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 Activities

[기고]'여성인권'과 '난민인권'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여성인권'과 '난민인권'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글: 김선혜, 성과 재생산 포럼 기획위원


2018년 6월 현재 우리는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를 맞이하였지만, 불과 몇 달 전 일촉즉발 전쟁의 위협을 목도하였다. 모든 미국의 미디어는 하루종일 금방이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시작될것 처럼 보도하고 있는 그 때에, 정말로 많은 미국 사람들은 왜 한국 사람들은 이토록 담담한가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오랜기간 누적된 긴장과 공포, 전쟁이 정말로 실현될 것에 대해서 상상조차 하기 싫은 마음은 단지 그 상황에서 익숙해져서 무감해진 것은 아닐것이다. 한국을 떠나 살다보니 이런 상상을 곧잘 하게 되는데, 만약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항이 폐쇄되기 전에 잽싸게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혹은 가족들이라도 빨리 오라고 해야하는 것인가와 같은 사실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해서 혼자 실없이 고민하게 된다. 만약에 전쟁이 정말로 일어나서 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졸업을 해서 비자는 만료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비자를 갱신할 방법이 없다면 현재의 트럼프 정권 아래서 나의 상태는 금방 추방되어야할 범죄자가 되거나, 힘들게 난민 지위를 획득할 수 있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다.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살고있지는 않지만 난민이 되는게 사실 별 것이 아니며, 지구상 많은 사람들이 난민이었거나 난민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혹은 난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비단 하루아침의 일은 아닐 것이나, 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과 관련된 논란들은 지난 십년간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쏟아부은 엄청난 예산들과 무수한 정책들의 실패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이주한 여성들을 한국며느리 혹은 한국어머니 만들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말로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지에 대해서 한국의 ‘선주민’들은 지난 십년간 배운바가 별로 없는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저출산, 고령화, 인구절벽의 암울한 인구부족의 미래가 보도되는 나라에서, 청년들이여 해외취업을 하라며 정부가 나서서 부추기는 나라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난민 그리고 무슬림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 차별, 혐오를 재생산하는 데에 ‘여성의 안전’ 수사가 적극적으로 차용되고 있는 상황은 참담하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를 정당화해왔던 강력한 이데올로기중에 하나가 식민지국가의 문화적 후진성, 야만성, 가부장적 문화의 강조이다. 예멘 난민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현재 적극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정보가 조혼풍습이라는것은 우연만은 아닐것이다. 열살도 안 된 어린 아이가 마흔이 넘은 남성과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고, 강간으로 인한 출혈로 죽었다는 기사들은 그 선정성 때문에 여초카페와 맘카페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으며, 그토록 위험하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남성들로부터 여성들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이 재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예멘의 조혼풍습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사회의 페미니스트들과 다양한 조직의 액티비스트들에 의해서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었다는 사실, 전쟁 직전에는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다는 사실, 조혼방지를 위한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이었다는 사실, 내전으로 인한 심각한 기아 상황에서 최근 몇년 조혼이 급속도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 전쟁이 왜 발생했는지, 영국과 미국이 그 전쟁에 얼마나 많은 무기판매로 돈을 벌고 있는지와 같은 사실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에서 낮은 여성의 지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탈역사화한 방식으로 영원히 야만속에서 살고 있는 절대 불변의 후진 타자로 재현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적이다. 여전히 많은 서구의 페미니스트들 - 스스로는 해방되고 독립적인- 에게 동아시아 여성들은 미개한 가부장제와 유교의 영향으로 억압받고 있는 피해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마치 예멘의 조혼풍습처럼 한국이 여아낙태, 기생관광, 위안부, 성형수술과 같은 몇개의 키워드로 정의될 때 문제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어떠한 복잡한 맥락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변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종종 문화적 열등성의 증거로서만 채택되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부풀려진 우려와 달리 한국 정부는 그렇게 난민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엄청나게 낮은 난민 지위 인정비율을 봤을때, 현재 예멘에서 온 난민 지위 신청자들 중에서 몇명이나 한국에 머물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이들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그 실제 이유가 ‘여성의 안전‘을 진심으로 우려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 쫓아내고, 모든 난민 및 잠재적 위협이라 여겨지는 무슬림 남성의 이주를 막는다 하더라도 한국이 여성이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여성인권‘과 ‘난민인권‘의 대결구도가 절대 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마치 그런것 처럼 몰아가고 있는 현상황과, 저 허구적인 대립적 프레임 뒤에 숨어서 ‘손 안 대고 코 풀고 있는’ 집단이 누군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궁리해볼 때인듯 하다.



이 글은 허프포스트에 최초 기고되었습니다.



※ 난민인권센터에서는 난민과 관련된 시민분들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기고글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refucen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