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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크리스마스엔 화성에......

지난 2011. 10. 28(금), 난센의 활동가와 인턴들이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다녀왔습니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화성에 크리스마스 카드 한장을 써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인턴 T와 함께요.





R 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 우리 본 지도 꽤 됐잖아. 이제 슬슬 만날 때도 됐는데, 그치?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나는 요즘 난센, 그러니까 난민인권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
얼마 전에는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갔다 왔지.


원래 외국인보호소는 불법체류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를 떠나야 하는 외국인들이 출국 전에 며칠간 머무는 곳이래. 단 며칠간 머무는 곳으로 만들어졌으니까 난민인정을 받기까지(아니면 난민 불인정결정이 확정되기까지) 긴 절차를 거치는 동안 오래 머물러야 하는 난민분들한테는 불편한 부분이 많이 있을 것 같았어. 보호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식사 메뉴로 어떤 것이 나오는지, 입맛에는 맞는지... 궁금한 점들이 많았지. 그래서 어땠냐고? 그게 말이지, 물어보지 못했어.


      "오늘 기분은 어때요?"

이 한 마디 질문에 난민 A씨(편의상 이렇게 부를게)는 면회 시간 대부분을 써 가며 대답했어.

     "아아, 오늘은 기분이 좋아요.(빛나는 눈, 수줍은 웃음) 
      그런데 이 안은 변하는 게 없고 늘 똑같아요. 그래서 가끔 우울할 때도 있어요.(가라앉은 눈빛) 
      다들 잘 지내나요?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다가 누군가 떠오르면 고개를 들고 밝은 표정으로) 
      변호사님은요? 
      지난번 찾아왔던 난센의 인턴들-C인턴은? J는? 사무실에 전화했을 때 통화했던 그 분은?"

A씨는 기억을 뒤적이며 보호소에 찾아와 주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물었어.

그래도 A씨의 이야기를 끊을 수가 없더라구.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거야. 단조로운 보호소 생활을 하다 보니 이야기할 만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단순히 안부만 묻게 될 뿐이라도 말이지.


     "밖은 춥나요?"

A씨의 말에 

     "아니요, 날이 풀려서 오늘은 별로 춥지 않아요."

라고 대답하면서 

     '보호소에 있는 난민분들도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스쳤어.
요즘 날이 정말 좋잖아. 딱 소풍 가기 좋은 날씨. 왜, 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김밥 하나 우물거리면서 하늘 올려다보면, 선홍색 나뭇잎 사이로 깃털같은 구름이 솔솔 흘러가는 거 보이잖아. 너무 맑아서 어쩐지 목이 메는 것 같은 풍경 말이야. (고개 젖히고 먹은 김밥이 목에 걸려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긴 꼭 그런 때 물통 어디 있나 찾아보면 멀리 있는 애가 들고 마시고 있더라...) 게다가 화성은 서울에서 먼 만큼 공기도 맑고, 등 따스하게 햇볕이 쬐고, 거기다 살짝살짝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좋더라구. 우리가 얘기해주는 것보다 그 분들이 직접 느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난민 한 분과의 인터뷰에서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야 했어.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
변호사나 가족은 마주 앉아 긴 시간 동안 면회할 수 있지만, 우리(난센 인턴)같은 사람들은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20분 동안만 면회할 수 있거든. 직접 해 보니까 언어 장벽도 생각보다 큰 거야.


'시간이 좀 짧네...'

하고만 생각했지, 사실 언어 문제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양쪽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까 상대방이 하는 발음을 못 알아듣거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더라구. .


난센이 도와줄 수 있는 경우인지를 판단하려면 필수적으로 물어보아야 하는 질문들이 있고, 대답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의문점도 꽤 있어. 그런데 난민분들은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길고 자세하게, 열성적으로 답하시거든. 마음이 절박한데다 대화할 기회까지 별로 없으니까 더욱 그러시는 것 같아. 다급한 심정에 어쩔수 없이 말을 끊고, 다다다다 질문을 퍼부었어. (그러느라 못 지킨 인터뷰 주의 사항들이 자꾸 생각나ㅠㅠ) 난민분들의 못 다한 이야기가 마음 한켠에서 계속 맴돌았지.



요즘은 누구를 돕는 것에 대해서 틈틈이 생각해. 지난 번에 얘기했을 때 보니까 너도 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던데. 사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도움을 줄 처지인지, 그럴 능력은 되는지도 모르겠고(너나 잘하라는 말이 귀에서 막 울리고) 그렇잖아. 얼마 전에 신문에서 ‘도움을 줄 상대방을 가리지 마라’는 칼럼을 읽었는데, 사실 다 돕고 싶어도 우린 그럴 지위나 능력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결국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도와줄 지를 정해야 하는 거지.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난센이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도 많은가봐. 이의신청 기간을 도과했다거나 난민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말야.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면회 자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왜, 어렵고 힘들고 지쳤을 때, 그래도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힘이 되잖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 그런데 거기에만 너무 신경쓰다 보면 자칫 다른 사람의 문제를 '일거리'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 싶어. 어제 ‘울지마 톤즈’를 봤는데, 이태석 신부님도 그러셨더라. 처음 수단에 갔을 때에는 어떤 일을 할까 계획을 많이 세우셨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가장 중요한 일은 ‘같이 있어주는 것’이더라고.
하하, 너무 거창하게 얘기했나? 나는 그냥 외국인보호소에 하루 다녀온 것뿐인데 말이야.
하지만 결국 난센의 일도 난민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이야기가 제대로 잘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해. 지금 네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는 그 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고 있는 거야.



돌아오는 길에

"작년 크리스마스도 보호소에서 보냈다, 올해 안에 난민으로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는 기대를 내비치던 난민분을 떠올리면서 며칠 전 집으로 날아온 크리스마스카드 카탈로그를 머릿속으로 뒤적여 봤어. 올 크리스마스도 외국인보호소에서 보내게 되더라도, 작은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이 변화 없는 생활에 한 조각 따스한 변화가 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Marc Chagall, Over the Town, 1914-1918)


‘울지마 톤즈’때문에 눈이 부어서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다. 다음에 또 쓸게.

너무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보자. 힘내고, 잘 지내고 가끔 소식 알려줘:)


                                                                                         2011. 10. 31. 
 
                                                                                                 T가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