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진짜’프레임을 넘어서, 대항적 말하기로 반차별 운동의 힘 찾기

- 난민 혐오 대응 운동을 중심으로 -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 본 원고는 2018년 12월 8일 세계인권선언 70년 인권주간 조직위원회에서 개최한 인권운동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한국이 난민제도를 시행한지 스물다섯 해 째가 되는 2018년, 이른바 ‘제주예멘’ 이슈를 통해 난민에 대한 혐오(정치)가 수면 위로 올랐다. 제주예멘이슈 이전의 ‘난민’은 한국적 맥락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로 고정되어 있거나 미디어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시혜적이고 수동적인 대상으로 대중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예멘 사람들의 상황이 가짜 뉴스와 함께 언론, 청원, 온라인 짤 등을 통해 확산되자, 난민은 일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까지도 전화되었다. 제주예멘이슈가 논란이 된 무렵 “나는 유엔난민기구에 후원하지만, 한국에 난민은 반대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며 길거리모금 등으로 난민을 소비할 수는 있지만, 도저히 함께 살기엔 어려운 난민과 비난민의 뒤틀린 관계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1. 대항적 말하기의 문제적 예들


  제주예멘 이슈가 불거지기 전까지 한국에서 소위 ‘난민 지원’을 하고 있는 일부 단체에서는 비참의 이미지를 뛰어넘고자 “난민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이들이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들이다”라거나, “김대중과 아인슈타인도 난민 이었다” 또는 “난민은 대부분 변호사나, 교수, 의사 등 사회적 계급이 높은 엘리트다” 따위의 메시지를 확산했다. 이는 난민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식하거나, 특정한 가치판단의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로 고정 시킨다는 면에서 ‘비참한 존재나 시혜적 존재’로 고정되어 있던 기존의 수식을 뛰어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또 다른 ‘난민다움’을 재생산한다는 측면에서 해롭다. 


  제주예멘 이슈 이후 불거진 난민에 대한 가짜뉴스와 혐오의 확산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메세지는 “우리도 난민이었고, 위기 상황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는 “우리도 언제든지 난민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국제적 위상을 생각하여 난민을 보호해야한다”등 이었다. 이러한 메세지들은 여전히 ‘우리’에 난민은 배제되고 ‘타자’로 분리되어 있다거나, 도덕적 책임을 쉽게 강조한다는 점에 있어 문제적이다. 이러한 도덕적 수식은 인권의 불온성을 잠식할 위험이 있다. 인권의 도덕화는 정치적 권력관계의 문제를 삭제함으로써 인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 시킨다. [각주:1] 도덕의 이데올로기는 난민에 대한 사회의 집단적 부끄러움을 감추는 파시즘적 기제이다.[각주:2] 책임의 단어를 차용한 메시지에는 난민과 비난민의 관계가 결여되어 있고, ‘보호’가 포함된 메시지는 시혜적 의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난민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말하기로서는 ‘대항적’ 의미를 상실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2. 난민의 인권을 향한 대항적 말하기에 있어 ‘정부’의 의미와 위치


 법무부는 한국사회에서 난민에 대한 ‘가짜의 낙인’을 꾸준히 남용해 온 발상지이자, 에스더기도운동 등이 만든 가짜뉴스의 수혜자이다. 지난 5월 2일 예멘난민과 관련한 대대적인 언론보도 이후 확산된 정부의 가짜난민 논거는 이미 법무부가 계획하고 있었던 예멘 국적에 대한 무사증폐지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좋은 디딤돌이 되었다. 난민법 시행 이후 매년 1만 여 건에 가까운 심사 적체와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린 공무원들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법무부는 전문적 심사 이행에 대한 대안 마련 보다, 일단 난민을 ‘남용적신청자’로 구분하며 행정절차를 축소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법무부는 미등록체류를 양산하는 이주정책 운용의 근본적 결함은 간과한 채, 난민신청자 중 미등록체류자가 있다는 통계를 근거로 2016년부터 체류관리지침을 개정하며 ‘난민 중 불법체류자 때려잡기’를 강화했다. 난민에 대한 낙인을 노골적으로 앞세운 결과 난민은 더 자주 구금되었고 추방되었으며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짜 낙인이 극명히 드러나는 것은 지위 심사 과정이다. 난민은 심사 과정에서 관련법에 따라 난민 사유 진술에 대한 신뢰성 평가를 받고 난민지위를 확인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행은 진술보다는 사람에 대한 신뢰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가 전제가 되어 심사가 진행된다. 특정 국적이나 종교, 성정체성 및 본국에서의 사회적 지위나 학력, 한국에서의 체류 및 출입국 정황 등에 따라 심사관의 개인적 가치 판단이 접합하며 한 인간이 평가 된다. 최근 불거진 아랍권 출신 난민에 대한 허위면접조서 조작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사관은 자신의 심증에 따라 난민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므로 이미 인간이 아닌 신의 위치에 있다. 


