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에서 법률봉사를 마친 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 동안, 난센을 떠나며 김성인 사무국장님께 약속드렸던 법률봉사에 대한 후기와 난민 케이스에 대한 검토의견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짐과 같이 머물렀다. 때때로, 받아본 난민 케이스에 대해서 리서치를 하기도 했지만 완성된 결과물에 이르기에는 한참이 부족했다. 완성에 대한 열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것을 짐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난민은, 나의 일은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딱 그 정도가 내가 난민에 대해서 갖고 있던 막연한 호기심과 연대의식의 수준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법률봉사를 통하여 김성인 사무국장님으로부터, 난센 활동가 및 인턴분들로부터, 그리고 당사자인 난민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어쩌면 나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난민 영역에 대한 관심의 진지함 또는 책임감이 이 정도에 불과함을 자각하였다는 점이다.
처음 난센에 법률봉사를 신청했던 이유는 난민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민, 이라는 말을 종종 들으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그들을 알고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김성인 사무국장님께서 다년 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강연을 해주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활자 속의 난민’에 그치지 않도록 화성 외국인 보호소, 은평 정신병원, 재단법인 동천, 영종도 난민지원센터 등을 경험하게 해주신 덕에, 난민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을 조금이나마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1주일간의 법률봉사 과정에서 김성인 사무국장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배우고 느낀 것은, 난민을 법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사람으로 대하고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이었다. 법으로 재단하자면 난민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뉠 뿐이지만, 사람으로서 이해하자면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지닌 채 머나먼 이국에 와서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비록 법으로는 난민이 아닌 이들이라도, 개개의 사람으로는 모두 참 어렵사리 살아가는 ‘難民’이었다.
뵙게 된 몇몇 분들은 많이 지쳐보였고, 위축된 듯 했다. 그 본 목적이야 어찌됐든, 말도 잘 통하지는 않는 이곳에서 받았을 설움, 불안, 고독 등에 몸과 마음 모두 많이 깎여 닳은 듯 해 보였다. 아직은 세상과 부딪치기에 어린 스무살의 젊은 청년부터 이제는 세상의 풍파에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오십대의 아저씨, 그리고 갓난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는 한 엄마까지.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있었다.
법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증명’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히고 만다. 난센에 오기 전 사법연수원 교수님께서 난민소송은 증거가 없거나 증거를 믿을 수가 없어서 힘들다고 하셨다. 그러나 증명에 관한 제 원칙도 결국 사회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기존의 문제와는 다른 이 새로운 문제에 대하여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만큼 외국인-난민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성숙하였는지는 스스로도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법률봉사기간 중, 수원에서 일어난 조선족 살인사건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호주에서도 외국인 IS 대원에 의한 테러 사건이 터져 온라인 뉴스코너를 점령하였다. 뉴스의 댓글들은 외국인에 대한 강한 혐오를 표출했다. 너무하다고 생각되면서도, 확신 있게 반박하기도 또한 어려웠다. 우리 모두 이 문제에 대한 경험도, 고민도 일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난센에서의 일주일, 그리고 외면과 도피의 한 달간, 그 일천한 경험과 고민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고는 –스스로가 부족했기에-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경험과 고민을 위한 작은 씨앗을 스스로 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본다. 김성인 사무국장님과 활동가, 인턴분들이 난민 분들을 대하던 그 스스럼없는 태도, 난민 분들이 위축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건넨 그 맑은 미소가 “난민도 사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되새겨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법에 맞출 것이 아니라, 법을 사람에 맞추어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을 새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을 통해서, 언젠가 단 한 명이라도 난민과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기를 감히 소망해본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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