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


  박근혜 대통령이 에티오피아 방문을 마치고 우간다 방문으로 순방을 이어갑니다. 우간다와의 경제적, 군사적 협력에 대한 기대가 높은 가운데 이 포스팅에서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간다를 들여다 봅니다. 


◀ 우간다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출처 청와대홈페이지


  난민들이 자국에서 겪은 아픔은 난민들 개개인의 아픔임과 동시에 그 나라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544명의 우간다 국적의 난민신청자가 있었고, 이들이 보여주는 우간다의 상황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에티오피아와 40개나 되는 MOU가 있었던 것처럼 우간다와도 그러한 협력을 약속할 것으로 보이는 이 때에, 책임 있는 원조와 교류를 위해서 우간다의 인권상황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입니다. 한국의 원조와 협력이 우간다의 잘못을 덮어주는 모양이 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며 우간다가 진정으로 ‘괜찮은’ 나라가 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난민인권센터에 조력을 요청한 우간다 국적의 난민신청자 중 48%는 정치적 의견, 13%는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성소수자), 7%는 반군에 의한 박해를 이유로 우간다를 떠나왔습니다. 난민들이 우간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들은 우간다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바로 보여줍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이 세가지 사유를 중심으로 우간다의 현 상황을 살펴봅니다.


[표1] 우간다 국적 난민신청자 현황 (2015.12.31기준)


신청

심사중

심사종료

1

이의

인정

불인정

철회

불인정

인도적체류

544

102

36

138

13

294

13

86

406

*출처 : 난민인권센터 정보공개청구 자료



II. 난민들이 우간다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1. 무세베니 대통령의 30년 장기집권, 앞으로 최소 5년 더!

 

  영국의 식민지였던 우간다는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이후 밀턴오보테가 초대 총리로 집권하다가, 이디 아민의 군사 코데타로 군부독재 시기를 겪습니다. 1971년-79년까지 이디 아민의 군부독재, 그리고 밀턴 오보테가 다시 정권을 잡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었고, 이후 세 명의 대통령이 연달아 임명되었으나 단기간 집권에 그쳤습니다. 이 시기동안 50만이 넘는 사람들이 정부 주도의 폭력아래 죽어갔습니다. 1980년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밀턴 오보테 정권은 또 한번의 쿠데타로 전복됩니다. [각주:1]


 우간다 무세베니 대통령, 출처 : 허핑턴포스트 ▶


  이후 내전 끝에 현재 대통령인 요웨리 무세베니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올해 2월 5선에 성공하여 앞으로 5년 더 대통령직을 맡게 됩니다. 무세베니는 1996년, 2001년, 2006년, 2011년, 2016년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습니다. 


*허핑턴포스트, 5선 시작을 알리는 취임식 거행한 무세베니. 


부정선거 여부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우간다 정부가 11일 페이스북, 트위터, 왓츠앱 접속을 12일 오후 6시까지 차단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난 2월 대선기간 동안에도 우간다 정부는 페이스 북 등 SNS를 3일간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1)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부정선거와 야당에 대한 탄압


  많은 인권단체들은 무세베니의 장기집권에 따라붙는 부정선거 의혹과 야당에 대한 탄압에 대해 오래 전부터 우려해왔습니다. 




NRM(National Resistance Movement,여당) 


1979년 무세베니를 중심으로 한 게릴라군을 시작으로 함. 

1986년 정권을 잡은 이후 2005년까지 실질적으로 1당 독재를 해 옴.



FDC(Forum for Democratic Change)


NRM이 득세하면서 여당 내부에서 정치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나왔던 가운데 Kizza Besigye가 창당.
2004년 12월에 창당하여 2001,2006,2011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함.   
대표인 베시게는 정부로부터 박해의 대상이 되어온 대표적인 인물.



*이 외에 UPC(Uganda People's Congress), DP(Democratic Party), JEEMA(Justice Forum), CP(Conservative Party), PPP(People's Progressive Party) 등이 주요 야당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표2]는 무세베니 대통령이 5선에 오기까지를 간략히 정리한 것으로, 2001년부터 야당 후보로 대선에 참여한 베시게는 끊임없이 정부의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함으로 정부의 견제와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표2] 


2001.03 

베시게가 NRM으로부터 이탈하여 대선에 출마. 무세베니가 69%의 지지를 확보하여 대통령에 재선
베시게(28%득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대법원에 제소하였으나 3:2로 패소하고 

정치적 탄압으로 남아공으로 망명

2003.01 

무세베니 대통령은 정당 활동 허용 및 다당제 복귀. 3선제한 폐지 등을 포함한 헌법개정안을 제안.