 정부가 자행하는 혐오에 대항한 말하기를 모색함에 있어 현실의 난민이 봉착한 아포리아는, 인권은 시민의 권리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임에도, 실제로는 어떤 개인이 이러한 인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특정한 나라의 시민 내지 국민의 자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각주:3] 이미 자국으로부터 퇴출되어 사실상 무국적의 상황에 처한 이들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다시 담보 받기 위해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심사절차를 유일한 길로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수갑이 채워진 채로 구타당하며 추방되거나, 영원히 유령인 채로 살아가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이미 한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국가권력이 절대적으로 심판하는 시스템에서 우리는 어떤 대항적 말하기를 고민해야 하는가? 어떻게 대항적 말하기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3. 대항적 말하기의 시도


(1) 2018년, 거리로 나온 난민의 목소리와 연대의 확산 

  한국정부의 문제와 제주 예멘 이슈 이후 확산된 논란에 분개하여 지난 8월 4명의 난민이 거리로 나와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법무부와 본국대사관 또는 커뮤니티 등에 의해 박해받거나 보복당할 가능성과 반대세력의 집중적인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최장 29일의 단식농성을 통해 한국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알렸다. 이들은 자신의 난민인정과, 공정한 심사, 출입국의 모욕적 태도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였다. 단식농성 과정에서 10여 회의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기획하며  폭넓은 연대를 만들어냈다. 단식농성의 결과로 국가인권위원장 면담 등을 성사시키며 국가인권위원회가 난민의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7월에는 인천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 난민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중학생들의 호소가 있었다. 과정에서 전교조, 염수정 추기경, 조희연 교육감 등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 난민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9~10월 등에는 시민사회 집회, 문화제 등을 통해 당사자들이 난민법 개악 저지나 문화제 등의 이슈에 목소리를 함께 높였다.

- 한계: 단식농성과 중학교의 사례는 교육감과 인권위원장 등의 동원을 통해 법무부가 예외적인 심사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심사의 공정성을 위배하고 전체 정책의 문제 해결과 대안 모색을 해내지 못한 점. 단식농성, 집회 등의 가시화된 요구 이후에 혐오범죄 피해, 출입국 또는 신원불명의 사람들에 의한 신원과 소재 파악,  법무부의 보복성 심사 등에 대한 우려 등이 현실화.


