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희롱, 알프레드 히치콕의 맥거핀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 연출을 하면서 맥거핀 기법을 즐겨썼다. 맥거핀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일종의 트릭"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알프레드 히치콕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맥거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문답은 그의 인터뷰 모음집 <히치콕과의 대화>에도 잘 나와있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행 열차를 타고 가다가 한 사람이 선반 위에서 어떤 물건을 발견한다.


A: 선반 위의 저것은 무엇입니까?

B: 저것은 맥거핀입니다.

A: 맥거핀이 뭡니까?

B: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사는 사자를 잡기 위한 도구입니다.

A: 스코틀랜드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B: 아, 그러면 맥거핀은 아무 것도 아니군요.



이것 봐라? B는 A를 가지고 놀았다. 히치콕이 어떻게 맥거핀 기법을 영화에서 활용했는지는 그의 대표작 <싸이코>에 잘 나와있다.


회사 공금 4만 달러를 훔친 여주인공은 차를 타고 도주한다. 불안한 그녀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오토바이를 탄 정복 경찰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가 차를 멈추면 정복 경찰도 오토바이를 멈추고 팔짱을 끼면서 여주인공을 바라본다. 여주인공이 차를 타고 움직이면 다시 정복 경찰도 오토바이를 타면서 그녀를 따라붙는다. 이 알듯모를듯한 추격전은 <싸이코>의 초반부의 핵심이다. 여주인공은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됐을까? 천만에. 여주인공은 스스로 가장 안심하던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다. 히치콕은 "사람이 가장 안심하던 순간 느닷없이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의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려는 충격요법의 연막장치로 맥거핀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 <싸이코>는 관음증과 마더 콤플렉스 등 인간 내면의 음산한 본능을 다뤘다.


맥거핀은 비단 영화에만 활용되지는 않는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인생은 늘 맥거핀이 등장한다. 히치콕이 맥거핀을 강조했던 이유는 인생 자체가 맥거핀이라는 것. 그것을 위해 히치콕은 관객을 희롱하고 가지고 놀았다. 운명은 늘 인간을 가지고 논다. 그것도 꼭 비극을 통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그 유명한 경비행기 장면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아니, 슬프거나 노여워하기 전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삶이 나를 속인다? 당장 벗어나고 싶은 생각부터 들 것이다. 히치콕은 그 본능을 파고든다. 대표작 중 하나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비롯, 히치콕의 영화 속 주인공들 중 상당수가 누명을 쓴 사람인 이유일 것이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아주 유명한 장면은 경비행기가 주인공의 뒤를 쫓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갑작스레 살인 누명을 쓰면서 경찰의 추격 대상이 됐고, FBI까지 꼬여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실마리를 쥔 인물을 옥수수밭에서 만나야 하는데, 웬 경비행기가 꼬여들었다. 경비행기의 경계로부터 피하기 위해 주인공은 이리저리 계속 뛰지만 경비행기는 계속 주인공을 주시하며 날아든다.



-손이 안보일 정도로 뛰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케리 그랜트. 그 뒤를 쫓는 것은 농약살포용 경비행기.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이 경비행기 장면은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진수다.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긴박한 상황이 어우러져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더욱이 이 장면 속 비행기의 동선은 그 항로가 완벽하게 계산됐으며, 캘리포니아 주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농장의 풍경과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장면은 이후 오우삼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벤 에플렉을 파트너로 <페이첵>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비행기가 터널 속 지하철로 바뀌어 오마쥬된다. 경비행기가 주인공을 비웃듯이 헐레벌떡 피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희롱할 때, 우리 스스로가 희롱당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상황으로부터의 희롱에 이은 하늘 위에 떠 있는 존재로부터의 알 수 없는 희롱까지. 운명은 역시 인간을 가지고 논다.



-<페이첵>의 한 장면


<새> 이유 없는 공격으로부터의 희롱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주인공을 이상하게 괴롭히는 매개체가 비행기인 것은 히치콕 개인의 성향과 연관성이 있다. 영화 <새>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히치콕 개인의 성향이다. 히치콕은 '새'를 불길한 상징으로 자주 이용한다. 


<싸이코>에서 살인범 노먼 베이츠의 자택에 뚜렷하게 박제된 새가 관객을 노려보는가 하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는 새를 형상화한 비행기가 나타나 주인공을 괴롭힌다. <새>에서는 아예 새가 무수히 많이 등장해 사람을 괴롭히고 세상을 뒤덮는다. 처음에는 한 두마리부터 시작했지만, 점점 수가 늘어나 세상은 온통 새의 천지가 된다.



- 새는 어느새 집안에 까지 들어와 사람을 공격했다.


이 영화 속 '새'는 형상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무척이나 많다. 접근하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은유되거나 비유될 수 있는 상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화면을 뒤덮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새는 비극의 상징, 희롱의 상징이다. 역시나 운명은 이렇게 또다시 인간을 희롱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비극의 슬픔을 맛본다. 비극은 갑자기 찾아온다. 무엇이 됐든 비극은 사람을 정든 터에서 떠나게 만들며 이별을 맛보게 한다. <새>는 이렇게 난민 키워드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히치콕이 맥거핀을 즐겨 쓰는 이유가 또다시 유추된다. <새>는 영화 자체가 거대한 맥거핀이다. 개인적 취향을 가미해 새를 공포와 공격으로 접근해 비중있게 접근했지만, 실상 히치콕은 영화를 희롱하고 사람을 희롱하기 위해 맥거핀을 즐겨쓴다. 새가 두려운가? 인간이 두려운가? 새는 왜 인간을 공격할까? 혹시 인간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히치콕의 진수,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싸이코>처럼 작심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든 경우를 제외하면, 어쨌든 히치콕 영화도 해피엔딩 공식을 활용한다. 다만 그 엔딩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전개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며, 어떤 기법으로 우리를 희롱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히치콕이 연출한 영화 특유의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히치콕이 보여주는 맥거핀 기법과 희롱은 운명의 장난을 이야기하는 것일 듯하다. 운명이 장난치면 인간은 어떤 미래를 맛볼지 모른다. 그중 대부분은 비극을 맛본다.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 포기할 수 없는 상황들, 그속에서 인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희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물 안 인간 위에 히치콕이 비죽 웃으며 바라보는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히치콕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책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프랑스의 새로운 영화 운동 '누벨 바그'의 기수 프랑수아 트뤼포가 히치콕과 장시간 대담을 나눈 뒤 책으로 정리한 <히치콕과의 대화>다. 히치콕이 바라보는 서스펜스의 세계가 잘 제시돼 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영화를 보고 난 그 순간에는 반전과 클라이맥스를 위한 재미로 작용할지도 몰라도, 결국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 거장의 시선과 손길을 통해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발버둥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합축돼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박형준 활동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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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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