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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심각한 수준의 난민 심사 적체, 난민의 고통은 누가 책임지나

2012년 현재의 난민지위 신청자 수와 심사중인 신청자의 수


2012년 1월부터 5월말까지 난민지위 신청자의 수는 590명이다. 산술적으로 연말까지 약 1,400명이 난민지위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산술대로 진행될 경우, 신청자 수가 역대 최고를 갱신했던 2011년의 1,011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난민법 제정과 맞물려 한국사회에 있어 난민정책은 더 이상 관심 밖 영역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그래프를 볼 필요가 있다.



위 그래프는 심사가 종료되지 않은 난민 신청자들의 수치를 나타낸 것이다. 2009년 1분기에 1,322명 정점에서 2010년 2분기까지 급격하게 수가 줄었고 다시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U자형 그래프가 그려지고 있다. 2011년 신청자 수가 1,011명으로 늘어나면서 심사중인 인원 역시 1,022명으로 집계돼 1천명을 넘겼고, 2012년 5월말 현재 심사중인 인원은 1,264명으로 집계됐다.


2008년부터 2009년 1분기에 이르기까지 심사중인 인원이 1,322명으로 적체됐던 상황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는 심사 대기인원의 적체 때문에 난민심사기간이 보통 3~5년 정도가 소요됐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법무부는 약 1년 사이에 1천여 명 이상의 난민지위 신청자들을 졸속으로 심사해 대기인원을 급감시켰다. 2012년 5월 현재도 당시와 비슷하게 인원이 적체되고 있다. 난민심사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때문에 2009년처럼 졸속 심사 상황도 동시에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꾸준하고 체계적인 심사가 아니라 일시에 무리한 일정으로 난민심사를 진행하면서 일어나는 모순이다. 


심사 적체로 인한 난민지위 신청자의 고통 증가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8 제3항은 "난민인정의 신청을 한 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이 지날 때까지 난민인정 여부가 결정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해서 취업활동을 허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이란 1년이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88조의9 제4항에 규정돼 있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되는 난민법에서는 동법 제40조 제2항을 통해 이 기간을 6개월로 줄였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9에 따르면, 난민 인정 신청자에 대해서도 난민지원시설을 통해 의료지원 및 정착지원을 할 수 있다고 제시돼 있다. 하지만, 단서가 있다. "법무부장관이 지정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다는 것이다. 


난민에 대한 인권친화적 관점의 지원이 아니라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중점에 둔 것이다. 난민법에서는 그 문구가 사라졌지만, 주거시설 지원이나 의료지원에 대해 "하여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로 표현돼 있다. "한다"는 의무사항 규정을 의미하지만, "할 수 있다"는 선택사항이나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취업불허 기간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될 뿐, 체계적인 주거와 의료 지원 등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심사가 적체되면 난민지위 신청자의 고통은 늘어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심사를 기다리는 심리적 고통도 그렇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고통 역시 그에 못지 않게 크다. 난민지위 신청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법무부의 관점은 '체류 연장 목적의 악의적 난민지위 신청'으로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다. 심사가 적체되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고,    그럴수록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위기를 겪는 사람의 수도, 그 시간도 덩달아 늘어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실제로 난민인권센터가  2010년 진행한 『난민을 위한 심리상담 및 실태조사』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심리상담에 앞서 경제적,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리적 스트레스도 바로 한국에서의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야기하는 내담자들이 많았으며, 상담 진행 과정에서도 경제적 어려움과 법적 지위의 불안정 등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심리상담에 앞서 법적․물리적․경제적․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현장의 요청은 한국의 난민보호제도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지적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난민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이전에 해결해야할 더 근본적인 과제는 지나치게 긴 심사기간의 단축이다. 심사기간이 줄어들면 난민신청자가 인권사각지대에 노촐된 고통의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난민신청자 보호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민간영역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도. 


강조했듯이, 그렇다고 심사가 '졸속'으로 진행돼서도 안된다. 한국정부는 난민법 통과 이후 구체적인 시행을 위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며 새로운 행정수요에 적합한 업무 조정과 인원 보강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난민보호제도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난민에 대한 의심의 눈길이 아니라, 난민에 대한 인권친화적 관점과 세심한 이해다. 지나치게 긴 심사기간 때문에 일어나는 난민의 고통을 더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난민 심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인원 보강은 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