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통역을 중심으로 본 사법통역제도 현황 메모
이 글은 2024. 2. 16. 있었던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공익세미나 <사법통역과 언어정의 - 법, 제도 & 사회변화>에서 김연주 활동가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
사법통역제도 현황의 메모 - 난민제도 중심으로
김연주
난민면접조작사건을 통해 드러난 난민전문통역의 문제
2015-2016년 사이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신청을 한 아랍권 난민신청자 다수의 난민면접조서가 심각하게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난민면접조서에는 ‘난민신청을 하면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일을 할 수 있어 난민신청을 하였고,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난민신청 사유는 모두 거짓이며, 언제든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는 내용들이 거의 복사한 수준으로 유사하게 적혀 있었고,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와 함께 수령한 난민불인정사유서에는 난민불인정결정을 내린 사유로 “취업목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의 난민면접은 약 20-30분 정도로 졸속으로 진행되었고, 제대로 발언할 기회도 제공되지 않았으며, 진술이 어떻게 면접조서에 기재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면접조서의 열람·복사 신청을 하여 확인하게 된 피해자들의 난민면접조서 사본에는 통역인, 담당공무원, 난민심사관의 이름이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밝혀진 피해사례 모두 난민면접의 녹음 또는 녹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특정 통역인이 허위로 통역을 진행한 사건으로 문제제기가 되었지만, 사건의 배경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법무부가 난민협약 및 난민법에 위배되는 신속심사를 지시하고, 이를 무리하게 이행하며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임이 드러났다. 또한 난민심사과정에서 난민심사 녹음・녹화, 변호사 조력 등 난민신청자의 권리보장 방안이 미흡한 문제, 난민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자격요건과 책임의 문제, 난민전문통역인의 부실한 선발 및 교육과정의 문제, 난민심사의 인적・물적 역량이 부족한 문제, 난민면접조서・난민불인정사유서 등 난민심사의 공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서가 한국어로만 제공되는 문제 등 난민심사과정 전반의 전문성・공정성・투명성 결여가 여실히 반영되어 나타난 사건이었다.
피해사례 대부분의 통역을 맡았던 통역인은 아랍어를 학부에서 이중 전공한 것에 불과하고 기타 관련 경력 등이 없음에도 난민전문통역인으로 위촉되어 면접을 진행하였다. 통역의 정확성과 윤리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난민전문통역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수백 명의 난민면접에 통역인으로 참여하면서 수당을 받았고, 난민 허위면접 사건에 적극 가담 또는 방조하였지만 이후 징계 등 책임을 부담하지도 않았다.
한편 이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난민면접조서와 난민불인정사유서에 적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자신의 난민면접이 조작되었고, 면접조서가 허위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민면접조서와 난민불인정사유서는 한국어로만 기재되어 있고, 아무런 통번역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지원단체, 변호사 등 조력자를 만나지 못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사실 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난민전문통역의 부실함이 다시 한 번 수면 위에 올랐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한 조효석 국민일보 기자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건 정부가 제도를 제대로 보강하지 않은 잘못이 크다”고 보면서 부실한 보수교육과, 통역 인력 풀이 부족한 점, 장기적인 통역인력 육성의 시스템이 부재한 점 등을 지적하였다(국민일보 2018. 7. 9. 자 기사 "[단독] 줄잇는 난민 신청자 엉터리 통역에 눈물… 드러난 난민심사 허점").
사법통역에 관한 현행 법제
난민전문통역을 비롯한 이주민 사법통역제도의 개선 요구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교 이지은 교수는 “한국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 분야의 통번역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없고 낮은 처우로 전문적인 통번역사들은 참여를 꺼려 높은 수준의 통번역 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연합뉴스 2013. 3. 7. 자 기사 "<사람들> 사법통역 과정 개설한 이지은 교수").
사법통역 제도에 관한 현행 법제는 어떠한가. 한국은 사법통역에 관한 통합적인 법제도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사법통역이 활용되는 각 영역인 경찰 수사, 검찰 조사, 형집행, 출입국, 난민심사 제도에서 각각 독자적인 근거 법령을 두어 통역인을 위촉(선발)하고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법제도를 살펴보면 형사사건의 수사와 공소제기 및 공판절차 전반에 적용되는 형사소송법은 제14장에 '국어에 통하지 아니하는 자의 통역'과 '청각 또는 언어장애인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형사소송법 제180-182조). 형사소송규칙은 듣거나 말하는 데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통역 등의 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한다는 것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형사소송규칙 제92조의2).
