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점들의 이야기 축제'가 개최되었니다!! :-) 

그동안 난센의 소식이 많이 궁금하셨죠~?  난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난민주간을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저희의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쁘네요.



자 그럼 <점들의 이야기 축제, 그리고 난센>의 모습을 여러분께 보여드릴게요~!


('점들의 이야기 축제'의 전반적인 리뷰는 [2013난민주간_현장스케치]'점들의 이야기 축제' 그 축제의 현장을 전해드립니다!  http://nancen.org/1026 에서 확인해주세요.)

 






활동가들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시나요? 

'점들의 이야기 축제'는 끊임없는 회의를 통해 준비되었답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난민주간을 준비하는 난센의 모습을 살짝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시작된 '점들의 이야기 축제'!

'점들의 이야기 축제'에서 난센은 전체 진행, 시민기자단 관리, 회계, 난민 따라걷기, 포토보이스 존 등을 담당했답니다.







고은지 활동가의 손길이 담긴 예쁜 브로슈어입니다 :-)









'난민 따라걷기'에서 시민분들은 난민을 형상화한 공을 굴리며 난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위에 적힌 10가지사연 중 한가지를 선택해 들을 수 있었답니다.





   




공을 보고 무작정 좋아하는 아이들에서부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시민분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함께 했던 '난민따라걷기'!

뜨거운 햇볕아래서 최선을 다해주시던 자원봉사자와 스텝들의 노력으로 인해

난민들의 이야기가 많은 시민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토보이스 존에서는

 2011년 난센에서 진행했던 포토보이스 프로젝트에서 찍었던 사진과 편지를 전시했습니다



  


   


  




포토보이스 존에서는 난민들이 보내는 메세지를 읽을 뿐만 아니라, 난민들에게 메세지를 남기는 시간도 가졌는데요.

많은 시민분들이 진심을 담은 메세지를 남겨주셨고, 몇몇의 메세지는 저희의 마음을 짠하게 하기도 했답니다.





포토보이스가 끝나고~ 옛 얼굴들과 다함께 찰칵!


(포토보이스존을 진행하는 동안 2011년에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던 김지하선생님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던 지하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 번 감사를 표합니다. ㅜ_ㅜ)





자 그럼 이 외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현장을 뛰어다녔던 난센의 모습을 공개합니다!


              



다들 예쁘죠..?




이번 '점들의 이야기 축제'를 통해 난민지원네트워크에서는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를 했었는데요,

많은 단체들과 자원봉사자들께서 도움을 주셨고,

 많은 시민분들께서 참여해주신 덕분에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었답니다.


아직도 시민 여러분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시민분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 '난민주간'은 끝나지 않았어요~!

이번 주 목요일(20일) 6시반 시민청에서 '토크콘서트'가 진행됩니다!!


난센에서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셨던 김지하, 김승균 선생님께서도 이야기를 전해주신다는 반가운 소식!! ^^


그럼 모두 목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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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점들의 이야기 축제'가 개최되었습니다!!

많은 시민들분들이 함께 한 그 축제의 현장을 여러분께도 전해드릴게요!

  








상시프로그램으로는 공예품전시존, 맛보기존, 보이스존, 체험존, 전시존, 이야기존이 설치되어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공예품 전시존

공예품 전시존 에서는 이주여성의 수공예품과  버마난민이 만든 장신구, 메솟 난민촌 사진 전시되었습니다. 또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머인의 그림, 공예품, 전통의상, 그리고 티베트 난민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이 전시되었습니다.

 

 

   




2.맛보기존

 맛보기존에서는 난민문화의 음식을 체험하고 휴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3.보이스존

보이스존에서는 한국거주 난민이 자신과 한국인에게 보내는 포토 편지가 전시되었습니다. 또 ‘난민은 [ ]다’ 인증샷과 메시지 종이로 모자이크 이미지를 함께 완성하는 파도타기와 난민에게 영상메세지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4.체험존

 체험존에서는 버마의 전통놀이와 나눔교육,  난민 이야기를 듣고 함께 그림을 완성시키기,  아프리카 문양의 도장으로 탁자보, 엽서등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6.전시존

전시존에서는 한국속의 난민과 난민법의 오해와 진실에 대한 자료, 그리고 시리아 난민사진이 전시되었습니다. 

  



 7.이야기존

이야기존에서는  난민과 난민의 인생을 상징하는 구를 굴리며,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 프로그램

3시와 5시에는 댄스플레이 집단 <무브먼트 당당>이 난민의 소외와 한국사회의 환영을 표현하는 플래시몹을 연출했습니다. 이외에도 점들의 이야기 축제에서는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는데요.  난민주간의 취지에 공감하는 <라퍼커션>, <칸 패밀리>, <지구인뮤직밴드>와 같은 밴드들도 광화문광장 축제에 참여하여 환영과 공감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점들의 이야기 축제> 

축제의 분위기가 여러분께도 느껴지시나요?!! ^^

오지 못하셨던 분들.. 많이 아쉬우실텐데요....ㅜ.ㅜ


걱정 마세요~ 아직 난민 주간은 끝나지 않았답니다~!^0^

이번주 목요일(20일) 저녁 6시 30분 시민청에서 열릴 토크콘서트에도 많이많이 참여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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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6월의 달력을 펼치고, 

몇 번의 공휴일이 있나 세어보며 혹시 '세계 난민의 날'이라는 문구를 스친 적이 있으신가요?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름이기도, 또 누군가에게는 조금은 익숙할 수도 있는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과 한국에서 처음으로 맞게 되는 '난민주간'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  세계 난민의 날, 어떻게 생기게 되었나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0년,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세상이 들썩이게 됩니다.  바로 국제연합(UN)이 유엔총회특별 결의안을 통해 세계 난민의 날이라는 아주 특별한 날을 지정했기 때문이죠.



 원래 6월 20일은 아프리카통일기구(OAU)가 1975년부터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여 오던 날이었는데, 더 많은 나라와 세계 시민들을 세상의 난민에 대한 관심과 보호에 동참시키기 위해 '세계 난민의 날'로 확장시켰다고 합니다.





· 세계 곳곳에서는 어떻게 난민의 날을 기념하고 있나요? 




                                  World Refugee Day event in Rabat 



  세계 난민의 날 또는 난민주간은 오래 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기념해 왔습니다.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공화국,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국가에서는 유럽난민네트워크와 인권단체(UNITED)가 기념하는 국제 난민의 날 (International Refugee Day) 행사를 매년 6월 16일에 치르고 있고, 에티오피아, 케냐, 모잠비크, 수단,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1974년 발효된 아프리카통일기구(OAU) 난민협약의 기념일인 6월 20일을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해 오고 있었습니다.





                     


                                                                                                                              - 영국의 'simple act 캠페인' 광고





· 한국, 난민주간을 시작하다.

  우리나라는 여러 시민 단체와 국제 기구 등이 각각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해 오다가, 올해 처음으로 6월 15일부터 21일까지 난민주간으로서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난민주간은 현재 호주(1986년), 영국(1998년), 캐나다 등의 나라에서도 다양하게 기념되고 있는데요~ 한국은 ‘난민, 우리 곁에 있습니다. (Refugees: One of Us)’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문화행사, 교육, 예술 활동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 2013 난민주간이 전하는 메세지 





 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혹은 정치적 의견이나 종교, 인종, 민족,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해 고향에서 쫓기듯 떠나온 사람들. 생명의 안전과 자유를 찾아 떠나온 난민들에게 한국은 새로운 고향, 희망의 땅일까요?


 난민주간의 로고에 있는 각각의 ‘점(dot)’이 서로 다른 개인, 공동체, 문화, 믿음을 상징하고, 점들이 모여 전체적으로 원의 모양을 띠고 있는 것이 개인들이 서로 옆에 존재하며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것을 의미하듯이 한국의 난민과 시민도 함께 조화로이 잘 어우러져 살아 갈 수 있는 것일까요?









· 난민,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여러분이 보내주실 뜨거운 관심과 성원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6월 15일부터 21일까지 장장 7일 간의 여정 속에서 펼쳐질 다양한 프로그램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1. 점들의 이야기 축제



: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펼쳐질 <점들의 이야기 축제>는 난민을 상징하는 다양한 공의 이야기와 함께 광장을 휘저으며 참여하는 여러분의 눈, 코, 귀가 즐거운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바다 건너 먼 길을 찾아온 난민의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음식과, 춤 그리고 음악, 놀이와 체험 프로그램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난민을 부르는 인증샷 파도타기


 

: <난민을 부르는 인증샷 파도타기>는 우리 사회에 잊혀졌던 이름 중 하나인 난민의 존재를 우리 스스로의 언어로 명명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들의 존재를 지각하고, 시민과 난민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를 갖고자 온오프라인 상으로 진행되는 캠페인입니다.

: 캠페인 참여 하러가기!



3. 동심으로 그리는 난민과 나의 이야기



: <동심으로 그리는 난민과 나의 이야기> 프로그램은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한국 어린이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난민과 시민활동가, 또는 교사가 난민의 이야기를 한국 어린이들에게 들려준 후 함께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소외와 이웃, 그리고 나눔에 대해 어린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은 광화문 광장과 토크콘서트장에 전시되어 시민들에게 평화와 나눔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4. 특별 토크 콘서트 <자유를 향한 용기_난민들의 이야기와 노래>



특별 토크 콘서트 <자유를 향한 용기_난민들의 이야기와 노래>는 난민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깊게 하고, 이들이 결코 불쌍하거나 짐스러운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두려운 순간에 가장 용기를 낸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준비되었습니다. 이야기와 노래, 공연이 선사하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난민의 삶을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난민주간, 여러분과 꼭 함께 하고 싶어요!

