 했고 인권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주변 분들로부터 지나친(?) 찬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 한다. 어려운 일 한다. 등등
인권단체 활동가라는 직업 때문에 실제 내 모습 이상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단지 쓴 맛이 싫어 커피를 마시지 않는 별 의미 없는 취향도 아동 노동 착취를 반대하는 행동일거라 여김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격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진짜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들보다 특별히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활동가로서 삐뚤어진 자부심은 남들과 나를 구분 짓게 만들고
활동가로서 왜곡된 자부심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적도 있었습니다.
내 일에 대하여 자부심이 큰 건 사실이지만 이 일은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귀천이 없는 세상의 많은 직업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자부심은 마음속에 있을 때만 빛이 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난센과 함께 한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손 닿는 거리에서 난센과 호흡하며 난센을 보았습니다. 다섯 명을 겨우 넘기는 활동가들이 생활하는 이 작은 10평 남짓의 사무실 한 켠이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이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운영되는데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실무적 지지를 포함한 정서적 지지와 지원, 보살핌, 조언과 격려, 신뢰와 이를 둘러싼 관계들이 존재하는지를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번역 및 리서치 업무를 묵묵히 해주시는 자원활동가분들은 물론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난센에 도착하는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 활동가들의 부족한 역량을 채워주기 위해 손 내밀어 배움을 주시는 고마운 분들, 출근하기 위해 지나쳐온 사월의 꽃길이 그 어느 해보다 감동이 되게 만들어준 사무실 밖에 쓰인 고마운 시 한 편, 점심 때 잘 먹으라고 갖은 귀한 나물로 손수 요리해 건네주신 같은 건물 이모님 등 수많은 관계가 난센이 운영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라는 개인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지지는 물론이고 오래된 옛 친구의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갑자기 말을 걸어온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호의 가득한 표정과 칭찬,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예전에 선물 받았다가 오늘 우연히 꺼내 든 책의 한 구절이 주는 큰 위로 등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비단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디딘 한국 땅을 넘어 제 3세계의 삶의 터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언제나 거기 있는 자연과도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모두에게 빚을 지며 살아온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관계에 빚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난민도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들도 본국에선 무수한 관계 속에서 빚을 지고 또 되갚으며 살아왔지만 한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을 잃고 언어도,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른 낯선 나라 한국에 온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김새와 쓰는 언어가 같다는 이유로 받는 무조건적인 신뢰도 없이 새로 모든 것들을 구축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한 명의 난민을 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 전체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난민들이 오늘 진 빚을 미래에 되갚을 수 있게 오늘 우리들의 지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에요. 평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난센을 가고 주말에 사람을 만나고 일요일엔 집이나 카페에서 ‘혼자' 시간보내기. ‘혼자 있는 시간’을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난 5년동안 항상 누군가의 옆에 있었어요. 저의 많은 일상과 순간을 함께 나누었지요. 문득 되돌아보니 혼자 있는 것 보다 ‘같이’ 있는 게 익숙했어요. 많이 의지했고 고마웠고 혼란스러웠고 무기력했고 화가 났어요.
이제는 화, 자괴감, 무기력함 등을 내려놓고 좀 더 ‘나’를 돌아보고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사랑을 정의내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만큼 나를 사랑하는 일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또는 사랑하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릴케의 글을 바칩니다.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 역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니까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입니다.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결합을 행복이라 부르고 자신들의 미래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각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다른 사람까지 잃게 됩니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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