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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법무부장관님께] 28. 안녕하세요, 심아정입니다.




법무부장관에게 보내는 서신


안녕하세요, 심아정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일본에서 살 때 가까운 거리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곤 했는데, 어느 날 밤에 놀러 온 친구를 배웅하면서 함께 수다를 떨며 자전거를 끌고 역으로 걸어가다가 동네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전에 몸이 안 좋아서 자전거를 끌고 낑낑댔던 귀갓길에 선뜻 나서서 도움을 주었던 안면이 있는 경찰이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일도 있고해서 몇 번 마주칠 때마다 그와 나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던 사이였기에, 그날 밤에도 저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동료와 함께였던 그의 표정은 어쩐 일인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그 경찰은 그때까지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나 봅니다. 그와 한국말을 할 이유가 없었고, 오랜 일본 생활로 한국인 특유의 억양이나 발음이 저에겐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날 밤 그는 한국말을 하며 걸어가는 저를 불러 세워놓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한국사람이었냐”, “이 자전거가 당신 소유의 것이 맞냐며 외국인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자전거 도둑으로 몰린 불쾌감이 밀려왔지만,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잠깐 나왔던 터라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저는 그들을 따라 경찰서에 가서 이런저런 납득할 수 없는 협박 비슷한 설교를 들어야 했고, 결국엔 경찰들과 함께 집에 가서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나와 보여주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몇몇 이웃들은 그 광경을 흘긋거렸고, 경찰들은 상황이 종료되었다며 돌아갔습니다.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지요.


상황은 종료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날 밤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서웠고, 화가 났고, 무엇보다도 슬펐습니다. 평소에 친절하게 저를 대해 주었던 소박한 청년의 얼굴이 한순간에 돌변한 이유가 고작 나의 국적이며, 일본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이 소름 끼쳤습니다. 외국인등록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내가 도둑이 아님이 입증된다면,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미등록자들이 언제든 도둑으로 몰릴 여지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현실을 처음으로 실감한 날이었습니다.


실제로 미등록자들을 지칭하는 프랑스어 sans-papiers를 직역하면 종이-없는이며, 이 표현은 이민/노동등록증이 없는 이주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종이한 장을 가지고 있는 지의 차이가 범법자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상황은 우리 곁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이미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 또한 국가의 안팎에서 그런 사태를 조우할 수 있다는 공포를 으로 경험한 날이었습니다. 말을 잘 알아듣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고 있었던 나조차도 경찰서에서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상황이 훨씬 좋지 않을 난민들은 오죽할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작년의 제주 예멘난민사태를 접하면서 저는 난민을 어떤 사람이나 이러저러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보다 난민화되어가는 상태혹은 사태에 주목하면서, 난민 문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사유는 국가 밖으로 내던져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 안에서도 실제로는 국가-없음의 사태를 마주하는 난민상태에 놓인 국민들을 언급할 때에도 매우 적절한 틀이 되더군요.


지난 4월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 배제는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노동권의 보장이 고용주의 의무에서 벗어나도록 방치하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법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구구절절 써내려 간 판결문을 읽고, ‘정의에 대한 법의 태만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형식상 국가의 테두리 안에 있거나 국민의 자격이 주어진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법과 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난 인간의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제가 오늘 이 편지에서 언급하는 난민들은 비단 외국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건 다름아닌 한국의 법과 제도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난민의 지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권리가 없는 사람들의 비운은 그들이 생명, 자유, 행복추구, 또는 법 앞의 평등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극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3월에 발표된 개정안은 프랑스 파스콰 법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파스콰 법안은 1993 6, 프랑스 하원이 통과시킨 이민법안으로, 외국인의 입국 및 체류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 법안은 유럽공동체(EC) 회원국의 시민을 제외한 외국, 특히 제 3세계 국민들의 프랑스 입국 및 체류증 획득에 필요한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실업 등 사회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불법 이민의 유입과 위장 결혼 등을 통한 프랑스 시민권 획득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샤를르 파스콰 내무장관이 제안한 이 이민법은 사회당 및 공산당 의원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원 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번 개악이 박상기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오명을 떨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개정안에서 간과할 수 없는 쟁점으로 저는 사전심사 대상자규정을 먼저 따져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한 사전심사입니까? 개정안에 따르면, 한국정부에 의해서 난민이 아니라고 일괄적으로 판단되는 사람들3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심사가 종료되면서도 이의를 신청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출국조치를 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개정안이 난민협약에 위배된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무엇보다 저는 법무부장관에게 어떤 책임주체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지에 대한 명료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개정안에 기재된 국가안보에 위험이 된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공질서를 이유로 하는 경우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말하는 것일까요? ‘국가공동체에 위험한 존재라니, 도대체 어떤 위험을 말하는 것입니까? 정부 당국이 규정한 국가안보가 국민들의 실질적인 안전과 안녕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판단의 근거나 기준이 명확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무슨 근거로 난민의 자격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입니까?


난민화된 사람들은 생살여탈권을 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사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범법자임을 판단하는 주체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일본에서 제가 겪었던 사건의 경우엔 동네 경찰일 수도 있고, 한국에 들어오려는 난민신청자들에겐 출입국항에서 난민심사를 하는 출입국관리일수도 있겠지요.


제가 자전거도둑으로 몰렸던 상황에서 일본 경찰들은 저의 체류자격을 묻더군요. 저의 경우와 한국에서 난민화를 겪는 사람들의 처지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습니다만, 사실 타자에 대한 상상력과 이해의 결여가 얼마나 부당한 권력을 작동시키는지 생각해 보면 두 경우를 넘나드는 공통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제송환과 무기한 구금이라는 한국정부의 법적인 조치는 사실 적법한 절차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의 출입국항과 외국인보호소는 오히려 법이 유예되는 무법(無法)/비법(非法)지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정부 당국이 양산하는 모호한 말들은 난민심사과정에서 공무원들을 초법적인 권력의 자리에 앉히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민의 안전 혹은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차별과 혐오까지 서슴지 않는 정서를 만들어 내는 가짜뉴스에 힘을 실어주는 동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무부장관이 난민법 악용을 막기 위해난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바로 그 순간의 공적 발화(發話)가 난민법과 출입국관리법의 개정안이 개악(改惡)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입법 예고를 앞둔 이 법안들이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민들이 법을 악용할 것이라는 한국 법무부의 전제는 난민에 대한 국가의 상상력과 법적 언어가 얼마나 궁핍하고 왜곡된 것인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자충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법무부는 난민이라는 용어를 기각할 구실을 찾는 데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열어주는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기 바랍니다. 강제송환과 무기한 구금의 순환을 멈추고, 배제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될 수 있는 지를 묻는 것의 중요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난민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폭로하는 존재들이 아닐까요? 그들에게 가해지는 법적, 제도적, 사회적, 정치적 폭력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얼굴이자 우리의 야만입니다!



2019년 5월 8일 

심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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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무부장관은 난민제도 '악용을 막는' 난민법 개정을 발표했고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난센은 난민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설정 없이 난민신청자들의 권리만을 제한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난민에게도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난민법의 애초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시민분들과 <법무부장관에게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약 한달간 시민분들의 편지가 법무부장관께 도착합니다. 매일매일 보내지는 편지를 난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 이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은refucenter@gmail.com으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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