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난민 풀겠다는 그리스, 유럽 밖에서 통제하겠다는 EU
더블린 조약으로 유럽 외곽 국가에 난민 집중
EU 역외에서 난민 선별하는 이주자접수센터 구상
[뉴스&난센] 지난 8일 "유럽에 난민을 풀겠다"는 그리스 국방장관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어 이탈리아는 11일 열린 EU내무장관회의에서 EU역외에 이주자접수센터를 세울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유럽 외곽지역의 국가들로서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에 대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에 난민인권센터는 EU 내 난민 문제의 핵심인 더블린 조약과 새롭게 대두되는 EU 역외 이주자접수센터 설립안을 분석함으로써 EU 공통의 난민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았습니다. |
그리스 국방장관 “유럽에 난민 풀겠다”
파노스 카메노스 그리스 국방장관은 8일 유럽연합(EU)이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내버려둔다면 독일에 난민들을 풀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는 “만약 그들이 그리스에 타격을 준다면, 그들은 이주민들이 베를린으로 가는 여행문서를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니코스 코트지아스 그리스 외무장관도 지난 6일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밀려난다면 수백만명의 이주민과 수천명의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유럽에 유입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독일 경찰조합은 솅겐조약에서 그리스를 제외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솅곈지역으로부터 방치된 그리스
왜 독일 경찰조합은 그리스를 '솅겐조약'에서 그리스를 제외해야 한다며 반발한 것일까요? 솅겐조약이란 룩셈부르크의 솅겐에서 1985년에 발효된 조약으로서 회원국 간 국경검문을 폐지하고 관세 통제를 없애는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입니다. 솅겐조약 가입국은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연합(EU)의 회원국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입니다. 솅겐조약을 통해 4억명에 이르는 인구의 통행이 자유로워지게 된거죠. 필요한 서류만 있다면 유럽전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주민들이 베를린으로 직행할 수 있도록 솅겐지역을 여행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발급해줄 것이다.”라는 파노스 카메노스의 장관의 말은 충분히 독일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발언이었던 셈이지요.
유럽 외곽지역에 난민을 집중시키는 더블린 조약
터키와 맞대고 있는 그리스의 국경은 불법이민자들을 막는 최전선이며 유럽은 이 곳을 통해 이라크와 시리아를 오가는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통행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은 ‘더블린 조약’을 통해 유럽에 들어오는 난민신청자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2003년에 개정된 더블린 조약에 따르면 유럽에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나라에서만 망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더블린 조약의 주된 목적은 난민신청자의 입국 또는 체류에 가장 큰 역할을 한 회원국에 난민심사의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한 국가에서 난민신청을 처리함으로써 신청이 복수 국가에 중복되지 않도록 하고, 심사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그 취지이지요. 주로 심사를 책임지는 국가는 난민신청자가 처음 입국한 EU회원국이 됩니다. 만약 한 국가에서 이미 난민신청을 한 사람이 다른 국가로 숨어들어가 난민신청을 할 경우 처음 도착한 국가로 이송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최초로 도착한 나라에서 난민신청자의 지문 등 신원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EURODAC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더블린 조약은 유럽 외곽 지역에 있는 국가에 난민을 집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들어오는 다수의 불법이민자들이나 난민신청자들은 그리스, 말타,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과 같은 나라를 통해 유럽에 들어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럽으로 찾아오는 이주민들이 모두 처음 입국한 국가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 입국한 국가가 난민신청을 처리할 책임을 지게 됨으로써 난민신청자들에게 지원과 보호를 제공할 능력이 없는 유럽 외곽지역의 나라들이 과도한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 국가들은 난민신청절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난민신청자들의 지문을 채취하지 않거나 북유럽으로의 이주를 방조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주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국경로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출입국 관리를 위한 관료체계를 견고화하기도 했습니다.
