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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2010. 09. 03.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

  지난 9월 3일, 금요일에 국장님과 새로 들어온 4기 인턴 중 가람씨와 병주씨가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침에 비가 와서 그랬는지 아무도 카메라를 챙기지 못했어요!ㅠ^ㅠ 사진이 없어 참 아쉽네요. 사진으로 본 청주외국인보호소처럼 높은 벽은 없었지만 면접실에 들어서면 정말 이곳이 '보호'하는 곳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ㄷㄷㄷ'-'

  열 시가 넘어 도착한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총 7명의 난민을 만났습니다. 잠시 병주씨가 쓴 그 날의 느낌을 읽어볼까요?:-)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5번 면회실로 들어오는 A씨의 얼굴은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한데 잠을 잔 것처럼 왼쪽 입꼬리만 비정상적으로 아래로 내려와 있었고 전체적인 표정은 침울하기 이를 데 없었다. A씨를 처음 보는 나와 가람씨가 그의 얼굴을 살피는 동안 사무국장님은 짧은 탄식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인도에서 온 A씨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를 받고있던 중인 8월 25일, 왼쪽 안면에 마비가 왔다고 했다. 왼쪽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 흘러내려 연신 휴지로 눈물을 찍어 냈다. 왼쪽 목도 잘 움직이지 않고 식사는 오른쪽 이로만 한다고 그는 짧은 영어 단어와 손짓으로 알려 왔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스트레스로 인해 안면에 마비가 왔는데도 외부의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진찰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진찰을 받기 위해서는 꽤 큰 돈이 필요한데 고향으로부터 도망쳐 온 A씨는 그만한 돈을 갖고 있지 못했다.

  B씨는 면회실에 들어온 후부터 줄곧 울먹이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북한에서 중국을 통해 탈출한 B씨는 현재 사실상 무국적 상태이다. 북한에서의 출생을 증명할만한 자료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중국에서도 그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그녀의 국적이 북한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아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이곳 화성으로 보낸 것이었다.
  역시 법무부의 보호(!)아래 있던 B씨도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녀가 면회를 와도 보호소의 철저한 보호 덕분에 두 겹의 투명 아크릴판과 철창 너머로 마이크나 내부 전화기를 통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자식의 따뜻한 체온조차 느낄 수 없다. B씨는 이런 갇혀있는 생활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우리에게 털어 놓았다.

  그 외에 9월 3일 하루동안 철창 너머로 만난 다른 사람들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안고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법무부는 수용된 외국인에게 제대로 된 의료 지원을 하지 않은 채 정신적, 신체적 고통으로 내몰고 있으면서도 '보호'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자신들의 행태를 포장하고 있다. 적어도 난민들을 고통으로 내몰지 말고 구속으로부터 풀어주고 스트레스와 질병으로부터 그들을 정말로 '보호'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을 마친 후에는 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안산시 다문화 가족 행복 나눔 센터에 잠깐 들렀어요. 난민심리상담과 관련된 설문지를 몇 부 드리고 시설을 구경했는데요, 치과 진료시설과 깔끔한 방을 둘러보며 화성에서 느꼈던 것과는 정반대의 놀라움을 경험했답니다.'-'
  국장님의 꿈과 같은 시설이라는 그 곳! 난민인권센터는 그보다 좋은 시설을 세울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