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비판하는 등 열심히 반독재투쟁 활동을 벌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한국에서 조국을 위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한국정부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이 사람들, 과연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난센에서 기획한 “난민 알리기” 프로젝트 중 하나인 난민지위신청 관련 행정소송 판례소개 첫 번째 순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난민으로 인정되는지, 법무부와 사법부는 어떤 기준으로 그 사람이 난민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하는지, 우리가 알기에는 어려운 점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난민인정기준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준 중 하나인 ‘판례’를 짚어본다면, 보다 알기 쉽게 난민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판례는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버마 사람들의 사례입니다. 사건번호 2005구합20993, 자 이제부터 들어가볼까요?
박해와 상관없이 국적국을 떠나 이주한 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버마에서는 1962년에 네 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후 50년 넘게 군부가 집권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일에는 상 하원 43개 선거구와 지역의회 2개 선거구 등 45개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아웅 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는 뉴스가 비중 있게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버마인들은 이주노동과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한국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단체를 꾸리는 경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재판은 버마인 9명이 난민지위신청을 했다가 법무부에 의해 불허처분을 받으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재판이었습니다. 이들은 NLD-LA(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결성과정에 참여했거나 1999년 이후에 가입한 사람들입니다. 버마 대사관 앞에서 반정부시위를 하는 등 군부독재를 비판했고, 버마의 민주화가 정당하다는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 등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버마 대사관 직원이 비디오로 자신들을 촬영하면서 신원이 노출돼 버마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고, 한국정부가 강제송환을 한다면 버마 정부로부터 가혹한 처벌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다만 이들 중 2명은 조직 NLD-LA 조직 내부에서 활동방법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하면서 조직을 탈퇴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각종시위에는 참여했고, 버마의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는 활동과 잡지 발행, 강연 기고 등의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난민지위신청을 불허한 한국 법무부의 처분은 위법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의 판단은?
이 재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탄압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나라로 떠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 살고 있는 나라에서 조국을 위한 정치적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의 주관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도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였습니다. 원고들의 주장이 모두 인정돼 인용판결로 승소한다면 ‘구체적인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큰 재판이었던 것입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원고들에게 불리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얀마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그로 인해 박해를 받았을 객관적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고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원고들은 8888 항쟁(1988년 8월 8일에 있었던 버마 내 민주화시위)에 학생 신분으로 참여해 지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 원고의 주장만으로는 반정부 활동조직 소속됐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
2. 한국 입국 목적이 산업연수였다. 난민인정신청 당시 NLD-LA 한국지부의 지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 반정부시위 참여횟수도 3~5회에 불과하다.
그런데 원고들에게 유리한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3. 하지만 법무부가 원고들의 난민신청을 5년 넘게 결정을 보류하면서 원고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4.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군사정권 타도’ 슬로건을 외치면서 반정부시위를 해왔고, 미얀마 대사관원이 비디오 촬영을 했다.
5. 원고들과 함께 정치적 활동을 했던 NLD-LA 한국지부 회원 21명 중 8명(1명은 일본에서 난민 인정)의 난민지위가 인정됐다.
6. 미얀마 군사정부는 2003년 이후 NLD의 정치활동을 탄압했다. 원고들의 활동 역시 미얀마 정부에 파악됐을 가능성이 높다.
7. 이미 인정된 난민들과 결합해 활동함으로써, 대한민국에 살던 중 난민이 됐다.
8. 그렇기 때문에 원고 9명 중 8명은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느낄 만하다고 인정된다. 이들은 난민에 해당하며 법무부의 난민지위신청 불허처분은 위법하다.
9. 하지만 원고들 중 1명은 폭행사건으로 인해 제명됐던 전력이 있으며, 재가입 후 2차 제명되기도 했다. 활동기간도 짧으며 적극적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반정부활동보다는 자신의 장래를 위한 준비에 더 치중했기 때문에 난민에 해당되지 않는다. 법무부의 난민지위신청 불허처분은 적법하다.
난민협약 난민 요건과 출입국관리법상 난민인정행위 성격
판결에서 중요한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태어난 나라에서 떠나올 때 난민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서 진지한 정치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태어난 나라에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생겼다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다.”
특히 법무부가 처분을 장기간 끌었다는 점까지 지적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된 법적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로 짚어볼 것은 ‘난민협약’과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서 말하는 난민의 뜻입니다.
1.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2.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3.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이 조항들은 출입국관리법 제2조에도 그대로 규정됩니다.
그런데 이 조약들은 ‘선언적 규정’이지 ‘창설적 규정’이 아닙니다. 즉 명문에만 나오는 규정이지 그 자체로 구체적인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건을 충족하면 즉시 난민협약에서 규정하는 난민이 되지만, 모든 난민을 항상 받아들여 보호할 의무는 없고, 보호의 여부와 체류지위 부여는 협약에 가입한 나라가 스스로 주권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 됩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2 제1항이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부터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의 인정에 관한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외국인이 난민임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에는 난민인정 신청을 할 때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만 있지,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에게는 어떤 체류지위를 부여할지에 대해서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적법한 체류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난민을 비호하는 취지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따로 규정을 둘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무부가 주관하는 난민인정행위는 단순히 “이 사람이 난민의 조건을 갖췄는지에 대해서 판단”하는 정도가 아니라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설권행위(특정인에게 권리와 능력을 부여하고 포괄적인 법률관계를 설정해주는 행위)를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난민으로 인정되는지를 심사하면서 국내법에 맞게 비호할 것인지, 제3국으로 강제로 출국시킬지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강제 출국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국적국으로 송환하는 것은 난민협약 제33조 제1호에 의해서 금지됩니다.
법무부가 행정기관으로서 난민의 요건을 갖췄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 판단을 하는데에 잘못이 있거나, 혹은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 처분은 위법하기 때문에 취소의 대상이 되는겁니다.
이 재판의 경우, 법무부는 난민지위인정심사를 5년간 끌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위법이 있었고, 원고들은 그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민주화 시위 활동을 하면서 난민의 지위를 얻는 요건을 만들어나간 것입니다.
결론
재판부 스스로도 이 판결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거주국에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같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서 거주국에 체제 중에 난민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하나의 구체적인 선례가 될 수 있을 것.”
보통 재판에 있어서 판례는 선례의 의미를 갖습니다. 기속력까지 담보하는 근거는 아니지만, 이후에 비슷한 종류의 재판이 또 있을 경우 재판부와 원고-피고 모두에게 참고할 수 있는 사례이자 재판과정에서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태어난 나라에서 박해를 받아 지금 살고 있는 나라로 온 것이 아니더라도, 살고 있는 나라에서 했던 행동으로 인해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를 느낄만 한 박해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난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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