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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3월 월담] 사람책읽기-우간다 난민 이야기 후기






우간다를 떠나기까지

저는 콩고와 이웃한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1962년 우간다는 독립했고, 밀턴 오보테가 첫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 1971년에 쿠데타가 일어나 이디아민이라는 독재자가 우간다를 통치하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추방을 당했습니다. 1979년 추방을 당했던 사람들이 연합해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1980년에 선거가 치러졌으나 여러 부정행위가 발생했고, 반군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6년에 정부가 전복되고 무세베니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초기에 무세베니 대통령은 좋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부, 소작인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습니다. 약 10년간 우간다에는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힘을 가지자 그는 권력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1994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지만 1996년에 치러진 선거는 불법선거가 되어버렸고, 많은 이들이 수감되거나 추방당했습니다. 저는 무세베니 대통령을 반대하는 Reform Agenda라는 그룹에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제가 지지했던 이들이 남아프리카로 망명했고, 정부에 의해 제거되었습니다. 정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반역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수감된 이들은 증거를 찾으면 사형에 처해졌고, 증거가 없다면 독에 중독된 채 풀려나 얼마 후 죽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중 몇 명은 감옥에서 사형당하거나 독살당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위협으로 인해 우간다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이는 누구든 난민이 될 수 있다.


저는 난민입니다. 제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모든 이들이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시간,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으로 인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첫번째 사진의 주인공은 줄리안 어산지입니다. 이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기라도 했었나요?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국가의 부당함을 밝히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다음은 달라이 라마입니다. 이 분을 아시죠? 이분의 범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의견으로 인해 문제 생긴 것일 뿐입니다. 에드워드 스노든도 본국인 미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러시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르완다의 대통령인 폴카가메는 우간다에서 14년 간 난민으로 지냈습니다. 아웅산 수치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감옥에 갇히기도 하며 많은 위험을 겪었습니다. 그녀가 계속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누구나 자신의 신념과 주장으로 인해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



#난민신청,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2008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아프리카인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건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고, 북한에서 폭격을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우간다에서 정치활동을 할 때 저는 정치, 인권, UN등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반기문에 대해 알고 있었고, UN 사무총장인 반기문의 조국이라면 난민을 보호하고 인권을 지켜주는 최고의 국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한국에서 저는 난민지위를 신청했습니다. 한국에 오면 바로 ‘당신은 난민이니까 어디에나 갈 수 있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절차를 거치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체류는 허가됐지만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추방의 두려움을 안고 불법으로 일하는 시간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저는 난민지위를 얻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고 신청이 기각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년 반이 지나 전화를 받았고 난민 신청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거나 출국해야 했습니다. 


저는 불인정처분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제게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당이 설립된 정확한 날짜를 언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불인정처분을 내린 공무원은 저의 진술이 사실일지라도 제가 정확한 날짜를 언급하지 못했기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매우 화가났고, 한국정부가 난민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의 모든 진술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날짜를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며 증거를 제출할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본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집에 있는 서류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달 후에 자료가 도착했고, 출입국사무소에 제출했습니다. 두 달을 기다리니 전화가 왔습니다. 공무원은 제게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의신청이 기각되면 외국인등록증을 가져간다는 걸 알기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UNHCR에서 축하행사가 있다고 꼭 가야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후 출입국사무소에 찾아가 난민으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 때가 한국에 머물던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정부는 저를 추방하지 못했고, 저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새로운 선택


몇 년이 지난 후 저는 사람을 돕는 더 나은 일을 할 방법이 없을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난민들이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무언가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간 고민하던 끝에 다시 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있었고 지금껏 이어온 학업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난민협약에 난민들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알아보았지만 정보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대학과 장학금을 알아보면서 장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교에 이메일을 보내 장학금과 교육과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여러 답변을 받았지만을 대학교육을 받을 돈이 충분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을 가진 채 대학에 지원했고,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학비를 구할 수 있을지 알아보다가 난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저는 당시 결심이 확고했었습니다. 그러나 천만원에 달하는 학비가 필요했고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난센과 접촉해 학업에 대해 논의했고 난센도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어 실망에 차 돌아갔습니다. 그 때도 저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학기를 놓치더라도 언젠가는 학교에 가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난센 사무실을 떠나면서 이른 아침에 남영역 근처에서 울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화가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은 후 제가 계속 되뇌었던 말은 “이젠 뭘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난센에 모금을 시도해보자고 했습니다. 난센과 함께 학비를 모금했고, 저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국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언젠가는 이 빚을 환원하고 싶습니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입학한 후 쉽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후 성적장학금, 교우회 장학금, 기업의 장학금을 받음으로써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UN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UN은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UN에 가기 위해 현재 대학원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난센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석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가 받았던 장학금을 저축해놓았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 많은 것을 환원해야한다고 느낍니다. 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기 원합니다. 오늘 이렇게 제가 학업을 다시 시작하던 시점에 저를 지원해준, 부모님과 같은 난센과 다시 연결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 몇가지 궁금한 점


Q.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니엘씨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난민이라는 사실을 얘기할 때 어떤 반응이 오던가요?

우간다 친구들이나 가까운 친구들만 제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다른 이들은 제가 난민인지 모르고요. 처음 입학했을 당시 뉴스를 본 사람들이 저를 안다고 하기도 했지만요. 특히 교수님들이 저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 특혜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더욱 숨기려고 했습니다.


Q.한국에서도 우간다 정치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저는 페이스북에서 펀드를 모으는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Q.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나요?

매우 어려웠습니다. 처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죠.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대학에 가기 전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네트워크가 있었고 그 덕에 아르바이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서프라이즈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돈이 없을 때에는 수업을 빼고 촬영을 하러가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공장 동료, 배우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대하는 자세는 두가지 중 하나라고 합니다.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하거나, 그 어려움을 성장의 기회로 삼고 나아가거나 말입니다. 다니엘씨는 분명 그 후자인 것 같았습니다. 다니엘씨의 목소리에는 한결같이 힘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가 겪은 어려움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독재정권에 대항해 터져나온 신념의 목소리가 그를 본국에서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지만 꺼지지 않고 남은 그 신념이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꺼지지 않는 다니엘씨의 신념을 지지합니다. 계속해서 나아갈 다니엘씨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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