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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난민기고] 삶이라는 도전

 ※ 난민인권센터에서는 한국사회 난민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참여작가를 모시고 있습니다. 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refucenter@gmail.com

※ 본 게시물은 한국 거주 난민의 기고글로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게시물은 난민인권센터와 저자의 허가 없이 무단 편집, 사용이 불가합니다. 



삶이라는 도전


글 : 사르다르


 저는 잠무 카슈미르에서 왔습니다.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점령된 분쟁지역입니다. 카슈미르는 세계 제일의 중무장 지대 중 하나입니다. 저희는 지난 70년 동안 인도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저는 정치적 배경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잠무 카슈미르의 해방운동을 했던 2000년에 첫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지와 폭력, 억압, 사회 부정의, 불안정과 싸워왔습니다. 주된 목표는 카슈미르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입니다. 저는 잠무 카슈미르 아와미국민당에서 활동하는 당원이었습니다. 2008년 당 대표자로 선출된 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활발하게 대표직을 수행하며 종횡무진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저는 당 대표자로서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었습니다. 당을 초월하여 초당파 국민주의자 동맹(APNA)을 결성하였습니다. 당 회의를 준비하고 민중의 기본권을 획득하기 위해 정부에 항의하였습니다. 또한, 파키스탄과 인도의 불법점령에 항거하는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1947년 8월 13일,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카슈미르는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는 유엔 결의에 따라 카슈미르는 독립하거나 점령당할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만약 카슈미르인이 아직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왜냐면 이 세계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국적과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슈미르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이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위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세계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카슈미르인으로 대우받기를 원합니다. 


 카슈미르의 자연은 매우 아름다워서 지구의 천국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곳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잔혹한 폭력으로 인해 죽음과 공포의 계곡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이제 이곳을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무고한 카슈미르인들은 하루걸러 인도와 파키스탄의 잔인하고 악랄한 군대에게 고문, 살해, 납치, 강간당하기 때문입니다. 카슈미르인의 기본권과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박해와 고문, 살해, 협박을 받기 때문에 그곳을 탈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카슈미르인을 향한 그들의 행동과 인권유린의 사례 그 자체인 셈입니다. 


 2013년에 매우 중요하고 잘 알려진 국민주의자들 중 한 명이 파키스탄 군사기관, ISI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ISI는 미국의 국가정보부(CIA) 같은 곳입니다. ISI는 초당파 국민주의자 동맹 의장을 살해했고 그의 죽음을 의문사로 처리했습니다. 우리 카슈미르인들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파키스탄 군대에 저항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ISI를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는 대신 ‘정의’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경찰은 우리를 고소했습니다. 고인은 제가 조직한 초당파 국민주의자 동맹의 같은 지역 출신이었고 잠무카슈미르 아와미국민당(JKNAP)의 의장이었습니다. 저는 큰 집회를 조직하고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를 중단시켰습니다. 우리는 매일 평화적으로 시위했지만, ISI는 저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감시와 위협을 당해왔었고 몇 차례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저를 상대로 사건을 조작하고 체포영장을 발급한 이후 제 이름은 공격대상 명단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살아남거나 은신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슈미르를 탈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카슈미르에 남는 것은 제가 죽거나 남은 평생 동안 감옥에서 썩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 the refguee art project




 저는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습니다. 매우 두려운 여정이었습니다. 대략 한 달간 매일, 매 순간마다 저는 제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한달 동안 두 다리로 힘겹고 거친 산을 넘으니 마침내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저는 갈증과 굶주림, 고통, 두려움 그리고 고생을 경험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단 한숨도 쉴 수 없었던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정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고통을 겪으라며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각각 사람마다 고통에 대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우리는 삶이라는 한 배를 타고 있는 같은 승객들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자세로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아무튼 저는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고, 또 다른 도전과 고단한 여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안전하고, 안정적인 다른 국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안전하게 머물면서 저의 조국 잠무 카슈미르의 자유를 향한 투쟁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국가 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뉴질랜드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마침 어떤 한 사람의 도움으로 저는 위조여권을 만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를 따라가 태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태국에서 한국을 거쳐 뉴질랜드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저의 계획은 한국에 입국하여 2주간 머물고 뉴질랜드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천공항에서 체포되었고, 외국인보호소라 불리는 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안전만을 위해 도망쳐 왔지만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길, 그 모든 것이 생소한 곳인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감옥 안의 저 자신 혼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만족했으며 머지않아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구금된 동안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원래 계획은 뉴질랜드로 가서 난민신청을 하는 것이었지만 한국에 구금된 이상, 이곳에서 신청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외국인보호소의 한 직원은 난민인권센터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고 난민인권센터는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7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투쟁이었습니다. 삶은 도전이라는 또 하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간의 도전들을 항상 받아들였고, 그때마다 또 다른 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투쟁은 똑같은 것들이지만, 단지 다른 중심축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전 투쟁의 중심축은 저의 국가를 위한 것이었지만 외국인보호소 안에서의 투쟁은 저의 개인적인 자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이런 예측 불가한 것들이 일어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제의 저는 잠무 카슈미르의 국가를 위해 투쟁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저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여하튼 1년 7개월이 지난 이후 저는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57일간의 단식투쟁에 들어선 후, 난민인권센터의 도움으로 저는 일시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또한 제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신은 우리를 해방해 주기 위해 인간의 얼굴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외국인보호소에 있을 당시, 저는 구금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더 좋은 환경과 시설을 요구하며 12일 동안의 또 다른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외국인보호소의 난민들과 다른 이주민들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긍정적이고 타인을 돕고 지지한다면 신은 언제나 당신에게 기회를 부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선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 중에 한 가지 다른 점은 인간은 타인을 위해 살고, 동물은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타인을 위해 선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삶을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일까요? 당신의 조상들은 이 국가의 자유와 당신들을 위해 그들의 삶을 희생하였습니다. 당신은 이곳에 자유롭게 살며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잘 운영되고 있죠. 이것이 단 한 순간에 만들어졌을까요?


 당신의 부모님, 그리고 국가의 애국자와 영웅들이 기여 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의무를 다 했습니다. 이제 더 나은 사회, 안정적이고 더 많은 복지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당신이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는 당신의 의무입니다. 저 또한 이 의무에서 예외 될 수 없으며, 여러분들과 같은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매일 밤, 오늘 우리가 타인을 위해, 국가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실천했는지 생각해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사소한 행동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길을 걷다 길 한가운데에 놓인 돌을 발견한다면, 그 돌을 주워 도로변에 두어 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나간 뒤 시각장애인이 그 길을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이 돌을 치우지 않았다면 시각장애인은 다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작은 실천에 불과 하지만 이로 인해 누군가를 어려움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터득한 지혜에 의하면 “삶은 대부분 투쟁의 연속입니다.” 계속해서 싸워나가세요. 절대 희망을 잃지 마세요.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희망은 성공의 열쇠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투쟁하세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희망의 중심축이 됩니다.


HOPE

H – Hold 

O – On 

P – Pain 

E – Ends 

“Hold on, Pain Ends” 

끝까지 참아내세요. 시련은 끝날 테니까요.



번역·감수 : 장유진고은지

원문링크 : http://www.nancen.org/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