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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

[난민기고] 서울에서 인도적체류지위를 가지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 난민인권센터에서는 한국사회 난민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참여작가를 모시고 있습니다. 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refucenter@gmail.com

※ 본 게시물은 한국 거주 난민의 기고글로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게시물은 난민인권센터와 저자의 허가 없이 무단 편집, 사용이 불가합니다. 



서울에서 인도적체류지위를 가지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글 : 자로스





  벌써 서울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2004년 학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2008년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같은 해 국제 대학원에 입학해, 2010년 국제 협력에 관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2015년 난센의 도움으로, 출입국 관리소 사무소에 제 가족의 상황을 보고하게 되었고 제 신청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당시 저의 아들 베는 돌도 채 되지 않아 저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생계를 위한 생활비를 벌 수 없었습니다. 출입국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고 아기인 베에 대한 지원이 받아들여져 난민 신청 첫 6개월 동안 매달 40만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했지만, 그 금액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저의 딸은 제가 교육비를 지원할 수 없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집에 가두어두고 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벌려고 일하러 나갔습니다. 우체국에서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밤새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필요한 수만큼 고용했습니다. 당시 저는 5개월 된 아이를 겨우 5살 된 누나에게 맡겨놓고 오후 5시에 나가 다음 날 오전 10시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젖이 불어 옷이 젖은 채 일하러 나가는 저를 어떤 아주머니가 보시고는 제가 젖먹이가 있는 엄마인 줄 알고 제게 말을 거시며 이주민 센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여성 이주민 센터로 이사했습니다. 이주민 센터에서는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 받았기 때문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거의 1년을 지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볼 수 없어 점점 더 걱정되었습니다. 제 딸을 학교에 다시 보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아이 둘이 24시간 동안 저와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딸 아이는 한국어가 유창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면서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리고 센터에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만 있어서인지 아기처럼 굴기 시작했습니다. 난민 신청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자 제 아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끊겼고 삶은 더 팍팍해졌습니다. 여전히 저는 직업이 없이 센터에서 기본 식사와 잠자리만 제공받았습니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난민인권센터에 연락했고 감사하게도 재정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몇 달 후 봉제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고 같은 달 저희는 여성 이주민 센터를 떠나야 했습니다. 모든 이주민 여성은 센터에서 집 전세금으로 각자 2백만 원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3~4개월에 걸쳐 갚아야 했던 돈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봉제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봉제 일은 육체적으로 정말 고달프고 제 건강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제 아이들은 난민인권센터의 도움으로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가족이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준 한국 정부에 정말 감사합니다. 탄자니아로 돌아가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살아갈 수는 있었을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지금 제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삶은 평화롭습니다. 저는 앞으로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한국 사회와 정부에게 저희의 현재 삶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어 기쁘지만, 지원이 끊기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제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나요? 네, 제 아이들에게는 탄자니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이 아이들은 아무런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도움만 바라보아야 하는 무국적자입니다. 이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나 미래의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 제 딸 리나는 난센의 도움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제가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 때문에 리나는 혼자 있을 수 없어 학교가 끝나면 돌봄 시설에서 지냅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제가 번 돈으로 충당합니다. 리나는 오후 5시부터 돌봄 시설에서 지내다가 집에 돌아가 제가 올 때까지 3시간 동안 혼자 지냅니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리나는 선생님에게 울면서 소리친답니다. “집에 혼자 있어야 해요. 집에 가기 싫어요…” 돌봄 선생님은 제게 동사무소에 가서 리나가 추가 비용 없이 8시 이후에도 시설에 머무를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사무소에 갔을 땐, 정말 떠돌이 개처럼 밖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동사무소는 쓰레기 배출 스티커를 사는 곳이기도 한데 그 이후로 저는 너무 무서워 그곳에 얼굴을 내밀기도 겁이 납니다. 지금 처분해야 할 TV가 있는데 거기 다시 가서 스티커를 살 생각을 하면… 솔직히 말해 한국인들이 못됐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산 수년 동안 한국 사람들은 제게 가족 이상이었는데 그 사무실에서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그곳이 정부 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아마도 제가 한국말을 잘 못 해서였겠지요?


  한편, 저는 가족의 건강 문제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도적체류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넉넉지 못한 삶은 질병에 더 취약합니다. 저는 의료와 관련한 위급 상황을 세 번 겪었었어요. 두 번은 제 아들, 한 번은 제 딸 때문입니다. 저는 119에 전화를 했고 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제가 계좌에 한 푼도 없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응급상황의 경우에는 환자를 보살피기 전에 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리나는 돈이 없어 제가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직장에서 봉급을 받아 피부과에 정작 데리고 갔을 때는 손과 발에 피부병이 너무 심해져 치료를 더 많이 해야 했지요. 결과적으로 비용은 더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의료보험이 없으면 참 힘듭니다. 특히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제가 한 모든 공부에도 불구하고 전문 직종에 종사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고 쓸 수 없기 때문에 제 비자가 취업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고용하지 않는 직장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봉제 공장에서의 일이 제 건강을 해치고 힘들어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봉급에 비해 많은 시간 일을 합니다. 또, 일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해고 통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수기에는 한 달씩 일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코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받느라 돈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지금은 허리와 위가 안 좋고 가끔 심장도 빨리 뜁니다. 걱정되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무슨 대안이 있겠습니까? 현실이 이렇습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국에는 제가 난민이어서 적절한 직업을 가질 수 없고 한국어가 일할 만큼 유창하지 않아 일할 기회가 없습니다. 저는 정말 봉급은 적게 받더라도 제 커리어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제가 진정 뭔가 일다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배워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제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매일 밤 저 자신에게 던집니다.


  마지막으로 주거문제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취직이 안 되면 집도 없고 버는 돈에서 병원비도 더 지출해야 합니다. 그러니 적절한 집을 구하기 위한 전세금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저희 집은 겨우 살만 한 정도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더 나아질 방법은 없는 것인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전세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진정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이전에 느끼던 차별을 지금은 덜 느낍니다. 처음에는 제 딸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낼지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너무 잘 지냅니다. 저희 동네에 저희가 유일한 흑인이지만 아무도 저희를 보고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현재 저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 보장입니다. 인도적체류자로서 취업 기회가 너무 없습니다. 고용,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문제들을 정부가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가족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것에 대해 한국 정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번역·감수 : 장유진고은지

원문링크 : http://www.nancen.org/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