민사소송법은 우리말을 하지 못하거나 듣거나 말하는 데 장애가 있으면 통역인에게 통역하게 해야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민사소송법 제143조), 민사소송규칙은 증거조사를 위한 틍역인에 대한 보수는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규칙과 마찬가지로 듣거나 말하는 데에 장애가 있는 사람의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민사소송규칙 제19조, 제19조의2). 한편, 민사소송법은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는 번역문을 붙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민사소송법 제277조), 번역문을 붙이지 않거나 재판장의 번역문 제출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 그 서증을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민사소송규칙 제109조).
법원은 대법원 규칙으로 “통역ㆍ번역 및 외국인 사건 처리 예규(재일 2004-5) [재판예규 제1730호, 시행 2020. 1. 23.]”를 제정하여 통역·번역인 인증평가, 지정 및 취소, 수당지급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고, 형사사건 심리에서 통역과 관련한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보호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규칙은 외국인수용자에 대해 외국어에 능통한 소속 교도관을 전담요원으로 지정하여 통역 번역 등 업무를 수행하는 등 처우하도록 규정을 두고 있고(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54조, 제57조, 동법 시행규칙 제56조), 출입국관리법은 통역에 관하여 하나의 규정만을 두고 있는데, 출입국 사범에 대한 신문시 통역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출입국관리법 제48조, 동법 시행령 제59조).
난민심사에 관해서는 난민법과 난민법 시행령에 통역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난민면접 과정에서 난민신청자가 한국어로 충분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경우 통역인의 통역이 필요하다는 규정(난민법 제14조)과 난민면접 종료 후 난민면접조서를 통역 또는 번역하여 난민신청자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난민법 제15조). 이에 따라 난민법 시행령에서는 ‘외국어에 능통하고 난민통역 업무 수행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는 난민전문통역인의 자격요건에 관해 규정하고, 난민신청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능통한 난민전문통역인이 없거나 긴박한 경우의 대비, 난민신청자가 요청하는 경우 같은 성(性)의 난민전문통역인이 통역하게 해야한다는 규정 및 수당지급에 대해 정하고 있다(난민법 시행령 제8조).
한편 앞서 언급한 대로 경찰은 ‘범죄수사규칙[경찰청훈령 제1103호, 2023. 11. 1., 일부개정]’에서 통역과 번역에 관한 규정을 일부 두고 있고, 검찰은 ‘통역인 운영규정[제정 대검 예규, 형사 1과 제1281호, 2022. 5. 16.]’을 제정하여 통역인 후보자 선정, 통역인의 지정, 통역인의 의무, 수당지급 등에 대하여 정하고 있다.
사법통역 접근성 문제
앞서 검토한 통역에 관한 법제도는 법원, 수사기관, 출입국 등 각 기관에서 사건 진행의 편의와 효율을 위한 운영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보니 당사자의 통역·번역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히 매우 미흡한 상황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지을 광주일보 기자는 기사를 통해 재판에서 외국어로 쓰여진 반성문 및 탄원서에 대해 번역이 지원되고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광주일보 2021. 5. 23. 자 기사 "통역·번역인 지정 규정 있는데… 외면 받는 외국인 피고인 반성문"). 앞서 본 민사소송법 및 민사소송규칙에서는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는 번역문을 붙이도록 규정하고 있고, 번역되지 않은 문서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고 있다. 실제 난민소송에서도 외국어로 된 문서들을 반드시 한국어로 번역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하여 통번역인을 지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번역되지 않은 서류에 대하여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난민신청절차에서도 이와 같은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난민인정신청서 작성과 접수과정에 통·번역이 제공되지 않음에도 한국어와 영어로 기재한 신청서만 접수 가능하다. 현재의 난민인정신청서 및 난민재신청자용 난민인정신청서 서식은 2019년 12월 31일 개정되어 사용되고 있다는데 해당 서식상의 난민인정신청서 작성방법 및 유의사항은 신청서를 한국어 또는 영어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고, 모국어로 작성한 경우에는 한국어나 영어로 번역하여 번역본을 신청서와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수언어를 구사하는 난민신청자는 난민인정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에서부터 장벽에 부딪힌다. 한국어·영어 외의 난민인정신청서 서식은 공개되어 있지 않고, 난민인정신청서를 접수하는 출입국에서 통번역의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력으로 통번역 업체를 찾아 난민인정신청서 작성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정보 없음과 비용의 부담으로 많은 난민신청자는 지인, 심지어는 출입국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난민인정신청을 대행하는 행정사, 변호사 등을 찾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서류인 난민인정신청서는 이 과정에서 정확하게 작성되기 어려운데, 이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장시간의 난민심사대기 이후 ‘난민지위 불인정’으로 귀결된다. 더욱이 이러한 과정에서 난민신청자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다(관련기사: 오마이뉴스 2023. 8. 18. 자 기사 "한국어·영어로만 작성하도록 한 난민인정신청서는 위헌").
