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4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올해는 전 세계 난민 보호의 법적 근간이 된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 체결 60주년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난민이 발생했던 우리나라가 어느새 난민 수용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인데요. 우리나라의 난민제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희령 기자
난민의 역사는 지금부터 3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문명인 히타이트·바빌로니아·이집트에도 난민은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난민 수용이 제도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1년 러시아 난민을 위한 고등판무관 사무소가 설립되면서입니다. 1933년에는 독일 난민을 위해서 고등판무관이 만들어졌고요. 1951년 유엔난민기구(UNHCR)가 생기고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이 체결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도 1992년 가입한 이 협약에 근거해 난민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난민이란, 인종·종교·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 ▶종전의 상주국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상주국에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에는 국가에 따라 ‘여성’과 같은 아주 포괄적인 개념도 포함이 된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입증돼야 합니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박해’를 생명·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해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또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에 대해서는 난민 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해야 하지만 난민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전부 증명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난민 신청자의 진술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고 입국 경위나 원래 살던 나라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 그 지역의 보통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의 정도 등을 고려해서 전체적인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면 증명된 것으로 봤습니다.
지난해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 한국인으로 첫 귀화
우리나라는 2001년 2월 13일 처음으로 난민을 인정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반정부단체인 오로모해방전선(OLF)에 가입해 활동을 한 드구 다다세 데레세(36)입니다. 지난해 3월에는 역시 에티오피아 출신인 아브라함(39·가명)이 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귀화했습니다.
2003년까지 두 자릿수였던 난민 신청자 수는 2004년 148명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7년 네팔 내전의 영향으로 717명이 신청한 것이 최대 수치입니다만 올해 그 기록이 경신될 듯합니다. 지난 9월까지 신청한 사람만 619명이거든요. 한 달에 42~92명이 신청했으니 연말까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누적 난민 인정자 수가 200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9월까지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251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신청자 수가 3534명이니 인정 비율은 7.1%에 불과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난민으로 인정해주는 비율이 각기 33%, 40%라고 합니다.
가장 신청자가 많은 국가는 파키스탄(590명)이지만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2명에 불과합니다. 난민 인정 신청자 수는 네팔(387명), 중국(354명), 미얀마(324명), 나이지리아(225명) 순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미얀마(107명), 방글라데시(48명), 콩고민주공화국(22명), 에티오피아(15명) 순입니다.
신청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난민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10%도 안되다 보니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난민 관련 행정소송은 2008년에는 18건에 불과했는데 2009년에는 297건, 지난해에는 173건이었습니다. 올해도 지난 9월까지 100건이 진행 중입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결정 … 대법원까지 가기도
원래 난민 인정 심사는 법무부 장관이 맡았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이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출입국관리소에서 먼저 심사한 뒤 법무부가 다시 심사해 장관이 최종 승인하는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해서 심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서울출입국관리소에서 난민 인정 신청부터 심사, 결정 통지까지 모두 맡고 있습니다.
난민 인정 신청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상륙하거나 입국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에 난민이 될 사유가 생긴 경우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입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 교도가 한국에 온 뒤 기독교도로 개종했다든지, 한국에서 살던 중에 고국에 대한 반정부단체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한 경우를 말합니다. 신청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해야 하는데 예외도 있습니다. 난민 신청을 하려고 입국 중인 경우 공·항만 출입국관리소에, 외국인보호소에 보호 중인 경우는 외국인보호소에 할 수 있지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은 면접조사 등 심사를 한 다음 난민으로 인정한 경우에는 증명서를 발급하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불인정 사유를 적은 통지서를 줍니다. 다만 난민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인도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체류를 허가합니다. 이걸 ‘인도적 체류’라고 합니다. 지난 9월까지 인도적 체류를 인정받은 사람은 모두 143명입니다.
난민 불인정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이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의신청은 절반 이상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난민인정협의회에서 심사합니다. 여기에서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 결정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의신청 없이 처음 불인정 통지서를 받았을 때 곧바로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낼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난민 불인정 처분에 대한 취소 판결이 확정되면 불인정 처분이 처음부터 무효인 것이 됩니다. 즉 아직 난민 인정신청에 대해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판결 취지에 따라서 다시 심사를 해야 하는데요, 법원에서 취소된 처분과 같은 사유로는 다시 난민 불인정 처분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유가 있다면 또다시 난민 불인정 처분을 할 수 있어요. 난민 불인정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의 정해진 기한까지 출국해야 하지만 이의신청을 하거나 행정소송을 낸 경우는 결론이 날 때까지 출국기한 유예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난민 인정되면 취업·해외여행도 가능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거주(F-2) 자격을 부여받고 취업을 할 수 있고, 출국을 하려는 경우에는 난민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난민여행증명서를 받으면 유효기간 내에 입국과 출국이 자유롭고 입국할 때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에 해당하면 생계비나 의료급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본인 및 부양가족의 질병·부상·출산 등에 대해 요양급여도 신청할 수 있고요. 자녀가 어린이집(만 5세 이하)에 다니는 경우 보육비를, 유치원(만 3세 이상~만 5세 이하)에 다니는 경우에는 학비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난민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경우는 기타(G-1) 체류 자격이 부여됩니다. G-1 자격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취업이 제한돼 있어요. 하지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은 G-1이라도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답니다. 인도적 체류 기간은 한 번에 1년이지만 국적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원인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연장이 가능하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 외에는 원래 취업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난민 신청을 한 지 1년이 지날 때까지 난민 인정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은 취업을 할 수 있게 예외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또 난민 신청 중인 사람,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은 사람,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긴급 의료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전국 64개 지정병원을 통하여 입원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진료비도 1회당 최대 500만원까지 신청할 수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난민전담재판부 두고 안내서까지 발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로 오는 외국인 난민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9월 세계난민판사협회가 조병현 서울행정법원장을 초청해 주제연설을 부탁한 것도 난민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에는 유엔난민기구의 알렉산더 알레이니코프 부대표가 한국을 방문해 “미래에는 기후 변화로 인해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2009년 5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등 국회의원 24명이 ‘난민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습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이 통과되면 난민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난민 보호가 가능해집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난민 사건 전문재판부 4개를 신설한 데 이어 지난달 소송 절차와 판례, 통역 및 소송비용 지원 등 난민 재판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은 『난민재판의 이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난민 사건 전문재판부 부장판사 등 담당 법관들이 직접 쓴 이 책은 난민지원단체 등에 배포된다고 합니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11/04/6230367.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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