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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법무부장관님께] 22. 안녕하세요, 신지영입니다.

 

만나 뵌 적이 없는 분께 편지를 쓰려니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까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먼저 제가 난민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저는 10년 동안 일본에 살다가 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한국에 온 제가 처음 경험한 사건이 예멘 난민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반응들이었습니다.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저에게는 다른 측면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 온 난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서 겪는 고통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저는 그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보호가 주어지는 유학생이었음에도 10년간 외국에 사는 것은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이란 무엇일까, 그 사회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방인이라고 불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방인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 저 밖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그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한국 속의 이방인이 있음을 그들이 ‘우리’의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난민에 대한 기사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그분들이 이미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난민분들의 차이는 너무나 크지만, 저의 경험이 그분들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나 활동단체의 설명이나 그분들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로힝야 사람들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이 유일한 저항인 사람들”이라고 한 국제 인권 변호사님의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난민들이 한국에 들어온 사유는 매우 다양합니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존재하는 것이 유일한 저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들이 살아갈 장소를 찾는 것이 다시금 유일한 저항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녕, 한국!>>이란 난민 에세이집을 보면 왜 한국으로 왔냐는 질문에 한 난민분은 이렇게 답합니다. 만약 당신 발밑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어느 창문으로 나갈지 고민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살기 위해 보이는 창문으로 몸을 던져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소수민족이거나 여성이나 성소수자이거나 독재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그것을 피해 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고통스럽고 아슬아슬한 그 순간들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도망쳐 온 그 순간들보다 한국에 도착한 뒤에 겪은 고통이 더 크다고 하여, 저는 다시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길지만 조금 더 써 볼게요. 세계인권선언 14조에 따르면 난민신청을 위한 정보제공은 기본권인데도 난민신청을 위한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제대로 난민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기까지 몇년씩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난민신청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됩니다. 난민신청서를 작성하면 G-1 비자를 받는데 이후 6개월간 취업금지이기 때문에 불법취업을 할 수밖에 없고 불법취업이 알려지면 강제송환 당하므로 일자리에서 온갖 착취와 인종차별을 겪게 됩니다. 난민심사에서는 통역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3~4시간 고압적인 태도와 인권침해를 받습니다. 대다수는 난민인정을 받지 못하고 인도적 체류자격을 받는데, ‘인도’라는 말이 붙어 있음에도 의료보장, 취업이 보장되지 않으며 가족이 함께 살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난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기 위해서 법을 어기거나, 법을 지키면서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난민심사는 난민인정을 부정하기 위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것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절차처럼 느껴진다고. 마치 한국 정부가 난민신청을 한 죄로 자신들을 벌주고 있는 것 같다고.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2%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저에게 한국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처럼 현재의 난민법과 그것의 시행절차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난민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이번 난민법 개정안으로 “난민 심사의 벽은 높아지고, 강제송환은 더욱 손쉬워지며, 난민신청자들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축소”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난민법 개정안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난민법의 존재의의를 난민법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난민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짚어 놓은 난민인권센터의 해석을 읽어보니, 첫째로 사전심사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난민인정을 받기 위한 신청기회마저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합니다. 둘째로 “국가안보에 위험이 된다고 인정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대한 범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되고 국가공동체에 위험한 존재가 되는 사람,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를 이유로 하는 경우 강제송환”한다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는데, 이 기준들은 모호하여 오용될 소지가 크다고 합니다. 셋째로, 난민신청 접수 장소와 절차는 제한적이 되었고, 심사절차의 핵심요소인 통번역을 민간에게 위탁을 준다는 조항이 삽입되는 등, 난민들이 난민인정신청을 하기조차 더욱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보호가 꼭 필요한 난민들이 정당한 심사를 받지 못해 강제송환을 당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은 더욱 고통스러워질까 걱정이 됩니다. 그들이 한국에서 ‘생존’하는 일이 그들의 유일한 저항이 될까 두렵습니다. 바로 옆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법에 문외한입니다만, 법무부 장관님께 드리는 편지인 만큼 법이 어떤 효과를 지니는지 열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 난민법 개정안이 지닐 효과에 대해서도요. 그리고 법은 사회에서 무너져서는 안 되는 기본적 윤리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난민법 남용을 막는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 및 인정절차의 벽을 더욱 높이고 강제송환을 더 용이하게 만든다면, ‘이 사회에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확산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함께 사는 누군가를 ‘이상한 존재’로 간주해도 된다, 추방해도 되는 존재가 있다, 살아갈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법의 이름으로 용인될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시적으로 난민의 유입에 따른 ‘시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는 공동체 중 가장 약한 사람을 낙인을 찍어 배제하는 경향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낙인찍힌 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더 약한 사람에게 소수자라는 낙인을 찍어 배제하고 그 낙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난민뿐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나 혐오범죄로 확산되고, 불안과 경쟁과 배제가 사람들 마음속 겹겹이 ‘심사제도’라는 벽을 만들게 될까 두렵습니다.

