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끔찍한 미래, 그 이후


지극히 많은 이유들로 인해 지구의 미래는 가끔씩 암담하게 예측된다.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상의 이상변화, 복제인간과 로봇의 탄생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문제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들 등, 영화에서는 꽤나 오래 전부터 제기된 고전들이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 A.I > 제작을 자신의 염원으로 여겼다. 어느 복제인간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지능공학의 미래 예시"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파트너로 선택했던 사람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그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꿈이었다고 한다. "제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시도를 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염원을 잘 알았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자신이 제작 겸 연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스탠리 큐브릭이 제시하고 싶어했던 "지능공학의 미래 예시"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발상했던 "과학과 휴머니티의 조심스러운 결합"은 그렇게 < A.I >를 꾸려나간다.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는 이렇듯 뭉클한 거장들의 꿈은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운이 따랐다고 할까? <아일랜드> 개봉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안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 A.I >와 <아일랜드>를 묶은 이유는 무엇일까? 복제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그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 두 감독의 평소 스타일이 철저하게 배어나오는 영화들이라 더욱 흥미롭다. 





복제인간의 태동 배경은 끔찍하다. 두 영화 모두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파괴를 복제인간의 태동 배경으로 제시한다. (물론 이 설정은 아일랜드의 이후 '반전'을 위한 하나의 양념으로 작용한다) 빙하의 해빙,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도시 파괴, 대규모 인명 피해 이후의 자원 부족 문제로 인한 인구 수 조절 등, 인구를 늘이지 않으면서도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나온 것이 바로 '복제인간'의 존재였다.


두 영화는 여기서 주인공들의 존재에 대해 미세한 엇갈림을 나눈다. <아일랜드>는 유전자를 바탕으로 직접 인간을 복제해 사육하는 반면, < A.I >의 존재들은 로봇, 그것도 인공지능 로봇들이다. < A.I >는 야심차게 '감정이 있는 로봇'을 제시하면서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2. 조작된 현실과 끔찍한 진실, 앎으로부터 비롯되는 고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은 조작된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알았던 가치와 현실이 무너지고, 내가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이 무너지고, 심지어 그것이 내 목숨과 그에 버금가는 가치들을 없애려고 노력할 때, 인생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인생이 무너지는 것이다. 


두 영화는 끔찍한 비극을 제시한다. < A.I >의 데이비드는 여태껏 엄마라고 여겼던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데이비드는 사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대신할 아들이 필요했던 집에 '아들의 대용품'으로 '구입'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치료약이 개발되면서 아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데이비드의 이용가치는 거기까지였다. 데이비드는 울면서 하소연한다. 


"내가 인간이 되면 사랑해 줄 건가요?"

"인간이 아니어서 죄송해요. 허락하시면 인간이 될께요."





데이비드는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으로 자랐다가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이용가치가 있어서 인간으로 사육됐다가, 진짜 인간이 돌아오면서 울타리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그들은 데이비드가 인간과 로봇을 구분지을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로봇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그렇게 로봇도, 인간도 아닌 존재였다.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만큼 그는 엄연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로봇이었다. 울타리로부터 내쫓긴 데이비드는 그렇게 혼자가 됐다.


<아일랜드>의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는 스스로 살아남은 지구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생태 재앙으로 인류의 일부만 살아남았고, 의료와 식사,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관리를 받고 있다. 빈틈없는 관리의 이유는, 그들 중 선택된 누군가가 희망의 땅 '아일랜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복제인간이었다. 같은 모습을 한 주인이 따로 있었고, 그들이 받고 있는 것은 관리가 아니고 '사육'이었다. 체계가 잡힌 '사육'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나가면서 결국은 주인에게 장기를 제공하고 죽음을 맞이할 운명에 처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역시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 그들이 꿈꾸던 '아일랜드'는 희망의 땅이 아니라, 주인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죽으러 가는 지옥이었다.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리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 인생은 궁지에 몰린다. 궁지 끝에 그들이 한 선택은 '탈출'이었다. 거짓된 유토피아를 기다리던 통제된 삶에서 진실을 찾으러 나선 것이다. 


#3.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이제 남은 것은 진실을 찾는 것이다. 현대판 피노키오 데이비드는 진실한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고, 링컨과 조던은 자기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사람이었고, 어떻게 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탈출을 선택한 그 순간, 인간 복제 업체를 비롯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들이 걸어나간 세상은 너무도 낯설고 무서운 곳이었다. 


데이비드와 링컨-조던, 그들은 연출자의 성향에 맞게 다른 여정을 선택한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모험담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데이비드는 마치 피노키오처럼 '푸른 요정'에 대한 꿈을 꾸며 절망 속에서도 꿈과 희망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인종갈등처럼 로봇을 혐오하는 인간의 공격으로 데이비드는 끊임없이 위험에 처한다. 링컨과 조던이 찾아가는 여정 또한 그야말로 죽음의 위협 투성이다. 온갖 무기와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덕분에 부서진 자동차들이 몇 대인지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것이다. 꿈을 찾아가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진실을 찾아간다는 큰 공통점은 있더라도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찾아가는 길과 맞이할 수 있는 위험은 각각 다를 것이다. 인간의 삶을,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도 각각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쫓기고 있으며, 진실을 찾기 위해 위험을 마다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힘으로 큰 힘을 가진 집단에 저항해 삶을 지키고 꿈을 찾아가는 그 과정 또한 각각 로봇과 인조인간이라는 특별함만 있을 뿐, 우리 모두 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까?


오로지 그 자신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도울 수 없다. 그들 스스로를 돕는 것은 오로지 삶에 대한 열망과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구, 그것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힘이 때로는 큰 기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기적을 행운이라고 한다. 그 기적마저 없다면 무슨 희망으로 삶을 살아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행운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찾기 위해, 혹은 스스로의 존재를 찾기 위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길을 떠나고 싸우는 그 순간, 행운의 여신이 짓는 미소는 그래도 조금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까?


#4. 피노키오의 꿈


< A.I >의 '데이비드'가 엄마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은 피노키오의 그것과 비슷하다. 피노키오는 요정을 만나 감동시킴으로써 사람이 된다. 자신을 만들어준 할아버지와 그럼으로써 가족이 될 수 있었다. 희망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고립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가족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꿈을 이루기까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힘을 빌려왔던 것이다. < A.I >의 데이비드도 그랬다. 데이비드에게 주어진 기다림의 시간은 무려 2,000년이었다.


매미는 7년을 땅 속에서 기다리다가 1주일 동안 나무에서 소리높여 목청을 내다가 죽는다. 한 순간의 외침을 위해 너무나도 긴 시간을 참아야 하는 것이다. 매미의 삶은 이토록 처절한 시간의 이어짐이었다. 데이비드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동화의 틀을 빌렸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잔인한 현실을 은유한 것이기도 하다.


비현실적인 환상과 오랜 기다림, 하지만 그조차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희망에 대한 염원일 것이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서글픈 외침도 그 "언젠가는"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기에 울림이 강하다. 희망과 미련은 종이 한장 차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미련으로 느껴질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간절한 희망일 수도 있는 법. 그 간절한 희망은 그에게 때때로 삶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그것이 바로 피노키오의 꿈이었다.


"내가 인간이 되면 사랑해 줄 건가요?"

"인간이 아니어서 죄송해요. 허락하시면 인간이 될께요."


 

 


(박형준 활동가 작성)


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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