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비판하는 등 열심히 반독재투쟁 활동을 벌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한국에서 조국을 위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한국정부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이 사람들, 과연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난센에서 기획한 “난민 알리기” 프로젝트 중 하나인 난민지위신청 관련 행정소송 판례소개 첫 번째 순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난민으로 인정되는지, 법무부와 사법부는 어떤 기준으로 그 사람이 난민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하는지, 우리가 알기에는 어려운 점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난민인정기준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준 중 하나인 ‘판례’를 짚어본다면, 보다 알기 쉽게 난민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판례는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버마 사람들의 사례입니다. 사건번호 2005구합20993, 자 이제부터 들어가볼까요?


박해와 상관없이 국적국을 떠나 이주한 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버마에서는 1962년에 네 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후 50년 넘게 군부가 집권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일에는 상 하원 43개 선거구와 지역의회 2개 선거구 등 45개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아웅 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는 뉴스가 비중 있게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버마인들은 이주노동과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한국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단체를 꾸리는 경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재판은 버마인 9명이 난민지위신청을 했다가 법무부에 의해 불허처분을 받으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재판이었습니다. 이들은 NLD-LA(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결성과정에 참여했거나 1999년 이후에 가입한 사람들입니다. 버마 대사관 앞에서 반정부시위를 하는 등 군부독재를 비판했고, 버마의 민주화가 정당하다는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 등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버마 대사관 직원이 비디오로 자신들을 촬영하면서 신원이 노출돼 버마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고, 한국정부가 강제송환을 한다면 버마 정부로부터 가혹한 처벌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다만 이들 중 2명은 조직 NLD-LA 조직 내부에서 활동방법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하면서 조직을 탈퇴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각종시위에는 참여했고, 버마의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는 활동과 잡지 발행, 강연 기고 등의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난민지위신청을 불허한 한국 법무부의 처분은 위법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의 판단은?


이 재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탄압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나라로 떠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 살고 있는 나라에서 조국을 위한 정치적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의 주관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도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였습니다. 원고들의 주장이 모두 인정돼 인용판결로 승소한다면 ‘구체적인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큰 재판이었던 것입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원고들에게 불리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얀마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그로 인해 박해를 받았을 객관적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고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원고들은 8888 항쟁(1988년 8월 8일에 있었던 버마 내 민주화시위)에 학생 신분으로 참여해 지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 원고의 주장만으로는 반정부 활동조직 소속됐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


2.  한국 입국 목적이 산업연수였다. 난민인정신청 당시 NLD-LA 한국지부의 지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 반정부시위 참여횟수도 3~5회에 불과하다.


그런데 원고들에게 유리한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3. 하지만 법무부가 원고들의 난민신청을 5년 넘게 결정을 보류하면서 원고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4.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군사정권 타도’ 슬로건을 외치면서 반정부시위를 해왔고, 미얀마 대사관원이 비디오 촬영을 했다.


5. 원고들과 함께 정치적 활동을 했던 NLD-LA 한국지부 회원 21명 중 8명(1명은 일본에서 난민 인정)의 난민지위가 인정됐다.


6. 미얀마 군사정부는 2003년 이후 NLD의 정치활동을 탄압했다. 원고들의 활동 역시 미얀마 정부에 파악됐을 가능성이 높다.


7. 이미 인정된 난민들과 결합해 활동함으로써, 대한민국에 살던 중 난민이 됐다.


8. 그렇기 때문에 원고 9명 중 8명은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느낄 만하다고 인정된다. 이들은 난민에 해당하며 법무부의 난민지위신청 불허처분은 위법하다.


9. 하지만 원고들 중 1명은 폭행사건으로 인해 제명됐던 전력이 있으며, 재가입 후 2차 제명되기도 했다. 활동기간도 짧으며 적극적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반정부활동보다는 자신의 장래를 위한 준비에 더 치중했기 때문에 난민에 해당되지 않는다. 법무부의 난민지위신청 불허처분은 적법하다.


난민협약 난민 요건과 출입국관리법상 난민인정행위 성격


판결에서 중요한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태어난 나라에서 떠나올 때 난민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서 진지한 정치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태어난 나라에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생겼다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다.”