난민주간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구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난민주간 공식 블로그: http://korearefugeeweek.tistory.com/
난민주간 공식 트위터: https://twitter.com/refugeeweek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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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이유민, 정빛나



‘세 점’의 대화는 ‘점,’ ‘방,’ 그리고 ‘난민’을 넘어 다 같이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최작가님과 계속 동행하며 들을 수 있었던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여행’의 이야기를 저희 ‘두 점’이 2부에서도 계속해 전해드립니다.


Q: 작가님의 대한 간단한 소개 글을 읽어보니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고자 노력하고 계신다고 되어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하고자 하시나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은 그간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 혹은 필드에서 일하면서 했던 작업 방식과는 사뭇 달라요. 기존의 다른 건축가분들은 오히려 제 시도에 대해 의아해하시기도 하지만 오히려 순수한 마음의 젊은 학생층에게 응원과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작품 중에 ‘Same but different room (같지만 다른 방)’이란 게 있는데원을 그릴 때 자의 테두리를 따라서 그리면 중심점 없이 형태만 그릴 수 있습니다. 건축할 때는 형태를 중점으로 그냥 보기 좋게 만들 수도 있지만그런 경우에는 건물이 만들어지더라도 어떠한 사람들이 그 안에 살지어떠한 삶을 살지에 대한 고찰은 하지 않게 되니까요‘점’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건축 문화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 본 겁니다.

제가 드로잉을 하면서 쓴 도구는 컴퍼스입니다. 컴퍼스 같은 경우는 점을 찍고서 돌려야만 원의 형태가 나오잖아요. 컴퍼스를 쓰고 나면 희미하게나마 점이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점’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갖고 공간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작업은 공간적인 형태로 바로 형상화되는 것은 아니지만그 이전 단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또 사회적인 맥락에서는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생각할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Q: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 사람들에게 계속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신가요?

[제 작품 작업 방식 중] ‘30분 드로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작업 내용은] 사회적인 방이 될 수도 있고 개인적인 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와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이 자신이 사는 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데, 이 방은 과거의 것일 수도 있고, 현재 사는 곳일 수도 있고, 혹은 미래에 그 사람이 살고 싶어하는, 그런 희망 사항과 꿈이 있는 방일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상상합니다. 잠시 친구처럼 그 방으로의 동행을 함께하면서 그 사람의 방으로 여행을 갑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흠뻑 젖어서... 완벽하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그 방의 느낌을 공간적이나 추상적으로 제 안에서 최대한 정리를 해 가면서, 그 분과 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드로잉 작업을 합니다. 혼자서 작업실에서 일한 뒤에 완성품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마주 앉은 상태에서 제 손과 연필을 빌려서 상대방과 친구처럼 ‘같이 그리는’ 그림이 되는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이나 행위 자체가 제게는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함께 작업했던 한 친구는 ‘올리브의 방’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인데, 그 친구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꿈이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저와의 대화를 통해  끄집어내고,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어요. 제가 ‘리드를 하거나 깨우침을 주겠다’는 자세는 아니고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30분 드로잉의] 모티브가 되었던 영화는 2000년도에 나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영문제목 Pay It Forward)> 입니다. 영화를 보면 한 소년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 가지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데요. 그 소년이 하는 작은 일들과 노력이 주변 인물들을 한 사람씩 변화시켰던것처럼... 비유하자면 도미노들이 순차적으로 영향을 주듯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도와서 나비효과를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30분 드로잉이 저 스스로에게도 부분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 다른 작업에도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방의 관계도_30분 드로잉, 칠판위에 분필

출처: 테이크아웃드로잉


이러한 것을 표현한 작품이 있는데, ‘방의 관계도’라는 작품입니다. 칠판에 그린 작품인데요,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던 방들 하나하나가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읽힐 수 있도록 연결해 본 작품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작은 시작이고 [실패나 성공 여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개인의 소소한 몸부림일 수도 있지만 다른 개인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통해 다른 메세지를 보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건축이라는 분야에 특별히 예술을 결합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건물의 형태 등을 통해 더 세련되고 멋있는 연출을 하신 다른 건축가분들이 많이 계셔서 저 자신에 대해 감히 예술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건축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할 수 있었던 건 ‘소통에 대한 고민’에 관한 것이 제 작업 방식의 바탕으로 작용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새로운 건축가들에게 있어 ‘사람들과 건축적, 혹은 공간적인 모습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답을 찾기에 쉽지 않은 부분이고, 보여 드릴 수 있는 기회에도 한계가 있거든요. 공간 이전의 어떠한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림이나 사진, 혹은 설치물들을 통해서 보여 드리고, 공간을 통해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담은 형태인 드로잉이나 다른 예술적인 요소를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어려워 보일 수 있는 건축보다 이러한 작업과정들이 대중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향후 작품계획이나 비전이 있으실텐데, 어떤 모습일지 좀 이야기 해 주실수 있을까요?


같은 주제로 계속 여행을 떠나면서 좀 더 심도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의견과 피드백을 주셨고, ''''에 관한 추가적인 전시도 구상 중에 있습니다.국제적인 프로젝트와 교류를 통해, 세계에 한국 내의 난민상을 알릴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면 좋을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아마도 이번 난민주간이나 난민 이슈 자체에 대한 응원의 메세지라던가, 하고 싶으신 다른 이야기라던가...


제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해 [난민주간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서... 거대한 담론을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번 난민주간 참여를 통해 사회 한쪽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젊은 친구가 있구나,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이 분야에 관심을 둔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런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작품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예술의 한 방식으로 끄집어내 주는 것이고요, 이런 메시지가 다른 이들에게 전달된다면 자연스럽게 참여와 관심은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성숙해 져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문화적인 콘텐츠가 이러한 움직임과 같이 가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난민주간행사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고,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Epilogue


저희 두 ‘점’과 또 다른 한 ‘점’ 이 만나 함께한 ‘30분 인터뷰’는 특별했습니다. 난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주 앉아 공감하며 떠났던 여행은 뜻깊었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흠뻑 젖어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오니 그 전에 작품을 보았던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전달되는 메세지에 대한 고찰 역시 깊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최장원 작가님께 사진촬영을 요청했을때 작가님은 정중히 거절을 하셨습니다. 독점 인터뷰 후 기사가 나가게 되면 여러 모로 작가님과 전시회를 홍보할수 있을텐데, 예상외의 반응이라 사실 놀라기도 했지만 이는 단순한 신비주의나 사진촬영 회피로부터 나온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본인의 모습이나 정보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으시다며 “굳이 제 얼굴이 나오지 않더라도 작품을 통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대답을 주셨고, 이에 따라 작가님의 모습은... 아쉽지만 이 기사에는 포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나비효과의 시작. 최작가님의 이러한 첫 시도가, 그리고 난민주간을 통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카페 외부의 전시물과 같은 큰 구가 되고, 다른 구를 움직일수 있는 울림이 되어, 다 함께 굴러가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작은 점을 위한 방

출처: 테이크아웃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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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점’ 이 이야기 하는 ‘방’과 ‘난민’의 이야기 - 최장원 작가 독점 인터뷰 (1)


-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이유민, 정빛나



이태원 테이크아웃드로잉 건물.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촬영.



Prologue


       녹사평역에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카페 레지던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영문 Takeout Drawing, 위치는 용산구 한남동 683-139). 이곳은 이번 달 1일부터 ‘방으로의 여행’이라는 전시회가 열리는 특별한 ‘방’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모티브가 된 ‘방’과 ‘점’은 한 달간의 전시 형태에서 그치지 않고, 2013년 난민주간의 특별 행사인 ‘점들의 이야기’에서 시민들과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될 텐데요.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방으로의 여행’ 전시를 맡은 한 ‘점’, 최장원 작가님을 두 ‘점’, 난민주간 시민기자단이 찾아가 직접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Q: 최장원 작가님 안녕하세요.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해주시겠어요?


       저는 건축을 이제 막 시작하며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 '최장원이라고 합니다. 건축이라고 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느끼기 쉬운데요, ‘건축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전시, 혹은 드로잉이라는 형태로 방법을 찾게 된 거에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한 다른 방향이 없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라는 주제로 ‘여행’을 떠난 지는 두 달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방으로의 여행’ 전시를 준비하게 된 건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를 중간 결과물로 발표하게 되었고, 남은 한 달간의 여행기간 동안 관객분들의 피드백들이 제가 건축가로서 다른 작업을 할 때 좋은 영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전시회 제목이 ‘방으로의 여행’인데요, ‘방’과 ‘점’에 대한 모티브가 무척 흥미로워요. 어떻게 이 모티브를 찾게 되셨나요?



       실제로 기획한 전시인 ‘방’으로의 여행은 두 작가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지만, 사실 ‘점’의 이야기는 제가 개인적으로 끌고 들어온 거예요. ‘점’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사실 난민인권센터(줄여서 ‘난센’)를 방문한 후에 받은 영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방으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여행하다 보니 세상에는 정말 많은 방이 있는 거에요. 예를 들면 우리 개개인이 살고 있는 방의 모습도 다 다르고, 그 외의 여러 가지 다른 방들의 모습을 접하다 보면 사회적인 방을 만나기도 하고...  그런데 방의 모습은 다 다르지만 정작 방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거에요."



