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도하는 난민 차별
난민인권센터 은지그린
※ 본 원고는 UN 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 공동사무국과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동주최, 인권재단 사람 후원으로 2018년 7월 20일에 개최된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2018 인종차별 보고대회'와 ‘cafe doing’에서 강의한 내용을 옮긴 기록입니다.
저는 오늘 한국정부를 고발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난민 인권 활동을 하다보면 법무부에 전화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법은 어렵지 않아요.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라는 법무부의 전화연결음을 자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법은 어렵지도, 불편하지도 않을까요? 저는 그동안 현장에서 여러 인권침해 사례를 만나오며 법무부의 전화연결음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은 난민에게 아주 어렵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난민은 난민 신청 지위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이상, ‘난민’으로서의 차별을 경험하기 어려우나 난민신청자 또는 인도적체류자, 난민인정자 등의 체류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권리 배제와 차별의 경험을 접하게 되는 ‘제도적 인종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도적 인종주의, 즉 간접차별을 포함한 직접차별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어떻게 난민을 방관해왔는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남용적 난민 낙인의 남용
난민법 44조는 난민신청자 권리제한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조항입니다. 44조는 행정심판 중인 자, 재신청자, 1년 이상 체류자 또는 체류기간 만료 임박하여 난민신청을 한 자에게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의 조항입니다. 법무부가 임의로 마련한 기준에 근거하여 제도를 남용하는 사람들을 구분하고, 권리 제한을 정당화 하고 있는 셈이지요.
여기서 첫 번째, ‘행정 심판 중인 사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법부에 따르면 한 달 평균 300여건의 행정소송이 접수되지만, 실제로 재판출석도 하지 않는 사람이 5분의1이라고 합니다. 왜 난민신청자들은 소제기를 한 이후에도 재판 출석에 응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난민인권센터에서 인권침해 상담을 진행하며 발견한 사례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A는 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편도 4시간 거리를 아이를 업고 법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소장 접수를 위해서는 한글 이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을 적을 수 없었던 A는 다시 4시간 걸려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소장 접수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 발생합니다. B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런데 도통 소송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사건 진행 상황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사건번호를 조회하여 확인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정보제공은 그 어디서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또 ‘온라인 나의 사건 검색‘은 한국어 서비스만 제공 되어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는 비단 B만의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는 접수처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자신 소송 사건번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소송 사건번호를 알고 있더라도 한글입력 등의 문제로 인해 간단한 소송 정보 검색 서비스 마저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소송 진행 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우편으로 정보를 송달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난민신청자의 불안정한 체류지위와 잦은 주거지 변화를 통해 일자리를 확보해야하는 구조적 한계로 주거지 변경 신고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송달이 불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편이 등기이기 때문에 당사자 직접 수령이 필요한데 난민이 지하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통신이 잘 연결되지 않아 우편배달부의 전화를 받지 못하게 되어 우편을 수령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등기수령을 위해 남겨진 메시지 또한 한국어로 작성이 되어 있어 확인이 어렵거나, 중간 거점 우체국에 방문하여 우편 수령을 받기 위해 하루일과를 다 비워야하는 등의 어려움을 감수해야하기도 합니다. 우편 송달을 받은 이후에도 ’변론기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상 권리고지와 정보제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절차 접근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변호사 선임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법률구조공단이나 소송구조제도를 잘 알지 못할뿐더러, 겨우겨우 해당 제도를 인지하여 신청한다고 하더라도 엄격한 법원 심사의 기준만큼이나 비용 구조 가능성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자가 소송을 해야만 합니다. 정보와 자원이 부족한 난민신청자들은 출입국외국인청 인근에 있는 행정사의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행정사를 통해 3장짜리 소장을 제출하려면 수수료를 40만원이상 요구받게 됩니다. 행정사는 소장 접수 이후 제출해야하는 각종 서류들, 하나하나 절차를 이행할 때마다 평균 50~60만원의 비용을 요구합니다. 행정사 중 일부는 법무부 퇴임공무원 등이 제도의 허점을 노려 난민신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간단 양식 등을 작성해주며 돈을 갈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남용적 난민신청자로 낙인찍고, 권리를 제한할 근거로 정당화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인 셈입니다.
