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관습의 피해자도 난민이 될 수 있다


난민신청자 중에는 각각 태어나고 살던 나라의 관습과 거리가 먼 인생의 선택을 한 후 난민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드시 명문화된 법률이 아니더라도, 종교나 민족에 따라 독특한 관습이 있고 이것이 거의 법과 비슷한 효력을 가진 '규칙'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든 있을 수 있다. 


그중에는 인간의 상식으로 봤을 때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인권에 반하는 관습도 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명기된 명예살인처럼, 이런 관습이 아예 법률로 못 박힌 경우도 있다. 이런 관습이나 법률과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그 나라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진 난민신청자는 타국으로 떠나 난민신청을 한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이런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의 정부가 이 관습을 통제할 수 있는지, 혹시 잘못된 점을 고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케냐 루오족 출신 여성이 아내상속 제도(남편이 사망하면 시동생과 재혼을 하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시동생들이 좌우하는 관습)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건에 대해 우리 법원은 "케냐 정부나 비정부기구가 아내상속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전통이 뿌리 깊이 박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을 주목하며 루오족 출신 여성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관습의 피해자가 난민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쉽게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 굳어진 특정집단의 관습이 때로는 얼마나 무서울지, 그리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어떤 위험을 맞이하는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있다. 윤태호 만화 원작,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다.


타락한 욕망이 만들어낸 조작된 메시아


<이끼>의 주인공은 일찌감치 인연을 끊었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살았던 시골마을로 내려간다. 작품 속 주인공의 아버지 '류목형(허준호)'는 악으로부터 조롱당할 운명을 맞이할 꼭두각시 메시아의 길이 예정돼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류목형은 자신이 쏜 총에 맞아죽은 베트남 여자가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무기력한 메시아 류목형(허준호)


군인으로서 벌였던 살인행위를 회개하고자 귀국 후 가족을 뿌리치고 기도원으로 향한다. 기도원에서 류목형은 메시아로 통한다. 기도원 수련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으며 신(神)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이 현실의 욕망과 굴절돼 만났을 때, 신은 꼭두각시로 조롱당하거나 좌절을 맛본다. 기도원 원장은 기부금이 기도원이 아닌 류목형에게 모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류목형은 그린벨트의 무허가 건물을 바꾸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돈'이라는 현실적 매개체가 개입된 그 순간 기도원 수련생들은 현실적인 기도원 원장을 지지했고, 형사 천용덕(정재영)은 기도원 원장과 짜고 류목형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이후 기도원 수련생들은 집단으로 사망한다. 이 집단사망은 마치 그 유명한 1987년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류목형을 만난 후 하나같이 류목형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천용덕은 류목형의 무서운 감화력과 진심을 알게 된다. 기도원 원장이 '기부금'을 위해 류목형의 능력을 알면서도 적그리스도로 몰아갔다면, 천용덕은 이 판을 확대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형사 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마을을 만들어 자신의 끄나풀인 전과자들을 모아 스스로 이장이 된다. 


천용덕은 마을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른다. 고립된 산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은 외지인에게 그 이상 배타적일 수 없는 닫힌 마을이다. 기도원에서 기부금을 위해 버림받았던 류목형은 더 교묘한 절대자인 천용덕을 만나 더욱 비참한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순수한 이상이 현실의 욕망과 만나 철저하게 패배하는 무기력한 모습 그 자체다. 류목형의 이 무기력함은, 현실과 맞부딪칠 의지 없는 말 뿐인 이상은 교묘하게 정치화되거나 혹은 종교를 가장한 정치화된 관습과 욕망 앞에서는 힘 없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저 먼 곳의 관습이 어떻게 힘을 유지하며 발휘하는지, 류목형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결국 죽었다. 진실의 미스터리를 쥐고 그저 힘없이 죽었다. 그 숙제는 고지식한 아들 류해국(박해일)이 이어받는다.


관습과 싸우고자 했던 자들이 얻는 것


<이끼>의 원작 작가 윤태호는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남긴 숙제를 푸는 류해국의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다.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무서운 분이 있다. 편의상 A라고 지칭하겠다. A가 모 웹사이트 게시판에 자기 사연을 올려놓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검사와 파출소장이라는 기득권층과 지독하게 싸웠고, 이 과정을 게시판에 다 올려놓았다. A는 이 싸움을 하기 위해 이혼당하고 직장도 잃었다. 그 얘기는 작품에 하나도 안 썼다. 나도 그분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더라. 다만, 그런 일을 겪은 A가 도피처라고 할 수 있는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곳에서도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며 원래의 근성이 다시 발현되는 줄거리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두 장면이 떠올랐다. 영지(유선 분)가 창고에서 4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인 장면과 류해국이 잠자려고 하는데 누군가 밖에서 지켜보는 장면. 두 장면을 떠올리며 만화의 콘셉트를 스릴러로 잡았다."    -<오마이뉴스> 2010년 7월 28일자 기사 <"영화 <이끼>, 내 만화와 다르지만 존중"> 중에서