       어떤 물질적 조건, 명예나 부를 떠나서 보면 개개인이 다 같은 ‘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우리가 무의식중에서 사는 방, 집이나 건물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보는 모습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던가?’하면서 제가 건축가로서의 교육을 받고 일을 한 것들에 대해서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짓고 방을 짓고 있지만, 실제 ‘원’ 안에 살고 있는 ‘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을까, 하면서 다양한 공간에 대한 생각과 그 안에 사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점’이라는 모티브는 난민인권센터(약칭 ‘난센’)를 방문하였을 때삼각형 모양의 작은 앞마당을 통해 얻었습니다주변 이웃들이 그냥 무단 주차를 해놓는 방치된 공간인데 그 공간을 잘 이용한다면 난센에 도움이 되는 ‘방’일수 있고난민 개개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일수도 있고거기에다 이웃들과 같이 쓸 수 있는 ‘방’이 될 수 있겠다 - 라는 생각을 했어요난센의 국장님께서는 건축가인 제게 ‘건물이 많이 노후화되었으니 건물 자체를 재정비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제 소견으로는 점진적으로 하는 리모델링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난민들의 특성,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인지 난센 대부분의 활동이 건물 내에서 이루어지면서 외부와의 교류와 소통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버려진 앞마당을 잘 활용만 하더라도 외부의 시선이 좀 더 따뜻해지고, 단절되지 않은 이야기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공간을 유심히 잘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삼각형 앞마당의 끝을 난센 건물이랑 이어봤더니 사각뿔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삼각형 끝의 한 점을 난민을 상징하는 점으로 보고, 난민의 존재를 벽면에 투영해 볼 때 ‘이러한 사람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크게 시사해 주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국경이라는 벽을 넘어서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요. 그 분들에게 있어 ‘난센’이 같은 벽이지만 배척하는 벽이 아니라 그들 개개인의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고, 작은 점들이 모인 큰 원으로서 그 존재를 드러나게 해주는 일종의 통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면에서 마당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고, ‘점’을 ‘원’으로 키우고 원을 공간적인 ‘구’로 키우는 작업을 생각해보았습니다.  



Q: 테이크아웃드로잉, 그리고 정예랑 작가님과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카페 내 정예랑 작가의 작품 : 펼쳐지는 방. 난민주간 시민기자단 촬영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의 전시는 레지던시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고,  2013년 네 개의 전시 팀 중 한 팀으로, 정예랑 작가와 제가 선정되었습니다. 다른 여러 전시회나 작업의 형태가 있지만 제가 특별히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선택한 이유는 결과물 중심의 타 갤러리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사람들과 그 과정을 공유하고, 작업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적지만 꾸준히 모니터링이 되는 장소라는 생각에 선택을 했습니다. 제게 있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한 달 동안의 작품 과정에서 난센이나 [영등포 쪽방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주거인권센터의 분들 등 여러 사람을 접하고 알아가게 되는 계기를 주는 장소였습니다.  



    정예랑 작가님과는 작년 가을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퍼블릭 아트’라는 프로그램에 각자 지원을 해서 팀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예랑 작가님과 제가 같은 건축가로서 작업을 함께 했었고요, 그 후 공동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지금 이 시점까지 이어졌습니다.


Q: 앞에서 ‘점’과 ‘방’의 모티브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난센 방문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난민’에 관한 개념을 작품에 연결하게 된 것은 그럼 난센 방문 후의 일인가요, 아니면 그 전에도 난민에 관한 관심이 있으셨나요?


    제게는 난센 방문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난민’이라는 주제나 존재에 대해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으니까요. 난민이 누구인지, 단어만 봐도 ‘망명자’와 ‘난민’ 같은 사전적 의미의 차이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 보였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난민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요. [난센과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최소연 디렉터님(테이크아웃드로잉)의 권유를 통해서였는데, 그 때 방이 없는 이들이 존재하고, 또 그러한 개개인이 모여 서로 위로하는 사회적인 방이 생겨났다며 난센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건축가의 시선으로서 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방문을 제안하신 것 같습니다. 



“난센을 다녀온 후부터는 사람들이 각각 하나의 점으로 보였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도 점으로, 임산부와 뱃속의 아이도 점과 구의 모습으로....우리 모두가 같은 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난민들의 관점에서 그들은 위험을 피해 본국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던 점들이지만, 어쩌면 우리 중 그 누구든, 어느 시점에서든 난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게 생각해 본다면 굳이 국경을 넘지 않더라도 내가 살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혹은 주변의 관심이나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립된 사각지대로 밀려나 버린 사람들도 일종의 심리적 난민일 수 있지 않을까요. 난민을 굳이 ‘사회적 약자’로 따로 생각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어쩌면 그들과 같은 자리로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보니 그것이 저를 많이 움직이게 했습니다



Q: 작품 중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있었어요, 가령 ‘택시기사의 방’ 이라든지... 작가님께서 ‘난민의 방’을 작품화하신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대답을 드리기에 좀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지금도 저는 전시를 진행 중이고, 이 전시에 계속해서 더 채워나가고자 하거든요. 아직 난센의 앞마당 같은 경우도 아직은 어떤 방식으로 될지 [확실한 것은 아니고요,] 광화문에서 열리는 난민주간 행사의 공간 기획이나 상징물의 진행 내용도 사실 다 연관이 되어 있고... 떨어져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난민 자체를 공간과 연결해 해석하는 문제는 사실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왜냐하면 제가 작가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서 난민이라는 대상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저의 시각이 일반화된 시각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고요.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난민 한 개인과의] 인터뷰 내용이나 텍스트로 전해질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난민들의 공간을 이해하는 추상적인 드로잉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 자체가 해결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닌 만큼 그런 것들에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단계이고, 그렇게 다른 분들께도 읽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방’을 잃어버린 길 잃은 ‘점’들이자 새로운 ‘방’을 찾으려는 난민들에게, 혹은 난민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요?


       가 보기에는 이 질문이 난민주간에서 계획 중인 행사의 공간적, 상징적인 부분을 반영하고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 특별행사 제안을 받았을 때, 광화문 광장이라는 도시적인 공간에 그저 의미 없는 상징물을 가져다 놓는다기보다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들을 수도 있도록, 그리고 ‘점’이라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부드럽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작은 점을 위한 방

출처:테이크아웃드로잉



광화문 광장에 놓인 공들은 난민의 이름 대신 블루, 레드 등 다양한 컬러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각 공에 난민의 사연이 담기기도 하고...이러한 ‘공’에게는 굳이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다양한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잖아요.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무관심하게 대하기보다는 시민이 관심을 두고 공을 밀듯 도움을 주고자 하는 작은 행동과 관심을 갖는다면 그 공이 갈 수 있는 길은 굉장히 다양하게 열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난민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이라는 장소가 시작점이 되어 난민들에게 있어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사람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난민주간에 10여개가 넘는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만큼 그런 접촉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2부에서 계속)

http://www.nancen.org/1018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카페 레지던시**에 대한 대한 부가설명 

(출처 테이크아웃드로잉 공간소개, 페이스북 페이지):


Takeout Drawing 
& museum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드로잉에 관한 한 문장으로 짓는 미술관입니다.” 
Takeout Drawing& Museum is a museum built upon making a single statement on drawing. 

www.takeoutdrawing.com 
www.facebook.com/takeoutdrawing 

테이크아웃드로잉은 2012년부터 ‘세상을 바꾸는 드로잉이라는 주제로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체류작가는 레지던시로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머물면서 자신의 주제를 도구로 삼아 작업구상의 과정을 오픈하고 있습니다.

Takeout Drawing 
에서는 Drawing을 주제로 작품을 소개하면서 드로잉을 지지하고드로잉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갑니다드로잉이 전시장 밖으로 세상 속으로 take out 됩니다전시를 보고 일정부분 참여해 이 개념을 가지고 나가 실천하자는 목적입니다일종의 '드로잉 센터개념인데 전시만 하는 공간은 아니며 지역에서 드로잉을 활성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카페 같은 공간이 됩니다.

 

Café Residency

카페 레지던시는 카페를 예술가의 창작공간으로   동안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제도적인 공간과 달리 카페라는 공적 공간을 매개로 창작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카페레지던시는 자연스레 대중에게 창작의 과정을 소개하여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을 통한 창작행위에 주목할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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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하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스티비 스미스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죽은 이의.

그런데 그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 와 버렸어.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불쌍한 녀석, 늘 장난치길 좋아했는데.

이젠 저 세상에 가 버렸네.

견디기엔 너무 추웠을 거야. 그래서 심장도 멈춰 버린 거지.

그들은 말했다.

 

,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어느 때고 예외없이 너무 추웠어.

(아직도 그 죽은 이는 신음하고 있다.)

난 삶의 모든 것에게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렸어.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Not Waving but Drowning

 

                                           Stevie Smith

 

Nobody heard him, the dead man,

But still he lay moaning:

I was much further out than you thought

And not waving but drowning.

 

Poor chap, he always loved larking

And now he's dead

It must have been too cold for him his heart gave way,

They said.

 

Oh, no no no, it was too cold always

(Still the dead one lay moaning)

I was much too far out all my life

And not waving but drowning.






2013 2 20일 오후 1 12.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 나이 만 42.

43세가 되는 날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조국 카메룬을 떠나온 지는 이제 1년하고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온 그 나라에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난민인정신청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병실에서 처음 만났던 날,

그는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무심한 표정에 경계의 눈빛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회복을 믿습니다.

기적을 믿어요.’

희망을 얘기했던 그 순간이 유일하게 온전한 미소를 띠어 준 순간입니다.