특히 법무부가 처분을 장기간 끌었다는 점까지 지적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된 법적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로 짚어볼 것은 ‘난민협약’과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서 말하는 난민의 뜻입니다.


1.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2.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3.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이 조항들은 출입국관리법 제2조에도 그대로 규정됩니다.


그런데 이 조약들은 ‘선언적 규정’이지 ‘창설적 규정’이 아닙니다. 즉 명문에만 나오는 규정이지 그 자체로 구체적인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건을 충족하면 즉시 난민협약에서 규정하는 난민이 되지만, 모든 난민을 항상 받아들여 보호할 의무는 없고, 보호의 여부와 체류지위 부여는 협약에 가입한 나라가 스스로 주권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 됩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2 제1항이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부터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의 인정에 관한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외국인이 난민임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에는 난민인정 신청을 할 때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만 있지,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에게는 어떤 체류지위를 부여할지에 대해서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적법한 체류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난민을 비호하는 취지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따로 규정을 둘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무부가 주관하는 난민인정행위는 단순히 “이 사람이 난민의 조건을 갖췄는지에 대해서 판단”하는 정도가 아니라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설권행위(특정인에게 권리와 능력을 부여하고 포괄적인 법률관계를 설정해주는 행위)를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난민으로 인정되는지를 심사하면서 국내법에 맞게 비호할 것인지, 제3국으로 강제로 출국시킬지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강제 출국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국적국으로 송환하는 것은 난민협약 제33조 제1호에 의해서 금지됩니다.


법무부가 행정기관으로서 난민의 요건을 갖췄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 판단을 하는데에 잘못이 있거나, 혹은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 처분은 위법하기 때문에 취소의 대상이 되는겁니다.


이 재판의 경우, 법무부는 난민지위인정심사를 5년간 끌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위법이 있었고, 원고들은 그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민주화 시위 활동을 하면서 난민의 지위를 얻는 요건을 만들어나간 것입니다.


결론


재판부 스스로도 이 판결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거주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같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서 거주국에 체제 중에 난민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하나의 구체적인 선례가 될 수 있을 것.”


보통 재판에 있어서 판례는 선례의 의미를 갖습니다. 기속력까지 담보하는 근거는 아니지만, 이후에 비슷한 종류의 재판이 또 있을 경우 재판부와 원고-피고 모두에게 참고할 수 있는 사례이자 재판과정에서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태어난 나라에서 박해를 받아 지금 살고 있는 나라로 온 것이 아니더라도, 살고 있는 나라에서 했던 행동으로 인해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를 느낄만 한 박해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난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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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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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민주 공화국


아프리카 대륙의 혼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작스럽게 유럽 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종족 갈등 등의 다양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내전과 독재가 이어지면서 비롯됩니다. 과거에 '자이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콩고 민주공화국도 그렇습니다.


콩고 민주 공화국(이하 '킨샤사 콩고')은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나라입니다. 1960년에 벨기에로부터 독립했고,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1965년에 모부투가 쿠데타를 일으켜 32년 간 독재의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다가 1994년에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분쟁이 벌어지면서, 르완다 난민들이 콩고로 대량 유입합니다. 모부투는 투치족을 대량학살함으로써, 내전이 확산됩니다. 투치족의 일족 바냐물량게족 중심의 반정부조직 콩고해방민주세력연합(ADFL)이 반군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로랭 카빌라가 이끄는 이 조직은 1997년에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혼란이 여전히 지속되는 가운데 로랭 카빌라가 암살됐고,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가 집권합니다. 물론, 상황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소년병 등을 비롯한 강제징집과 각종 권리와 자유의 탄압, 이어지는 내전 등 정부군과 반군 가릴 것 없이 민간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여전했던 것입니다.


2002년부터 평화협정과 과도정부 구성 및 통합군대 구성 합의 등을 놓고 협상을 벌였고, 그래서 2006년에는 헌법 개정과 함께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조셉 카빌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이번 소개할 판례는 바로 이 킨샤사 콩고에서 온 7명의 난민지위신청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입니다. 사건번호는 2005구합21859입니다.


