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과문같은 인사말
난민인권센터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구)인턴 이나단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2월말로 예정되었던 것보다 다소 일찍 인턴생활을 마치게되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 그래서 난센 사무국 활동가들과 회원님들, 난센과 함께 일하시는 모든 분들, 무엇보다 제가 담당하고 있던 난민신청자분들께 죄송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여러분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이나단의 새로운 길을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난민인권센터 12기 인턴 생활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후기를 쓰려니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송별회를 목적으로 모인 식사자리에서도 떠날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은 와닿지 않았습니다. 또, 마지막 출근날 정성스런 선물을 받았을때도 그러고 보니 난센에서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훌쩍 떠나는거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자주자주 난센 찾아가 이런 죄책감을 덜어내야 겠습니다. ^,^;;
2. 드라마같은 난센일
저는 기존 인턴분들과 마찬가지로 난민신청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만나고 난센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연결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난민신청절차를 설명하고, 신청서 작성에 대해 안내하고, 신청사유에 대한 자료조사, 한국어로 된 서류 번역, 체류연장-취업허가 등 출입국관련 정보 제공, 소장작성, 정보공개청구, 분유 지원 및 아동지원 프로그램 소개, 통번역 자원활동가 모집... 기존 활동가들의 일을 이어받았지요.
여러가지 일이 참 많았지만 인턴활동을 마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명장면을 몇몇 꼽고 싶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뿌듯했던 일'
인턴 첫달을 보내며 부모님께 난민인권센터 사무국 이야기를 재잘재잘 들려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갑자기 사무국에 필요한 물건이 번뜩 떠올라서 부모님께 조심스레 현물기증을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 어머니께서 후원해주셨던 것이 유선초인종이었습니다. 개미목소리만큼 작아 손님 맞이하는데 다소 불편했던 이전 무선벨보다 성능이 더 우수했습니다. 난센 사무국의 숙원 사업(?)을 끝내서 뜻깊었습니다.
'이러다 싸움나겠구나 했던 일'
어떤 무국적자의 체류연장을 위해 처음으로 혼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습니다. 11시부터 저녁6시까지 쫄쫄 굶으면서 이 분과 함께 출입국사무소 이곳저곳, 근처에 있는 은행, 다른 공공기관 민원실까지 쉴틈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처리해야 할 건 많은데 비협조적인 자세를 넘어 짜증을 내시는 이분이 미웠습니다. 우씨! 제 속에 잠재된 공격성이 꿈틀대더군요.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속좁은 저를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외국인으로 오해받았던 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하루에 두번이나 그랬습니다. 첫째는 난민면담에 동석하는 자리에서 통역인이 저를 보고 다음 인터뷰를 기다리는 난민신청자인줄 알았다며 겸연쩍게 웃은 일이고, 둘째는 보호소 직원중 한분이 제 등뒤에서 어깨를 툭툭치며 '어디? 베트남?'하며 물어본 것입니다.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제 외모보다 한국인과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다른 두 사람을 만난 경험이 더 가슴쓰린 그런 날이었습니다.
'시원섭섭섭섭해서 속상한 일'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한 난민신청자가 결국 한국을 떠났습니다. 제가 인턴을 시작하던 9월초에 알게 되어서 12월까지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출국하기 몇주전 불미스러운 일로 본인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우리 두사람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아 매우 속상했습니다. 함께 사진을 주고받고, 요리를 해먹던 그 때 기억이 손등의 흉터보다 더 선명하게 남길 바라고 있습니다.
3. 넋두리같은 맺음말
어떤 이는 난민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난민인권센터를 찾아옵니다.
모국에서 힘든 일을 겪고, 고향을 떠나올 수 밖에 없었던 난민에게 친구가 되어주려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난민과 관련된 법, 제도, 인식 등을 개선하기 위해 난민인권센터에 옵니다.
사회적 약자의 삶과 인권, 행복을 위해 진실된 땀을 흘리는 분들이겠지요.
어떤 이는 사회 경험으로서 난민인권센터의 인턴이 되기도 합니다.
조금이나마 시민단체의 현실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저 난민인권센터의 활동가들이 좋아서 인턴에 지원하기도 합니다.
한 식구로 열렬히 환영하며 맞아주시는 태도에 감동하며 만족할 것 입니다.
후기를 쓰는 지금, 나는 왜 난민인권센터 인턴으로 지원했었나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그 목적 또는 이유에 잘 맞게 보내고 가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봅니다.
하나 안심이 되는 건, 분명 배우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난센에서 배웠습니다.
난센인턴으로서 겪는 모든 일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김성인 국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난센활동가는 자신이 맛본 여러 경험을 난센 모든 식구들에게 공유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턴 이나단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나름의 운동방식을 깨닫고 펼쳐가는 시간을 난센으로부터 선물받았습니다.
활동가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열정과 진중한 마음을 고은지씨에게서 자주 느꼈습니다.
오랜기간 난센에서 지낸 시간에 비례해서 한 사람, 한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귀기울이는 그런 자세가 경이로웠습니다.
사무국 이곳저곳에 닿아있는 고은지씨 손길에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 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에너지를 분출하며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류은지씨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침을 자주 거르고 출근하는 자취생에게 종종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고, 고구마를 삶아주던 그 따뜻함!
시시콜콜한 질문 다 받아주시고,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배려해주시는 태도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다시한번, 난민에 대해 무지하고 난민에 관한 언어조차 익숙치 않았던 저를 받아주신 난센식구들께 감사합니다.
김성인국장님, 고은지씨, 류은지씨, 저와 4개월을 함께해준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싸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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