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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법무부장관님께] 26. 안녕하세요, 임한주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나에서 2년을 거주하며 현지 대학을 다니다가 몇 일 전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제가 살던 가나는 서부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과는 정말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항이 없고 가장 빠른 비행편을 타고도 하루를 꼬박 날아야 합니다.

 

지리적 위치만큼이나 두 나라는 문화적 거리도 상당하다고 느끼는데

문화적 차이 중 하나를 꼽자면 모르는 사람이 지나갈 때의 시선 처리입니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면 가급적 눈길을 피하는데

가나에서는,

특히나 외국인이었던 제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강의실을 들어갈 때면 수백 개의 눈길이 소나기처럼 제게 쏟아졌고

거리를 거닐 떄면 꼬마들이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브로니! 오브로니!” 소리치곤 하였습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익숙한 그들의 반응이지만,

초창기에는 어찌나 민망하고 싫던지요.

 

오브로니. 현지어로 하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에 첫 발을 딛고 나서의 첫 몇 달은

그들이 제게 보내는 눈빛과

저를 부르는 호칭을 통해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

나는 오브로니이고 그들은 아님을 온몸으로 느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2018년이 몇 달 남지 않았을 때 즈음 저는 한 가나 친구를 만났습니다.

같은 과목을 공부하던 친구였기에 자주 보게 되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던 그 친구에게 하루는 제가 질문했습니다..

 

너는 나를 오브로니로 봐?”

나보다 내 피부색이 먼저 보이는지, 내가 이방인임을 늘 유념해두는지가 궁금하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솔직하고 간단했으며, 명료하였습니다.

그 날 그의 말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주,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인걸.”

솔직히 첫만남에는 오브로니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대화를 할수록

그저 이 아이도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한 명의 사람일 뿐임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난민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적도 없고, 난민조약이나 협약의 조항들을 꿰뚫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명확히 압니다.

 

가나인이든 오브로니든,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인권을 억압받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든 인권을 정당히 누릴 수 있는 나라에서 난 사람이든,

난민이든 비난민이든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과,

그 아이덴티티의 소유자로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권리가 주어짐을.

 

난민협약에 의하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 내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으로 인해 탄압받거나 탄압받을 가능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오랜 집을 떠나 이방인의 여정길에 오르는 것은 슬프고 힘들지만,

인권을 짓밟히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국적국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온 이들의 침해된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

이것이 난민법의 주 목적입니다. 난민법은 난민 혹은 난민신청자를 거절하고 방관할 근거를 제시하는 메뉴얼이 아닙니다.

 

이번 개정안의 방향은 어떤가요?

 

제시된 개정안이, 난민법의 근본적 취지를 따르고 있는지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디 낯선 땅에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2019 5 6

난민들이 사람답게 살길 바라는

사람 임한주 드림

 

 


 

최근 법무부장관은 난민제도 '악용을 막는' 난민법 개정을 발표했고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난센은 난민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설정 없이 난민신청자들의 권리만을 제한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난민에게도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난민법의 애초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시민분들과 <법무부장관에게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약 한달간 시민분들의 편지가 법무부장관께 도착합니다. 매일매일 보내지는 편지를 난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 이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은refucenter@gmail.com으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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