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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인턴후기] 함께 만들어나가는 가치, 난민인권센터



지난 주, 혹시 면접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분홍빛 기대에 사로잡혀 산 짙은 색 마이를 입고 서울행 KTX열차에 몸을 실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에이~, 설마, 혹시, 그래도..’ 이런 생각들을 이어갔었는데, 난센을 찾아가느라 낯선 골목들을 헤집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고 나서야 실감이란 놈이 성큼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진을 통해서만 봐오던 난센을 라이브로 보니 신기했다. 생각보다 단단해 보이는 분도 있고, 입체적인 분도 계시다.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새 집 티가 팍팍 나는 미팅 룸에서 국장님과 면담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난센과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난민, 난센, 그리고 나










 


사실 정말 난센과 처음 만난 건 3년 여 전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인도 배낭여행을 하던 중, 무엇엔가 이끌리듯 Tibetan Refugee Self Help Center를 방문하게 되었고 세상에 난민 r.e.f.u.g.e.e.’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여행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국화꽃 미소를 짓던 티베트 난민 할아버지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 한참 인터넷을 뒤져보았었다그렇게 나는 세상의 난민이 있다는 것을한국에도 난민이 존재한다는 것을그리고 난민인권센터를 알게 되었다.




 

난센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건 필연인 것처럼 이어졌던 난민과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난민이 될 공포를 느끼고 있었으며, 깊은 영감을 주었던 달라이라마를 보기 위해 찾았던 출라캉 사원에서 티베트 난민들이 부르는 티베트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었다. 지인이 추천해준 내 생에 최고의 영화 속 주인공은 난민이었으며, 방글라데시의 콕스바잘 지역에서 흘려 들었던 이야기가 결국 로힝기야 난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T.R.S.H.C에서 만난 할아버지>                 <영화 'Welcome'중 한 장면>                  <츌라캉 사원이 있는 다람살라>





오랫동안 분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도 복잡하고 힘든 것인지, 답답했다



난민은 결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이웃의 이야기였고, 내 친구의 이야기였으며 나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난민인권센터를 보며 꿈을 키워 갔다. 사람들에게 똥 배짱으로 내 꿈은 난민인권전문가가 되는 것이고 난민인권센터에서 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리고 올해 2, 난민인권센터에 채용 공고를 보며 심장이 떨렸다.

  








1987년 7월 29일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7살에 한국으로 왔다. 그런 성장 배경 때문에 종종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다. 그런 유년시절의 경험이 결국 모든 사람은 똑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별


  

 이따금 눈을 감고 무한히 펼쳐지는 우주를 가슴 속에 그리며 삶을 관망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원동력으로 삼아 지금 이 순간, 전심전력을 다해 마음을 따라 살며, 그를 통해 온몸에 전율이 일듯한 기쁨과 슬픔, 공포, 환희, 깨달음, 감동 그런 것들을 느끼다 보면 인생을 조금이라도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인생에 대한 흩어진 추리와 사유를 통합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지금의 나에게는 난센’인 것이 










2012년 7월 29일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다



낯선 타지였던 서울이 우리동네가 되었고, 어색했던 사무국 식구들과도 애증의 관계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능글맞은 구석이 생겨가고 있다.





처음엔 먼저 난민에게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이 어렵고 두려웠다. ‘말을 잘못하여 괜히 상처 주게 되는 건 아닐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저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고민하다가 말을 건넬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난민의 입장이 되어 돌아보니, 건네는 말 한마디가 관심의 표현이되고, 조금이라도 굳어있는 몸을 녹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을 다한다면 그것이 어찌 전해지지 않으랴. 지난 5개월은 두려움의 벽을 끊임없이 깨어나가며 난민과 친숙해져 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주로 법률 서비스를 조력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대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처음 만나자 마자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본국에서 겪었던 박해의 사실이며, 난민 자신이 생명과 자유의 위협을 받았던 순간이었다초반에는 그런 과정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충분히 공감해내는 것, 또 한편으로는 진위여부까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며 노하우가 생겼지만 아직도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99%의 불가능 보다는, 1%의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노력하는 것이 난센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난센 속에서 활동한 지난 5개월은 끊임없이 자신을 견제하며 사랑하는 과정이었다.>





절박함



그것은 난민인권센터에서 첫발을 뗌과 동시에 가슴 속에 선명히 각인되었던 단어이다. 내가 난민의 심정을 얼마나 절박히 이해할 수 있는가에 따라 활동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런 절박함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 때로는 부산에서 아무도 모르는 서울로 올라와 일주일 안에 집을 구해야 했을 때 느꼈던 처절한 불안을, 때로는 방글라데시에서 사력을 다해 일하던 노동자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절박함을, 때로는 영화 웰컴을 보았을 때 느꼈던 깊은 슬픔을, 때로는 친구들에게 놀림 받았을 때 느꼈던 강한 분노를 끄집어내어 그들의 이야기와 겹치곤 한다.




 

활동을 하며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이 활동이 자칫 자기 위안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 이다. 즉 난센 속에서 일구어가는 가치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를 위한 것이 되기 위해서 활동가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난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가고 있다. 난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그들이 원한다면 그 과정에서 활동가는 때로는 협력자가, 동반자가, 가족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느날 문득 가리봉동 사무실 2층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난센 속에서 활동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염없이 부족한 내가 이 곳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난민인권센터의 가치에 동의한다는 것.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그것이 난센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가 난센 속에 있는 이유이다.





그동안 활동을 하며 난센을 구성하고 있는 동료들을 통해서, 난민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때로는 그 다름이 지겹거나 짜증나기도, 화가나고 억울하기도 한 시간들이 있다. 그러나 할 수 없어. 어짜피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라는 관점에서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 하는 것, 함께 고민해나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활동가이며, 난센이다.



< 다르기에, 아름답다. >





난센 구성원으로서의 삶은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용감해지는 과정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자신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끊임없이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들이다.



나에겐 함께 이해하고 노력해가는 동료가있고,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주는 난민들이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난센을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다.




 


 

  어느날 사무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가슴 속에 행복하다라는 단어가 벅차올랐다. 잇몸미소를 지으며 땡볕이 내리쬐는 출근길을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것은, 오늘도 난센 속에서 함께 꿈꾸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난민과 함께, 모두가 함께 웃는 세상을 꿈꾸며 

7기 인턴 고은지 후기 끝.  


 

  • 빵따 2012.07.29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맘 속에도 감동이 와요
    삶이 그대로 묻어난 이 글을 보며
    제 일상은 어땠나... 돌아보게 됩니다.
    난센...참 멋진 곳이에요...

  • 소영ㅋㅋ 2012.07.31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제가 인턴이실때 면접보러 오셨는데!
    어느덧 이렇게 잘 적응 하셨네요!
    난센 한번 가야되는데!!
    난센 보고 싶어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