검사와 파출소장이 '기득권층'으로 통하는 것 역시 관습이다. 그들이 '기득권층'이라는 것은 법전 어디에도 명문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관습이다. 저 멀리 케냐에서 온 여성이 자국에서의 관습을 피하고자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낯설지 않은 일이다. '검사'와 '파출소장'과 '사소한 문제'로 '지독하게 싸운' 결과, A라는 남자가 얻은 것은 '이혼'과 '해고'였다. 이유는 다르지만, 똑같지 않은가. 현실의 맥락을 움직이는 관습과의 싸움에 고독하게 나선 개인이 어떻게 당하는지, 작가의 해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 정치화된 관습의 화신 천용덕(정재영)


그리하여 <이끼>는 우리가 충분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죄를 씻으려는 류목형의 의지는 기도원 원장의 물욕과 천용덕의 권력욕을 만나 교묘하게 정치화된 종교이자 관습으로 전락한다. 적어도 그는 누구든 감화시킬 수 있는 신비한 힘이라도 가질 수 있어서 꼭두각시 노릇이나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관습과 싸우고자 할 때 얻는 것은 A라는 남자가 처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로 인해 처한 결과가 그 사람이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박해로 이어지면 그 사람은 바로 난민이다.


정치화되고 종교화된 관습은 무감각하다


한동안 벽지에서 일어나는 각종 성폭행과 이후의 마을 차원의 은폐 사건이 방송매체에서 크게 다뤄진 적이 있었다. <이끼> 역시 그 매개체를 다룬다. 성(性)을 매개로 여성에 대한 억압을 행사하는 관습의 폭력성은 무척이나 일반적이다. 관습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억압을 시도하지만, 은폐된 흑막에는 정치화되고 종교화된 관습을 통해 이득을 얻는 자들의 어긋난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다. <이끼> 속 유일한 여성 등장인물 '영지(유선)'은 그 산 증인이다. 


천용덕을 포함한 마을의 모든 남자들은 영지의 몸을 이용한다. 마을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화되고 종교화되는 관습들이 궁극적으로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의 가장 전형적인 단면이다. 류목형이 특히나 무기력했던 이유는 바로 이 현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류목형'이라는 메시아는 불행히도 현실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현실의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자칭 메시아'나 그 메시아에게 기대를 걸었던 힘 없는 여성이 겪는 무기력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상식과 도덕성이 결여된 관습은 일종의 무감각자다. 힘 없는 자에게 큰 상처를 주며 때로는 목숨을 앗아가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단지 그를 명분으로 배후에 숨은 범죄적 쾌락과 힘을 유지하기 위해 앵무새가 될 따름이다. <이끼> 속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정신적 문제와 함께 삐뚫어진 욕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의 정경, 하지만 그속에서 '이끼'는 자라고 있다.


삼덕기도원 원장은 일찍이 류목형을 일컬어 "가벼운 도둑은 겉을 뺏지만 진짜 악마는 마음을 훔친다"라고 평가했지만,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류목형만을 일컬어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짜 악마는 마음을 훔치지만, 훔치는 과정에서 길을 잃고 본연의 무기력함과 자아도취에 빠져 이도저도 아닌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피해자가 있지만, 류목형은 영지를 구원하지 못했고 스스로 신이라는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아도취에 빠졌을 뿐이다. 


관습의 피해자가 진정어린 친구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다가도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삐뚫어진 욕망과 그로 인한 피해자, 그리고 믿음을 저버린 친구 아닌 친구, 이 모든 것은 악몽이다.


이끼는 우리에게 무엇으로 다가오는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이끼라는 제목이 먼저 들어왔다. 이끼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이끼라는 말을 어느 상황에 쓰는가에 주목했다. '너 이끼 같다. 왜 이리 칙칙하게 사냐'라는 식으로... 그런데 나중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끼가 매우 이로운 식물이더라. 제목을 바꿀까 생각해봤는데 이끼가 주는 싸늘한 어감을 대체할 제목이 마땅치 않아서 밀고 나갔다."


제목이 왜 <이끼>인지에 대한 윤태호 작가의 해명이다. 이끼는 기본적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한 곳에서 자란다. '칙칙하다'라는 느낌, 그리고 음습하다는 느낌이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이끼는 번식력이 좋다. 욕망을 배후로 둔 관습의 정치화와 종교화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파고들지 이 이상 설명할 수 있는 제목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끼>는 만화이자 영화이지만, 대한민국 곳곳에 음습하게 스며든 관습을 다루는 논픽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대한민국만의 이야기일까? 관습을 이용해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 반대로 말해 욕망을 채우기 위해 관습을 정치화하고 종교화하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있다. 케냐 루오족 여성 또한 그로 인한 박해를 피해 대한민국 땅으로 왔다. <이끼>는 그렇듯 우리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다.




 

(박형준 활동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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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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