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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인턴후기] 다름의 공존이 만드는 아름다운 변화 (이나경)

 

매일 아침 8 50분이 되면 나는 남구로 역 4번 출구 옆 골목길로 들어가 40도 경사 길을 터덜터덜 내려가곤 했다

그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흰색 난센 사무실이 보인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와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그 곳

지각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옮기면서 매일 오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사무실에 들어 갔던 기억이 난다.

 

기대감사람에게 주고 사람으로부터 받는 감정이다

내가 난센에 오게 된 이유도 어떤 큰 포부를 가지고 난민들을 도와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어떠한 동질감으로부터 나온 것 같다.

 

12살 때 나는 피부색,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다르던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 남으려고 했던 어린 기억이 남아 있다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대한 동화되려고 발버둥치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 시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에게도 그 모습이 보였다

그 동질감이 반가웠다기 보다는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들과 박해 당하게 한 그 신념들은 그 사람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과거가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지닐지라도 굴복하지 않고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대담함과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정해놓은 잣대와 시선으로 인해 그들을 빛나게 하던 그 신념이 무뎌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닌데 말이다.

 

동성애가 불법인 본국에서 조차 자신의 성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까지 온 한 분이 이런 고백을 했다

한국에 온 이후로 나도 내가 누구인지 이젠 모르겠다.”

그 말이 아직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난센이 난민들이 자기 모습을 숨기지 않고, 본인 모습 그대로 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그런 곳으로 만들어 줬으면 한다.


사람이 밖에서는 가면을 쓰고 살아도 집에 오면 허물을 벗고 가장 편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처럼

집 떠나 한국에 온 그들에게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덧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나는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와

개강에 들떠있는 청년들 사이에서 도서관 컴퓨터를 붙잡고 지난 6개월을 회상해보려고 했다

난센에서의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저 꿈으로 끝날 까봐 두렵기도 하다

내 인턴 생활이 끝났다고 해서 난민들의 고민들도 끝난 것은 절대로 아니지 않은가.



오늘 학교에서 한 친구가 연애를 할 때는 온 마음 다해 주고 아낌없이  대해야지 이별 후에도 후회가 없다는 얘기를 했다.

어디선가 자주 듣던 얘긴데 오늘은 문득 어쩌면 더이상 만나지 못할 얼굴들이 떠올랐다.

6개월동안 나는 난센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아낌없이 대했는가, 

후회없이 사랑했는가 


사실 미련도 남고 후회도 많이 남는다.

하지만 함께 일했던 활동가들이 부족했던 내 마음을 채워주었던 것 같아

고맙고 고맙다.


모든 내기에서 꼴지를 하지만 항상 진심으로 대해주고 진심이 뭔지 느끼게 해준 은지씨

숟가락을 매일 떨어뜨리고 동문서답을 하지만 뒤돌아보니 항상 옆에 있어줬던 니콜언니

부엉이 흉내를 내고 가끔 이상한 춤을 추지만 묵묵히 궂은 일 다 해주고 많이 웃게 해준 준씨

유머가 싱겁지만 야근할 때 몰래 저녁으로 감자탕을 사와서 따뜻한 감동을 주신 국장님




각자가 자신만이 가진 빛으로 서로를 비춰주고 채워줘서

한숨보다는 웃음으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고

그 빛이 달랐기 때문에 매일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자극과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다름의 공존이 앞으로 더 아름다운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을 기대해며.


-10기 인턴 이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