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2025년 11월 13일 내전을 피해 한국에 입국한 인도적체류자 가족의 성년 자녀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독립세대로 간주해 건강보험료를 부과한 처분의 위법성을 다툰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판결문). 원고는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시기에 성년이 되면서 매월 10만 원이 넘는 건강보험료 납부 고지서를 받았고, 이는 기존에 세대주에게 부과되던 보험료와는 별도로 추가 부담되는 것이었다. 해당 가정은 구성원 전원이 인도적체류자 지위로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기초생활보장 등 공적 지원 대상이 아니고 취업 기회 또한 제한되어 있어 안정적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취약성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학업을 지속해 온 원고는, 실질적 소득이나 재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세대주로 간주되어 과도한 보험료가 부과된 데 깊은 좌절을 느끼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외국인 건강보험제도는 2019년부터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을 지역가입자로 당연가입시키면서, 소득·재산 정보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 개인별 독립세대 간주와 평균보험료 부과라는 특례를 적용해 왔다. 그 결과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성년 자녀·고령 부모 등도 실제 부양관계와 상관없이 1인당 월 10~15만 원의 보험료를 부과받았고, 단 한 달 체납만으로도 보험급여가 제한되며 체납이 지속될 시 체류연장까지 가로막혀 사실상 추방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내국인이나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와 비교해 볼 때, 심각한 구조적·제도적 차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내전을 피해 온 인도적 체류자처럼 불안정 노동·저소득 상태에 있는 집단에게 이 제도는 생계 압박과 건강권 침해를 초래하며, 건강보험이라는 사회안전망의 취지에도 반한다는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내국인에 비해 소득, 재산, 부양관계를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에 관한 특례 규정이 그 자체로 위헌·무효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보았으나, 갓 성년이 되었거나 고령·질환 등으로 독립적인 생계 유지가 어려운 사람들까지 기계적으로 독립세대로 간주해 평균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사회통념과 실제 부양관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예외적 사안에서 위헌적 결과를 배제하려면, 이 사건 고시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야 하는 간주규정이 아니라, 외국인 지역가입 측의 반증이 없는 한 적용할 수 있는 추정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처분의 적법성에 관한 증명책임이 원칙적으로 피고에게 있고, 이와 상반되는 예외적인 사정에 관한 주장과 증명이 원고에게 있는데, 세대원이 피고에게 이의신청을 하거나 행정쟁송을 제기하여 자신이 실질적으로 세대주의 부양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독립적으로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보았다.
즉, 원고와 같이 실질적 소득이나 재산이 전혀 없는 학생에게 매월 10만~15만 원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부담이며, 이는 곧 건강보험 체계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체납에 대해 한 달 만에 보험급여 제한이 발동되고, 이어 체류연장 제한 및 추방 위험으로까지 연결되는 정책에 대해 법원은 사회권규약이 보장하는 사회보장권·건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동일한 경제적 상황의 내국인·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와 비교해 외국인 지역가입자 가족만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평등원칙에도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내전을 피해 급히 탈출해 온 인도적 체류자들이 언어·문화 장벽과 취약한 노동환경으로 안정적 소득을 얻기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이들에게 평균보험료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고 체납 시 급여를 제한하는 현 제도는 건강보험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보았다. 결국 법원은 해당 처분이 “문명국가의 헌법정신에 어긋나고 대한민국 법질서상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국민건강보험은 국가공동체가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며, 이에 대한 적용 제외 사유는 지극히 엄격하게 해석·적용되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은 건강보험 제도의 근본 취지를 다시 새기게 하는 동시에, 그동안 외국인 지역가입자와 그 가족들이 겪어온 고통을 제도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피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항소를 자제하고, 소득과 재산이 없는 직계존비속을 합리적인 부양가족으로 인정하여 내국인과 동일한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하며, 외국인 지역가입자 가족의 경제적 현실과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험료 부과 기준을 즉각 정비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외국인 지역가입자 제도의 전면적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 차별적·비현실적 기준이 이주민 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신속한 제도 개선이 추진되기를 촉구한다.
2025. 11. 14.
난민인권센터, 재단법인 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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