2005.07 

다당제 복귀, 대통령 3선 제한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 통과

2005.11 

베시게,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자마자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테러리즘 및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수감.

2006 1월 보석으로 석방

2006.02 

무세베니 대통령이 3(59% 득표, 야당 베시게 후보는 37% 득표) 성공.
여당 NRM이 국회에서 2/3 이상 의석 확보

2010.10 

헌법 재판소, 베시게 야당대표의 반역죄혐의 각하

2011.2 

무세베니 대통령, 야당과 여당 지지자들의 충돌 속에 치러진 대선에서 4선 성공

2011.4 

야당주도로 생필품 물가고와 정부의 무능함에 항의하는 군중들의 시위(Walk-to Work 가두행진)이 벌어지고, 

이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베시게가 총상을 입는 등 사상자 발생.

2016.02

무세베니 대통령 5선 성공. 부정선거 의혹 번짐. 이번 당선으로 5년 더 재임하게 됨.

2016.05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야권 지도자 베시게가 반역혐의로 기소됨.


  FDC 활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11년 FDC의 주도로 시작된 Walk to Work시위[각주:2] 입니다. 이 시위 이후 심한 탄압으로 야당 당원들뿐 아니라, 연루되었다고 의심되는 시민들도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난센에 케이스를 등록한 난민들 중 대부분은 FDC활동 또는 이 시위 가담 이후로 협박과 체포,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올해 4월, Human Rights Watch는 “Uganda : 5 Years on, No justice for ‘Walk to Work’ Killings”라는 보고서를 내고 이 시위 이후 5년이 지났지만,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판했습니다.[각주:3]  이 시위에서 시위와 관계없던 9명의 시민들이 사망했고 이는 정부군의 잔인한 진압 때문이었습니다. 몇몇 지역에서는 시위에 가담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던 시민들에게도 자의적인 구금과 체포, 학대가 있었고, 실탄까지 사용됐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도 최근 우간다 정부의 야당 탄압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보기)

 

▲ Human Rights Watch가 공유한 동영상 캡처, 원본 동영상은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간다군과 경찰은 이렇게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자신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_ Maria Burnett, Human Rights watch 아프리카 선임연구원


  얼마 전 2016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던진 베시게는 또 한번 반역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무세베니의 집권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 


  반대되는 정치적 의견에 대한 탄압은 언론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집니다. 우간다는 거의 200개의 라디오 방송이 있고, 12개가 넘는 TV방송사와 신문사로 언론활동이 활발합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정부의 압박과 협박이 이를 망가뜨렸고, 언론인들이 경찰에게 실제로 신체적 폭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6년 대선 기사를 쓰는 것은 자기검열이 필요했고, 호의적인 기사로 바꾸어 달라는 뇌물도 성행했습니다. 


Freedom House는 우간다 정부가 정치적 사건들을 다루는데 압력을 가하고 있고, 선거와 관련해서 호의적인 기사를 쓰도록 뇌물을 주는 것도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여 자유지수가 떨어진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출처:FreedomHouse ▶


  Freedom House는 2016년 보고서에서 “우간다 정부의 반대파와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이 2015년 들어 더 심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NGO법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는데, 이 법은 NGO들의 활동에 정부의 권한을 키우고 표적단체들의 활동을 금지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샀습니다. 이 법은 대통령 서명으로 시행됩니다.  