 


위암 4.

, , 복막까지 전이.

기침, 가래, 구토, 오한, 발열, 호흡 곤란, 근육 통증 호소.


 

난민지위신청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한 달 사이 두 차례 병원을 옮긴 그.

구급차에 실려 세 번째 병원으로 이송된 그가 휠체어에 앉아 말합니다.

잠깐 창 밖을 보고 싶어요.’

커다란 로비 한 켠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내다 보던 그는 이윽고,

눈이 왔네요. 바깥은 많이 춥겠죠?’

그리고 5, 10, 15한참을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대신 출입국사무소에 다녀 왔습니다.

5월까지 3개월 체류연장을 받아 왔다는 소식에 안도합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웃음까지 입가에 떠오릅니다.

마치 그 기간만큼은 보통의 날들처럼 살아낼 수 있는 것마냥, 그렇게 말입니다.


 

늦은 저녁,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갔습니다.

반색을 합니다.

한참을 이 얘기 저 얘기 토막토막 풀어 놓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잡아 달라 합니다.

잠깐 복도를 한 바퀴 돌고 싶어요.’

손을 꼭 붙들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중간중간 만나는 환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자기는 생선 요리를 좋아한다고 한 마디 툭 던지기도 하고,

간호사들이 일하는 공간도 한번 기웃거려 보고.

다시 돌아온 병실에서 그가 내민 우유 한 팩.

거듭 괜찮다 사양하는데도 꼭 가지고 가라 합니다.

아픈 사람들한테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정말 기쁨을 주는 일이에요.’

언제 또 올 거냐고, 얼른 또 와 달라고 채근도 합니다.

곧 또 뵐 수 있을 거라, 그렇게 답했습니다.


 

며칠 사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야 했습니다.

너무 이른걸요(Too early).’

그에게서 들은 두 마디 답. 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만에 혼수 상태에 빠진 그.

그 곁에서 지킨 한 시간. 마지막 거두는 숨을 지켜 보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은 삶을 마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란다.(Death ends a life, not a relationship.)"

 

타국에서 난민지위신청자의 신분으로 숨을 거둔 그의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가슴이 먹먹합니다.

죽음에 직면하여 더 깊이 만나게 된 그와의 인연에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고 싶은 것은,

세상과 하직한 지금 이 순간만이, 혹은 지난 한 달 여의 시간만이 아닌

실상 해를 넘기는 긴 시간 동안 춥게 살아 왔을, 그 외롭게 울리는 신음소리를 여전히 홀로 울리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난민인권센터(NANCEN) 일동

 



 


*현재 난민인권센터와 고인의 벗들은 그 동안의 치료 과정들을 마무리 하고 연이어 진행할 장례 절차 및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는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치료 과정에 들어간 비용과 최소한의 장례를 위한 비용, 그리고 본국으로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으로 최소 1,000만 원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해당 기금 마련을 위한 여러분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33001-04-225116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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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nu 2013/02/26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무영 2013/03/06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윗에 올렸는데 들어가보니 이 페이지가 안전하지 않은 사이트로 나와요...
    이 페이지가 그런지, 센터 홈피가 그런건지 모르겠네요..
    일정이 조속히 잘 마무리 되고, 가시는 길이나마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난센은 사례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난민 아동 가정을 방문하고 있는데요.

추위가 유난히 매서웠던 2013년 겨울,

마음에 따뜻함을 한아름 안겨준 두 꼬마 천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먼저 소개시켜 드릴 친구는 춤추기를 좋아하는 조나스(가명) 입니다.


조나스를 만나러 가는 길 룰루♪


꽁꽁 얼어 붙은 길을 살금살금 걸어,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들을 헤치고 가니

조나스의 어머니께서 문 앞까지 나와 난센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낯설었던지 엄마 옆에만 찰싹 붙어있던 조나스.


하지만 낯가림도 잠시!!




조나스의 숨겨진 댄스 본능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나스가 아직은 어눌한 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동안

동행한 인턴은 뮤직뱅크PD인냥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야 했다죠...ㅋㅋㅋ



오랜만에 친구가 생겨 즐거운 듯


조나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뛰고, 돌고, 앉았다가, 일어났다가를 무한반복 했답니다.


조나스의 에너지가 느껴지시나요?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는 조나스에게 유일한 친구는


고작 2m밖에 타지 못하는 작은 자전거 한 대.


어린 조나스에게서 '친구'의 간절함이 느껴져 마음 한 켠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조나스 비행기 태워주고 같이 뛰느라 힘이 쪽 빠졌던 유유도 


조나스의 신난 모습을 보고 피로가 다 가셨답니다.




두 번째로 소개시켜드릴 친구는 똘망똘망한 눈이 너~~~무 예쁜 엘레나(가명)입니다.




엘레나는 새침한 개구쟁이입니다.


앙증맞게 묶은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요?



엘레나는 분유대신 먹는다는 토마토 주스보다도  




아이들의 대통령 뽀롱 x 8 뽀로로♬를 백만배 더 사랑한다고 하네요.



엘레나도 뽀로로 노래만 나오면




♪무브무브 점프점프♬ 흥에겨워 몸을 주체하지 못한답니다.


아무래도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댄스 유전자를 타고 나나봐요...




난센에게 선물받은 물품까지 스스로 챙기는 똑부러지는 엘레나.


작은 손으로 조물거리며 가방에 넣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난센 식구들이 떠날 시간이 되자 같이 가겠다며


옷까지 챙겨입고 신발까지 든 엘레나였지만,


같이 가지 못하기에 난센 식구들은 엘레나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엉엉





여느 아이들처럼 '뽀로로'와 '친구'를 좋아하는 조나스와 엘레나와 함께 놀면서


난센 식구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0<


하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달리


아이의 기저귀 값부터 불안정한 미래까지 걱정해야 하는 부모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는데요,


난민, 흑인, 부모라는 정체성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긍정의 힘!!이 많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자기와 놀아주는 단 한 사람이 그리운 아이들,


누구보다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


박해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꿈을 품어야 할 이 아이들을 응원해주세요.


난센도 이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만큼은 추운 겨울이 아닌 따뜻한 봄이기를 바라며


겨울 이야기 끄읕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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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권센터는 행정정보공개청구를 통하여 공개된 

[2013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운용명세서]의 내용 중 난민관련 예산으로 편성된 부분을 정리하였습니다.

 

 

2013년 법무부 난민관련 예산 현황

                                                                                             단위: 천원

분  류

소  계

적  요

금  액

내  역

난민지원센터 운영비

35,140

자원봉사자활동비

7,200

30,000 * 2* 20* 6

난민여행증명서발급

11,250

250* 45,000

난민어울림행사

2,500

2,500,000* 1

난민인정신청서식

1,182

1,182,000

안내물

2,000

1,000* 2,000

현수막

400

100,000* 2* 2

수용경비

10,608

136* 13,000* 6

난민지원센터 기타직보수

142,476

전기원

11,165

1* 71,570* 26* 6

청사관리원

27,078

3* 57,859* 26* 6

방호원

18,052

2* 57,859* 26* 6

긴급자동차운전원

21,088

2* 57,590* 26* 6

영양사

10,937

1* 70,110* 26* 6

식당운영원

54,156

6* 57,859* 26* 6

난민지원센터 공공요금

60,391

전기요금

44,303

기본요금 5,610 * 2,580Kw = 14,474,000

가을철요금 60,1* 45,000Kwh *2=5,409,000

겨울철요금 83,3* 61,200Kwh * 4= 20,392,000

부가세 40,275,000* 10% = 4,028,000

상수도요금

9,350

680* 27,500* 1/2

하수도요금

3,438

250* 27,500* 1/2

물이용부담금

1,650

120* 27,500* 1/2

청사화재보험료

1,650

500* 6,600* 1/2

난민지원센터 청소용역비

40,075

청소용역비

40,075

6,600평방미터 * 1,012* 6

난민지원센터 시설비

598,000

민원실, 사무실 OA설치

315,000

315,000,000

면담녹음실

125,000

5* 25,000,000

방송시설

40,000

2* 20,000,000

안내간판 등 설치

52,000

52,000,000

CCTV, 랜공사

30,000

30,000,000

전화회선공사

6,000

6,000,000

모빌렉 설치

30,000

2* 15,000,000

난민지원센터 자산취득

431,000

중형승합차량(25인승)

50,000

50,000,000* 1

대형승합차량

140,000

140,000,000* 1

소형승용차량

50,000

25,000,000* 2

텔레비젼(강의실)

5,000

2* 2,500,000

텔레비젼(사무실, 민원실)

7,200

12* 600,000

냉장고

4,000

8* 500,000

청소기

7,040

32* 220,000

대형세탁기

18,000

1* 18,000,000

건조기

13,000

2* 6,500,000

소형세탁기

3,500

10* 350,000

소독기

7,260

3* 2,420,000

정수기

2,700

5* 540,000

소방보안장비

14,000

14,000,000

의료기구

12,000

12,000,000

주방용품

40,000

40,000,000

복사기

10,000

2* 5,000,000

모사전송기

2,000

2* 1,000,000

문서세단기

2,000

2* 1,000,000

제본기

540

1* 540,000

키폰전화기

18,750

75* 250,000

운동기구

13,000

13,000,000

민원용 집기

11,010

11,010,000

난민교육

52,800

한국어 및 한국사회이해

28,800

4시간 * 30,000* 2* 120

문화 체육 오락 등 특강

24,000

2시간 * 50,000* 2* 120

연구개발비

10,000

난민교육 교재 및 프로그램 개발

10,000

10,000,000

구료비

137,856

난민지원센터 구료비

110,556

136* 4,418* 184

인천공항 난민신청자 구료비

13,650

6,500* 3* 7* 100

김해공항 난민신청자 구료비

6,825

6,500* 3* 7* 50

제주공항 난민신청자 구료비

6,825

6,500* 3* 7* 50

난민의료비

13,000

난민의료비

13,000

13,000,000

난민전문통역비

288,000

난민전문통역비

288,000

50,000* 4시간 * 5* 48* 6

난민소송

101,164

항소 송달료

1,022

73,000* 14

상고 송달료

392

49,000* 8

패소비용(1, 2)

