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나 먼 길이 될지

그 누구도 내게 알려 주지 않지만

가슴 속에 숨 쉬는 꿈은

푸른 빛으로

나의 발걸음을 이끌어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어

초라한 모습이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아

어둠을 뚫고 아픔 속을 지나

날아오를 그 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아

눈부시게 반짝거릴 날개로

언젠간 나도 저 태양 너머

무지개를 찾아갈 거야."


한 사내가 죽었다. 

짧다면 짧은 52년의 삶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불렀던 어느 한 사내가 죽었다.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서,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한 사람이라도 도우려 했던 사내였다. 70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 매달 꼬박꼬박 낯 모르는 아이들에게 5~10만원의 후원금을 보냈던 그, 조금이라도 더 후원하기 위해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었던 그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들어둔 4천만원 상당의 종신보험의 수령자 명의도 어린이 후원 재단으로 바꿔놨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죽었다. 음식 배달 후 그릇을 수거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섰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자동차와 충돌해, 이틀 만에 숨을 거둔 것이다.


세상의 각박한 눈으로 봤을 때, 그는 초라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수입이 많지도 않았으며, 고시원 쪽방에서 거주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 꿈은 점점 푸른 색으로, 점점 커지고 있었다. 후원을 받은 어린이들의 감사 편지를 볼 때, 삶의 큰 보람을 느꼈던 그. 그의 고시원 쪽방에는 어린이들이 보낸 감사편지와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곱게 액자로 놓여져 있었다. 바로 그 어린이들이 그가 꿈 꾸었던 '푸른 빛의 꿈'이었다. 


겉으로 보면, 세상 누구보다 외로워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어린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무한한 행복을 느꼈을 그였다. 그 어린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날이야말로 그가 꿈꾸던 '무지개를 찾아간 날'이었을 것이다. 


그는 과연 무지개를 찾아갔을까? 그의 빈소에서는 낯 모를 중년 남성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고인과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계속 되뇌었다.


"돈을 허튼 데에 쓰고 살았다."


고인의 무엇이 그 중년 남성을 하염없이 울며 후회하게 한 것일까? 고인은 과연 '꿈꾸었던 무지개'를 찾아갔을까?


2.


"모두가 날 외면하고

뒤 돌아서 내게 손가락질 하지만
남 모르게 품어왔던 꿈은
푸른 손길로 나의 어깨를 다독여
지금은 가장 낮은 곳에서
눈물을 참고 있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아
어둠을 뚫고 아픔 속을 지나
날아오를 그 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아
눈부시게 반짝거릴 날개로
언젠간 나도 저 태양 너머
무지개를 찾아갈 거야."


그는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7세 때 어머니에게서 버려져 고아원에 갔고, 12세에 고아원을 뛰쳐나왔다.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살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일했다. 구걸, 양조장 허드렛일, 시장 지게꾼, 안해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에게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슴 속에서는 원망만 커져 갔다. 소년원에도 몇 차례 다녀왔고, 어른이 돼서는 술을 마시다가 자신을 무시한다면서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혀 교도소에도 다녀왔다. 원망만큼 커져간 것은 포기였다. 포기는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의 삶은 나날이 황폐해졌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남 모르게 꿈을 품기 시작'했다. 우연히 봤던 모 어린이재단이 발간한 잡지를 보면서였다. 그 잡지에는 자신과 똑같은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며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원망할 삶이 아니었구나. 그는 며칠을 펑펑 울었다. 이미 훌쩍 어른이 됐을 정도로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 그 시간을 과연 제대로 살았는지 후회됐고, 어린이들에게 부끄러워졌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여긴 것일까?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 그의 삶은 변했다.


출소 이후, 그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며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꼬박꼬박 어린이재단에 후원금을 보냈다. 수천만원을 수령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도 수령인을 어린이재단으로 바꿔놓고 열심히 보험료를 냈다. 사후 장기기증도 약속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랬던가? 삶은 먼 길이라고. 먼 길이기 때문에 때때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 자신이 받았던 세상의 설움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어둠을 뚫고 아픔 속을 지나, 날아오를 그날을 위해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코 버리지 않고 이어지는 한, 꿈의 결실은 점점 커진다. 꿈의 결실을 실천하는 삶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3. 


"모든 것엔 기다림이 필요해
그래 내겐 아름다운 꿈이 있잖아
나의 꿈을 위해
내 모든 걸 다 걸을래."


그는 그렇게 기다려왔다. 아름다운 꿈을 위해, 그는 모든 것을 그 꿈을 위해 걸었다. 이 넓디 넓은 세상에서는 한 없이 작은 손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그 작은 손길은 큰 용기와 꿈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아름답다. 그는 그 이치를 알았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영정 사진 속 그의 눈빛은 말했다. 자신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노라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 모르는 이들과 나누며 더 크게 예쁜 풍선으로 만들었던 추억이 있었노라고.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장례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할 뻔 했다. 하지만 그를 안타까워 한 어린이재단에서 장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그의 빈소에는 그의 뜻을 뒤늦게 알고 한달음에 찾아온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의 후원을 받았던 어린이가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돼 빈소를 찾아와 그를 배웅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남 모르는 중년 남성이 찾아와 스스로 "돈을 허튼 데에 쓰고 살았다"고 후회하며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자신도 고아라던 어떤 중년 남성은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며, 자신의 명의로 된 보험금의 수령자를 어린이 재단으로 바꾸었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부모도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였지만, 모두들 그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지난 삶을 후회했다. 교도소 안에서 우연히 신문으로 그의 이야기를 접한 수형자들도 교도소 안에서 작업으로 번 상여금을 후원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모두들 그가 알려준 아름다운 꿈에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그의 빈소를 지키던 중국음식점 주인 아주머니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저씨, 그렇게 외롭게 살더니 죽어서 이렇게 친구가 많이 생겼네."


꿈의 가치를 믿고 말없이 실천하며 기다려왔던 그의 삶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세상은 그래서 아직은 살 만한 곳인지도 모른다.


4. 


"난 쓰러지지 않아
눈물을 딛고 외로움을 견뎌
끝내 웃을 그날을 위해
서두르지 않아
저 먼 곳의 꿈이라고 하여도 
언젠간 분명 저 태양 너머
무지개에 다다를 거야."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실천하는 꿈이 있는 한, 어려움을 만날지언정 쓰러지지는 않는다. 삶이란 끝없는 시련의 연속이어서 누구나 실패를 맛보고 좌절하기 마련이지만, 그 스스로를 굳게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꿈이 있다면 결코 쓰러지는 일은 없다. 그러다 보면 끝내 웃을 날이 온다.


영정사진 속 그의 환한 미소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돌아보았다. 나눔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시야를 좀 더 넓히지 않았고, 낮추지 않았던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그의 뜻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나눔이 주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무지개에 다다른 그는 얼마나 큰 행복을 누려왔던가? 먼 곳의 꿈이라고 하여도, 한 사람 한 사람 뜻을 모아 실천한다면 그 거리는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 


5.


영화 <철가방 우수씨>가 개봉했다. 그의 이야기다. 모든 배우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최수종씨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철가방 우수씨>의 OST 테마곡 <애벌레>가 귓가에 들려온다. 꿈을 위해 기다려 온 '애벌레' 故 김우수씨의 이야기가 그대로 스며든듯한 가사가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6. 


<애벌레>의 노래가 다시 한번 울려퍼진다.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린다.





(박형준 활동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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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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