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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상식 그리고 상심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토론토에 있는 한 난민단체에서 면접을 보는데 7장정도 되는 지원 서류를 미리 작성해 가야했다. 그 마지막 페이지는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는 5단계 질문지였다.
그 중 하나가 상식(common sense)이라는 항목이 있었고 나는 그때 최하로 표시했었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이 이랬었다.
"왜 상식을 최하로 표기 했나요?”
“캐나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캐나다 사회 전반에 대해 아는 게 부족해 상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거라 생각하는데요?"
"한국에선 시민운동을 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경험과 지식도 많고 직업 상 책과 신문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를 접하기 때문에 비교적 상식이 풍부한 편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되물었다.
"만약 눈오는 추운 겨울날 얇은 스웨터만 입은 여성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당연히 그 여성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몸을 녹이고 쉬도록 할 겁니다”
“그럼 당신은 상식이 있는 겁니다. 우린 이런 것을 상식이라고 하거든요”


시험과목인 일반상식(a general knowledge)과 상식(common sense)을 착각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나는 그 난민단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 경험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었다.


내가 지금 난센에 몸담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이론에 입각한 게 아니라 그 상식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난민을 비롯한 모든 인권의 보장은 상식에 충실한 사회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도 지난 몇 일전 나는 상식을 저버린 행동을 하고 말았다.
남편은 화성외국인 보호소에 있고, 이제 13개월 된 딸아이를 둔 난민신청자 여성이 찾아왔었다. 딸을 안고서.
남편이 화성에 있어 당장 먹을 식량도, 추운 겨울에 입을 옷도, 난방도, 거주할 집 등 총체적으로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난센의 여건상 해결할 방법이 없다.


난센의 긴급구호 해결 방법은 이렇다.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개인 신용카드를 긁는다. 갚아나가는 것은 나중일이다. 만약 카드를 긁기 전에 생각이 복잡해지면 아무 일도 못한다. 단순 무식해질수록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다.
아예 중한 병이 걸리면 무료로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여 데려갈 수도 있다. 비용이 발생하면 항상 하던 방식대로,,,,,,,.
하지만 방값이 보통은 6개월, 9개월 밀려있고, 난방비도 없고 이런 경우 일, 이백 만원으로도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또 이런  대상자가 한 두 명도 아닌데 이걸 해결할만한 긴급구호기금이 없는 것이었다. 기금이 있다 해도 현금 지급이 과연 옳은 방식인지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여기에 일반회계도 재정이 충분하지 못하여 이마저 개인 신용카드로 해결하다보니 카드 한도가 거의 차버린 상태다. 때문에 이렇게 현금 지원이 필요한 경우는 자금 사정도, 지급 방식도 모호하여 진짜 속수무책이다.


일단 돌려보내고 삼일 후 오라고 했는데 오지 않았다. 얼마 전 눈이 펑펑 오던 그 날 이었다. 지금까지 견지해온 상식을 파괴해버려서일까, 도무지 맘이 편치 않았다. 난센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난센의 고객(?)인 난민들에게 설득될 문제가 아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난민들에게 난센의 한계점은 곧 난민들의 생존 한계선일 수 있다. 이런 생각이 과대망상이 아니라는 게 불행이다.


이 일을 계기로 개인이 생각하는 가치의 문제를 넘어 난민인권센터가 존립해야 할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까지 이르렀었다.


다행히 며칠 후 아기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너무 반가웠다. 여전히 해결할 방법은 없었지만,,,,,,,,.


마침 시사IN 에서 난민관련 취재를 왔다가 이 여성을 인터뷰 했고 그 기사가 실렸다.
상식이 풍부한 분들이 이 기사를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센이 상식을 지탱시킬 힘을 둠뿍 둠뿍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아주 간절하다.


긴급구호기금: 국민은행 233001-04-225116 (예금주:난민인권센터)


나는 일단 신용카드 하나를 더 만들어야 겠다


기사 바로가기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