8,250

1,650,000* 5

패소비용(3)

1,500

1,500,000

소송 위임비용

90,000

2,000,000 * 45

난민소송출장비

14,000

난민소송출장비

14,000

14,000,000

난민신청자 등 의료비

22,939

진료비용 등

22,939

22,939,000

난민위원회 위원 수당

9,600

위원수당

9,600

200,000 * 8* 6

난민위원회 운영

6,000

난민위원회 운영

6,000

6,000,000

난민담당자 회의

19,000

난민담당자 회의

19,000

19,000,000

특정업무경비

87,600

난민조사관 활동비

87,600

87,600,000

총    액

2,069,041,000


[2013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운용 명세서]상에 난민관련 예산으로 명기된 예산은 총 2,069,041,000원이며 

2013년 난민관련 예산에서 주목할만한 특징은 난민법 통과로 인하여 소요되는 사업예산 19억 8천만원의 신규 편성입니다.


신규확보된 19억 8천만원 예산의 대부분은 난민지원센터의 운영을 위한 예산이며

2013년 7월부터 시행될 난민법에 의거하여 난민신청자에게 지원할 수 있는 생계와 주거지원 등을 위한 예산은 전무합니다.



신규예산 대부분은 난민지원센터 운영비 


법무부가 밝힌 난민지원센터의 적정 수용 규모는 3개월씩 100명 수용이며, 이를 근거로 1년에 400명 수용이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2012년 난민신청자는 총 1,143명으로 난민지원센터에서 수용 가능한 4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신청자 600-700명과 난민지원센터에서 3개월 수용 후 사회에 나오게 될 난민신청자의 사회적 처우를 위한 별도의 대책과 예산은 없습니다.

 

이는 생계와 주거의 지원을 사실상 난민지원센터 수용에 동의하는 신청자로 제한하는 조건부 지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각종 박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그리고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난민신청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 수용시설에 함께 수용하는 방식만 고집하는 행태는 위험하고 잘못된 발상임니다.

 


예산 낭비적이고 사회통합에 반하는 난민지원센터


어떤 경우에도 인간으로서 생존권 보장을 위한 수단이 단절되어서는 안됩니다.

난민법의 의미 중 하나는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되어 온 난민신청자의 사회적 처우의 근거를 마련하였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예산은 난민지원센터 운영비, 시설비 그리고 자산취득비 등이 대부분으로 신청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항목은 극히 적습니다.

난민관련 예산이 대부분 난민지원센터 운영비로 난민지원센터에서 3개월, 난민지원센터 이후의 생활을 위한 예산, 그리고 난민지원센터에 수용할 수 없는 신청자를 위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난민지원센터만을 통한 난민신청자 지원은 2중, 3중으로 추가 예산을 투입해야하는 전형적인 예산 낭비임과 아울러 사회통합에 반하는 방식입니다.

 

난민지원센터는 전 세계 분쟁과 갈등의 총 집합체가 될 것이며 수용된 난민신청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예상됩니다. 이를 억누르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난민지원센터를 자유시설로 운영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따라서 난민에 대한 이해와 인권 감수성으로 준비된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난민지원센터의 일부 기능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입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예산 또한 전무합니다.

 


2013년 예산 중 환영할만한 부분은 난민전문통역비로 288,000,000원의 편성한 부분입니다.


 

심사인력의 확충을 통한 심사기간 단축이 최선의 방법


난민신청자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간을 줄여주는 심사기간 단축이 난민신청자를 위한 최고의 사회적 처우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출입국 사무소의 1단계 심사인력은 사실상 3명 뿐이어서 2년 연속 1천명이 넘어선 신청자를 빠르게 심사하기엔 절대적으로 역부족 입니다. 인간으로서 자존감과 자립의지가 곤두박질한 상태에서 난민인정을 받아도 이를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어려움은 본인에게나 사회적으로도 치러야할 비용이 너무 큽니다.

난민지원센터 운영을 위한 수십억원 예산보다 심사인력 확충을 통한 심사기간 단축이 난민신청자의 사회적 지원을 위한 최선의 방법임을 법무부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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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난센 활동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뚝딱뚝딱 싹뚝싹뚝 

8기 인턴들이 난센 1층 벽을 새롭게 꾸미기 위해 

예쁜 색지를 오려 붙이는 모습입니다! 

(미소짓고 있는 인턴들의 모습은 절대 설정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항상 웃는 우리 8기 인턴들!완전이뻐)





짜잔~~~ 떡국 감독님, 은숙씨입니다. 

샤방샤방~~ 샤방

30인분의 떡국을 만드셔야 하는 은숙쉐프는 

육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난센과 꿈을 같이 꾸고, 난센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활동가들은 무~~척 설레었답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17일. 




부엌에서는 구수~한 육수 냄새가 활동가들의 코를 쿡쿡 찌르고 있고, 




또, 강은숙 요리사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박은정(왼쪽), 봉점순(오른쪽) 보조요리사들의 모습! 

참잘했어요




점순씨는 칼로 당근을 써는 것이 아닌

매서운 눈으로 당근을 썰면서 

손님들이 언제 오는지 체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들도 방명록도 손님들이 빨리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고, 




새롭게 디자인이 바뀌었지만, 

완성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와 담벼락 또한 

손님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저에게 살짝 말해주더군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채널고정!! )




12시가 되자,


드디어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모이면 모일수록 얼굴이 창백해지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접니다...엉엉





하지만, 긴장도 잠시, 꿋꿋하게 행사를 진행했답니다. 궁디팡팡



 

 

국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손님들, 난센 가족분들의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통번역 자원활동가, 전 기수 인턴, 학생, 난민, 회원, 협력기관 멤버 등등 

난센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난센 떡국잔치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짧지만 길었던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



왔습니다~ 왔어요! 

맛있~고 따끈따근한 떡국이 왔습니다~ ><





맛있게 떡국을 만들어준 "은숙쉐프와 아이들" 덕분에 모두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행사 담당자로서 참가자분들이 서로를 몰라서 어색해 할까봐 걱정 했었는데, 

막상 행사가 시작되고, 자기소개하고 떡국까지 같이 먹다보니 

모르는 사이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고, 

더군다나 관심이 많이 필요한 난민 분들과 담소 나누는 흐뭇한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프라이즈 생일 파뤼 도 열렸습니다!! 

고향에 있었다면 가족과 했을 A씨의 생일 파티를 

저희 난센 가족들이 준비해서 함께 축하해 주었습니다. 



사실 A씨는 이 행사에 오고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에서 쉬고싶은 생각이 더 컸는데 무언가가 자기를 이곳으로 오게 했고,

난센에 오는 도중에서야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네요.. 



매번 자신의 생일이면 엄마가 먼저 생일 축하해주곤 했는데, 

이번 년도에는 엄마의 생일 축하메세지를 받지 못했고, 

대신 난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시는 

A씨의 진심어린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A씨의 생일 축하를 해 주었고, 

모두가 A씨가 하는 말에 귀기울여 주었습니다. 

난센과 관계가 깊은 난민 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은 난센활동가의 몫이었는데,

이번 떡국잔치 기회를 빌어 활동가뿐만 아니라 '난센가족'분들도 함께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감동은 여기서 끝이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쓰고 계신가요?? 


      


바로 난센&난민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각자 나뭇잎에 담고 계신데요. 


과연 이 나뭇잎은 어디에 자리잡게 될지

기대해주세요!!! 



이어지는 벤트벤트 이베~~~엔트! 


       


     


바로 "난센"으로 이행시 짓기!!! 


처음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찍어드린 폴라로이드 사진 밑에 

'난센'으로 이행시를 짓고 발표해서 

인기를 많이 얻은 분께 '난센컵'을 선물로 드리는 행사인데요, 



  

        

    


난센 컵을 받아가신 6팀들의 난센 이행시 공유합니다. 

*주의* 앞으로는 진행자의 환심을 얻어 상을 받기 위해 '진행자에게 고백'하는 

그런 불상사한 일은 삼가해주세요~~;;;;



이렇게 해서 17일 떡국행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끝은 났지만, 한 분 한 분, 다녀갔던 흔적이 계속해서 

난센활동가들의 마음이 따뜻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난센가족'분들이 직접 완성해 주신 1층 벽 다시 꾸미기. 


사실 이 '나무와 담벼락' 디자인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월담"! 

한 달에 한 번씩 난센에서 열리는 월담 행사의 비전이듯, 

벽을 넘는다는 뜻인데요.