원고들의 상황


원고는 모두 7명입니다. 남성 5명이며 여성은 2명입니다. 각각 1999년 10월 9일에서 2000년 9월 13일 사이에 각각 입국했고, 2000년 11월 27일에 난민지위신청을 했습니다. 이들이 각각 주장한 자신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고 1 - 민간 방송국 KTM(Kinshash Television Malibu)에서 카메라맨으로 근무하면서, 소년병 강제징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고, 이것이 TV에 방영되었다. 민간 비디오 촬영회사에 근무하던 중 이 다큐멘터리 때문에 정부군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 그러다가 어느 백인의 도움으로 킨샤사 콩고를 탈출해 한국으로 왔다. 아버지는 모부투 정권에서 감사직을 지내다가 카빌라 정권 출범 이후 살해됐으며, 대사를 지낸 삼촌도 살해됐다. 여동생 지나 비웨사는 런던으로 탈출해 영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원고 2 - 고마 지역에 거주했다. 1999년 인권단체 드로이츠 트 롬므 인 고마(Droits te L'homme

in GOMA)에 킨샤사 콩고 내 인권 유린에 관한 자료를 제공했다가 납치당하고 고문당하다가 탈출했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다. 인권단체 관계자 중 여러 사람이 노르웨이와 벨기에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형은 1998년에 정부군에게 총살당했고, 남동생은 강제징집을 피해 탄자니아로 피했다.




원고 3 - 킨샤사 교회에서 평일에 청소년들에게 설교와 전도를 했다. "군대에 징집되면 형제와 자매를 죽이는 것으로 기독교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거부해야 한다"고 거듭해서 강조하는 설교를 하다가 1999년에 군인에 의해 납치당하고 폭행당했다. 교인의 도움으로 1999년 10월 9일에 킨샤사를 떠나 한국으로 왔다.




원고 4 - 고마 지역 내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반전(反戰)에 관한 설교를 했다. 반군의 군입대 요구를 거절했다. 1년 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교회 신부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다.




원고 5 - 우간다가 지원하는 반군의 점령 봉쇄 지역인 킨샤사 콩고 동부 북 키부(Kibu) 지역 베니(Bene)시에서 살았다. 1999년 초 4명의 반군으로부터 징집을 강요받았다. 징집을 거부하자 반군 5명이 집에 쳐들어왔고, 그들의 무례함에 대해 호통치던 아버지가 사살당했다. 도망한 뒤, 친구를 통해 3,000 달러 상당의 돈으로 구한 여권과 비행기 표로 한국에 왔다.



원고 6 - 1996년 경 원고4와 결혼했다. 1997년에 남편이 반군으로부터의 징집 강요를 거부한 뒤 보복을 피해 도주했다. 원고6도 그때 고마 지역 내 친구의 집으로 피했다. 1998년 경, 반군이 친구를 위협해 본인이 살고 있는 곳을 알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녀원으로 피했다. 아시아인 수녀의 도움으로 한국에 와서 남편을 만나 난민지위신청을 했다. 



원고 7 - 친구와 함께 킨샤사 중심가에서 신원미상의 군인들에게 납치됐다. 당시 남자 35명, 원고 7 포함 여자 15명, 총 50명이 함께 납치됐다. 남자들은 징집을 강요당했으나 불응했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들은 군인들에게 강간당했다. 탈출 후 아시아인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다. 콩고로 돌아가면 강간당한 여성으로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무장단체에 잡혀 성노예로 자유를 유린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고들의 주장


이렇듯 7명 모두 각자의 배경과 사유를 가지고 난민지위신청을 했다가 거부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1. 난민지위신청 불인정 처분은 했지만, 왜 그런 처분을 했는지 법적 근거와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절차상 하자이며, 독자적인 취소사유다. 곧, 절차상 하자가 있기 때문에 불인정 처분은 취소해야 한다.



