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Arakan: an open prison for the Rohingya in Burma.

아라칸(Arakan) 북부: 버마(Burma) 로힝야족(Rohingya)의 열린 감옥

By. Chris Lewa

 

버마의 로힝야족을 포함한 여러 소수민족들이 무국적자로 전락하며 박해를 받고 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억압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위해 고향을 떠나 방글라데시로 달아나고 있다. 1978년 그리고 1991-92년에방글라데시로의 대이주가 존재했었다. 대이주가 존재했을 때마다 국제사회는 버마에 압력을 가해 피난민들을 다시받아주도록 설득했고, 본국으로의 송환 - 때로는 강제적 조치로 인해이 뒤따랐다. 하지만 피난민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에서 가까운 버마의 아라칸 북부에 집중되어 거주하고 있는 민족, 언어, 종교적 소수민족으로 그들의 수는 약 72 5천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남아시아계 혈통으로서,방글라데시 국경 너머 치타콩 뱅갈리인들과 동족이며, 언어 역시 유사하다. 대부분의 버마인들이 동아시아계 혈통을 가지고 있고 종교가 불교인데 반해 로힝야족의 종교는 수니 이슬람이다. 1948년 버마의 독립이후, 로힝야족은 서서히 국가건설 과정에서 소외되어 왔다. 

 

                  (출처: Forced Migration Review, Stephen Hendry)


1982
년 시민권법

1982년 버마의 군사지배자들은 새로운 시민권법을 공표했다. 이새로운 시민권법으로 인해 인도계인 또는 중국계인들은 그들의 국적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이 법이 공표되었을때는 1979년 난민본국송환 직후였으며, 이법이 특별히 로힝야인들을배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시되었다. 이전의 1948년시민권법과는 다르게, 1982년 시민권법은 혈통주의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이 법은 시민들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 완전시민 (Full), 연합시민 (associated)그리고 귀화 시민 (naturalized).

완전시민 (Full citizens) 1823년이전, 즉 아라칸 지역에 영국식민화가 시작되기 이전 버마에 정착했던 자들 중 버마정부가 파악한 135개의 소수민족에 속하는 자들이다. 로힝야족은 이 135개의 소수민족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정부는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연합시민(Associate citizenship) 1948년도의시민권법에 따라 시민권을 신청한 자에게만 부여되었다. 버마시민으로 귀화하기(naturalize) 위해서는 결정적 증거라는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이 결정적 증거의 조건충족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버마의 독립이전, 따라서 1948 1 4일이전에버마로 입국하여 정착했고 버마의 공식언어들 중 한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 또는 그들의아이가 버마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몇 안 되는 로힝야족 사람들만이 이러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정부의 지배 아래에 있는 중앙 기관(Central Body)’이 시민권에 관련된 결정을 할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로힝야의 시민권 획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989년에는 세 가지 색깔로나누어진 시민감시카드제도(Colour-coded Citizens Scrutiny Cards, CRCs)가도입 되었다. 핑크색카드는 완전한 시민에게, 파란색카드는연합시민에게 그리고 녹색카드는 귀화한 시민에게 부여되었다. 로힝야족은 어떤 카드도 발급 받지 못했다. 1995년에 UNHCR에 의해 로힝야족의 공식서류발급을 위한 집중적인변호가 시작되었고, 이에 대응하여 버마 공식기관들은 1949 Residents of Burma Registration Act에 따라 로힝야족에게 하얀색의 일시등록카드(Temporary Registration Crad, TRC)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로힝야족에게 부여된 이 하얀색 카드에는 소지자의 출생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시민권을 주장하기 위해사용될 수 없다. 버마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가족들이 소지하고 있는 가족 목록에도 가족구성원의 이름과생일만이 기재되어 있다. 이 목록에는 출생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버마에서 태어났다는 어떠한공식기록으로도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무국적자 상태는 지속된다.

