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의 운동에 던지는 질문, 차별과 혐오
박진우 /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 pjwwj@hanmail.net
얼마 전,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 노동전시회 <노동자 인간선언>(경복궁역 메트로전시관 1관)에 다녀왔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 동안의 한국 민주노조운동 역사와 관련된 사진, 노보, 영상, 깃발 등 다양한 매체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회 중간 중간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기록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80년대부터 매주 발간된 노보를 모아놓은 책자였다. 초창기에 손으로 직접 쓴 노보 기사들에서 그 당시 노동자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렇게 손으로 쓰는 노보에서 타자기, 컴퓨터 편집에 이어 지금은 SNS, UCC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조합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다양한 선전물의 변천사만 보더라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의 운동은 여전히 8,90년대의 활동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답답함 역시 전시회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에 자리했다. 그래서 미디어스 지면을 통해 앞으로 우리 운동의 전망에 대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비추어 나름의 주장을 전해보고자 한다. 이 기고문은 2017년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치캠프 중 <차별금지법제정 운동의 의미와 쟁점>에서 토론문으로 제출했던 내용을 다시 다듬었다. 2000년대 초중반 이후 가장 치열했던 장애인 운동의 기억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2005년 대학교 1학년 때,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신 故 박종필 감독님의 <버스를 타자> 작품을 봤을 때는 매우 충격이 컸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함박웃음을 짓던 장애인은 영상 속에서는 온데간데없었다.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서 몸을 쇠사슬로 묶고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도 사람이라고, 권리를 보장하라고 말 그대로 울부짖는 모습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그리고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투쟁에서 실제로 장애인 동지들이 마포대교 위에서 휠체어를 버리고 몸으로 기어가면서 전경과 싸우다 연행될 때 세상은 도대체 무엇으로 바뀌는 것인가,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인가라는 물음에 쉽사리 앞으로 나서지를 못했다.
그렇게 거의 매해 이어지는 점거농성과 각종의 투쟁을 했던 성과로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10년 동안 각 지하철마다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등 사회 각 영역에서 장애인권의 약진이라 평가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내걸고 무려 5년이 넘게 광화문역에서 이어진 농성은, 얼마 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직접 방문하여 제도 폐지를 약속하면서 마침내 국가의 응답을 이끌어냈다.
이주노동자운동을 돌이켜보면, 2003년 명동성당 농성을 시작으로 강제추방을 무릅쓰고 길거리로 나선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또다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었다.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민주노총이 직접적으로 이주노동자운동에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고 공식 명칭 역시 ‘민주노총 농성투쟁단’이었다. 민주노총에서 직접 간부를 파견하고 각급의 노동조합과 노동단체, 개별노동조합원들이 다양한 수준으로 연대에 나서면서 전체 노동운동 내에 이주노동자 운동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운동이 노동운동과 만나면서 하나의 노동자라는 인식이 퍼져나갔고 이주노동자들 역시 다른 정주 노동자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 시작했다. 연대는 더욱 확장되어 성소수자운동, 장애인운동들과도 이주운동이 만나게 되었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이 책에서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출입국 직원들의 단속에 맞서 함께 싸우고 농성장에서 술도 걸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실화 되기도 했다.
이후 10여년 만에 이주노조가 합법화되고 크고 작은 투쟁의 성과들은 있었으나 오히려 법과 제도는 끊임없이 후퇴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 당사자운동 주체화는 10년 전 명동성당 농성 이후로 제대로 된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이 다시 무색할 만큼 노동현장 최전선에서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현장갈등, 이주노동자 제도에 대한 입장 차이,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회, 간담회를 비롯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국특수교육과대학생연합회 및 전국 유아특수교육과 학생연대 학생들이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기간제 교사 정규직·무기직화 반대 및 특수교사 법정정원 이행약속을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그 답을 찾는다는 것이 이주노동자 당사자들만의 투쟁으로 과연 가능한 것일까? 다시 말해서 이주노동자들이 투쟁 잘하고 집회 많이 하고 국회 압박해서 법제도 따내고, 다시 투쟁 잘하고 이런 방식이 반복된다면 이주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인가? 이주운동이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운동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필요에 따라 서로를 배척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그것은 우리 운동의 발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최근 정규직을 요구하는 기간제 교사들을 둘러싼 쟁점, 동일한 노동자 대상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노동조합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사이의 갈등 등 노동운동은 한편으로 끊임없는 갈등 역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운동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 합법과 불법 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안에서의 구분 짓기는 없는지,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지, 어떠한 권력과 배제의 시도들이 이루어지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노동운동 안에서 진정으로 비정규직, 계약직, 특수고용직, 이주노동자, 여성은 차별이 없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노동운동이 가장 본격적으로 반차별 운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우리는 차별받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발견할 때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으로 낙인찍혀 강제추방을 당하는 것과 군형법 92조 6항으로 군대 안에서 성소수자들이 낙인찍혀서 쫓겨나는 현상에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가능한가? 이런 질문들이 다양한 해방적 정치학을 가능케 하고 운동 간의 상호개입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반차별 운동이 우리 운동 각각이 가지고 있던 고민을 교차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끊임없이 자기성찰과 의제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재구조화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운동을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운동에선 집회방식, 조직문화 등에 관한 고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를 되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영역 운동의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고 전체 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새로 짤 것인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각자 운동의 내외부를 가로지르며 반차별의 문제의식을 관통시키는 활동이 노동조합, 정당, 사회단체, 개인을 넘나들 수 있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만으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각 영역에서 반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토론하고 연대하고 공동의 투쟁경험을 쌓아나갈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형에서 운동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야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소중한 성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주노조 운동의 30년을 만들어간다면 우리의 운동은 서로 교차하고 더욱 큰 확장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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