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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난센 활동 후기: 모조, 편

[모요셉]

난민에 대한 정보를 난센 홈페이지와 난민촌장 블로그를 통해서 오래전부터 접하고는 있었지만, 제가 직접 난민을 만나고 할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우연히 난센 홈페이지에서 인턴 모집 공고글을 보고서 지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 홈페이지 포스팅을 보다가 난민이 와서 점심을 해서 같이 먹는 사진을 보고, 그 모습이 그냥 좋아 보여서, 그래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법률 지원이나 자립 지원 같은 문구보다는 그 사진을 보고,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그럴 수 있었습니다.


난센에서 활동가 교육을 받고, 첫 난민 상담을 거치면서 그렇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첫 상담이 기억이 나요, 엄청나게 생생하지는 않지만. 이집트 국적 난민 신청자였는데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어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인천공항에 있던 것을 어찌어찌해서 국장님과 연락이 닿았는지 국장님이 난센에 방문해보라고 해서 왔던 사람이었죠. 국장님은 자세한 사정은 모른 채 공항에 있으니까 일단 난센에 오라고 했던 것이었고, 그 사람은 더 이상 한국에서 살 수 없어서 비행기표도 없으면서 무작정 공항으로 갔던 어찌보면 철없는 젊은 이집트 청년이었어요.


사무실에 오래서 왔는데, 알고보니 난센에서 그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청년은 숙소를 원했지만 난센은 숙소를 제공하지 않고, 끼니를 해결해 달라고 했지만 점심은 같이 먹을 수 있어도 매끼니를 난센에 해결해 줄 수는 없었지요. 난민신청을 이미 했기 때문에 난센이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뭔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할 수 있는 말은 “일을 구해라. 너는 젊다.” 뭐 이런 말이 다였어요. 그랬더니 그 청년은 화를 내면서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일을 구걸하고 친구에게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자신의 삶에 분노했던 모습이 기억이 나요.


많이 당황했었죠, 물론. 이건 내가 교육받은 내용에는 없었으니까. 난민신청 과정에서 어떻게 우리가 무엇을 지원할 수 있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청년이 자신이 겪는 일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일종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옆에서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지는 교육받지 않았으니까요. 메뉴얼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유아 영. 프랜드. 유 캔 두잇.”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난센 활동이 끝나고 인턴 후기를 쓰는 이 시간, 그 청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인턴 후기를 쓰자니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배웠고, 무엇이 좋았는지, 이런 것을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이 이집트 청년과 비슷한 상황 밖에 생각이 안 나요. 사는 것을 힘들어하던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들의 이야기요. 더 뭐라고 써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만 총총.




[편세정] 

 난민, 인권, 그리고 나


‘난민, 인권, 그리고 나’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나서 난센에 첫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1. 장래희망에 대하여, 2. 인권을 생각해 본 경험, 3. 왜 난민인가]라는 소제목으로 저의 생각을 정리했었는데요. 5개월 반의 활동을 마치며,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드리려 합니다. 난센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관련된 것을 나누겠습니다.


1. 장래희망에 대하여


난센에서 제일 크게 얻은 거라면, 활동가들과의 교류라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 또래의 인권활동가를 처음 보고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인권활동가도 그냥 다 비슷하더라고요. (뭔가 특별할 줄 알았더니만) 제 또래 아니어도(사무국장)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난센에서 ODA 청년인턴으로 있으면서 호주 난민 트라우마 재활기관에도 갈 수 있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도 호주 사람이라는 거 외에는 뭐 비슷했습니다. (아 거기서는 신기했던 것이 하나 있네요. 활동가들의 근속연수가 10년 넘는 건 보통이고 20년 넘는 사람도 심심찮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장래희망에 인권활동가의 정체성을 조금 섞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활동가라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특별한 게 있긴 있었네요. 이 사람들과 짧게 일하면서 가끔 재미있었던 것이 특별했습니다.)


2. 인권을 생각해 본 경험


소를 제기하면, 누구든지 항소, 상고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며 새삼스럽게 인권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난민인권센터의 클라이언트 중에, 정말 난민이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요. 그런 경우에 난센은 조력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지만, 그래도 클라이언트에게 난민 신청의 전 과정을 첫 방문 시에 설명 드리니까, 3심 제도를 설명 드리게 됩니다. 난민 인정 과정의 조력을 7년 이상 전문적으로 이어온 난센이 보기에 전혀 난민 사유가 아닌 것으로도, 절차적으로 대법원까지 갈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신청인의 권리인 것을 보면서, 이것이 인권이구나 새삼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인권은 타당한 경우에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 때에나 사람이면 누려야 한다고 인정되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선하고, 악하고, 개쓰레기이고, 치사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우리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인정이 인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왜 난민인가


 얼마 전에 밤 한 시가 다 되어서 지하철 역 근처 24시간 하는 김밥집에 갔습니다. 그 시간에도 5분이 안 걸려서 김밥이 뚝딱 나왔습니다. 24시간 영업이면 몇 교대냐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 하시는지 물었더니, 김밥 싸는 분이 12시간 교대라고 하셨습니다.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 상관없이) 한 달에 4일 쉰다고 했습니다. 제가 좀 놀라는 눈치이자, 식당 일이 다 그렇다고 했습니다.

  살기 쉬운 세상이 아니라고 하고, 우리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도(혹은 가지고 있어서? 헬조선은 지옥비하발언?)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사랑하고, 먹고, 삶의 소소한 행복과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면서, 이웃들과 고향에서 삶을 같이 하고 이런 것들이 테레비에나 나오는 아득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 난민이 한국에서 체류 자격을 얻는 것이, 삶의 최소한의 안정적인 환경을 법으로 보장받는 것이, 난민의 인권이 왜 중요한지 묻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바는 이렇습니다. 김밥집 직원의 건강한 근무 환경을 팽개치고 난민신청자의 신청 과정에 조력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못 사는 사람 많은데 그거 팽개치고 난민 돕는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김밥집 직원과, 병이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혼자 사는 사람들,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과, 군대에서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이민 2세대로 정체성의 혼란과 태생적인 고민을 겪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가족과, 저 자신, 이 모두의 행복과 안위와 건강한 삶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 활동에 함께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바라고 있어서,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에는 다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난민인권 옹호 활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2015년 가을 현충원에서 10월 월례회 때 찍은 사진. 약간씩들 어정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