 

로힝야족은 외국인도, 그렇다고 해서 자국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버마정부는 로힝야족을 무국적자로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하며  미얀마거주인이라는 특별한 분류를 마련하고 있으나 이는 법적인 지위는 아니다. 하지만 버마정부는 여러 번에 걸쳐 그들을 방글라데시로부터 온 불법이주자라고 묘사했다. 1998년 버마의 당시 수상인 킨 뉸(Khin Nyunt) UNHCR에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로힝야족은 본래 미얀마출신이 아닌데 그들 본국의 인구압(populationpressure)으로 인해 불법적으로 미얀마로 이주해 온 것이다.” 그리고 2009 2, 국유 신문인미얀마의 새 빛 (New Light of Myanmar)’의한 기사에서는 미얀마에 로힝야라는 이름을 가진 민족은 없다.” 라고쓰기도 하였다.

 

국적박탈은 독재체제와 로힝야족을 향한 차별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핵심전략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로힝야인들의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엄격하게 제한되었고, 로힝야인들은 교육 그리고 행정을 포함한 분야에서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994년에는 공공기관들은 더 이상 로힝야족의 아이들에게 출생증명서를발급하지 않았다. 90년대 후반에는 결혼허가제도가 필수화되었고 위법시에는 장기간의 형을 복역해야만 했다. 버마에서 행해지고 있는 강제노동, 세금강제징수, 그리고 토지몰수 등의 강제적 조치들은 로힝야족에게 차별적으로 부과되고 있다.

 

 

이동의 제한

로힝야족은 사실상 거의 그들의 마을에 감금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웃마을을 방문할 때조차도 여행증 (travel pass) 를 신청해야 한다. 북아라칸 지역으로의 여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수도인 시트웨 (Sittwe) 조차도 출입금지로 지정되어있다. 로힝야족에 대한 엄격한 이동제한으로 인해 그들의 시장, 고용기회, 고등교육, 보건기관 등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가져온다. 만약 로힝야족이 만료일이 지난 여행증으로 이동을 했을 경우,가족 목록에서 그들의 이름이 삭제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갈 수 조차 없다. 이러한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그들의 행정기록이 사라지고 강제로 버마를 떠나야만 한다. 몇 로힝야인들은 허가없이 여행한 대가로 국가안보법에 따라 고발당하기도 했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로 이동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시트웨 (Sittwe)로 가는 것보다는 국경지대마을에서 여행증을 발급받은 후 몰래 방글라데시로 가는 것이 더 간단하다고알려져 있다. 만약 이렇게 방글라데시로 밀입국한 것이 적발될 시에는 징역형에 처해진다.

 

방글라데시에서의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방글라데시로 밀입국한 많은 환자들은 다시는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리는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고향에 없을 때 그들의 이름은 가족리스트에서 삭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로힝야인이 한번 버마를 떠나게 되면 실질적으로 다시 자신들의 고향인 버마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는 박탈당하게된다.

   

                  (출처: Forced Migration Review, Suthep Kritsanavarin)


결혼허가제도

1990년 북 아라칸 지역에서는 결혼허가제도라는 지역법이 도입되었다.이 법은 거의 무슬림 인구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서 만약 커플이 결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지방 정부 당국으로부터(보통 버마 국경 보안 당국인 나사카에서) 공식적인 혼인허가를 받아야만한다. 혼인허가 신청을 위해서는 수수료와 뇌물을 내야 하는데 이것은 금전적으로 굉장히 부담이 되는 일이고또한 이 허가를 받기 위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지방정부당국은 동거, 혼외동거, 또는 성관계도 금지하고 있다. 이 지역법은 국내법에 의해 지원되지는 않지만 위배 시 10년 이상의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2005년 버마 국경 보안 당국인 나사카가 재개편 되고 킨 뉸이 수상직에서 해임됨에 따라 결혼 허가신청들이완전히 중단되었다. 다시 허가발행을 시작하던 2005년 후반에는부부가 2명 이상의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데 동의하는 조건 사항이 추가되었다. 결혼허가를 받기 위해 드는 시간과 뇌물의 금액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한 결과는특히 여성들에게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공식 결혼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임신한 로힝야족 여성들은버마의 뒷골목 불법 시술소에서 낙태를 받고 있다. 아이를 출산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아이를합법적으로 결혼한 부부들, 때로는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의자식으로 등록하고 있다. 몇몇 여성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그곳에 버리기도 한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많은 아이들이 공적 기관에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또한 결혼 허가를 받지 못한 많은 젊은 커플들은 함께 살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도피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서비스

