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 Activities

[호주, 난민과 고문피해자 치유재활 기관 STARTTS 방문- ②] 스페인어권 공동체 활동 참관


난센의 편세정 활동가는 2015 8 12일부터 24일까지, 호주 시드니의 고문피해자 치유재활기관 STARTTS(Services for the Treatment And Rehabilitation of Torture and refugee Trauma Survivors )를 방문했습니다.

방문기록은 총 4회에 걸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호주난민과 고문피해자 치유재활 기관 STARTTS 방문- ①] STARTTS 소개




   ◀ 스페인어권 공동체 활동에서 만들어, STARTTS에 기증한 작품

         이 공동체의 활동을 오늘 소개하겠습니다.

  



STARTTS(‘스탈츠에 가깝게 읽습니다)1988년에 세워져, 고문과 그 외 난민으로서 겪은 외상적 경험의 상처를 지닌 사람의 치유와 재활을 위해 27년째 노력해 온 비영리 기관입니다. 이를 위해 난민의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심리적 재활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시행해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지난 812일부터 24일까지 머무르며, 트레이닝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817일 월요일에 스페인어권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좋은 아침입니다!


STARTTS는 구성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제가 참여한 활동은 비슷한 문화권끼리 모여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 활동(Group Work)입니다.  공동체에 따라, 운동, 예술, 치료 등을 주제로 모인다고 합니다.


 

이 날 저는 스페인어권 공동체에 참여했습니다. 귀퉁이에 앉아서 구경을 했어요. 스페인어를 쓰시는 목소리 크시고 화끈하게 웃으시는 엄마들이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스페인어권 공동체는 1991년에 시작하여, 25년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모인 구성원 중 한 분이 이 모임의 시작부터 함께하신 분이었어요. 구성원들이 모임에 참여한 기간은 길게는 25년부터 짧게는 2년까지로 다양하다고 합니다.

 



▲ 클라이언트의 보호를 위해 얼굴을 스티커로 가렸습니다. 이렇게 모여 앉아 자유롭게 뜨개질, 바느질, 그 달에 새로 배운 공예를 하세요.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반 에서 오후 2시까지가 이 모임의 공식적인 시간인데요. 그런데 보통은 아침 8시 반부터들 오신다고 해요. 모임 구성원 중 한 분이 선생님이 되어 수공예 작품을 만드는데, 손으로 무언가를 집중해서 만드는 활동에 더해, 고향 음식을 나누고 차를 함께 마시며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고 합니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엘살바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 출신입니다. 대부분 초보적인 영어를 구사하고, 저와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이어가는 분은 열한 분 중 두셋이었습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일을 하는 경우에는 청소 등 영어를 많이 쓰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구성원도 있고, 몇몇은 혼자 지낸다고 하세요. 이 모임의 구성원 중에는, 호주에 이주하여 정착을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경우에도 사회적 연결망이 그리 든든하지 않은 경우가 상당하고, 이런 점에서 이 공동체 활동이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요.




▲ 작업하시는 탁자 - 이 돋보기의 소유자께서 저를 특별히 가르쳐주셨지요.


▼ 이 날의 작품입니다. 오른쪽이 저의 사부님 작품, 왼쪽이 사부님의 손길을 많이 거친 저의 작품





▼▶ 모임에서 만든 다른 작품들 : 

천으로 만든 장식품과, 종이에 실로 수 놓은 크리스마스 카드







◀▼ 2013년 작품 전시회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셨습니다. 


 


이 날은 모임 구성원 한 분의 생일이었습니다. 스페인어,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두 번 부르고 나서 촛불을 불었습니다. 끌어안고 뽀뽀하고 왁자하게 생일 축하를 하고서 수공예를 다시 손에 잡았습니다. 철사에 나이론 천을 덧대어 꽃을 만들었어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저도 그 옆에 앉아 같이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영어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았지만, 이제껏 모임에서 만들고 전시했던 작품들을 꺼내어 보내주셨습니다. 해마다 9월에 STARTTS에서 음식 파티를 하는데, 거기에서 음식을 만들고 한 해 동안 만든 작품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열한 분이 참여하셨고, 이 중 두 분이 중간에 먼저 일어나시고 한 분이 점심 지나서 오셨어요.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이셨고요. 라틴아메리카 배경의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STARTTS의 상담가가 조력자로 참여했습니다. 30대 여성인 조력자는 모임 구성원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존재였습니다. STARTTS의 직원은 호주가 아닌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아,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해서 문화/언어권 별로 통역 없이 상담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이 날 조력자는 왔다 갔다 하면서 느슨한 형태로 참여했는데요, 공동체 활동 중에 조력하는 외에, 모임 구성원 중 개인적 상담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조력자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조력자와 STARTTS, 모임 구성원 간의 신뢰가 깊어, 구성원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이 공동체에 연락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STARTTS 기관 차원에서 협력한다고 해요.


▲스카프를 두른 단발머리 분이 STARTTS 직원이고,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며 이 공동체를 지원합니다. 

마찬가지로, 클라이언트 보호를 위해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양해해주세요.