2. 킨샤사 콩고의 인권문제는 심각하다. 모부투 독재정권의 탄압과 투치족과의 갈등, 장기간 내부 무장 세력 간 충돌과 주변국의 침략 등으로 인해 민간인 학살과 학대, 강제징집과 거부할 때의 박해, 여성에 대한 납치와 성폭행, 포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체포와 감금, 고문, 협박, 폭행 등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3. 원고 7명 모두 "박해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에 해당한다. 따라서 난민지위신청 불인정 처분은 관련 법해석을 그르친 위법한 결정이다.



'절차적 하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난민지위신청 불인정 처분은 했지만, 왜 그런 처분을 했는지 법적 근거와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절차상 하자"라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행정청이 처분을 하는 과정에는 당사자에게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행정절차법 제23조)


2. 피고는 원고들이 제출한 자료와 진술 및 그 진술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민신청을 불허하는 처분을 한 것으로 보인다. 


3. 그렇기 때문에 처분의 법적 근거를 알기 쉽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은 처분만 보더라도 난민신청이 거부된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행정절차법 제23조를 지켜 처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쉽게 이야기하면, 난민협약상 난민인정에 관한 가장 중요한 요건인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만 봐도 원고들은 거부된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굳이 이유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결과만 봐도 이유를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결로 보입니다. 이 판결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후 난민지위신청자들의 난민불인정처분통지서에는 간단한 불인정처분 사유를 적는 것 외에는 자세한 이유가 적히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음은 원고 개개인이 난민지위 인정 요건을 충족시켰는지에 대한 재판부의 평가입니다. 


원고 1 



1. 난민면담을 할 때는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약 1년동안만 KTM 방송국과 전속계약을 맺어 카메라맨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는 개인적인 비디오 촬영 일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도 없고 내용을 알지도 못한다고 진술했다. 주장의 일관성이 없으며,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오해 때문에 체포되고 고문당했다는 진술도 믿기 어렵다.


2. 1999년 10월에는 허위 KTM 보도증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이용해 여권을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부분이 허위임이 밝혀졌다.


3. 아버지는 모부투 정권 통치기인 1991년에 이미 사망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박해도 없었다.


4. 여동생 GYNA MATSHINGI MUWILA에서 영국 정부로부터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생년월일과 ‘성(姓, Family Name)’의 철자가 달라 동일인이라고 볼 수 없다.


원고 2.



1. 난민면담시 주장과 소송과정에서의 주장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박해 주체가 반군인지 정부군인지, 그리고 왜 박해를 당했는지에 대해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다.


2. 난민면담에서는 1999년 8월말 경 고마 지역 인권단체 사무실 부근에서 반군에게 납치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인권단체 친구를 만나면서 인권단체에 반군이 청년들을 무작위로 체포돼 가는 상황을 국제적으로 알려 줄 것을 요청하러 가는 길이었고, 반군은 원고 2에게 인권단체 직원 여부를 물어본 뒤 반군 가입 종용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군이 원고 2에게 새삼스레 인권단체 직원인지 심문한 것을 보면 원고2의 이전 행위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위로 원고2를 납치한 것으로 보인다. 


3. 난민면담에서는 귀국하면 군대에 가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해 귀국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인권단체 활동에 협력했다"는 이유로원고2가 박해를 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킨샤사 콩고 정부도 원고2에게 이에 관한 의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차별적인 가혹한 처벌이나 박해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4. 콩고 내전 상황에서 강제징집 위험을 피하고자 국내에 입국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협약상 열거된 이유로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고 3.


1. 소송과정에서는 교회에서 징집거부를 주장하는 설교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1년 수차례 있었던 난민면담에서는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 징집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돌아가던 사람들과 정부군에 납치됐다고만 진술했다. 


2. 킨샤사 콩고 정부에 대해 적대행동이나 의견을 표명한 사실이 없다. 군에서 싸우거나 죽는 것이 두렵다고 하는 등 박해사유로 군대징집거부를 제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표현행위로 인한 박해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콩고 내전 상황 자체의 위험을 이유로 콩고를 탈출한 것에 불과하다.



원고 4.


