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 12기 인턴으로 두 달 가까이 지냈습니다. 매일매일 정말 즐겁고 신이 납니다.
‘웃음치료(개그테라피)’를 받기 때문입니다.
김성인국장님, 고은지님, 류은지님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갑자기 몰려오는 전화가 부담되고, 네모난 컴퓨터 창만 들여다 보는게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과 함께 나누었던 농담을 떠올리며 혼자 소리없는 미소를 짓는 순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활동가분들과 뭉치는 회의,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유일했던 동기 인턴, 장유연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관두게 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9월부터 같이 배우고, 이곳저곳 답사도 함께 했던 친구여서 더 아쉬웠습니다.
홀로 5년간 프랑스 유학생활을 보낼만큼 당차고 멋진 유연이. 가까이 있으면서 배울점이 참 많겠다 생각했는데 그저 보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딜가든 건강하고, 언제나 그 호탕한 웃음소리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난민인권변호사, 장유연!! 아잣 힘내라!!
‘나는 단지 6개월 일하는 인턴이야.’라는 구차한 핑계로 케이스관리에 소극적으로 임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왜냐하면 난민신청하신 분들 입장에서 보면 저는 조만간 교체될 담당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관계를 맺고 이어가고자 합니다. 의욕이 지나쳐서 괜한 실수를 할 수 도 있으니까요. (기우인가요? ^,^)
생뚱맞긴 하지만, 저를 헨젤과 그레텔 남매에 비유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빵조각을 뿌려놨지만 새들이 쪼아먹어 숲속을 해맸던 그 남매 이야기가 요즘 절실히 와닿습니다.
제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어떤 이정표를 보고 길을 가야하는지,
혹시 과자로 된 집의 유혹은 어떻게 뿌리칠 수 있는지… 이런 공상에 빠져 있습니다.
활동가 이야기라.. 10월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 중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고민이 됩니다.
그 중 지금까지도 저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1
그날 아침, 국화씨는 불현듯이 난센을 찾아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난센에 도착한 국화씨를 만나 인사를 하니, 심사기간연장서(신청 후 6개월 내에 심사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법무부는 난민에게 심사기간 연장을 고지함)를 펼쳐 들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십니다.
어쩌면 외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겪는 비자 관리-체류 연장 따위 업무들과 한국의 서류들은 그녀에게 생소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서류가 ‘출.입.국’ 이라는 이름이 박혀 전혀 모르는 언어로 전달 되면 당혹스럽고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서류에 대한 질문만을 하기 위해 장작 3시간이 넘는 여정을 거쳐오게 된 상황이 죄송하여 ‘
다음 번에는 전화나 문자로 여쭈어보시는게 더 편하지 않으시겠냐 죄송하다’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씀을 되풀이 하십니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생활고를 털어 놓으십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노라니 국화씨가 맛있는 밥을 많이 드시고 가셨으면 해서 토마토카레를 한 솥 끓였습니다.
국화씨는 토마토카레를 한 스푼 떠서 드셔보시더니,
이내 두 세 번을 왔다 갔다 하시며 드셨고 너무 맛있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며
happy, happy, happy를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그날의 국화씨는 제가 본 국화씨의 모습 중에 가장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녀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카레를 먹고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에 제가 더 감사해졌습니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 생각해보니 그녀가 긴 여정을 통해 난센에 온 이유는
어쩌면 서류 이야기를 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른 일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의식해 그녀의 이야기를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다해 듣지 못했다면
그녀는 서류에 대한 질문만 하고 돌아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지금껏 활동하며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했었나? 라는 질문이 들며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마음들을 그녀를 통해 선물 받았던 하루였습니다.
# 2
Live’s project 준비 과정에서 리아의 나라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활동에 많은 귀감이 되는 책이었고, 그래서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 3
지난 달에는 사랑하는 동료들이 난센을 떠났습니다.
항상 만화 원피스를 보며, 나도 저런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싶다 라는 생각을 꿈꾸었었는데,
그들은 그런 제 막연한 꿈을 실현 시켜주었던 동료였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해주었던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고민해온 안은애 활동가님,
또 그 누구보다도 멋진 열정과 꿈을 가지고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장유연 활동가님
두 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난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기적을 바라고 현명한 자는 기적을 만든다.’
부족한 난센 건물의 1년 임차료를 마련하기 위해 마음 졸였던 10월 이었습니다.
여전히 450만원이 부족한 채 큰 부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적자 없이 난센 사무국을 운영하려면 최소한 100분의 신규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난센을 창립할 때부터 재정의 어려움은 항상 따라다녔고 그럴 때마다 주변 분들의 조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습니다.
하나는 교회에 도움을 청하라 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몇몇 교회에 접촉한 적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교회에서 먼저 후원을 제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한 지점.
난센이 난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선교기관의 사명을 담당하겠다는 고백(?)을 하면 후원하겠다는 조건에서 막혔습니다.
난센엔 원칙이 있습니다.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종교적 박해이기 때문에
난센의 활동에 어떠한 형태로든 특정 종교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부 구호단체들처럼 난민을 모금에 적절히 활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난센 활동을 하면서 가장 유혹받는 지점입니다. 솔직히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난센엔 원칙이 있습니다. 난민을 어떠한 형태로든 대상화 하지 않고 특히 난민의 비참한 이미지를 활용해 모금하는 짓은 하지 말자 입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모금이 나름의 원칙과 모금윤리로 자체검열을 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기적을 바랍니다.
당장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난센의 원칙을 깨는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원칙이 깨지는 순간 난센의 진정성과 존재이유도 함께 깨지게 되니까요.
난센은 원칙을 깨지 않고 기적을 바라는 어리석음을 택하겠습니다.
현명한 분들이 만들어 주실 기적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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