또한 난민면접조서와 난민불인정사유서는 한국어로만 기재되어 있고, 아무런 통번역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난민면접조서와 난민불인정사유서는 난민신청자의 난민인정신청에 대한 심사결정이 적법 · 타당하였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초자료로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불복과정에서 난민신청자의 방어권 보장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는 자신이 왜 난민불인정결정을 받았는지에 대해 그 사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만을 통지받고,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해 추가적인 반박이나 소명 없이 기계적으로 이의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 9. 24. 난민불인정통지서는 신청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교부해야 한다며 법무부장관에게 법제도 개선을 권고하였다.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법무부 발의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법무부장관은 난민인정을 신청하는 사람이나 이의신청을 하는 사람 등이 우리말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거나 우리말로 적힌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신청서를 접수하거나 결정통지를 할 때에 통역 또는 번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안 제45조의 2)"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그러나 ‘난민인정 재신청자에 대한 적격심사 제도’ 등 해당 법안의 핵심 부분은 공정하고 충실한 난민심사기회의 보장의 측면에서 심각하게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사건진행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기관의 웹사이트가 한국어로만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가 자신의 사건 진행상황에 접근하기 어렵다. 자신의 재판 진행상황은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페이지에서 사건번호를 입력하여 확인할 수 있고, 형사사건의 경우 형사사법포털 사건조회 페이지에서 경찰사건·검찰사건·법원사건 진행상황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조회 서비스가 한국어로만 되어있어 외국인의 경우에는 이를 통한 사건진행상황의 확인이 어렵다. 출입국·난민사건의 경우 사건 접수 및 진행상황에 대해 아예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 이에 더하여 변론기일통지서, 보정명령 등 재판 진행에 관한 주요 문서가 번역 없이 한국어로만 통지되고 있다. 난민재판의 경우 원고 불출석으로 종결되는 사건, 소송비용을 보정하지 않아 각하되는 사건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이와 같은 통번역 시스템의 미비로 재판절차의 접근성이 잘 보장되어 있지 않은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판결문 역시 한국어로만 되어 있고, 이에 대한 통번역은 제공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페이지(좌)와 변론기일통지서(우)
난민신청자의 재판 과정을 취재한 강석영 민중의 소리 기자는 “재판을 기다리던 중 ‘나 홀로 소송’하는 난민을 만났다. 변호사는 물론 시민단체 조력도 받지 못한 그는 정말 혼자였다. 자신의 차례가 됐다는 안내에도 그는 한국어를 모르는 탓에 하염없이 앉아만 있었다. 옆에 있던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문 앞에 당사자를 두고 원고 없는 재판이 진행될 뻔했다.”고 당시 법정에서 목격한 상황을 기사로 전하며, “불친절한 절차는 난민소송 패소율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라고 지적했다(민중의소리 2020. 4. 22. 자 기사 “‘나 홀로 소송’ 나선 난민 따라가 봤더니, 한국은 그를 내쫓으려고만 했다.”). 공식 통계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보유하고 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지만, 매년 손에 꼽을 수 있는 난민소송 승소 건 수 중 실제 변호사 조력을 받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하여 재판에서 승소한 사례는 아직까지도 찾아볼 수 없다. 사법통역이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로서 보장되고 있지 않은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해 볼 수 있겠다.