시민권을 가지지못한 로힝야인들은 교육 그리고 의료분야의 정부 공무원으로 일할 수가 없으며 특히 북 아라칸 지역의 이러한 공공서비스는 형편없이 방치된 상태이다. 대부분 그 지역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라카인족 사람들이나 버마인들이 학교나 의료서비스업계에 종사하고 있는데로힝야족은 그러한 직원들로부터 종종 멸시를 당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이 종교가 무슬림인 사람들을 산파나조산원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소수의 로힝야인들이 공립학교에 근무하고 있지만 그들은공식적으로 유급 채용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을 위한 일 (food-for-work program)’이라는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일하며 월급 대신 쌀로 급여를 받고 있다.

 

이동의 제한은 교육과 보건 혜택을받을 수 있는 기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로힝야인들은 긴급 상황일 때조차도 시설이 열악한 지역 병원을찾아가기 위해 여행증을 신청한다. 더 나은 의료 시설이 있는 시트웨 병원으로의 접근은 허락되지 않는다. 위중한 환자를 전문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결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치료를받기도 하지만, 종종 그들은 마을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북 아라칸 지역의 몇 되지 않는 고등학교에 다니기위해 학생들은 마을 밖으로 이동하기 위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유일한 대학은 시트웨에 있다. 2001년 이후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못했고, 시험을 볼때에만 시트웨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가되는, 원격 교육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러나 2005년 이후에는 이조차도 폐지되었다. 당연한 결과로, 로힝야족의 문맹률은 무려 80퍼센트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형태의 박해로 인한 복합적인 영향은 로힝야인들을 극심한 가난으로 몰아넣었고, 낮은 삶의 질은 정신적스트레스를 초래하여, 그들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망명

방글라데시의 두캠프에는 약 28천명의 로힝야인들이 지내고 있으며 그들은난민지위를 인정받아 UNHCR의 도움과 제한된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캠프 밖에 살고 있는 로힝야인들의 수는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방글라데시는 이들을 불법 이민자로인식하고 있으며 그 어떤 공식적인 보호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의불확실한 지위, 그리고 버마에서의 무국적자 상태로 인해 로힝야인들은 무기한 구금의 위험에 처해있다. 수백 명의 로힝야인들은 불법 입국으로 인해 체포되어 방글라데시 감옥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은 여전히 재판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는 때로는 몇 년씩 걸리기도한다. 많은 이들은 형량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버마가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석방되어 추방될 수가 없으며 계속 여전히 감옥에 남아있다 – ‘석방된죄수들(released prisoners)’로 불린다.

 

수천 명의 로힝야인들은방글라데시를 환승 국가로 삼아 다른 해외지역인 중동지역, 또는 말레이시아 등으로 피난하고 있다. 무국적 상태와 그 어떤 공식서류도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는 위험한 불법 이주만이 유일한 기회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악랄한 밀수범들 또는 밀매자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으며 또한 보트를 타고 불법 이주를 해야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나 태국에서로힝야인들은 그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엄격한 이민 단속에 의해 체포되어 결국은 비공식적으로강제추방을 당하고 있다. 버마가 로힝야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태국은 때로는 비공식적으로 로힝야인들을배에 태운 후 반란군들이 지배하고 있는 버마의 국경지대로 추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보통 로힝야인들을브로커들에게 넘겨 태국의 국경 너머로 추방하고 있다. 브로커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는 대가로 그들은 다시태국이나 말레이시아로 밀입국하며, 수수료를 지불할 수 없는 이들은 고기잡이 배 또는 농장에 노예로 팔려가고있다.

