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의 편세정 활동가는 2015년 8월 12일부터 24일까지, 호주 시드니의 고문피해자 치유∙재활기관 STARTTS(Services for the Treatment And Rehabilitation of Torture and refugee Trauma Survivors )를 방문했습니다. 방문기록은 총 4회에 걸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
안녕하세요 난센의 활동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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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호주로 출국하는 비행기를 타던 날,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중에 최현열씨께서 몸에 불을 붙였고, 21일에 숨을 거두셨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21일은 제가 호주 일정을 마치는 날이었어요. 유서 전문을 읽으면서, 같은 사회 공동체 안에 살던 사람의 세계가 저와는 이렇게 달랐구나 싶어 놀랐습니다.
저에게 이만큼의 말과 글을 쓸 자유가 있는 것도, 역사의 무게를 자의로 타의로 이제껏 지어온 분들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1.
난센에 출근한 지 한달이 되는 날, 호주로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난민과 고문피해자의 치유재활을 지원하는 기관 STARTTS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는데요. 12일 오후 두시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서 환승을 하고 나니,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시드니에 도착했습니다. 하루 새에 저를 둘러싼 환경이 새로워져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 봄을 맞이한, 시드니
공항에서 가까운, 시내 중심가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오후 4시에 STARTTS와의 첫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이 날 열흘간의 방문을 앞두고 인사를 하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원래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 합니다. 가운데에 자그마한 풀밭이 있고, 복도가 네모난 정원을 둘러싼 모양의 건물이었어요. 외근 나간 직원을 제하고(업무 특성상 외근이 많다고 합니다), 대략 60명 정도와 인사한 것 같아요.
그리고 Confidentiality 서약서에 서명을 했는데요. 이것이 STARTTS에 대한 저의 첫인상을 결정했습니다. STARTTS의 모든 직원이 여기에 동의하고 서명할 것을 요구받는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 전문이 나와있는데, 사무실 내에서 권한을 가진 직원의 경우에도 업무 외의 일상 대화에서 클라이언트의 개인적인 신상을 입에 올리는 것은 엄격하게 경계하는 등, 클라이언트의 개인 정보 보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실 수 있어요.
▲ STARTTS의 첫인상! 첫날 저에게 요구한, Confidentiality 서약서 전문입니다. ▼
STARTTS(‘스탈츠’에 가깝게 읽습니다)는 1988년에 세워져, 고문과 그 외 난민으로서 겪은 외상적 경험의 상처를 지닌 사람의 치유와 재활을 위해 27년째 노력해 온 비영리 기관입니다. 이를 위해 난민의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심리적 재활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시행해왔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방법을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와 활동가 개인, 교육 기관 등과 공유하는 활동 또한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관을 방문해서 3일 동안 진행되는 트레이닝에 참여했고, 두 번의 공동체 활동에 참여해 관찰했습니다. 중간 중간 전체 직원 모임을 참관하거나,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대화를 하는 시간도 가졌고요.
오늘의 이 글에서는 단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STARTTS 앞의 대문짝만한 간판
첫 미팅이 있던 날 직원에게서 '스탈츠'에 가까운 발음을 듣기 전까지, 저는 '에스티에이알티티에스'라고 이곳을 불렀습니다.
STARTTS의 주된 클라이언트는 난민(Refugees), 비호신청자(Asylum-seekers), 조직된 폭력에 의해 고문 또는 다른 외상적 경험을 겪어내야 했던 사람들인데요, 개인, 가족, 공동체 단위로 STARTTS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호주에 입국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에 상관없이 지원을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초기정착자가 클라이언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에 정착한 지 20여년이 지나서 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2011년 기준으로, STARTTS는 한 해 동안 1833명의 난민과 비호신청자에게 개인적인 치유 서비스(개인 상담 등)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공동체 활동이나 집단 상담 등을 통해서 만난 클라이언트는 이보다 더 많고요. 이 한 해의 클라이언트를 연령별로 분류해보면, 36세-65세의 장년층이 46%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20-35세의 청년층이 32%를, 5-19세의 아동 청소년이 14%를 차지했습니다. 심지어 5세 이하도 0.2%로 미미하지만 존재했습니다. 5세에서 35세 사이의 연령층이 46%를 차지하는 점, 어린이, 청소년, 청년기의 클라이언트가 전체의 절반 정도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출신국가는 아주 다양했는데요, 2011년 기준으로, 가장 많은(564명) 수가 이라크 출신이었고, 뒤를 이어 이란(213명), 아프가니스탄(181명), 스리랑카(84명), 베트남(68명), 남수단(59명), 콩고민주공화국(43명), 버마(38명),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33명) 등의 국가 출신의 클라이언트가 많았다고 합니다.