1. 소송과정에서는 교회에서 징집거부를 주장하는 정치적 표현이 담긴 설교를 했고, 반군의 군입대 요구를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고4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2001년 5월 31일 난민면담 당시에는 르완다 반군의 반군 가담 요구를 거절하자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표현행위로 인한 박해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


2. 반군의 징집 요구 거절 사실도 믿기 어려우며, 설령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콩고 사회 일반의 '차별화된 가중된 위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원고 5.



1. 우간다 반군의 강제징집 요구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살해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콩고 내전 상황에서 야기된 일반적 위험에 해당할 뿐이다.


2. 원고가 출국할 당시와는 달리 소송 진행 시점에서는 콩고 내전이 일단락돼 외국군 철수가 대체로 이루어졌다. 주변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가 일부 지역에 있다고 하더라도 콩고 정부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던 당시 상황보다 위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원고 6.



1. 콩고에 있을 당시, 원고4와 약혼만 한 상태로 가족과 함께 살았다.


2. 난민면담시에는 르완다 반군 가담을 거부한 약혼자로 인해 폭행당했으며,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콩고를 떠났고, 남편의 의견에 따라 난민신청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난민협약상 열거된 정치적․사회적 지위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 7. 


1. 길에 서 있다가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고 강간당하면서 징집 강요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콩고 내전 상황에서 야기된 일반적 위험에 해당한다.


2. 주변국과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내전이 일단 끝났다. 정부군에 의한 소년병 징집이 해제되는 등 최소한 정부군이 주도한 무차별 강제징집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정부군 범죄행위 일부에 대한 조사와 재판도 진행중이다.


3. 사회일반으로부터 차별화된 가중된 위험으로서 협약상 원인을 이유로 한 박해라고 볼 만한

차별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인정의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결론은 원고 7명 모두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소송은 기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난민인가"에 대한 구체적 검토


재판부가 제시한 이 판결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난민협약상 난민 요건의 인정 기준 및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문제되는 사안에 적용함으로써, 난민의 인정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하였다.


재판을 거치면서 일부 원고는 허위였거나 과장된 부분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대체로 원고 7명 모두 각자 자신이 살던 나라에서 큰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면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국제적 또는 국내적 무력충돌의 결과로 출신국을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는 자는 협약상 원인에서 비롯된 분쟁이라 하더라도 신청인이 처한 위험이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에서 비롯된 위험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신청인이 협약상 열거된 사회적, 정치적 지위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없어, 난민협약이나 난민의정서에 의한 난민으로 볼 수 없다.


쉽게 이야기하면, 난민지위를 신청하려는 사람을 '콕' 집어 누군가가 박해를 하려고 한다는 명확한 요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결문 속에서도 '일반적인 위험'이라는 표현이 계속 나왔을 것입니다. 이 '일반적인 위험' 이상의 위험에 처한 사람이 난민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 것 같습니다.


난민협약은 난민지위인정에 있어 분명히 "공포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요구합니다. 박해의 원인에 있어서도 "일정한 사회적, 정치적 지위와 관련될 것"과 함께 인종(종족), 종교, 국적(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라는 5가지 요건을 제시합니다. 굉장히 까다로운 요건입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결국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1.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느껴질 만한 상황이어야 한다.


2. 객관적 증거자료를 제시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주장이 일관적이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알려져 있는 사실과 달라서도 안된다.


3. 박해의 원인은 일정한 사회적-정치적 지위와 관련 있어야 하며, 그 지위는 보통 "인종(종족), 종교, 국적(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 5가지이다.


4. 그로 인해 다른 사람도 겪을 수 있는 '일반적인 위험 이상의 위험'을 겪을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 판례는 난민과 관련된 면담에 있어서 쉽게 풀리지 않을 숙제를 제공한 것입니다. 과연 어떤 위험이 '일반적인 위험 이상의 위험'일까요? 통역 등에 있어서 여전히 난민지위신청자들에게는 높은 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부실한 난민 관련 제도 속에서 과연 '일반적인 위험 이상의 위험'이 명백하게 입증될 수 있을까요? 


난민지위 신청자 수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판결문이 말하는 "난민의 인정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하였다"는 의미를 되새겨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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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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