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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세계 난민의 날' 맞은 한국의 현주소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박해를 받게 될 것이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진 경우로 볼 수 없어 난민인정을 불허합니다.'

콩고 출신 기자 E씨와 동성애자인 파키스탄인 A씨는 2009년 법무부로부터 난민인정 '불허' 통보를 받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E씨는 2002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국가기관으로부터 감금과 위협을 당한 뒤 한국으로 피신해 난민인정 신청을 했고, A씨는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는 조국생활에 공포를 느껴 1996년 한국으로 도망을 온 상황이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콩고 정보부 비밀경찰들에게 체포돼 구타를 당하고, 이슬람 종교법에 따라 동성애자를 태형 또는 사형으로 처벌하는 파키스탄 형법이 두려워 한국으로 몸을 피한 이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은 난민인정 신청뿐이었다.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무부의 불허 처분은 이들의 희망 한 오라기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E씨와 A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법원을 찾았다. 법무부를 상대로 난민인정 불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이들은 소송 과정에서 자신들의 '공포'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임을 증명하려 백방으로 뛰어야 했다. 그래야 난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엔(UN)의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협약)'은 '인종이나 종교, 국적, 정지척 견해 등으로 박해를 받거나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 때문에 외국으로 탈출한 자로서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자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를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1992년 UN 회원국이 되면서 난민협약에도 함께 가입을 한 한국은 1994년부터 난민인정 신청을 받아왔지만 난민인정 처분을 내리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 4월 기준으로 1994년부터 난민인정 신청을 한 3073명 가운데 7.6%에 해당하는 235명만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전 세계 난민 인정률은 38%였다.

A씨는 1심에서 '파키스탄 형법이 동성애자를 태형에 처하는 등 무거운 형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동성애 결혼을 한 사람에게 이 같은 처벌을 내린 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경우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법무부의 난민인정 불허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받았고, 2심에서도 같은 이유로 승소 했다. E씨는 1심에선 법무부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패소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선 '콩고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이 계속되고 있고 정부가 자신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를 감금하고 해당 언론사의 활동을 금지하는 등 심각한 박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E씨가 느끼는 공포는 난민협약이 규정한 공포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받아 승소했다. 

E씨와 A씨처럼 우여곡절 끝에 난민인정을 받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지난해 법무부가 난민 및 난민 신청자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9%가 '경제적 곤란으로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주거지원(42.6%), 직업소개(41.5%), 생계비 지원(43.1%) 등을 난민 지원 필요 사항으로 꼽았다. 현재는 난민 지위를 신청한 지 1년이 넘어야 취업 허가가 가능하며 난민인정 불허 처분을 받는 경우엔 아예 취업을 할 수 없다.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서울 서초구 사파갤러리에서 난민 사진 전시회를 연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난민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한국을 찾은 모든 난민들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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