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는 산길도 오르고 바다도 거닐고 숲향에 취하며 새소리에 들뜨고 좋아하는 양도 보며 마음껏 시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문득 진행중인 케이스에 대한 책임과 부담감이 엄습해오면 섬속의 섬에 숨어 있었을지라도 깊은 한숨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존재인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할수있기에 이런 책임이 생기고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나 싶습니다.

 대부분의 이들에게 나라는 작은 개인의 의견이나 결정은 그들의 삶에 솜털만큼의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겠지만 

삶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누군가에게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의견조차도 이들의 삶에 치명적인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겠단 사실에 씁쓸하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유난히도 슬픈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요즈음 혼자 꿈을 꿔 봅니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슬픈 사연이 더는 없는 곳

그런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는

그런 꿈







두 달 간의 휴직을 마치고 6월 초 사무실에 복귀했습니다. 미국 출장의 귀국일을 미뤄 한 달을 미국에서 보내다 돌아왔고, 한국에 돌아와 한 달을 더 쉬었습니다. 활동에 대한 회의감이 차오르며 사무국을 향한 불신과 원망이 깊어지던 순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었습니다. 


불안정한 시간을 견디는 난민들을 보는 것이 참 많이 무력하고 괴로웠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에 제가 만난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존재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게 너무 무섭고 힘들어 무의식적으로 난민들과 감정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한 인간의 이야기는 서류 속의 문장들로 변했고 그들의 ‘얼굴’은 처리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길을 잃은 저는 스스로의 활동에서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감 속에서 자존감이 바닥나버렸고 제가 했던 모든 일들이 불만족스럽기만 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무국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자 사람들에게 판단받고 비난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난센은 왜 이럴까, 더 나은 방식은 없는 걸까, 여기가 정말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 걸까.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 거세졌고, 타인을 향한 원망도 깊어져만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격려해준 이들 덕에 용기를 내어 제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공동체 농장에서 만난 내쉬 할아버지는 제가 난민들에 희망을 주고 있다고, 믿지 못할지라도 그건 틀림없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제 몫은 그 사람이 제게 찾아온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는 거라고, 그 사람의 생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고 다음 단계에서 만나는 다른 이가 그의 생에 필요한 다른 역할을 할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를 끊임없이 경험하면서 제 스스로가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고만 싶은 꿈을 격려하는 음성이 깊은 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머물던 마지막 밤, 평화 활동을 하는 분께서 제가 참 귀하다(“You're so precious”)며 이 말이 제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 문장이 제 가슴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손끝, 발끝, 온몸 구석구석까지 흘러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난센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간을 찌푸렸다가도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며 키득거리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으로 말입니다. 여전히 제 삶에는 해결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시 돌아온 건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준 이들 덕에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월례회에서는 깨어졌던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동료들의 따뜻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또 넘어지겠지만, 이들과 함께라면 손잡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손을 잡아주셨던, 그리고 지금도 제 손을 잡고 계시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오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셋이 시작된 첫 인연은 2007년도이니 내년이면 십 년째 입니다. 대학을 가면서 뿔뿔이 흩어져 일 년에 고작 두세 번 보는 처지가 되었지만 막상 만나면 엊그제 본 것처럼 스스럼 없는 친구들입니다. 만나서 각자 치열하게 해온 고민을 말하다가도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 웃을 때면 예전 생각이 납니다. 세월을 담은 얼굴만큼 성숙해졌고 성숙해진 만큼 흘린 눈물도,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많겠지요.


이 중 한 친구는 고시공부로 20대 초중반을 보냈습니다. 올해, 부디 이 친구에게 좋은 소식이 오길, 행복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다른 한 친구는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도입니다. 요즘 부쩍 집안에 힘든 일이 생기고 고민도 많은데 저는 들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이 먹먹합니다. 하반기에는 친구들에게도 저에게도 웃는 날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최근 저 자신을 비롯한 주변 친구들이 변화의 시기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결혼을 하고 어떤 이는 취업을 하고 어떤 이는 취업중이고. 일련의 작지 않은 인생의 변화에 서있는 우리는 꼭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내일, 혹은 몇 시간 뒤 조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바다를 항해하다가 정착하고 싶은 섬이 있으면 내리고 배가 정박하는 동안 그 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올라타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매일이지만, 몇 주 동안 비가 오고 안개가 껴서 섬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계속 움직이고 배가 끊임없이 항해하듯이 우리네 인생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속될 것입니다. 내일은 멀리 있는 섬이 보일 정도로 화창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6월의 어느 날처럼.

 

오늘의 선곡 한희정_내일 




2013년, 

입국 직후 부터

지금껏 인연을 맺어온 친구가

이제는 영영 한국을 떠난다며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난민지위를 인정받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참 지치기도 했고요..



경계에 서 있던 그가

한국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이해하기에

그의 선택을 늘 지지했었습니다.


그의 등을 떠미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들에 저항했던 

지난 4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둘러싼 벽들이 삶을 짓누르고

영원히 종착역에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을 때에도

마주보고 앉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한구석 피어나던 꽃들을 기억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가

이제는 경계를 깨고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제게 부끄러움과 사랑을 주었던 친구, 

갈매기

그가 이제는 뿌리를 내려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함께 응원해주세요..