 

   일본에 있는 동안, 저는 매년 비자를 갱신하러 입국관리소를 찾았습니다. 일본에 있을 자격을 심사하는 그곳은 신청자를 감시와 판단의 대상으로 만들기에 누구에게도 편안하지 않은 곳입니다. 저보다 훨씬 먼저 일본에 왔던 언니들과 비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에는 아시아계 여성이 비자를 신청하면 일본에서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보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민족, 계급, 성을 이유로 차별당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함께, 깊은 슬픔이 느껴집니다. 수많은 아시아의 이방인이나 난민 여성들이 일본 사회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담당하거나 성착취를 당했던 경험이 현재를 살아가는 그녀들의 말로 되살아나는 것 같으니까요.

 

   이처럼 난민의 고통은 난민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회의 가장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난민들은 난민 인정을 받는 게 너무나 어려울 뿐 아니라, 인정을 받은 뒤에도 여성차별, 성소수자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난민인정절차 및 심사를 국제의 인도적 기본권이 지켜지도록 개선하는 동시에, 난민이 인정된 뒤에도 여성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성소수자이거나 다른 인종이라고 억압과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방법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한국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도, 매일매일 ‘우리’가 일터와 삶의 장소에 겪는 경쟁, 배제, 따돌림과 같은 관계의 고통도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10년간 있을 때, 저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일본 속 이방인이었던 재일조선인이나 아시아 유민들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억압과 폭력을 받았지만, 그 속에서도 누구든 어디서든 억압과 폭력 없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소박한 윤리를 끊임없이 이끌어 냈습니다. ‘한국인’ 또한 숱한 난민의 역사를 갖고 있지요. 식민지 지배 속 강제동원 강제연행, 1945년 이후 전재민의 힘겨운 이동, 한국전쟁의 피난민, 독재정권 하 민주화 및 노동운동 속 정치적 망명자들... 그리고 이제 ‘우리’ 난민의 경험을 변화시켜온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또 다른 ‘난민들’이 있습니다. ‘우리’와 닮은 그들 말입니다. 이곳의 미래를 난민과 함께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애도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과 만나듯 타자들 만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집트의 독재를 피해서 온 한 난민분은 자신은 “한국에서 ‘자유’ 속에 살고 있으며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기를 꿈꿀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분과 함께 한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요? 난민이며, 난민이었고, 난민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현재의 난민법 개정안을 재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생존이 유일한 저항이 되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유일한 저항이 되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추방당해도 되는 존재가 있다’라는 생각이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높디높은 낙인의 벽을 세우지 않을 수 있도록, 난민법의 새로운 내용과 실행을 고민해 주십사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낯선 사람이 보내는 길고 긴 편지를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높고 바람이 따뜻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2019년 5월 4일

신지영 드림

 

 


 

최근 법무부장관은 난민제도 '악용을 막는' 난민법 개정을 발표했고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난센은 난민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설정 없이 난민신청자들의 권리만을 제한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난민에게도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난민법의 애초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시민분들과 <법무부장관에게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약 한달간 시민분들의 편지가 법무부장관께 도착합니다. 매일매일 보내지는 편지를 난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 이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은refucenter@gmail.com으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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