두 번째, 1년 이상 기간 동안 체류를 하다가 체류기간 만료에 임박하여 난민지위를 신청하는 경우에 이들은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남용적 신청자들인 것일까요? 이와 같은 조건이 성립하려면, 결혼이주자처럼 입국과정에서부터 각 정부부처가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난민신청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낱낱이 제공해야합니다. 난민신청을 원하는 이주민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 없이 해당 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행은 난민이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기 시작한 직후부터 각종 문제에 봉착할 수 밖에 없도록 운영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난민신청서를 어디서 받아야하고, 어디에 가서 접수를 해야 하는지 등의 기본 정보가 제대로 배포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법무부는 2014년에 한국의 난민인정절차 안내를 위해 소책자를 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만 몇몇 유관단체와 개별 신청자에게 관련 책자를 배포한 이래 최근에는 그 어떤 정보제공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4년여의 시간이 경과하며, 정책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책자의 내용은 수정되지 않았으며, 아랍어, 불어 등 언어로 번역했지만 오역이 많아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사실상 없는 정보나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이 ‘난민제도’에 대해서 처음부터 알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미등록체류를 6년 가량 한 이후에 한국에 난민제도가 있고, 자신이 난민제도를 통해 권리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례 C도 있었습니다. C는 결국 심사를 통해 난민지위를 인정받게 되었지요. C는 난민인정 이후 허무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인생을 낭비하게 했던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해야 한다 했습니다. 정부가 난민신청을 할 권리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다면 체류기간에 임박하거나 도과하여 난민지위를 신청하는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남용’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체류기한에 임박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떻게 남용적 신청임을 확신하고, 권리제한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세 번째 ‘재신청을 하는 난민신청자’가 제도를 남용한다는 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난민심사를 받았는데 다시 난민신청을 한다니, 얼핏 보기에는 난민 제도를 남용한다는 이유로 도 충분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난민 신청을 다시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전 절차에서 제대로 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난민인권센터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밝혔던 허위면접 사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해 센터에 20명 가까운 난민신청자가 똑같은 면접조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난민이 아니다. 나는 한국에 돈 벌러 왔다”는 난민신청자가 하지도 않은 말이 면접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법원 판결을 통해 허위 심사였음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법무부는 제대로 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50여건에 대해서만 직권취소를 했을 뿐, 실제로 해당 사건의 피해와 책임은 누구에게 얼마나 있는지 전수조사의 과정과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최초 신청 과정에서 정보와 권리고지, 통번역 및 법률 지원의 공백으로 난민 사유 진술을 충분히 하지 못한 신청자는 면접에서마저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면접조서가 허위로 작성되는 뿐만 아니라, 면접 과정에서 “너네 나라로 돌아가”, “이 새끼야 너한테는 난민 인정 안해줘”와 같은 폭언을 듣거나 “Yes or No만 대답해” 등 진술기회를 또 다시 차단당하는 것입니다. 아랍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거나, 젠더나 종교 등의 난민사유를 고려하지 않은 통역인을 섭외하기도 합니다. 1차 심사 결과로 불인정 되어 받게 되는 난민불인정사유서는 주로 A4 반장 분량으로 작성되고, 이마저도 주요 신청사유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면접과정에서 아예 질문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호주의 경우 난민불인정 사유서가 200페이지 분량의 전문보고서로 발행되고, 당연히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는 것에 비해 한국은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의신청 과정은 어떨까요? 난민인권센터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들은 자신의 이의신청 접수 여부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법무부에 신청 상황을 확인해보면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이의신청은 접수된 상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의신청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불인정 결과 통지와 함께 한국어로 작성된 1장 양식을 보여주며 출입국 공무원이 “이 서류에 서명하세요”라는 설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의신청을 위한 서류인지 뭔지도 모르고 공무원이 서명하라고 하니 신청자들은 서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의신청 서류를 제대로 준비해서 접수한다고 하더라도, 거점사무소에서 관련 자료를 A4 반장 또는 한 장 분량으로 축약하여 난민위원회로 송부하고, 위원회 1회 심사 당 700여건의 신청을 검토해야하니 제대로 된 심사가 이루어질 터가 없습니다. 사법부 심사 과정은 어떨까요? 단 1%의 승소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난민이 남용적으로 제도를 이용하기 때문일까요? 법원은 2015년 돌연 난민 소송이 늘어나는 이유는 ‘남용적 신청자가 늘어난 것’이라며 합의 재판을 단독재판으로 전환시키고, 소송구조에 대해 승소가능성 등을 엄격히 심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법 절차의 접근성도 요원한 상황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에서도 더 멀어진 셈입니다. 14개 언어로 제공되는 재판용어 가이드나 시리아 등의 이주민 직원을 배치하였음에도 당사자에게 관련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지 않거나, 앞서 A의 사례를 설명했듯 가장 기본적인 접수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변론기일 지정 및 진행과 관련하여 의도적으로 소송을 지연시키고, 체류연장을 악용하려는 원고가 있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빠른 기일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어 소송을 제대로 준비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변호인 선임을 하지 못해 자가 소송을 진행할 경우에는 생업을 병행하며 주변의 자원으로 재판에 임해야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소송 준비가 되기 어렵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당사자 신문의 기회는 거의 전무하고, 증거조사 또한 허술하게 작성된 난민면접조서에 증명력을 지나치게 높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차저차 소송구조가 인용되어 법원이 소개한 서울변호사회 등을 통해 변호사 선임을 하더라도, 당사자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소송구조 비용을 받으며 형식적인 서류 절차만 이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종결과가 나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난민도 있는 것입니다.
법무부와 사법부는 왜 ‘남용적 난민’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제도 악용의 소지를 걱정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늘어나는 난민신청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아, 신청권리를 원천봉쇄하고 행정구조를 엄격하게 재편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남용적 난민’을 거론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6월 예멘 국적에 대해 ‘제도악용의 소지’를 이유로 무사증입국을 폐지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엔이 창설 후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를 맞이했다며 언급한 대표적인 국가가 예멘이었음에도, 예멘 출신의 사람들이 ‘난민 제도를 악용할 것’이라는 법무부의 공식 입장은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난민은 국제협약에 따라 난민지위가 발생한 그 즉시 난민으로서의 권리가 발효되며, 정부는 이에 대한 확인절차를 거칠 뿐입니다. 난민신청은 불법이 아닌 권리입니다. 제대로 심사받을 권리는 난민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입니다. 제대로 된 심사 이전에 ‘남용’이라는 프레임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남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남용적 난민‘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은 제대로 된 심사 이행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지, 난민의 권리제한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후 정부가 주도하는 난민차별 두 번째 편에서,
'국가주도 난민범죄자 만들기 프로젝트, 방관과 전시를 통한 적극적 차별'의 내용이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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