 






다친 발목이 벌써 몇 달 째 나을 듯 안 나을 듯 아픕니다눈 앞에서 버스를 놓칠 때나 횡단보도 불이 깜빡일 때나, 방방 뛰면서 축하해 주고픈 일이 있을 때 못 뛰니 많이 답답합니다. 그럴 때 일단 소리라도 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발은 낫는데 오래 걸린다는데, 온전히 낫기까지 기다릴 줄을 모르고 괜찮다고 말하며 까불고 다니는 제가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지 이번만의 문제는 아니고, 늘 몸이나 마음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생각만 저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아서요.


몸이든 마음이든 가만히 있어야 낫는 때가 있는데 뭐가 무서운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니,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생각이 얄팍한 것만큼 말도 행동도 가벼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두려움이나 아픔도 내가 견디지 못해서 덮고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단순하고 가벼운 말이나 방법으로 모든 일을 괜찮은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은 이제 그만 부려야겠습니다. 난민 일에 대해서도요.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주신 분들께 감사한 6월입니다 :) 고맙습니다!



(봉봉의 하루)


6월 xx  무례함에 대해

화가나도 화를 잘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예요. 잘 감춘다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제법 잘 다스린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은 화를 분출시켜버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개 없이 흐르는 그들의 무례함이 나의 기분을 아주 쉽게 망쳐버리죠. 

 

전화상에 오고가는 대화로 예를 들자면, 이해할 수 없는 무례한 톤으로 과한 것을 요구할 때는 그 순간에 바로 전화를 쾅! 끊어버리고 싶어요. 본인의 기분에 따라 마무리 인사도 안하고 끊는 사람에게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렇게 한 행동의 이유를 확인하고 추궁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죠. 불행히도 나와 대화를 해야 하는 다음 상대방은 이미 잡친 나의 감정과 낮고 무뚝뚝한 톤을 감당해야 해요.

 

화는 전도의 성질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굳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싫어 내가 화나게 된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며 내 자신을 다독여보지요. 나를 위해서라도 다시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요. 그러다보면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고 내 자신을 위안해봐요. 혹 우리의 대화 가운데 그들이 무례함을 표현할 만한 이유가 나에게 있던것은 아닌지,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렇게 표현하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내가 너무 무례함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는 것 일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들의 감정을 받아서 그대로 흘려 내보내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도 하구요. 내 감정도 소중히 다루고 그들의 감정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민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신중하지만 무겁지 않은 그러한 마음으로.

 

6월 xx  땡큐, 땡큐

난민분들에게 지원이 어렵다고 통보하는 것은 항상 곤혹스러운 일이예요. 그것을 듣고 서운함을 표현하는 그들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나 또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고,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종종 어떤 분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나에게 고맙다고 해요. 그게 뭐라고, 안 좋은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강하게 먹은 내 마음을 사르르 녹게 하지요. 내가 그들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했고 고생했다는 것을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요.

 

진심이 느껴지는 "땡큐"는 언제 들어도 좋아요. 상대방의 땡큐에 내가 천만해요로 답했는데 그들이 또 한 번 땡큐를 해주면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워요. 땡큐의 의도까지 파악하겠냐만은, 이후의 일을 잘 해결해달라는 땡큐보다는 나의 감정을 신경써주고 있고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다가와요.

 

A: 준, 어린이집 문제가 있는데 원장한테 전화해서 이 문서 뭔지 그리고 뭐 내라고 하는지 알아봐줘.

: 오케이.

A: 아 그리고 나 몸이 안좋아서 수술 받아야하는데 수술비가 없어.....(침묵) 돈을 벌어 놓고 수술받으려고.

: 아 안타깝지만 좋은 결과 있기를!

A: 그리고 증거자료를 위해 돈이 필요한데.......(침묵)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 음 어떡할까...아마도 친구에게 빌리던지 해야할것 같은데?, 담 주에 다시 말해보자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현금지원을 하지 않는다)

A: 그래 음....그리고 한번 우리집에 초대할까 하는데?? 하하하....! (뒤에서 아내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 ...그럴까?

A: 아프리카 음식해줄께 초대하고 싶어!

: 아 물론이지!

A: 언제나 고맙게 생각해!

: 천만에

A: 정말 고마워

: ㅎㅎ별 말씀을다음에 또 이야기해보자!

A: 응 꼭 놀러와~~~






부부싸움을 하면 밭에 간다.

쉬 풀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밭에 간다.

정기적으로 나를 분노케 하는 난민과 만난 후에도 밭에 간다

두어 시간 풀을 뽑으며 땀을 쫙 뺀다.

밤에는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고서라도 밭에 간다.


주말농장은 나에게 농사 이상의 의미다.

육체노동으로 땀 흘리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고

애써 가꾼 채소를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휴식처이고 놀이터다.


올해로 6년차.

그러고 보니 난센을 창립하고 얼마안돼 시작한 주말농장이다.


열무순이 이쁘게 나왔다.

3월 중순부터 시금치 2모작을 하고 그 밭에 열무씨를 뿌린지 일주일만이다.


열무김치로 비빔국수 해 먹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난센에서 마지막 점심 메뉴는 비빔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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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