(2) ‘안전한’ 장소의 점유
  인권의 근본적인 박탈은 무엇보다 세상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장소, 자신의 견해를 의미있는 견해로, 행위를 효과적 행위로 만드는 그런 장소의 박탈로 표현되고 있다.[각주:4] 그러므로 난민인권을 향한 대항적 말하기에는 필연적으로 안전한 장소의 점유에 대한 고민을 수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국가권력에 의해 전적으로 자신의 인권을 확인받아야하는 아이러니와 난민신청자, 인도적체류자, 인정자 어느 체류지위를 막론하고 인간이 살기위해 최소한의 전제가 되어야할 생존권 마저도 가로막혀 있는 현재의 상황은 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잠식하는 토대가 된다. 정착을 위한 언어교육 하나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대항적 말하기의 기회는 차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대항적 말하기’도 있지만, (1)의 사례처럼 말하기 이후의 안전은 결국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할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므로 대항적 말하기가 불가능한 요인과 대항적 말하기 이후의 위험요인들을 추적하고 이를 제거할 대안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장소를 점유할 것인가? 어떻게 장소를 점유할 것인가? 또 안전한 장소의 점유 목적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은 거듭 필요할 것이다.
- 안전한 장소를 위한 구성요소: 익명성(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난민다움 등 ~다움이 없는, 난민과 비난민을 구분하지 않는, 비계획, 비의무, 자발적, 상시적, 경험의 공유, 위로- 즐거움 또는 유익함, 존중의 관계, 듣고-말하기, 번역-언어적 제약이 없는(이는 훌륭한 번역 또는 통역으로 국한된 이야기는 아님), 접근의 제약이 없는, 필요할 땐 서로 힘을 합쳐볼수도?, 모였다 흩어지는, 흩어졌다 모이는, 서로 의존, 실패와 갈등이 있는 공간
- 시도들: 에세이 프로젝트, 29명 참여, 자유주제로 45편 기고, 500여권 시민 배포 
- 한계: 단체와 개인의 권력관계 속에서 애초에 ‘하고싶은말’을 온전히 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음. 상시성이 확보되지 않고, 관계가 단절 되어 있었음.
- 이후 시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 – 익명의 게시판 / 지역사회 거점공간들 등을 통해 일상의 차별을 공유하고 공통의 과제를 만드는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3) 혐오/차별의 양상과 원인, 혐오범죄 및 정치의 구체적 상황과 효과, 사회적 의미의 해석
  소위 제주예멘난민이슈로 정의되는 일련의 사건들과 난민혐오의 양상 그리고 한국사회 소수자혐오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또는 잠재해 온 모든 위기의 측면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한국적 맥락에서 난민 혐오가 확산되었는지 등을 낱낱이 밝힌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사례를 고발하며, 법무부가 왜 난민을 가짜로 낙인찍기 시작했는지, 가짜뉴스가 왜 생성, 확산이 되는지 등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 직/간접적 원인을 밝힌다. 또한 난민의 혐오는 여러 소수자의 혐오 의제와 교차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예: 트렌스젠더, HIV에이즈 등) 난민에 대한 두려움 등이 어떻게 난민반대의 논리로 연결되는지를 톺아보고, 사회적으로 호소되는 불안을 두텁게 해석해낼 필요가 있다. 현재 조직적으로 추동되고 있는 혐오 정치의 양상과 이러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난민의 삶과 우리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부의 이주정책 분리통치방식이 어떻게 우리안의 인종주의를 강화하고, 선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을 확장시키는지 등에 대한 언급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피스모모는 이명박정권부터 박근혜정권까지 전국적,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던 나라사랑교육에 대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평가하며,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안보교육이 우리사회에 어떻게 적대와 혐오에 기여해왔는지를 교육적 맥락에서 분석하였다.[각주:5] 교육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혐오가 발생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요인들을 분석하는 시도들이 지속되어야할 것이다. 

(4) 난민과 비난민의 연결고리, 접점의 확장
  앞서 언급했듯, ‘우리’의 영역에 난민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난민은 영원히 대상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난민과 비난민의 연결고리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난민에 대한 일상적 차별은 어떻게 비난민이 경험하는 차별과 연결되어 있는가? 예컨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어떻게 어떻게 한국의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선주민의 노동차별과도 연결되는 지를 짚을 수 있다. 차별의 공통분모가 없다면 다른 결의 연결고리를 고려해볼 수 있다. 예컨대 핸드폰 생산을 위해 소비되는 분쟁광물로 발생하는 난민의 이야기나, 한국정부의 문제적 ODA가 어떻게 콩고민주공화국의 선거제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난민을 양산하는가[각주:6] 등을 이야기하며 비난민의 일상이 어떻게 난민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5) 혐오범죄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법적 제재
  상반기 이후 난민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 범죄 등이 확산되며 관련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위한 법적제재와 경고조치 등을 진행하였다. 난민을 대상으로 혐오범죄를 저지를 경우 이는 ‘범죄’이며 법적 절차를 통해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명시하고, 이를 좌시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6) 난민정책 운용의 의미와 현실, 난민법 개악의 의미와 문제 등의 논의
  한국사회의 난민정책 운용의 역사적 계기 및 의미와 한계, 난민법의 의미와 난민법 개별 조항이 어떻게 난민의 일상적 권리를 침해하는지 공유하였다. 난민정책 운용을 통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측면의 사회적 의미를 해설하고(예: 문재인대통령의 유엔연설), 난민법 개악의 문제와 개악 시도가 낳는 사회적 효과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 