  인터넷 상의 자유는 타 언론들이 겪는 것보다는 덜했지만, 최근 인터넷과 핸드폰 감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5년 10월에 Privacy International이 발간한 보고서는 2011년부터 정부가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해 야당 당원, 언론인, 활동가들의 컴퓨터와 핸드폰등을 통해 감시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습니다.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야당 후보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경찰의 학대가 늘었는데, 이는 일반 지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마선언을 했던 Mbabazi의 지지자들이 체포되고, 선거기간 이전에 불법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하기도 했습니다. 집회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경찰이 불법적으로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사용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FDC의 베시게와 그의 지지자들도 같은 위협에 노출되었고, 베시게는 2015년에도 어김없이 여러 차례 체포되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2.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반군, LRA


   무세베니 집권이후 LRA(Lord’s Resistance Army)는 우간다 북부지역에서 반정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리더는 조셉코니(Joseph Kony)로 어린이까지 유괴하여 성 노예나 전사로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정부와의 분쟁이 최고조 일 때, 거의 2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우간다 북부에서 실종되었고, 2005년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C)가 반군지도자 4인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습니다. 이 반군의 활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게 했습니다.












  

  반군에게 납치되거나 반군의 습격으로 피해를 입는 것도 문제지만, 반군에게 잡혔다가 돌아올 경우 ‘가담했던 것’으로 몰려 오히려 박해를 받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난센에 등록된 몇몇 케이스가 그러했고, 이 또한 정치적 의견에 의한 박해로 볼 수 있습니다. 


[표3] 2004~현재 LRA(Lord’s Resistance Army)관련 상황 


2004

LRA (Lord's Resistance Army)의 민간인 학살이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가운데,
 LRA-
정부간 첫 번째 직접 협상이 이뤄졌으나 구체적 합의 없이 결렬됨

2005.10 

2004.7월부터 LRA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가 시작되어,

2005.10 Joseph Kony 등 반군지도자 4인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2006.08 

정부와 LRA간의 적대행위 종식협정(cessation of hostility)체결

2008.02

2월말 정부와 LRA와 정전(Ceasefire) 협정이 체결되고, 3월에는 수단 Juba에서 개최된 평화협상이 마무리되었으나, LRA 지도자인 Kony ICC의 체포영장 철회를 주장하며 평화협정 서명을 지연시킴.

※ 당초 양측은 ‘08.2월말 반군지도자 재판을 위해 우간다 대법원 내에 특별법정을 만들기로 합의하였으나, ICC측은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며 체포영장을 철회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고,

우간다 정부는 Kony가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우간다 국내법정의 재판관할권을 수용 시 ICC의 체포영장 철회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나, Kony는 체포영장 철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음.

2008.04 

Kony  LRA 병력이 근거지인 민주콩고(DRC)를 떠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Central African Republic)으로 이동하였으며, Kony 4.15로 예정된 평화협정 서명식에 나타나지 않음.

2008.06 

Kony는 정부와의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으며, LRA는 남부수단 지역을 습격하여 23인의 양민을 살해 - 또한, 600여명으로 줄어든 병력을 보강하기 위해 DRC 및 남부수단으로부터 1,000여명의 양민을 납치하여 훈련 중이라고 보도됨.

2008.11 

우간다, 남부수단, DR콩고는 LRA에 대한 공동작전 전개

2011.07 

미국, LRA 소탕을 위해 100명의 군사고문단 파견, 코니추적에 도움.

2012.05

우간다군, LRA의 최고위급 간부 시저 아첼럼 검거

2013

우간다군, 코니의 측근 비나니 사살

2015.01

코니 측근 도미니크 옹그웬, 중앙아프리카 주둔 미군에 투항하여 ICC로 이송됨.

 

2인자로 알려진 오콧 오디엄으로 추정되는 시신 발견.

 

LRA지도자 5명중 1명 체포, 3명 사망으로 조셉 코니만 계속 수배상태

2016.03

국제형사재판소, 도미니크옹그웬에 대한 70건의 혐의 인정, 재판 진행될 예정



3. 우간다 정부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던 반동성애법


  2014년 2월, 무세베니 대통령은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킨 反동성애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동성애에 대해 징역, 종신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처음 발의될 때에는 사형을 선고하는 안까지 포함되었으나 국제적인 비난이 있자 종신형으로 낮춘 것입니다. 서구 공여국들은 이에 대해 원조를 잠정 중단하는 조치로 우간다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동성애 반대법을 통과시키면 연 4억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재검토 하겠다고 압박했고,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도 이 법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무세베니 대통령은 이에 불구하고 서명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우간다 헌법재판소는 법안 통과에 대해 위헌판정을 내렸으나, 여전히 사회적 이슈로 남아있습니다.