물론 미미하지만 당사자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일부 노력도 있다. 최근인 2023. 7. 3. 경찰청은 범죄피해자가 112 신고시 영어와 중국어 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외국인을 체포·구속하거나 동행을 요구할 때 미란다원칙 등을 고지 받았다는 권리고지확인서, 체포·구속된 피의자의 변호인 또는 가족 등에게 체포·구속의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을 통지하는 체포·구속 통지서를 16개국 언어로 번역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법원은 외국인·이주민 전용 법원 홈페이지(https://jifi.scourt.go.kr/)를 운영하면서 한국의 사법제도를 소개하고 있고, 수원지방법원에 사법접근센터를, 서울행정법원, 중앙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인천가정법원 등에 장애인·외국인 등 지원을 위한 우선지원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각 법원 홈페이지 안내 내용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중앙지방법원의 경우 외국인 안내 통역사(영어)가 상주하며 영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각 법원에서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영어, 베트남어, 필리핀어, 아랍어 등의 영상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외국인 민원인을 대상으로 한 통역 서비스가 얼마나 유용하고 원활하게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향후 모니터링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 통번역 비용의 부담 문제도 제기된다. 앞서 검토한 민사소송법령에 따르면 증거조사 등을 위하여 통역인 지정신청을 할 경우 소송비용 예납을 해야 한다. 다만, 경제적 자력이 부족할 경우 소송구조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난민재판이 가장 많이 진행되었던 서울행정법원은 2015년 중반까지는 자력이 부족한 난민의 재정적 상황을 고려하여 통번역 비용을 포함한 소송비용 전체를 구조결정하기도 하였으나, 난민사건 증가와 함께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2015년 중반 이후 소송구조의 문이 닫혔다. 법원 간담회 등을 통하여 난민사건에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였고, 사법정책연구원에서 2017. 10. 발간한 「난민인정과 재판절차의 개선방안」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제기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2017. 12. 8. 개최된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소송구조제도의 적극적 활용방안’을 주제로 “난민 사건 역시 소송구조를 적극 활용할 수 있고, 특히 당사자가 외국인인 난민 사건의 특성상 통번역료에 대한 직권 소송구조의 활성화도 필요함”이 논의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 이후로 난민재판에서는 소송대리인이 없는 사건에서 직권으로 1회 기일에 통역인을 지정하여 난민신청자의 진술을 청취하는 것으로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송대리인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출석하는 경우에도 통역인의 지정이 취소된 경우가 많았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증거자료의 경우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증거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어서 과도한 번역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그마저도 번역을 위한 통번역인 지정은 거의 하고 있지 않아서 당사자가 알아서 번역 업체를 찾아서 번역을 한 뒤 제출해야 증거로 채택하고 있다. 실제 지원한 사례 가운데 번역인이 지정되고 번역비 소송구조를 받은 사례는 1건 있었다. 최근 대법원은 ‘수어통역 등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여 2020. 9.부터 청각장애인에 대한 수어통역비에 대하여는 모두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였는데, 향후 외국인·난민사건의 통번역에 대하여도 이에 준하여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관련기사 : 에이블뉴스 2020. 9. 2. 자 기사 "소송절차·재판방청 수어통역비 국가 지원").
사법통역 전문성 강화
한편 사법통역의 전문성의 문제도 지난 10여년간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이지은 교수가 2012. 11. 발간한 「다문화사회의 사법통역」, 이화여대 통번역연구소(이지은 외 공저)에서 2014. 10. 법무부 연구용역으로 발간한 「난민전문통역 교육 컨텐츠 개발 및 통역인 운용방안」, 이지은 교수가 2017. 3. 발간한 「사법통역의 이론과 실제- 경찰통역에서 난민통역까지」, 사법정책연구원에서 2017. 10. 발간한 「난민인정과 재판절차의 개선방안」 등에서 꾸준하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사법통역 전문인력의 확보 문제, 사법통역의 품질향상과 전문인력을 위한 교육의 문제, 통역인의 전문성·중립성·윤리의 문제, 통역 정확성의 검증의 문제 등이었다.