(7) speaker의 확장
  대항하는 말하기에 다양한 주인공을 초대했다. 난민당사자와 활동가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에 글을 청탁하였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악플이, ‘그럴거면 너네 집에 데려가라’는 악플이어서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의 글도 싣고 자 했다. 말하기의 내용과 말하기를 담을 그릇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었다. 프란 등의 영상매체를 통해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거나, 카드뉴스, 전단지, 기사, 에세이 기고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양한 주제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하였다. 페이스북에서는 몇몇 페미니스트가 모여, ‘경계없는 페미니즘’이라는 페이지를 개설하였다. 난민과 관련한 일상적 경험과 견해를 담은 31개의 다양한 글이 기고되며 시민의 자발적인 활동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8) 자원의 거점을 찾기
  한 번에 우리의 메시지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서는 넉넉한 자원이 필요하다. 거의 상시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인권단체에서 이를 고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가장 많은 자원이 모인 거점을 찾아보았다. 결과적으로 국가인권위와 함께 협업을 했고 난민관련전단지를 전국에 약 10만 여장 공유하고, 컨텐츠를 홍보하여 10만 뷰 이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자원의 거점을 찾는 과정에서는 결국 정부기관과 협력을 하게 되는 지점이 발생했다. 정부기관과의 협력은 자원의 확보 뿐만 아니라, 메시지 확산의 다른 측면에서도 필요한 점이 있다. 다만,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여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으므로, 역할 확대에 대한 설득 등의 절차가 지난하기도 하다. 향후에는 중앙정부나 지자체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영역내의 다양한 자원의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9) 권리의 언어 확장하기
  난민신청 앞에 ‘가짜’와 ‘불법’의 수식이 붙을 때 ‘권리’가 수식이 되거나, 권리를 수식할 다양한 언어를 발굴한다. 예컨대 아렌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의 많은 국적 없는 사람들, 권리 없는 사람들이 겪은 인권의 박탈 경험에 입각하여 인권의 역설을 제기하고, 인권 속에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새로운 범주가 포함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각주:7] ‘권리들을 가질 권리’는 현재 난민의 무정부적 상황을 정확히 짚어주는 수식이 되기도 하였다. 

 또 권리의 언어를 확장함에 있어 중요한 근거로 헌정이 활용되었다. 인권선언 등은 단순한 문장들이 아니라, 문장의 의미를 넘어 역사의 과정이 담긴 기록들이다. 예를 들어 인권선언에 명시된 권리를 주장하며, 인류가 역사에 남긴 인권의 의미를 다시 짚어볼 수 있다. 한편 이 권리를 생성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행위자는 정부이기 전에 사람이다. 권리들을 가질 권리 또는 인류에 속할 수 있는 모든 개인의 권리는 인류자체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 비틀거나 거부하거나 다시 질문하거나
  정체성이 아닌 상황으로 비틀기. “난민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자꾸만 비집고 들어가 틈 내기 전략이 필요했다. 피교육자가 계속해서 난민을 하나의 집단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하며 난민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고, 어떠한 특성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였다. 

  한편 질문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난민은 왜 한국에 왔는지“, “난민은 누구인지“ 등에 대해 맥락에 따라 직접적으로 답을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이미 질문 안에 배제 되어 있는 난민의 자리와 권리를 되묻고, 질문에 서린 권력위계를 자각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질문을 거부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난민은 나쁜 사람들이다”라는 편견에 대항하는 말하기는 “난민은 좋은 사람들이다”가 아니다. 난민인권을 향한 대항적 말하기의 목표는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을 넘어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느냐에 있다. 개인은 다른 개인의 서로장소가 되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이기 때문에, ‘권리’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중요하다. 난민을 친구나 이웃으로 호명하고자 하는 시도에도 마찬가지다. 난민을 굳이 친구나 이웃으로 호명하지 않아도, 난민을 굳이 환대하지 않아도, 난민을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난민에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난민의 권리는 권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경은 민주주의의 반민주적 조건이다’- 발리바르

 ‘투쟁하는 자, 패배할 수도 있다. 투쟁하지 않는 자, 이미 패배했다’-women-in-exile




  1. 정정훈, 인권과 인권들, p68 [본문으로]
  2. 김형수,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p169 중 ‘장애인’ 주어를 ‘난민’으로 변경하여 인용 [본문으로]
  3. James Ingram, “What is a ‘Right to Have Rights?’, 2008 /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본문으로]
  4.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p.296 [전체주의의 기원1, 532쪽] [본문으로]
  5. 피스모모 이슈브리프, 나라사랑교육 평가 리포트 1: 나라사랑교육의 과거와 현재를 짚다 참고 https://peacemomo.org/boardPost/108859/8 [본문으로]
  6. 엇나간 선거한류,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5881.html [본문으로]
  7.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173쪽 [본문으로]
Posted by 난민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