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


조국에 쿠데타가 일어나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됐고 해당 국가 출신 입국자도 졸지에 무국적자가 돼 공항에서 지낸다는 줄거리의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는 실화다.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1988년 8월~2006년 7월)을 지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의 이야기다. 그의 기구한 인생유전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영국 브래포드 대학에서 3년간 유학생활하며 팔레비 정권에 저항

2. 1975년에 유학비용 장만을 위해 테헤란 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다가 붙잡혀 감옥에 투옥된 후 3~4개월 뒤 추방 (여기까지는 그의 증언이다)

3. 서독, 네덜란드,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영국 등에 망명 신청했으나 거절

4. 1980년 10월 7일에 UNHCR에서 망명 요청 받아들여져 1986년까지 벨기에에 거주

5. 영국으로 가던 중 경유지였던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행 RER 기차역에서 여권 포함 소지품 도난

6. 런던 히드로 공항 간신히 도착했으나 신분 증명 서류 없어서 샤를 드골 공항에 추방

7. 샤를 드골 공항 내 무국적자 체류지역에서 지내게 됨

8. 1992년에 일시 망명자 자격으로 프랑스 입국이 허용됐지만, 프랑스 법원에 의해 다시 공항 여객터미널 체류지역으로 가게 됨

9. 벨기에 정부에 망명 신분회복 요청했으나, "망명자가 자국을 떠나면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벨기에 정부 방침에 따라 거절당함.

10. 1999년 프랑스 정부가 임시 망명여권 부여 후 프랑스 거주 허용. 하지만 영국으로 가고 싶을 뿐이라며 제의 거절. 스스로 이란 사람임을 부인하기 시작.

11. 2006년 7월에 병원 입원 후 현재 프랑스 파리 내 자선단체 제공 쉼터에서 거주중



영화 <터미널>은 공식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모티브만 빌려왔을 뿐, 스스로 난민임을 주장했던 메르한과는 달리 <터미널>의 주인공 빅토르 나보르스키(톰 행크스)는 단순입국자였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르한으로부터 공식적으로 25만 달러에 판권을 구입해 모티브를 설정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샤를 드골 공항에서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


공항 생활에 적응한 그는 공항을 자신의 거처처럼 생각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주변을 청소했다. 공항 직원들도 그에게 편의를 제공해줬다.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낸 그는 일기를 쓰면서 자서전을 썼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판매하는 공항 내 서점에서 그를 알아본 사람들에게 싸인을 요청받기도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비운의 망명객으로서 불운까지 꼬였지만 그 불운마저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면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다.


#2. 빅터 나보르스키


앞서 이야기했듯이, 빅터 나보르스키는 동유럽의 가상국가 크로코지아 출신으로서, 조국에 갑작스런 내전이 일어나 유령국가가 되면서 덩달아 무국적자가 돼 공항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조국의 불안한 미래와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울먹이던 그는 이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여 공항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밥을 사먹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항 내 카트 정리를 자처해 승객들이 미처 챙겨가지 않은 카트 환급금을 챙겨 점심식사를 하는가 하면, 아예 공항 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항 면세점에 이력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그림 솜씨를 발견한 공사 현장 감독에 의해 취직도 하는가 하면, 미모의 스튜어디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 공항에서의 삶을 적응하기 시작하는 빅터 나보르스키


스티븐 스필버그는 <터미널>을 10대 천재사기꾼과 그를 쫓는 FBI요원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구도로 이끌어나간다. 보통 사람과는 뭔가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그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주인공을 내쫓거나 혹은 붙잡기 위해 갖은 방법을 생각해내지만 주인공에게 오히려 말려든다는 식의 이야기다. 톰 행크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FBI 요원으로 출연해 '당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터미널>에서는   정반대의 역할을 맡았다. 지능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려는 사람을 순박함으로써 역으로 골탕먹이는 전형성이 배어 있다.


휴머니즘을 중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것을 전제할 때, <터미널>에서는 그 휴머니즘을 위해 다소 무리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우연과 우연, 또 우연이 이어지고,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 설정들을 끌어들이면서 훈훈함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린 것이다. 물론, 공항이라는 '용광로'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저마다 어떤 사연을 안고 공항을 오고 나가는지를 그린 장면도 있다. 하지만 그 장면에 대한 비중이 지나치게 약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있다. 그조차도 빅터가 공항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보조적 장면이었다.


빅터가 뉴욕에 온 이유는 중요하지만 소박했다.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무국적자와 입국거부자의 실제 현실을 흐리는 억지 설정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가와 사회의 상황에 따라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메시지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입국거부자가 있다. 다음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2009년~2012년 6월까지의 입국거부자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에 대한 결과다.


#3. 입국거부자 현황


다음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2009년~2012년 6월까지의 입국거부자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에 대한 결과다.