▼ 2011년 기준 STARTTS 클라이언트의 연령별 비율 (출처: STARTTS)
▼ 2011년 기준 STARTTS 클라이언트의 출신국가 상위 15개국 (출처: STARTTS)
STARTTS의 활동은 크게 치유지원과 연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치유지원은 개인, 공동체 단위 두 가지고 구분되고요. 근래의 추세는, 공동체 단위 활동에 먼저 참여하고 나서, 필요한 경우 개인적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상담가 또는 의사와의 개인 상담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 출신이거나, 또래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령층에서는 이런 방법이 더 적절한 것을 경험을 통해 익혔다고 합니다. 공동체를 단위로 하는 활동은 공동체 구성원의 특질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우선 비슷한 문화권끼리 모여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 활동(Group Work)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운동, 공예, 소풍 등을 소재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새로 호주에 정착한 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9주 동안의 교육 프로그램 FICT(Families in Cultural Transition), 고문과 성폭행의 이중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한 남성들의 모임 MANTRA 등, 특정한 대상을 설정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학교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한 학교 파견 프로그램, 스포츠 모임, 해마다 진행되는 청소년 캠프 등이 진행되고 있었고요. 이 외에도 노년층의 난민, 난민 지위를 아직 얻지 못한 비호신청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같이, 최대한 집단의 성격과 특수한 욕구에 맞춘 공동체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공동체 활동(Group Work) 참여자 사진 (출처: STARTTS)
▼ 고문과 성폭행의 이중적 트라우마에 노출된 클라이언트를 위한 프로그램, MANTRA 만트라의 로고 (출처: STARTTS)
[현재 타밀어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난민으로 이 그룹에서 조정자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개인 프로그램으로는 기본적으로 개인 상담이 있고, 이에 더해 정신과적 진단과 치료, 물리치료, 침술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STARTTS의 직원들이 굉장히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었는데요, 개인 상담을 할 때 특별히 이 점이 빛납니다. 많은 경우에 상담자가 내담자의 모국어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어요. 통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호주 정부 소속의 통역인에게 의뢰한다고 합니다. 침술의 경우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베트남어권 상담을 맡은 사람이 아버지 쪽으로 5대째 이어온 중의학자 집안의 일원이자, 호주에서 중의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2000년 클라이언트 중 한 사람이 다리의 심각한 통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 사람에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STARTTS가 침술을 써보기로 결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 동안 침술 치료가 이어진 후 이 분이 휠체어에서 일어나셨다고 해요. 그 때부터 16년째 침술이 STARTTS의 정식 세션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엘살바도르 출신의 여성 클라이언트 한 분이 오셨는데, 침술은 여기서 처음이지만 머리가 흔들리고 목과 등에 있던 통증에 효과가 좋다면서 만족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대부분의 문화권에 별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침술 치료가 이루어지는 곳
STARTTS의 공간 하나가 침술 치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STARTTS의 다른 상담가의 의뢰를 받은 클라이언트가 침술 세션에 참여한다고 하는데,
보통 1주일에 1회 10회기동안 이루어지고, 추이를 살펴보아 연장이 가능하기도 한답니다.