Freedom House는 LGBT그룹이나 개인들이 2015년 한 해 동안 괴롭힘이나 심문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것은 정부가 반동성애법을 재도입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그랬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우간다 내의 성소수자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우간다 내에서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각주:4]



4. 이러한 상황에도 우간다 난민신청자 인정율은 2.3%

  우간다 국적의 난민신청자는 신청자수로는 꾸준히 10위권에 들 만큼 많지만, 인정율은 2.3%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는 앞서 설명한 정부의 야당,언론,시민사회에 대한 탄압, 동성애에 대한 적대를 넘어서는 심각한 인권침해, 반군에 의한 피해 또는 전가된 정치적 의견등을 사유로 하는데, [표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인정자 수는 한 해에 1명~3명을 넘지 않습니다.

   이는 이 박해를 입증할 증거도 부족하고, 실제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으며, 정치적 박해를 받는 경우 설사 야당 당원이었다는 증거가 있더라도 리더급의 당원이 아니면 박해의 위협이 없다고 (반정부 활동을 했더라도 ‘하위수준의 활동가’에게는 위협이 없을 것이라)보는 심사 경향 때문 입니다. 또 반군에 의한 박해를 받은 경우, 우간다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위협이 적어질 것이라는 판단, 동성애의 ‘경우 밝히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쉽게 단정짓는 경향도 낮은 인정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표2] 우간다 국적 난민신청자 연도별 현황 및 신청자수 순위

연도

~2009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총계

신청자수()

147

15

12

78

56

28

84

124

544

순위 (누적)

5

7

7

6

7

8

8

9

-

인정자수()

1

3

2

2

1

0

3

1

13

*출처 :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연감

[표3] 난민신청 상위 20개국 인정율 순 현황 (2015.12.31기준) 

국가

신청자

인정자

난민 인정율

미얀마

443

185

41.7

에티오피아

205

76

37.0

DR콩고

145

32

22.0

방글라데시

737

89

12.0

아프가니스탄

163

13

7.9

기타

1670

79

4.7

코트디부아르

163

7

4.2

카메룬

337

13

3.8

예멘공화국

207

5

2.4

우간다

544

13

2.3

파키스탄

2792

41

1.4

라이베리아

311

3

0.9

중국

1319

7

0.5

이집트

1501

7

0.4

나이지리아

1021

3

0.2

시리아

1052

3

0.2

네팔

850

0

0

스리랑카

725

0

0

가나

415

0

0

남아공

280

0

0

인도

370

0

0

*출처 : 난민인권센터 정보공개청구 자료


III. 다시 우간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간다 국적의 난민인정자 다니엘씨는 야당 당원으로 정치활동을 하다 한국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2년 만의 난민인정 이후 고대 국제학부에 합격했던 다니엘씨에게 한국의 많은 분들이 학업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셨고요. 당시 다니엘씨는 국제학부를 선택한 이유로 “어떻게 하면 민주적인 변화와 경제성장을 가능케 할 수 있는지 배우고 싶고, 한국의 경험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작년 2월 다니엘씨는 공부를 마치고 졸업했지만 여전히 우간다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고국을 생각하며 배운 모든 것들이 언제쯤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기회의 땅에 씨앗을 심으러 간다는 한국. 우간다가 다니엘씨와 같은 처지의 난민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땅이 되기를, 이들이 품은 씨앗도 그곳에 심기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1. http://uga.mofa.go.kr/korean/af/uga/information/overview/index.jsp [본문으로]
  2. 서구의 원조로 경제발전이 견고한 성장을 이루는 듯 했던 우간다는 90년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2008년에는 경제위기로 커피 수출산업에 의지하던 경제에 심한 타격을 입어 식료품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2011년 무세베니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대해서도 이의가 제기되면서 거리시위로 이어졌습니다. http://www.bbc.com/news/world-africa-14107906 [본문으로]
  3. http://www.refworld.org/cgi-bin/texis/vtx/rwmain?page=search&docid=5721ce854&skip=0&query=uganda&searchin=title&sort=date [본문으로]
  4. http://www.refworld.org/cgi-bin/texis/vtx/rwmain?page=search&docid=573b062424&skip=0&query=uganda&searchin=title&sort=dat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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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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