저 나무가 담을 넘었듯, 난민분들이 한국에 온 후 맞닥뜨리게 된 

벽을 넘는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와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같이 있었던 난민 분들이 벽을 넘을 수 있는 원동력을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저희도 계속해서 저 벽에 걸린 여러분들의 메세지와 사진들을 보고 되새기면서 

열심히 열심히 난민 분들이 벽을 넘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되도록 

2013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 때문에 바빠서 못오신 다른 가족 여러분들도 다음번에 꼭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2013년 여러분도 난센도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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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o 2013/02/09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떡국! 맛있게따!
    저두 담에 기회되면 꼭 갈게요:))

  2. Yo 2013/02/09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떡국! 맛있게따!
    저두 담에 기회되면 꼭 갈게요:))

난센 힐링캠프

Activities 2012/12/20 16:07

안녕하세요 여러분 :)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 

2012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 보고,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을 치유하고

 2013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난센에서는 난민과 활동가들을 위한 힐링캠프를 준비했습니다. 



12월 19일 오전 10시.




 난센활동가들과 난민분들은 이곳, 사람마음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마음?? 과연 뭘 하는 곳일까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일반 가정집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난센활동가들과 난민분들이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명절에 모인 "가족" 같아 보이지 않나요 ^-^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구요?? 



바로, 트라우마 치료센터 "사람마음" 

 난센에 오신 난민분들 중 심리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을 상담해주는 곳입니다.


난민분 개개인이 받았던 트라우마, 

또 난센 활동가들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받을 수 있었던 상처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마음에 모여 

최현정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트라우마 강의"를 들었습니다:) 






난민들도, 난센활동가들도 귀 귀울여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각자가 겪었던 트라우마를 떠올려보고 

그 뒤의 삶을 되돌아 봤습니다.



 

 


 

트라우마. 

전쟁, 환경재해, 학교폭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 내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일어난 상황에 충격을 받는 현상입니다. 


사람이기에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그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 여러분들을 알고 계신가요? 




최현정 선생님의 강의에 이어 그룹 활동이 있었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 트라우마를 받은 직후에 

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경험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소외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충동, 뒤바뀐 세계관, 실망감, 불면증, 환청 등이 

트라우마로 인한 휴유증이었습니다. 



트라우마로인한 상처로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기도 하고 

깊은 절망에 빠져 자기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민분들은 다시금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자기 자신을 탓하지 말고 사랑해줘야 해요" 

"차별 받음은 내탓이 아니었어요. 그냥 문화가 다름으로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절대 제 잘못이 아닌거에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로 "자책"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금 일어서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말 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받아들이기 싫은 일도 많고,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만큼 큰 상처를 받은 그들은 

이미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시금 일어나고 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너무나도 큰 배움이자 크리스마스 선물을 "난민"으로부터 얻었습니다. :) 



이렇게 트라우마 강의를 마치고,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일만 남아있습니다.^0^

고고씽



허기진 배를 달래주기 위해 우리가 출동한 곳은 바로 



봉. X. 찜. 닭. 헉


다들 배가고파 맛있게 먹다보니 

순식간에 접시 바닥이 보였습니다.. ㅎㅎ 


여기서 우리의 힐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이곳은 바로 볼링장입니다 꺅 


잠시 활동가들과 난민분들의 볼링 실력을 감상해보겠습니다! 







난민 분들이 물만난 고기처럼 

너무 즐거워 하셨습니다. 

 처음 해보는 볼링이라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가도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의 스트레스를 볼링공과 함께 

던져버리셨답니다. 


난센 활동가들도 오늘만큼은 업무일 다 잊어버리고 

볼링공에 쌓아뒀던 스트레스를 담아 

힘차게! 

공을 던저버렸습니다. 


아직 채널 고정해주세요 여러분!!


우리가 즐겼던 스포츠 한가지 더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구    &   포켓볼 


당구 경험이 있던  난민분들은 볼링보다 당구를 더 좋아하셨습니다. 









매일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다가  

난민분들과 당구 대결을 이루고 있는 

난센활동가들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들 당구에 몰입하느라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었답니다.. ^^;;; 


그 결과, 우리 모두가 

거의 100% 힐.링.을 할 수 있었다는 저~엄! 


처음으로 난민분들과 스포츠를 해보고 느낀점은 

"난민들이 스스로 이런 스포츠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볼링을 한 번도 쳐보지 못했고, 쳐볼 생각도 못했어요, 난센 덕분에 처음으로 해보니 너무너무 즐거워요" 

한 난민분이 볼링을 치면서 저에게 말해주신 내용입니다. 


애초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우리가 같이 가자고 권유하고, 

같이가서 막상 해보니, 

즐길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같이 즐기다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 힐링 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힐링 된 마음으로 난민도 열심히, 활동가들도 열심히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 


이미 트라우마를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금 일어서는 방법을 이제는 알고있습니다.  

상처는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요. 

가령 난민분들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힘든 일이 찾아와도 

그 지혜의 열매로 이겨낼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를 마무리 하기 위해 

어떻게 힐링 하고 싶으신가요?? 


또, 2012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받아왔던 상처들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고, 

2013년도 난센과 함께 치유하고 힐링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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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며칠 간 난센 식구 중 일부 팀은 태국과 홍콩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엥? 갑자기 왜 홍콩과 태국을 방문하였냐구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난센은 올해부터 법률 지원 뿐만 아니라


교육 및 양육, 심리지원, 취업연계 등의 서비스를 통합한 


사례관리 시스템으로써의 전환을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동안 국내의 '홈리스행동', '안산westart글로벌아동센터' 등의 다양한 단체를 통해 


난센만의 사례관리시스템을 그려보았었지요..






그러나 난민만을 지원하며 사례관리를 하는 단체는 국내에 전무하기 때문에


난센의 사례관리 시스템을 그리는데 한계가 있어


결국 난센은 해외의 난민지원 단체를 방문하기로 결정,


 518재단의 후원을 받아 홍콩을 방문하게되었습니다!







그 여정에서 난센을 찾는 아시아 난민 중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 난민들이 많은 태국도 들러


격변(?)하고 있는 버마의 정세에 따른 현지의 상황과 진실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답니다~








살포시 담아본 장장 10일간의 좌충우돌 여정 과정, 


여러분~ 함께 보러 가실래요? 후비고우~!




  


약 9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태국 현지는 


섭씨30도를 넘는 뜨거운 열기로 난센활동가들을 맞이하여주었습니다!







버마와 태국의 대표적인 국경지역 메솟



지난 번 난센 식구들이 방문을 하기도 하였었지요~


버마 난민들과 지원 단체가 많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인 메솟을 활동가들이 다녀왔는데요~


 






여러분도 언론을 통해 버마의 소식을 들으셨나요?




버마의 아웅산수치 여사가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고, 국회에 입성하는 등


버마의 정치 민주화가 올해 크게 진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옴과 함께


태국 난민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도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변하는 버마의 정세에 따라 


메솟 내의 단체들과 난민 사이에서의 입장도 천차만별,


결국 정말 버마는 변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메솟에 있는 버마 난민과 이주민들의 생각은 어떠한 것인지?



콕콕! 캐내어 한국을 찾는 버마 난민들을 효과적으로 조력 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습니다.




  


버마에서 구금된 정치범들을 지원하는 AAPP(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태국으로 이주해온 버마노동자들의 그룹인 YCO, 



  


버마의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8888항쟁 대학생들이 세운 정당 DPNS(Democratic Party for New Society)와 


메솟에 이주해 온 버마 여성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SAW(Social Action for Women),


신디아 박사의 얼마 전 인터뷰로 한국 사회에 더 널리 알려진 Mae Tao Clinic,





그리고 카렌 난민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멜라 난민캠프 등 까지를 방문하며 버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버마가 변화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없는,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어 


그들이 더욱 힘든 처지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태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일원들은


난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방문을 하기로 큰 결심을 하게 되었던


홍콩에 발을 들여다 놓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








그에 걸맞는 화려한 외관으로 난센 활동가들을 맞아주었던 숙소 '청킹맨션'




가장 저렴한 숙소를 택한 것과는 달리 


화려하고 높은 건물의 외관과 명품샵들이 즐비한 거리에 


활동가 일동은 어안이 벙벙 했는데요..




그러나 청킹맨션에 가까워 올 수록, 청킹맨션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청킹맨션 앞의 수 많은 인도인, 아랍인, 베트남인, 아프리카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중남미인, 중국인 들을 만난 이후였습니다.





   

청킹맨션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다양한 식당들


(할랄음식 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상점을 지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겉에서 본 화려함과는 다른 내부 환경)











사실 청킹맨션은 "작은 지구 마을"이라고도 불릴 만큼, 


홍콩 드림을 꿈꾸며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배낭여행자, 난민, 미등록체류자, 도박꾼, 마약거래자, 홍콩주민 등


홍콩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맨션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방문할 'Christian Action'도 청킹맨션에 있었지요~







영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찍기도 하였던 청킹맨션은


1961년에 처음 지어져 당시에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었으나, 


중국반환이 가까워지자 부자들이 타국으로 이민가게 되면서 빈 집이 늘어나


다양한 국가에서 온 육체노동자들과 싸구려 여인숙, 인도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몇년 전 까지만 해도 홍콩 현지인들도 두려워 하는 청킹맨션이었다고 하네요~









난센 활동가들은 덕분에 홍콩 다문화의 상징인 청킹맨션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답니다. 