국경강화를 통한 난민 유입 억제의 실패
난민과 망명에 관한 유럽평의회(ECRE)와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현재 EU의 난민 보호시스템은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보호를 제공하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더블린 조약은 EU 회원국들이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협력하게 하기보다는 외곽 국가들이 국경을 통제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EU는 EU영토를 밟기 전인 해상 난민 구조를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난민들이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더 작은 보트를 이용하고 위장을 위해 배의 엔진을 고장내면서 오히려 익사사고만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끊임 없이 비판이 제기되던 EU의 국경통제 시스템은 2013년 10월 이탈리아령 람페두사섬 근처에서 360여 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은 이후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13년 10월 중순부터 이탈리아 정부는 ‘마레 노스트룸’작전을 가동했고 2014년 8월까지 무려 8만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지중해에서 구조했습니다. 그러나 지중해에서의 난민구조가 불법 이주를 부추긴다는 야당의 반대가 거세졌고, 하루 30만 유로(약4억원) 가량 소요되는 비용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해군은 EU에 역할을 인계했고 지중해에서의 구호 작전은 EU 국경관리기관(FRONTEX)이 주도하는 ‘트리톤’으로 대체됐습니다. 마레노스트룸이 1/3의 규모에 불과한 트리톤은 구체적인 수색과 구조보다는 순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작전범위도 이탈리아 근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렇듯 트리톤이 난민의 생명을 구하기에는 부적절하고 충분치 않다는 비판 가운데 UN은 지난해 적어도 3,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난민집중해소를 위한 새로운 정책들
최근 니제르, 이집트, 터키 또는 레바논과 같은 핵심 경유국가에 이주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소를 설치하는 아이디어가 EU 내에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270,000명의 이주민이 EU에 불법으로 입국하면서 이들을 막기 위한 급진적인 정책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디미트리스 아브라모풀로스 EU 이민·내무담당 집행위원은 “EU 해안을 불법으로 밟는 이주민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제3국에 있는 EU사무소와 대사관을 통해 이주민들이 유럽에 도착하기 전에 난민신청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5월에 발간될 것으로 보이는 유럽위원회의 정책문서에서는 불법이민을 줄이고 이민의 합법채널을 만들기 위한 제안 중 하나로서 유럽 역외 이주자접수센터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탈리아는 지난 11일 열린 EU내무장관회의에서 북아프리카에 이주자 접수센터를 세울 것을 EU회원국에 촉구했다. 이주민들이 EU에 도착하기 전 난민 여부를 심사하여 경제적 이주민은 사전에 걸러내고,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국외로 가려는 이들은 정착 희망국가와 직접 연결하는 예방적 선별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안젤리노 알파노 내무장관은 이러한 정책이 “유럽이 이주민들을 선별하고, 거대한 인신매매 시장을 해체하도록 하는 인도적인 도전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 등의 나라가 찬성의 목소리를 더하고 있습니다.
유럽 공동의 난민시스템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고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신청자의 새로운 정착지를 공평하게 결정하기 위해서는 28개 국가가 동의하는 공평한 분배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이주자접수센터를 설치하게 될 국가와의 쌍방합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각국 정부가 여전히 이주정책에 관한 주도권을 지키려 하고 반이주/반EU를 주장하는 우파정당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이 이주정책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은 "불법적인 경로를 막기 위해 합법적인 경로를 더 쉽게 만드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방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코소보인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는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EU의 다문화주의가 "망상"이라고 하며. 코보소인들의 유입이 헝가리를 "거대한 난민캠프"로 바꿀 위협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지중해를 넘어 이탈리아로 입국한 이주민의 숫자는 지난 해의 갑절인 9천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말까지 그 수가 최대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까지 합니다. 날씨가 풀리면 겨우내 주춤했던 지중해 횡단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해로 인해 본국을 탈출할 수 밖에 없는 난민들이 또 다른 생명의 위협에 맞닥뜨리지 않도록 EU의 적극적인 난민보호정책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류은지 (난민인권센터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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