 2009년도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1,386

 133

 155

 22

 1,076

 몽 골

 495

 41

 26

 28

 400

 필리핀

 301

 19

 44

 9

 229

 타 이

 2,852

 256

 600

 1

 1,995

 베트남

 250

 19

 36

 8

 187

 러시아(연방)

 187

 8

 11

 16

 152

 기 타

 1940

 155

 351

 33

 1,401

 합 계

 7,411

 631

 1,223

 117

 5,440

                                                                                                 

2010년도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3,415

 394

 392

 38

 2,591

 몽 골

 459

 45

 44

 22

 348

 필리핀

 482

 29

 78

 14

 361

 타 이

 4,747

 306

 548

 2

 3,891

 베트남

 333

 22

 77

 4

 230

 러시아(연방)

 249

 6

 4

 16

 223

 기 타

 1,775

 120

 268

 26

 1,361

 합 계

 11,460

 922

 1,411

 122

 9,005

                                                                                                 


2011년도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3,743

 203

 528

 35

 2,977

 몽 골

 404

 46

 65

 21

 272

 필리핀

 328

 30

 53

 11

 234

 타 이

 4,085

 184

 359

 0

 3,812

 베트남

 276

 23

 87

 6

 160

 러시아(연방)

 270

 6

 5

 11

 248

 기 타

 2,082

 146

 474

 24

 1,438

 합 계

 11,188

 638

 1,571

 108

 8,871

                                                                                                 

2012년 1~6월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2,301

 71

 1,145

 45

 1,040

 몽 골

 347

 34

 103

 27

 183

 필리핀

 270

 8

 69

 14

 179

 타 이

 2,767

 48

 239

 0

 2,480

 베트남

 198

 5

 93

 5

 95

 러시아(연방)

 139

 1

 14

 14

 110

 기 타

 1,570

 87

 685

 39

 759

 합 계

 7,592

 254

 2,348

 144

 4,846

                                       

- 출처 :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정보공개청구 결과


생각보다 많은 숫자다. 입국목적 불분명 사유자들이 늘상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몽골-필리핀-타이-베트남-러시아 연방 등은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출신국가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지만, '기타'에 포함된 수치도 만만치 않게 만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수년간 여러 나라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허됐고, UNHCR에서 간신히 난민으로 인정돼 벨기에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터미널>의 빅터도 실상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난민으로서의 요건을 객관적으로 심사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휴머니즘 코미디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영화 <터미널>의 '빅터'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어필 김종철 변호사님의 <터미널: 영화 이름 혹은 공항 난민신청자의 운명>을 보면 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널>에서 공항 출입국 검색 관리자 '프랭크'는 '빅터'가 난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귀찮을 뿐이다. 난민협약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빅터를 쫓아내기 위해 난민신청서류라면서 엉뚱한 서류를 내밀어 빅터를 강제출국시킬 빌미를 만들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몰래 빠져나갈 기회를 주겠다고 속이면서 CCTV를 움직여 그가 무단으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함으로써, 역시나 강제출국시킬 빌미를 만들고자 한다. 


과연 이것이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입국이 거부된 기타 국적의 1,570명 중 특히 입국목적 불분명 사유자 759명과 위명 여권 소유자 685명 중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단 1명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 휴머니즘을 위한 억지 설정과 우연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터미널>이지만, '빅터'를 쫓아내기 위해 갖은 수를 내는 '프랭크'만큼은 나름의 현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4. 메르한의 스트레스


199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임시 망명여권을 부여받고 거주 자격을 얻었지만, 메르한은 이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영국 귀족 알프레드 경이라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찾아왔다. <터미널>의 빅터는 역경 속에서도 떼 묻지 않은 순수함을 유지하며 해피엔딩을 이끌었지만, 영화는 영화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르한이 18년 동안의 공항에서의 삶을 마치고 간 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독서를 하고 자서전을 쓰고 공항에서의 일상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인 이상 어떻게 스트레스가 없었을까? 말 없이 견뎌냈던 스트레스들이 결국 쌓이고 쌓여 건강상의 문제까지 일으킨 것이다. 


단지 재밌어하고 호기심을 갖기만 했을 뿐 이 부분에 대해서 지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사들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제작사 드림웍스가 <터미널>과 메르한의 관련성에 대해 공식적인 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빅터와 친구가 된 공항의 모든 근무자들이 그를 환송한다. 영화는 영화인 이유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었지만, 현실은 현실로 흘러간다. 입국거부자 속에서 절박한 이유로 난민신청을 위해 입국했던 사람이 과연 하나도 없을까 라는 의문과, 더불어 <터미널>의 이면에서 진실로 자리잡고 있었던 메르한의 스트레스를 짚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현실은 현실인 이유다. 


영화를 살아가는 것은 캐릭터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감정이 있고 때로는 절박할 수 있으며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애써 참아야만 하는 때가 있다. <터미널>에서 짚어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박형준 활동가 작성)

Posted by 난민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