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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4기 인턴 생활을 마무리하며


설렘반 망설임반으로 난민인권센터의 문을 처음 두드린지 어언 6개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 4기인턴 4명은 모두 이곳에서 인생의 작은 계기를 하나씩 마련하여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통영 시민 환경 운동가 대회 끝나고-4기인턴과 팀장님들>


1.

매주 수요일 오후 두시에는 어김없이 그분의 전화가 온다.

"미스 가람, 잘 지냈어요? 여기는 춥지만 견딜 만해요. 곧 좋은 소식이 있을테니까요."

아프리카 중서부의 한 나라에서 온 크리스(가명)씨는 본국의 동성애 박해를 피해 한국의 문을 두드렸다. 그를 알게된 것은 2주마다 한번씩 방문하는 화성보호소에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이렇게 믿고 털어놓은 적은 처음이라는 첫번째 인터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처럼 새로운 케이스가 발생을 하게 되면 우리는 먼저 난민 신청자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는 듣는이에게도 말하는이에게도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보다 더 숨찬 과정이다. 신청자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다시 떠올려야 하고, 우리는 아무리 극한 상황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인터뷰전에 담당자는 난민 신청자의 본국 상황에 대해 심층 조사를 하고 인터뷰에 임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난민 신청자의 진술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황과 일치하고 일관성이 있으면 난센이 지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만번의 갈등을 하게 된다. 그 사람과 같은 피부색, 종교, 정체성을 가지지도 않은 내가, 더구나 그 곳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는 내가, 단지 그 분의 진술과 유엔, 엠네스티 등의 국제 정황 보고서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생사가 달린 문제(난민 신청 최종 불허 시 신청자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를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물음표가 우리를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내 스스로가 그 난민 신청자의 입장이 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 것 같다. 끊임없이 크리스씨가 살던 곳과 종교생활 시간을 상상해 보았고, 일과 후 귀가 길을 떠올려 보았다. 개인의 서로 다른 성적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맺게 될 인간관계도 생각해 보았다.

이처럼 난민을 지원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동원하여 신청자의 박해 상황을 증명할 본국의 상황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난민의 입장에 대한 공감 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상황의 맥락과 정도는 달라도 내가 경험하는 일인 것이다. 난민들의 이야기와 주변에 뿌리 박힌 편견과 차별이 옳지 않다고 외치는 우리의 모습은 사실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모로 일치한다. 왜 우리 사회는 라는 자아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 채, 여성, 남성으로서의 역할과 모습을 강요하는가? 왜 자신의 신념으로 무기를 들 수 없어 군복무를 거부한 사람들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없는가? 이와 같이 난민들과 함께 한 시간은 우리들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 의식을 함께 확인하고 서로의 공감대를 높여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난민을 더 이상 돕는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과 우리는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함께 꿈꾸는 동반자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2.

난민인권센터는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그 중에서도 난민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이지만, 우리가 꿈꾸는 그 차별없고 평등한 세상을 우리 단체의 일상에서도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면면은 난센 홈페이지 사무국 일기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4기 인턴 원서를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 ‘사무국 일기에서 보여지는 난센 구성원들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서로를 존중하고 직급에 관계 없이 모두가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면 사무국의 토마토 오형제 이야기도, 통영 나들이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센 설립 이후 첫 번째로 난민 인정 사례가 나왔을 때, 모두가 함께 눈물 흘린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난민의 인권증진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이곳에 모인 것이며, 그 아래 모든 개인의 역량은 직급에 관계 없이 존중되는 것이다.

이러한 난센의 모습은 구성원의 서로에 대한 신뢰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만큼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는 것이다. 인턴 생활을 한지 3주만에 난민 신청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에 대한 본국 정황을 조사해야 했는데, 어쩌면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내 손안에 주어졌다는 생각에 밤을 새워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뿌듯한 순간이었고, 지금 돌이켜봐도 경험이 많지 않던 나에게 이 일을 믿고 맡겨 준 국장님의 리더십에 감사드린다. 또한 이는 내가 사회에 나가 속하게 될 공동체에서 발휘해야 할 리더십의 모범적인 한 형태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곧 인턴 협의회가 구성되고, 그 회장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될 텐데, 이 또한 난센이 인턴과 가지는 특별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난센의 인턴은 그 활동시기가 끝나더라도 꾸준히 사무국과 관계를 유지하며 자원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제는 사무국 운영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사무국에서 있었던 타미카씨 아기의 돌잔치도 3기 인턴들이 수고를 해 주었고, 해마다 열리는 난민연구 프로젝트 또한 전기수의 인턴들이 자료조사에 함께 참여를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는 많은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난센 구성원의 끈끈함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3.

한국 사회에서 난민의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들은 여럿이 있다. 난민인권센터를 비롯, 다수의 법률적 조력자들, 의료구호단체, 유엔난민기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함께 모여 한국의 난민 실정에 관해 정보를 교환하고 제도적 개선을 위해 난민네트워크회의를 갖는다.

난센 인턴 생활의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난민 보호에 관련한 진로 탐색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난민네트워크회의의 참가자들은 모두 난민 보호라는 한 목표아래 모여있지만, 협력하는 분야와 접근 방식 또한 모두 다르다. 이들과 다양하게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 나의 진로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본 것도 매우 값진 일이었다.

또한 동천의 난민 지원 교육 과정 Relate, 국제이주기구의 인신매매 포럼, 통영의 시민운동가 대회 등 다양한 외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도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사무국내의 업무 활동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외부에 다른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은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했고, 사무국 업무 내용을 발전시킬 수 있는 영감을 주기도 했다. 또한 한달에 한번씩 사무실 밖에서 한 워크샵은 난센 구성원간의 친목을 다지는 것은 물론이고, 난센의 자세에 대해 꾸준하게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쎄, 이렇게 많은 외부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워크샵을 가지는 우리의 업무 패턴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싶지만, 구글의 창의적인 생각들은 업무의 시간과 장소가 매우 자유로운데서 나온다 하지 않는가? 이처럼 난센은 업무의 영감을 사무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얻도록 지원해주는 매우 유연하고 창의적인 단체이다.

 

길지 않은 6개월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일했던 것 같다. 난민들이 전세계에서 가져온 이야기 보따리는 나를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게도 했으며, 그들의 상황을 공감하기 위해 많이 읽고, 보고, 생각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난민들을 여러 가지로 지원했다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꼭 필요하며,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개인적인 확신 또한 얻은 시간이었다. 이 열정을 마음에 가득 담고, 6개월의 시간을 내 기억의 보물상자 속에 차곡차곡 접어 넣어야겠다.


<2010년 9월 30일 통영 시민 환경 운동가 대회 - 동피랑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