▼ STARTTS에서 침술 세션을 시작한 계기가 된 분
이 기관은 연구 활동도 상당히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진행중인 연구가 넷이고, 연구 활동들을 꾸준하게 축적해왔습니다. 연구는 조금 더 적절한 치유 방법을 위한 노력인 것 같아요. 좋은 개입 방법을 연구하고, 이것을 공유하는 것이 일년에 15회 이상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이 트레이닝을 계기로 STARTTS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기관들을 검색하면서 이 곳처럼 활발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요, STARTTS의 경우는 치유재활방법의 공유를 중요한 활동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Carramar 의 STARTTS 본부 전경
STARTTS는 본부와 여러 지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시드니 근교에는 본부를 포함해서 네 곳이 있고, 인근 도시에 네 곳이 더 있습니다. 총 여덟 곳의 STARTTS 기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트레이닝 등의 행사를 통해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시드니 근교 Carramar에 위치한 본부였습니다. 사회복지활동가, 임상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상담가 등의 임상활동가와 행정 직원 등 약 60여명 이상이 한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여섯 명이 시작한 단체였다고 해요.(오!)
▲ STARTTS의 20년 역사가 한쪽 벽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CEO, 클리닉과 연구 책임자들의 이름이 저 가로축 초기에 적혀있어요.
인근 도시의 다른 곳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시드니 근교에 위치한 기관들은 모두 전철 역 가까이에 위치해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는 게 꽤 일상적으로 보이는데, 차가 없는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위치를 정했다고 합니다. 시드니 근교의 Carramar(본부), Auburn, Liverpool, Blacktown은 모두 시드니의 남서부에 위치해 있는데, 이민자 집단이 이 시드니 남서부에 형성되어있다고 해요. 한인타운, 중국인 밀집지역,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인, 버마인, 타밀언어 사용 집단 등이 이 남서부 기차역 근처에 형성되어있어요. 특히 Auburn 센터에 방문했을 때는, 역에서 센터까지 5분정도 걸으면서 영어와 아랍어가 병기된 간판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치면, 대림역 근처에 난민 및 이주민 치유재활기관이 위치한 것과 같겠지요.
▼AUBURN 센터 근처의 치과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랍어 같아요.....(맞나요?!)
▼ 본부인 Carramar 센터는 시드니 센터에서 전철로 1시간 정도 걸리는 Fairfield 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역에 내리면 베트남 여성이 운영하는 빵집이 두 군데 있고, 케밥집이 한 곳, 작은 태국 음식점이 두어곳 있어요.
치유 재활 기관으로서의 용도에 걸맞게, STARTTS의 내부는 편안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여러 조명과, 건물 가운데와 사무실 외벽의 창으로 들어오는 태양광 덕에 종일 내부가 밝았고요. 화장실에 손씻으라는 메세지가 여러 언어로 붙어 있는 등, 여러 언어 친화적인 환경이었습니다.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통역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고요.
응접실에서 바라본 입구의 모습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곳이 리셉션인데요, 이 리셉션 앞이 STARTTS 직원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
이곳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은 아침이고 낮이고 만날때 서로를 끌어안아 주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응접실 : 클라이언트와 기관의 다른 손님이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 상담실의 모습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통역인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무실 내부입니다. (직원이 모두 외근 중이었어요)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 통역 안내문 : 정부에서 운영하는 통역 시스템에 대한 안내입니다.
▼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모든 예술작품들은 클라이언트의 손을 거쳤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선 어인 영문인지 바람과 별이 보이네요.
이 정도에서 오늘의 STARTTS 소개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앞으로 이 곳에서 듣고 본 것들을 3회에 걸쳐 간추려 전할 예정입니다.
STARTTS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으시다면, 아래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세요.
한 여름 더위 꼭대기에 시드니의 꽃샘 봄바람을 맞았다가, 열흘 쯤 뒤 한국에 오니 가을이었습니다. 한달 새 여름, (겨울의 끝), 봄, 가을을 겪었네요.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사이다 한 잔 마시고 돌아와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봄을 맞이한, 빨간 발의, 시드니 길 갈매기
빡빡(갈매기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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