 

공동체 모임을 매개로 정착에 관한 교육, 건강 교육 등도 함께 하고 있는데요, 호주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변화나 어려움에 대해 교육하고, 비만을 예방하는 식생활 교육 등을 시행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공동체는 오랫동안 든든하게 활동해 온 만큼, 호주에 새로 오는 정착자에게 조언을 주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 날은 페루에서 오신 분이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페루식 닭 요리인데, 감자 양파를 넣어 매콤하게 끓인 것이 닭도리탕(닭볶음탕이라고 해야 하나요)과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하면 닭다리인가봐요.... 손님이라고 제게 닭다리를 집어 주시더라고요. 밥을 배부르게 먹고, 슈크림 빵이 올라간 생일 케이크도 큼지막한 조각을 먹고 일어났습니다. 점심을 드시고는 우유와 설탕을 듬뿍 탄 차를 드시면서 다음 주의 소풍에 대해 회의를 하시더라고요.



▲ 페루의 닭 요리

 

스페인어라는 공통 언어가 있긴 한데, 구성원들의 출신 국가는 여러 곳으로 다양했어요. 다른 나라와 한국어를 공유하여 쓴 경험이 없어, 이게 어떤 건지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국가가 달라 발생하는 문제는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이 날의 일정이 끝나고 나서야 궁금증이 들어, 다음날 물어보기로 했어요. 다음날에 이 조력자와 함께 또 다른 청소년 공동체 모임에서 축구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어


다음날에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아침부터 기관 앞에 커다랗고 까만 승합차가 두 대가 서있더라고요. 아 오늘 어느 공동체에서 소풍을 가나보다 했습니다. 봄이 오고 있었고, 이제 막 복숭아 꽃이 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관 앞 주차장에 폴리스라인이 있는 거에요(알고보니 까만 승합차는 경찰차였어요)그때만 해도 상황파악을 잘 못했습니다.

 

기관에 들어가니 지난 사흘간보다 헐렁합니다. 듣고 보니, 직원 한 명이 출근길에 칼에 찔렸다고 하네요. 클라이언트와는 상관없는, 사고였다고 해요. 마주치는 직원들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그날 기관에서 예정된 모든 일정은 취소되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시드니 Carramar 지역의 본부이고 시드니에 세 곳의 센터가 더 있는데, 다른 곳에서도 이 사고의 영향으로 일정을 조정했다고 합니다. 난민이 겪은 트라우마적 경험을 가까이 듣는 사람들이라, 이런 사고가 가까이에서 발생하면 비일상적이고 가혹한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서 진행되는 경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크다고 합니다.

 



▲ 사고를 담당한 경찰관이 사건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직원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사고를 당한 직원의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고 다음날 아침 본부 Carramar 센터에서 Clinical Meeting 행사가 있었어요. 정기적으로 치료 재활적 기법이나 연구 결과를 기관 내부에서 공유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본부와 시드니의 다른 센터에서 사람이 모여 강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건 담당 경찰관과 CEO, 재활과 연구팀장(Clinical and Research Coordinator)가 발언을 했습니다. 사건의 경위,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 것인지, 부상당한 직원의 상태는 어떠한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에 더해,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다면 꼭 동료와 담당 상담가에게 이야기를 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칼에 찔린 직원이 담당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병문안을 가고 싶다는 이유로 병원을 물어본다면 알려주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는 평소에 쓰지 않는 이름으로 입원해있고, 클라이언트의 방문은 기관의 원칙에 의해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월요일에 관찰한 바로는 조력자로 참여하는 직원과 클라이언트의 관계과 친밀했는데 말이지요

 

발언이 끝나고 나서, 이 날의 발표자가 음악치유 세션을 짧게 진행했습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난민 가정의 0-5세의 아동의 발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시는 분이었어요. 의자를 옮겨 동그랗게 모여 앉아, 여러 가지 악기들을 정해진 규칙 없이 두드리며, 우리는 서로를 믿는다, 사랑한다, 돕는다는 내용의 아프리카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에게는 진행자분의 보라색깔 머리카락부터가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 자리의 직원들도 조금 쑥스러운지 피식피식 웃어가며 따라했습니다.

 

▲ 실로폰을 치며 음악 치유를 진행하시는, STARTTS의 상담가


 ▼ 음악치유에 쓰인 악기들 : 실로폰, 타악기, 이름모르는 봉 악기(?)




▲   음악치유 시간을 재미있어 하는 눈치의 STARTTS 직원들   ▼ 



예상치 못한 사고로 저의 방문 일정에도 조금 차질이 생겼지만, 사고를 다루는 방법을 지켜보면서 이 단체가 활동가의 개인적 영역,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클라이언트와의 경계(boundary)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활동가들이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심리상태와, 그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 이곳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여러 상담가들의 관리자(supervisor)로 일하고 있는 상담가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 마침내 호주에 다다른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듯 보이는 본인의 아이에게 화를 내는 끔찍한(그분의 표현대로 'terrible')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면서요. STARTTS는 이러한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것을 경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들 중에 스무 해가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는데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여러 실수와 잘못이 없을 수 없지만, 거기에서 계속 배워 긴 시간 건강하고 즐겁게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