홍콩에서의 첫날은 



홍콩에서 유일한 난민 법률 지원 단체인 'Hong Kong Refugee Advice Centre'와


 

 


HKRAC의 주 협력 사회 지원 단체인 'Christian Action Chunking Mansions Service Centre'를 방문하였는데요~







  


두 단체의 방문을 통해 홍콩의 난민 지원 시스템을 파악하고, 각 단체의 사례관리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홍콩은 한국과는 달리 난민협약국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이며 


CAT(고문방지협약)에 준거하여 난민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고문방지협약 전문 보러 가기





하지만 CAT는 난민을 '보호'하는 것 보다 본국으로의 '강제송환'을 금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춘 국제 협약이기에


사실상 난민들이 홍콩에서 정착하고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CAT에 준거하여 인정된 난민이 지금까지 딱 1명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CA 난민지원센터의 부엌과 거실)




그래서 홍콩으로 오는 모든 난민들은 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 받은 후 


제 3국에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그 기한이 적게는 3년에서 많게는 20년도 더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다른 나라로의 재정착을 기다린다는 것은


홍콩난민들에게 또 다른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홍콩을 지원하는 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특히 둘째날에 찾았던 단체인 



ISSHK(International Social Service Hong Kong Branch)의 ASTC(Assistance to Asylum Seekers and Torture Claimants Project)는


80%이상의 예산을 정부를 통해 지원 받아 운영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ASTC의 내부 전경)



ASTC는 지금까지 약 5800여명의 난민 신청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제 3국에 재정착 하기 전까지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취업교육, 언어교육, 의료, 의식주 지원 등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는데요~






(접수 순서를 기다리는 난민들)




총 48명의 사회복지사가 1사람당 130명 정도의 사례 관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42개의 나라에서 온 132명 가량의 전문 통역 인프라가 ASTC내부의 직원으로써 언제나 함께 있으며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각각 싱글여성과 남성에게 지원해 주는 생필품 패키지)






그러나 ISS의 ASTC외의 다른 많은 단체들은 그들의(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비판하고


부족한 부분의 지원을 상호 보완하며 보충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홍콩이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단체 중 하나인 HOPE,






그리고 난센과 비슷한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뭇 다른 운영구조로 꾸려진 Vision First 등을 방문하며 


다양한 사례관리 지원 사례와 체계의 영감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낯선 땅에서,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온 몸이 떨릴 만큼 초보활동가들에게 많은 긴장을 안겨다 주었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열정과 신념으로 난민을 지원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몸과 마음을 다해 돕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열정도 전해 받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번 방문의 경험을 앞으로 어떻게 난센만의 튼튼한 사례관리체계로 적용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지 


어떤 난센의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일구어 낼 수 있을지



활동가들의 고민도 사뭇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과 관련한 더욱 자세한 사안은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올리겠습니다!)




지난 10일간의 좌충우돌 탐방을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난센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앞으로도 난민인권센터는 난센만의 사례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변화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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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난민과 함께 한 10월 월담


 



 이번 월담에는 개최 이래 가장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신 월담이 되었습니다.^^ 학부 수업이 없는 주간임에도 성공회대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서 열띤 관심을 보여주셨고,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__^



 

 

 



아시아 난민은 세계 난민의 3분의1

 

  이번 행사에서는 로넬 씨의 발표에 앞서 아시아 난민 발생 현황을 훑어 볼 수 있었는데요. 아시아의 난민은 4천만 명이 훨씬 넘는 숫자로 추산되는 전세계 난민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아직까지 다수의 국가에서 종식되지 않은 독재정권의 탄압 및 정치적 갈등 상황이 난민을 양산하는 조건이 되고 있었습니다.



  지역 별로는 그 패턴이 조금씩 다른데, 서남아시아(중동)의 경우는 전쟁과 테러(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의한 이유가 주되며, 동아시아의 경우는 중국 정부에 대해 자치를 원하는 선주민들의 난민화(티베트, 위구르 등)가 주된 경향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독재정권 하에서 종족적, 종교적 소수자성(미얀마의 친족, 카렌족 및 로힝야족, 방글라데시의 줌머족, 스리랑카의 타밀족 등)이 탄압의 기제로 작용하면서 난민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난민 중 팔레스타인(480만명), 아프가니스탄(280만명) 그리고 이라크(170만명)의 난민이 아시아 난민의 압도적인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전세계 난민 4250만명 중아시아난민은600만명, 난민 3명 중 1명이 아시아에서 발생 (2011년 기준)  -출처:UNHCR

 

 



애매한 나의 소개

 

 로넬 씨는 어딜가서나 이름을 여러차례 얘기해야만 하는 애매한 나의 소개에 대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해 주셨습니다. 로넬 씨는 한국에서 난민으로서, 이주노동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방글라데시에서도 줌머선주민이자, 차크마인이자 방글라데시인으로서의 여러 가지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한국인 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로넬 씨의 정체성은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은 복잡한 느낌이었지요. 국가의 경계를 넘고, 문화적 차이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들을 수용하고 공존하려는 노력들이 이와 같은 풍부한정체성들을 간직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요?

 

 

 

 

로넬 씨는 보트피플 속의 난처한 사람들이나, 굶주리고 처량한 사람들만이 난민이 아니라 태국의 탁신 총리나 위키리크스의 줄리앙 어산지 같은 사람도 난민의 처지라고 하며, 정치적 망명자들처럼 자신의 신변을 위해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난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로넬 씨는 그 이유는 다르지만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고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하셨던 것이지요.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일

 

줌머인은 방글라데시의 선주민으로서 약 70만명이며, 그 안에는 12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역사에 있어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를 가진 또다른 왕국임을 강조하셨습니다. 1860년에 시작된 영국의 식민지 지배 시기를 지나자, 1947년 파키스탄의 식민지가 시작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 치타공 산악지대에 캅타이 댐 건설을 시작하면서 줌머인들은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치타공산악지대에 벵갈인들을 정착시키고, 선주민들의 토지와 재산이 강탈되는 것을 묵인하거나 지지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방글라데시의 줌머인에 대한 인종청소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 체포, 고문, 성폭력 등에 시달렸습니다. 1997년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13번의 대량학살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는 9번의 크고작은 학살이 있었습니다.

 


로넬 씨는 1986년 학생으로서 줌머인 자치권 운동에 참여하다가 방글라데시 군대와 정보원에 의해 체포되어 1989년까지 감옥에서 생활하셨습니다. 이 시기는 가장 많은 줌머인들이 대량학살과 인권유린에 시달리던 시기였고, 그래서 망명의 길을 떠나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로넬 씨는 감옥에서 풀려나신 후 다른 줌머인들처럼 인도 등 여러나라를 거쳐 망명생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2002년에 난민신청을 하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재한줌머인연대

 

로넬 씨는 한국에 들어온 후 가장 힘들었던 일 가운데 하나는 다른 난민들처럼 자신의 박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여러차례의 인터뷰에 시달렸고, 법무부로부터 난민신청을 거부당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한 가운데 노동을 해야 하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들도 쉽지 않았습니다. 로넬 씨는 결국 난민불인정에 대해 다시 행정소송을 통해 최종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으셨지요.



하지만, 인정 후에도 교육과 양육 등 전반적인 사회복지 혜택을 받기가 어려워 정착생활을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부모가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이의 법적 지위가 등록되는데 수년이 걸려, 전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한편 이와 동시에 로넬 씨는 동료들과 줌머인의 인권·사회·문화적인 자조를 위해서 재한줌머인연대를 결성하였습니다. 재한줌머인연대는 자립뿐만 아니라 본국에서의 인권상황을 알리고, 한국사회와의 상호문화적인 교류를 하고자하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에는 70여명의 줌머인들이 김포시 양현면에 함께 모여 살며, 작지만 소중한 줌머인 공동체를 만들고, 방글라데시 인권개선 및 한국사회에서의 정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줌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유창한 한국어로 진행된 로넬 씨의 열정적인 발표가 끝나자, 많은 분들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한 분은 여러나라들 중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로넬 씨는 한국이 불교 문화이자, 몽골계 인종이라는 환경적 친밀감이 큰 계기로 작용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줌머인들이 거의 없었고,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줌머인 인권운동에 뿌리를 내리려는 뜻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재일교포로서 참석하신 한 분은 재일조선인은 대부분은 국적이 있기에 난민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해 주셨고, 이와 더불어 이들을 난민으로 간주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인으로 포용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자는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국적(일본, 남한, 북한 중 하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적이 없는 소수의 무국적 조선인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이 난민에 해당된다는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그 분께서는 질문하셨습니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말하면서 아프지 않으셨나요?”



 

이에 대해 로넬 씨는 잘 살고, 똑똑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랑스러운 문화를 가진 줌머인이 되고자 한다는 말로서 본인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살고, 많은 점에서 한국인의 생활을 배우고자 하지만, 내면에 줌머인으로서의 긍지와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고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분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혹은 같은 한인(같은 민족)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동화되기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주민의 자치권

 

한국 사회내 방글라데시인과 줌머인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요, 로넬 씨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가 많지 않기에 특별히 관계가 좋거나, 나쁘지 않으며, 다만 본국에서 그랬듯이 사회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른 해외 줌머인들의 상황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줌머 난민들 중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많고,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도 거주하고 있으나, 실제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한 분포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줌머인의 자치를 주장하는 이유가 다수민족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인지, 또는 주류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려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로넬 씨는 한 나라 내에서 특정지역(치타공)이 그 자신의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길 원하는 것이며, 이것은 중앙정부가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고, 줌머인이 스스로 살고 있는 지역의 자치를 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지면에 모두 소개하지 못한 다양한 질문과 토론으로 월담행사는 풍성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월담에서는 여러 가지 박해와 정착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질적인 민족과 문화를 지닌 사람이 낯선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인’, ‘한국국민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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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난민과 함께 한 '9월 월담' 후기

 



 

9월 20일 해질녁부터 시작된 월담은 처음에는 다소 적은 인원이었지만, 열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많은 분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워 주셔서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밤늦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월담에서 발표를 해 주신 우전룽 씨는 200811,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난민지위판결(대법원)을 받은 중국 난민 다섯 명 중의 한 분입니다. 우전룽 씨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민주화를 위해 활동을 해오시다가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오셨습니다. 그동안 난민의 이야기가 박해로 인한 고통과 생활의 어려움 중심이었다면, 우전룽 씨의 이야기에서는 정치적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난민의 존재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참가자들이 중국정치 및 사회, 마오쩌둥, 한국의 민주화 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도 했지요.





