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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법무부장관님께] 20. 안녕하세요, 최수근입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최수근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009년 5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이제 10년이 갓 넘었지요. 그동안 약 80개국의 학생들을 1000명 정도 만나왔습니다.

 

제 첫 학생들은 네 명의 버마 난민이었습니다. 그들은 버마의 군부 독재에 맞서다가 위협을 느껴 망명을 선택했습니다. 1988년 8월 8일 버마의 양곤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반군부 평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결국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시위에 앞장섰던 젊은이들이 20년이 지난 후에 저와 만났습니다.

이 분들이 버마에서 공부했던 것들은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공장에 들어가 몸으로 부딪히면서 일하고 한국어를 익혔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의사표현에도 어려움이 없던 이분들이 굳이 한국어 교실에 오신 것은 입에 밴 발음 오류를 바로잡기위해서, 그리고 일상 회화가 아니라 격실을 갖춘 문장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위엄 있게 발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풋내기 교사였던 저는 이 분들과 보낸 시간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진지하게 공부하는 와중에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으셨고, 조카뻘에 교사 경력도 없는 저는 깍듯하게 대우해주셨습니다. 다정한 한국인들도 있었지만 온몸으로 차별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투쟁해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망명을 오시던 날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하였을까요.

 

어느 날 제가 '왜 한국을 선택하셨나요?' 하고 묻자 이분들은 '김대중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답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한국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이분들은 여전히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이분들이 한국에서 하신 일을 인정투쟁으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분들은 매주 버마 대사관에 가서 민주화를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고, 한국시민사회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을 만나서 버마의 이야기를 전하고, 한국의 동화책을 버마어로 번역하고, 민주화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버마 청년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을 꿈을 품기도 했습니다.

 

저와 같이 공부했던 마웅저 선생님은 드디어 2008년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이분은 십수년의 노력으로 얻어낸 난민지위를 반납하고 버마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난민지위를 얻는 것이 그리 대단한 특권을 준다면 어째서 그렇게 툴툴 털고 떠났을까요. 난민인정을 받은 후로 이분은 버마 어린이들을 위한 시민단체를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교육에서 희망을 찾으신 거지요. 그리고 버마로 돌아가서 할 일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마웅저 선생님의 '따비에'는 여러사람의 힘을 모아 버마에서 도서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저는 언어의 벽에 막혀서 자기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 '난민'이라고 한데 묶여 불리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일입니다. 저는 그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버마 난민 선생님들과의 마지막 수업에서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었을 때 한분은 저를 포옹하시면서 "최 선생님 끝까지 저희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셔서 고마워요" 하며 웃으셨습니다. 저는 이 다정한 말씀과 따뜻한 온기로 난민 선생님들을 추억합니다.

 

2019년 4월 30일
최수근 드림

 


최근 법무부장관은 난민제도 '악용을 막는' 난민법 개정을 발표했고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난센은 난민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설정 없이 난민신청자들의 권리만을 제한하는 법무부의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난민에게도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난민법의 애초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시민분들과 <법무부장관에게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약 한달간 시민분들의 편지가 법무부장관께 도착합니다. 매일매일 보내지는 편지를 난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공유합니다. 이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은refucenter@gmail.com으로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