 

200812월 태국은 로힝야족 선상 난민(boat people)들을 공해로 다시 돌려보내는 정책을 도입했다. 최소한세 번의 사건에서 1,200명의 선상난민들은 태국 해안 무인도의 군인들에게 넘겨졌고 학대당한 후 물과음식도 배급 받지 못한 상태로 다시 보트에 태워져 쫓겨나야만 했다. 2주 동안 표류한 후, 배 세 척이 마침내 인도의 안다만과 니코바르섬에서, 두 척은 인도네시아의 아체 현에서 구조되었다. 300명이상의 선상난민이 실종되었으며, 익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힝야족에게 일시등록카드(TRC)를 발급하는 것은 ‘시민권을 향한 첫 번째 단계’로 평가되고 있다. 2008510일로힝야족은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새롭게 인정된 헌법에서는 로힝야족의 시민권을부여하겠다는 그 어떠한 조항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가까운 미래에 로힝야족을 버마의 시민으로 인정하려는정치적 의사는 없는 듯하다.

 

우리 로힝야인들은 새장 속의 새들과 같다. 하지만, 새장에갇힌 새들은 먹이라도 얻어먹지만, 우리는 스스로 투쟁해야만 한다.” –북 아라칸의 마웅도우(Maungdaw), 로힝야 마을 주민

 

 

권고

2007 4 2, 여섯 개의유엔 특별 조사위원회는 로힝야족의 현재 상황과 버마정부를 향한 권고가 담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l 국가는 어린이 권리 조약의 제 7조항과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의 제 9조항을 포함하는 국제적 인권 수행의 법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1982년시민법을 폐지 또는 개정할 것.

 

      l  북 라킨 [아라칸] 지역의 무슬림 소수민족을 향한차별적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를 마련하고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받지 않을 것을 보장할 것.

 

또한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은 로힝야인들이난민으로서 합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효율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Chris Lewa(chris.lewa@gmail.com) 는 버마의 지역 NGO 인 아라칸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이다. NGO 는 보고서 출판 또는 연구활동 등을 통해 로힝야 소수민족들의 실태를 알리고 보호하는 역할을 당담하고 있다.

 

 

우리의 발 아래에 토양은 없다.

By. Kristy Crabtree

 

사람이 북적거리는 진흙투성이의 방글라데시 캠프에서 Jhora Shama 는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를들려주었다. Jhora는 방글라데시에 불법으로 16년간 살고있는 로힝야 족으로 등록되지 않은 난민이다. 버마 아라칸에서 가족 농장과 가축을 압수당하고 그녀의 남편이고문당한 후 Jhora는 방글라데시로 도피해 왔다. 남편은말레이시아에서 일하며 돈을 보내주고 있지만 그 돈으로 살아가기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녀의 가족들은 종종자러 가기 전 굶주림과 싸워야 한다. Jhora는 방글라데시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할수가 없고 항상 거리로 나와 구걸해야 한다. 이 곳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을가정부로 고용해 줄 가족을 찾고 있다.

 

미등록의 난민들이 살고 있는 캠프의 수준은 최소한의 국제보호 기준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며, 등록된 캠프에서 사는 이들도 최악의 상태에서 17년을 보낸 이후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개선된 점을 보고있다.

 

그들은 실향 상태 해결에 대한 희망이나 자립을 위한 수단도 없이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다. 또다른 난민인, Abu Khatul은 자신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며 통탄한다. “ 이 곳 방글라데시에서 우리들은 시간만 죽이고 있다. 과연 이것이삶인가? 우리의 발 아래에 토양은 없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것이 아니고 이 삶은 너무나도 막연하다. 우리는 버마로 돌아갈 수도 없어 이곳에 있지만,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원이 없으며, 우리의 필요는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다른 미래를, 다른 나라에서 살기를 희망할 뿐이다.

 

 

                  (출처: Forced Migration Review, G M B Akash) 

글쓴이: Kristy Crabtree (kcrabtree@episcopalchurch.org)EpiscopalMigration Ministries (http://ecusa.anglican.org/emn.htm) 의 프로그램 매니저 어시스턴트이다.



출처: Lewa, C. (2009) “North Arakan: an open prison for the Rohingya in Burma,”
         Forced Migration Reviw (32), pp.11-14

번역: 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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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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