 

우전룽 씨는 젊은 시절부터 63세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한 생애사를 통해 다양한 경험들을 들려 주셨습니다. 우전룽 씨는 젊은 시절, 군대의 정치교관이자 공산당 당원이었지만, 중국이 정치적으로 억압되어 있음을 느끼고 이를 비판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발각되는 순간 그의 인생은 끝이었기에 작성한 원고를 고향 땅 밑에 묻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글을 한 번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기에그 후로도 2002년까지 800만자, 30권의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단 한 글자도 발표할 수 없었지만요. 우전룽 씨는 중국에 있었던 2002년까지도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글을 출판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일은 사상죄비방죄로 처벌당하기에 문자옥이 존재했었는데, 이것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며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표현하고, 알리기 위한 자유를 찾아 이 곳 한국에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쓰셨던 필사본 책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한국에 입국할 때 들고 오지 못했지만 나중에 인편을 통해서 가져올 수 있었답니다.



우전룽 씨는 저작활동만을 한 것이 아니라 89년 천안문 시위가 일어날 당시 고향인 센양시에서도 벌어진 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었는데, 시위를 비판하는 다른 시민의 주장을 듣고 있을 수가 없어 학생들의 시위를 옹호하며 연설을 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지지를 받으셨습니다. 물론 이 일로 인해 그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고고향에 피신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후 저술활동을 계속 하시며,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민주화 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활동을 모색해 오던 중 중국공안의 감시가 심해지자, 등윤비 씨와 함께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200211월 한국 오신 후에도 그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중국 민주화 운동 조직의 한국지부에 가담하고 이끌며 한국에서 중국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천안문 사건 14주년을 맞아 주한중국영사관 앞에서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감행했습니다. 2005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독재를 없애고 국민에게 정치를 돌려주자는 구호로 시위를 진행해 해외에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희 활동을 통해 중국에 민주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게 땅속에 묻혀 있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싹이 트고 꽃을 피며 열매가 맺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2009년 동북아 집단학살 종식 국제대회, 2012년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범국민대회 등에 참가하며 꾸준하고 일관되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실천해 오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전룽 씨는 한국에 있으면서 글을 쓰는 자유를 얻었지만생활고라는 문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의 특별한 직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벌 수 없어 생활 자체가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한국지부 조직에서 주었던 생활 보조금이 사라지고 난 뒤, 그는 현재까지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기초생활 보조금으로 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그 돈으로는 방세, 식비, 인터넷과 전화비용 등을 내기에도 빠듯하기에 여전히 생활은 힘겹습니다.

 

 


발표를 듣자마자 한 참가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중국이 민주화가 된다면 돌아가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에 대해 그는

 

저는 지금 중국으로 돌아가면 아무런 희망이 없기에 갈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중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날은 민주화가 된 이후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는 때일 것입니다. 중국이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난다면 저는 당장 중국으로 가서 그 물결에 참가할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난민의 삶이 단지 박해와 두려움을 피해오는 과정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국과 고향에서 잃어버린 가치와 자유를 되찾는 그날을 꿈꾸는, 희망이 가슴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난민이자 이주민으로서 한국정부에 대해 느끼는 한계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우전룽 씨는민주화 된한국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이곳에 왔지만, 6년에 걸친 난민신청 및 소송과정에서 자신의 진실을 한국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아 많이 힘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당시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50여명의 중국인들이 신청을 했지만, 오직 5명만이 난민으로 판결받을 수 있었습니다. 큰 기대를 갖고 찾아온 한국 땅에서 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과정은 자신이 난민인지 의심을 당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으며,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웠기에 여러가지로 힘들었던 심경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함께 참가한 등윤비 씨의 경우는 중국에 있을 때 한국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의 물결뿐만 아니라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정치체제를 바꾸고 민주화인사들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지요. 그렇기에 우전룽 씨와 등윤비 씨는 한국의 민주화 모델이 자신들이 배워가야 할 모델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진심으로 한국 민주화에 대해 훌륭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한국정부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시민사회의 미래를 의미한다는 단서를 달으셨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 주셨습니다.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은 적절한지, 댜오위다오 섬 분쟁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한국에 오기 전과 이후의 한국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현재 한국정부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등등. 일반 대중 매체나 뉴스가 전하는 쟁점들에 대해 중국민주화인사의 입장과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다만, 시간이 무척 부족했기에, 이 많은 질문들을 깊이 있게 토론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요.

 

안면장애 때문에 열띤 발표를 하시면서 우전룽 씨는 하얗던 얼굴 피부가 발그스레 변하셨지만,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들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한글교실에 참가해 오며 조금은 과묵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등윤비 씨도 그 날 만큼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셨기에 저희는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답니다.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 두 정부간의 정치적 관계 등으로 인해, 중국난민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생활고를 홀홀단신으로 감내해야만 하기도 하며, 한국인들의 관심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한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자신의 신념과 강한 삶의 의지를로 살아오고 계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월담을 마무리하여 언젠가 우전룽 씨 일생의 소중한 보물인 6권짜리 필사본 책이 출간될 날이 조만간 오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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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빵따 2012/09/21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느끼는 바가 큽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이 후기 만으로도 우전롱 씨의 우직함이 느껴집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 'My Little Story Photovoice'프로젝트, 기억하시나요?








'My Little Story Photovoice'프로젝트는 Save the Children의 지원을 받아


 난민의 가족구성원과 공동체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올해엔 줌머족 부모님들과 함께 6회기를 거쳐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한 주 한 주, 새로운 주제와 함께 사진을 통해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고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설레이는 마음 안고 시작했던 포토보이스 수업이 마지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쏜살 같이 지나간 시간들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동안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함께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수업이 시작한 첫 째날은 돌잔치로 줌머족 분들께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대접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부족하지만 난센 식구들이 직접 요리를 준비해서 줌머족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할까 합니다.




시간되시는 난센 가족 여러분도 오시어


함께 줌머부모님들과 소통하고, 식사할 수 있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일시: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장소: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 428-2, 2층 JPNK재한줌머연대 사무실







그 외 문의 사항은 02)712-0620, refucenter@gmail.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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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현병철 연임재가, 국가인권위 죽이기 선언
이명박 정권은 반인권, 불통정권으로 길이 남을 것



이명박 대통령이 8월 13일, 현병철씨를 기어이 국가인권위원장에 연임 재가했다. 청와대가 오늘 밝힌 사유는 “그동안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서 시간이 걸렸고 제기된 의혹도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가 전부이다. 

청와대는 귀에 말뚝을 박은 것인가. 국민 무시도 이 정도일 순 없다. 현병철씨는 국민 83%가 반대하고 국회에서 최초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조차 채택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 내부에서도 90%이상이 반대했고 국제사회 우려 여론도 그 어느때보다 드높았다. 과연 무슨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에 임명을 강행한다는 것인가!

결국 이번 결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인권위원회 죽이기 선언이다. 당선자시절부터 국가인권위를 뒤흔들더니 결국 정권 말기까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정권의 권력감시를 해야 할 자리에 이 정권의 반인권 작태와 치부, 부도덕을 감추기 위해 청와대 말만 잘듣는 애완견을 앉히려는 것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긴급행동은 이번 결정을 강력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즉각 재가철회를 요구한다. 현병철씨는 임명된다해도 실제로 어느 국민에게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비정상적인 작동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국민적 비극이며 국가적 낭비이다. 

올림픽처럼 국제인권사회에도 국격이 있다. 국민이 그나마 의지하고 세계적으로 추앙받던 국가인권기구를 이처럼 망가뜨리면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임명강행은 반인권, 불통정권으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일이며 현병철 또한 이명박 정권의 불행한 말로와 같이 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현병철 반대긴급행동은 현병철 연임에 반대했던 국민, 제 시민사회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행보를 끝까지 주시하고 심판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현병철 반대입장을 뒤집고 청와대에 함께 가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한통속으로 분명히 기억하고 국민에 널리 알려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인권무능 무자격 현병철의 자진사퇴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12.8.13.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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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2/08/17 0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난민단체분들
    한국인 인권이나 좀 어떻게 해보세요
    필리핀에서 한해 죽어나가는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아프리카 난민 증가하면 한국 살곳 못됩니다
    인권단체분들 배불르려고 한국을 망하게 할려고 합니까?
    아프리카 에이즈 걸린 사람도 많은데 다 난민신청하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워요
    정말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라는걸 난민단체 분들을 보면서 느낍니다

    • 더불어함께 2012/08/18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포한 님의 글을 보고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요.. 다음에는 꼭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태어나셔서 해당국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주시기를.

    • 아딜 2012/09/06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어도단입니다. 일부러 난민단체를 도발하려는 작태로밖에 보이지 않네요. 왜 난민단체에 한국인 인권 문제 해결을 요구합니까? 주소를 지나치게 잘못 찾으셨군요. 배부른다고요?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게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