영어 | 중국어 | 아랍어 | 러시아어 | 우르드어 | 우즈벡어 | 기타 | 합계 | |
2019 | 19 | 15 | 8 | 8 | 7 | 116 | 173 | |
2020 | 44 | 50 | 11 | 10 | 7 | 83 | 205 | |
2021 | 45 | 50 | 15 | 11 | 10 | 74 | 205 | |
2022 | 35 | 35 | 11 | 18 | 3 | 79 | 181 | |
2023 | 53 | 66 | 11 | 51 | 127 | 308 |
법무부, 정보공개청구결정서(접수번호 11669871)
난민인권센터에서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난민법상 난민전문통역인의 숫자는 2023. 12. 31. 기준 308명으로 나타난다. 영어 53명, 중국어 66명, 러시아어 51명, 베트남어 25명, 아랍어 11명, 기타 102명으로 총 34개 언어이다. 이 가운데 상주인력은 없고 위촉된 난민전문통역인 명단을 두고 매 난민면접시 통역을 담당할 사람을 정하여 출석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2019년 법무부출입국외국인청 난민통역임기제 공무원 채용(아랍어 2명, 러시아어 2명, 프랑스어 1명), 2022년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러시아어 난민통역임기제 공무원 채용, 2023.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러시아어 난민통역임기제 공무원 채용 등 전문임기제 공무원을 채용하여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난민통역을 포함하여 사법통역 인력의 확보 문제는 각 기관마다 중요한 과제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사법통역에 관하여 통합적인 법제도가 없고, 각 기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위촉(선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장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찰단계의 경우 거의 매년 ‘민간인 수사통역요원 인력풀 모집 공고’를 내어 ‘민간인 수사통역요원’이라는 이름으로 통역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자격요건과 선발 과정을 살펴보면 ‘외국어 구사가 가능할 것’ 외의 보다 전문적인 검증의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2023년 민간인 수사통역 인력풀 모집 공고'
법원의 경우 최근의 변화이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통·번역인 인증제도를 도입하였다. 2018년 안산 등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관할 법원인 수원지방법원에서 처음 시범사업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협업하여 법정통역인 인증평가를 실시하였고, 2021년 전국법원으로 확대하여 「통·번역인 평가 및 인증제」를 공식 도입하였다. 법원은 2019. 10. 처음 실시된 인증평가를 통해 23개국 언어, 416명이 응시하여 인증 통역·번역인 82명, 준인증 통역·번역인 102명을 선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인증은 2년간 유효하며 통역·번역업무 수행경력, 재판부 평가, 직무윤리 준수 여부, 교육이수 여부 등 고려하여 2년의 범위 내에서 갱신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인 2023. 10. 17.에 세 번째로 법정 통·번역인 인증평가 시험 실시 계획이 공지되어 현재 절차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법원, '법정 통번역인 인증평가 시험 실시 계획 공고(2023. 10. 17.)'
난민전문통역인제도는 법무부 난민면접조작사건 이슈화를 계기로 일부 변화를 맞이했다. 이전에는 난민법 시행령 제8조 제1항에서 난민전문통역인이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을 마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시행령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에 관하여 하위 법령에 아무런 세부규정이 없고 난민전문통역인 활동을 위한 교육예산 역시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매년 통역인 교육이 진행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2018년 4월부터 난민전문통역인 풀을 재정비하고, 난민통역 보수교육을 의무화하였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협력하여 「난민전문통역인 자격검증 및 난민통역 품질관리 방안 연구」를 진행하였고, 2020년에도 난민통역 품질평가 및 보수교육을 실시하였으며 2021년 난민통역인증제가 도입되었다. 난민통역인증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위탁기관이 난민통역인을 평가·검증하여 통과한 이들을 법무부 난민전문통역인으로 인증을 하는 형태이다. 난민인권센터에서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 신규 위촉한 난민전문통역인은 러시아어 33명, 중국어 32명, 영어 24명, 베트남어 18명, 미얀마어 6명 등 총 25개 언어권의 148명이다.
