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외국인 구금 중단 요구 기자회견 발언문
세계인이라서 갇혔다
타리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활동가)
안녕하세요.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타리입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한국으로 건너온 이들과 HIV와 함께 살아가는 난민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입니다.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이라고 합니다. 올해 16회를 맞이한다고 했는데 저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올해의 슬로건은 ‘공감과 존중, 하나되는 대한민국' 이네요. 홈페이지에 한번 가보십시오. 기념식에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대부분 한복을 입고 있습니다. 미담을 엮은 코너가 있는데 대부분 한국인의 친절과 도움에 감사하는 외국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쯤되면 느낌이 오시죠. 이름은 세계인의 날인데 한국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서 외국인을 이용하는 날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사전적인 말 뜻은 오히려 국가를 초월해서 세계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 세계인입니다. 그런데 누구와 무엇을 공감하고 존중하길래 대한민국으로 하나가 되나요.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만나 공감하고 존중했는데 하나의 국가로 수렴되는 일은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요. 차라리 대한민국 사람 되는 날로 정했으면 위화감이라도 덜했을텐데 대체 세계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물어볼까봐, 특히 외국인이 물어볼까봐 겁이나고 쪽팔립니다.
미담사례집을 넘겨보다가 특별히 눈에 들어온 사연이 있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유학생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오랫동안 고향에 가지못해서 힘들었는데 쿠데타로 인해서 더욱 고향에 가기가 어려워졌고, 고향의 가족들과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한다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2일, K-방산 수출 확대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외교부, 국방부, 방산수출 기업이 주최한 국산무기 수출행사에 미얀마 군부를 대표하는 주한 미얀마 대사가 참석해 전차까지 탑승했습니다. 미얀마 유학생이 토로한 힘겨움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야기(미담)으로 수집된 것도 어처구니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한국정부가 미담을 수집하고 홍보하는 행위가 결국 외국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외국인보호소는 세계인과 가장 적대적입니다. 세계인은 세계 어디에 있어도 세계인인데 왜 갇혀있어야 할까요? 세계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갇혀있네요. 물론 지금의 국가체제 어디에서도 세계인의 권리를 온전히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곳입니다. 그럼에도 최소한 존재한다는 이유로 구금하는 것은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체류자격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세계인이 될 자격이 있나요? 한국의 비자제도는 철저하게 한국인의 필요에 맞게, 존중과 권리를 차등화해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주노동제도는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철저하게 계산하고 통제해서 사람을 노동력으로 환산시키려고 합니다. 결혼이주제도는 한국인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을 재생산노동력으로 환산시키려고 합니다. 난민심사제도는 실질적으로 난민을 수용하고 인정하고 살수있게 하는 제도가 아니라 그저 심사하기 위한 제도로 남겨져있습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특히나 성소수자 난민이 얼마나 말도안되는 심사를 받고 있는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심사하려고 하고, 이 사람의 말을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재판하듯이 증거를 요구하는 과정 속에서 이 심사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고 불가능한 일이 되기 일쑤입니다.
이쯤되면 한국정부는 세계인을 언급할 자격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동력과 재생산노동력으로 사람이 환원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화와 단속, 권리의 침해의 위험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정부는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추방하기 위해서 외국인보호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난민을 심사해서 분류하고,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추방하기 위해서 외국인보호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외국인보호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정적이고 자의적인 구금을 끝내기 위해서 외국인보호소가 폐지되어야 함은 물론, 외국인/이민 정책의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자고 하면 너무 먼얘기 같고 무책임한 말인것 같나요? 외국인보호소를 일단 폐지하면 답이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중심에 놓고 체류의 자격과 목적을 다시 짜고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나가야만 합니다. 체류기간이 지나면, 난민심사중에 있으면, 공식적으로 일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말도 안되는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체류자격이 없는 부모가 낳은 자녀도 분명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아동으로서의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받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인의 날에 해야 할 고민과 토론은 이러한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이러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외국인보호소를 폐지를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 삼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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