법무부, '난민전문통역인 인증제도 안내 및 참여자 모집공고'
이와 같이 법원과 난민업무 분야에서 최근 ‘통역인 인증제도’를 공식 도입하여 시행하는 과정에 있다. 약간의 운영방식의 차이는 있으나 통역 분야의 대표성을 띄는 외부 교육기관과 협력하여 통역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소수통역인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해 제도개선이 이루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제도 초기이기 때문에 선발과정과 보수교육 과정, 통역인의 관리와 책임소재 등 운영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실제 법원의 「통·번역인 평가 및 인증제」 도입 후, 남가언 아주경제 기자는 위 제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였다. 법정통역인과 국선변호인, 피고인이 면담일정을 잡기가 어려운 점, 실제 재판에서 통역 후 이들의 통역 능력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점, 대부분의 통역인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 소재 법원에는 필요한 언어 통역인을 찾기가 어려운 점 등을 지적하면서 외국인 피고인의 제대로 된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는 주요 언들에 대해서는 상주하는 전담 통역인을 두고, 전담통역인이 수사부터 재판단계까지 같은 사건을 담당하도록 하는 '전담 통역인 제도'를 도입해야 함을 제시하였다(아주경제 2023. 10. 4. 자 기사 “[구멍난 재판통역上] "통역사 없어 피고인 면담 차질"…'외국인 사건' 꺼리는 변호사들” ; 2023. 10. 5. 자 기사 “[구멍난 재판통역下] 해외 법원은 '통역사무소' 운영…'전담 통역인' 시급”).
한편 난민면접조작사건을 통해 드러나듯 통역인의 중립성과 윤리의 문제 역시 중요하며, 이를 담보하기 위한 규정과 교육 등이 강화되어야 한다. 2018년 10월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피의자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피의자 신문에 통역으로 참여한 통역인을 따로 참고인으로 조사하면서 “통역을 할 때 피의자의 태도는 어땠나”, “거짓말을 하는 부분이 있던가”, “정말 그 뜻을 몰랐다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졌고, 해당 통역인을 이후 다시 피의자 신문에 통역으로 참여시켰다. 이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 2. 4. 경찰청장에게 △사건 통역인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지양할 것, △참고인으로 조사한 통역인을 피의자 신문에 통역인으로 참여시키지 말 것, △통역인 조사가 불가피한 경우 피의자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나 선입견 등을 가진 통역인이 통역에서 배제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의견표명 하였다(한겨레 2022. 2. 4. 자 기사 “[단독] 통역에게 “피의자 거짓말하냐”고 물은 경찰…인권위 “통역 중립성 필요”).
또한 앞선 아주경제 기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통역 당시와 통역 이후 통역의 정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난민면접의 경우 면접관과 통역인 난민신청자가 외부와 차단된 면접실에서 진행되고 있어 난민심사의 공정성과 통역의 정확성 등을 외부에서 관리·감독을 하기 어려운 구조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난민면접 녹음·녹화제도가 도입되었다. 난민면접조작사건 이후 난민면접 녹음·녹화가 전면 의무화 되었음에도 법무부는 지침에 의거해 영상녹화 기록을 파일로는 공유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난민면접에서 통역의 오류가 있어도 이에 대한 사후적 검증과 대응이 어렵다. 이에 대하여 난민인권센터에서 난민면접영상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최근인 2024. 1. 18. 서울행정법원은 난민면접영상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였다(관련기사: 한겨레 2024. 1. 19. 자 기사 "법원, ‘난민면접 조작’ 녹화 제공 못 한다는 법무부에 “공개해야”").
법원은 판결이유에서 “난민신청자에 대하여 처음 이루어지는 면접 결과는 난민인정 여부 판단의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난민면접 과정을 진행하는 공무원과 통역인의 전문성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난민신청자는 통상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어 객관적인 자료 등을 제출하여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난민법 제8조는 면접심사를 통해 난민신청자에게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난민 사유와 박해에 대한 공포 등을 진술하도록 하였고, 난민면접 과정에서의 진술이 신뢰할 수 있는지, 일관되는지 여부가 난민지위 인정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므로 진술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역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 사건 불인정결정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한 이 사건 신청자로서는 이 사건 정보를 통하여 난민면접에서 진술한 내용이 정확히 난민면접조서에 기재되었는지, 통역에 오류는 없었는지, 난민면접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은 없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난민면접 과정에서 이 사건 신청자가 자신의 사유를 편하게 밝힐 수 있는 분위기였다든지, 통역에 문제가 있었다든지, 질문에 답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설명을 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든지 등 난민면접조서에 드러나지 않는 여러 사정이 면접 영상을 통해 드러날 수 있어 이를 별도로 확인할 실익도 있다.”고 설시하면서 통역의 오류에 대하여 난민면접 영상 확인을 통해 검증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