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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글: 마이클 

 


이름은 마이클이고 53세입니다. 저는 파키스탄에서 온 기독교 신자입니다. 저희 가족은 모두 9명으로 제 아내와 아들, 딸, 며느리, 큰 손자, 그리고 쌍둥이 손자, 손녀와 한국에서 2015년에 태어난 막내 손자가 있습니다.


저의 인생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모든 일은 2002년 12월 5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저의 아버지는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되셨고 저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족과 저에게 큰 충격이었고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장남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 후 모든 책임은 제가 떠맡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첫째여서 아버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상심은 너무 컸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지 막막했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기를 원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진실을 밝히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테러리스트였고 저희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저와 제 가족에게 위험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저와 가족은 기도하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싸울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말했듯이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절차를 밟았지만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모두 미안하지만 도와줄 수가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첫째, 살인자가 테러리스트이고 둘째, 제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지만 희망은 없었고 완전히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고, 제가 경찰서에 다녀온 후 정말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경찰은 심지어 테러리스트를 신고하게 되면 제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저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수 차례 전화를 걸어 제 가족이 몇 명인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며 가족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저희 아파트 창으로 누군가 총을 쐈는데 다행히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 후 2012년에 제 아들이 납치되었습니다. 납치범들은 전화를 걸어와 거금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제 아들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제 능력으로는 마련할 수 없는 금액이었음에도 어떻게 친구들의 도움으로 일부를 구해 건네주고 아들을 돌려받았지만 그들이 요구한 액수보다 적다고 아들을 심하게 구타해서 의식을 잃은 아들을 저희 집 앞에 내려놓고 갔습니다. 저희는 아들이 죽은 줄 알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다행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저의 아들은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전에는 그들이 저의 딸에게 산성 용액을 뿌렸는데 정말 다행히 간발의 차로 딸이 피했습니다. 그 뒤로는 딸도 겁에 질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온 가족은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했고 오직 정의와 평화, 종교의 자유와 생명의 안전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불가능한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국에 있던 저의 목사 친구가 제 얘기를 듣고는 파키스탄에 있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며 자신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저는 제 딸과 아들, 남동생과 함께 한국으로 왔습니다. 3개월 후 제 아내와 며느리 그리고 손주 3명이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저희가 이 곳에 안전하게 도착했으니 이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더 열악한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후 파키스탄에서 가져온 돈을 모두 써버렸습니다. 집도 팔고 가지고 있던 것은 모두 놔두고 왔지만 한국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사람이 배출된 나라이니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친구들에게 빚도 져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난민 신청을 했을 때 일을 못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일을 못하면 끝입니다. 제 딸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데 난민 비자의 문제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홉 명의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고 저와 제 아내는 건강 상의 문제도 있는데 저희는 일을 못하고 제 며느리는 집에서 손주들을 돌보고 제 딸과 아들은 일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5년을 보냈는데 저희 사정을 호소하며 아직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오역으로 모든 게 잘못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슬람교도 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기독교와 관련된 질문들을 했는데 당시 저는 한국어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점심 휴식 시간 15분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된 긴 면담이었습니다. 휴식 시간에도 면담관이 떠나지 않았고 면담이 끝났을 때는 한국어로 쓰여 있는 서류들에 서명을 하라고 해서 저는 법률 서류들이라 생각하고 서명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저희 난민 신청이 기각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왜 출입국 사무소가 난민 인정을 거부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행정법원에 항소했고 거기서 한국 정부가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지만 변호사가 영어로 소통할 수 없어 한번도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몇 달 후 행정법원도 저희 신청을 기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저희는 단 한 번도 법정에 가 본 적도 없었는데 그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탈출한 공포와 고문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막막했습니다.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면 그들은 아버지를 살해한 것처럼 저와 저의 가족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자식들, 손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 평화롭게 숨쉬며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고 공부하고 일하며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제대로 진행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상황은 매일 더 악화만 되어갔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변화는 없고…


또 한편 고등법원에 항소하기 위해서는 수수료가 필요했는데 저와 가족은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적으로 불가능했던 수수료를 구할 수 있었고 저의 난민 지위 신청 건이 고등법원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사건을 변호해 줄 변호사 수임료가 필요했는데 어떻게 변호사를 구할 지도 모르고 수임료를 구할 길도 막막했으나 또 다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기적이 일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분도 영어를 할 수 없어 몇 달 후 우리는 고등법원에서 패소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계속 정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싸워야 했습니다. 저의 건강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움직여 저의 가족을 돌봐야 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대법원에 항소했습니다. 이게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만일 패소하면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돈이 없어 빚을 지거나 친구들이나 교회로부터 도움을 구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 그런데 더 이상 견뎌낼 힘이 없을 때 이런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에 대한 책임이 있고 저의 어머니와 동생과 그의 가족이 제가 처했던 것과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저에게서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데 일은 모두 어그러지고 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저는 너무 상심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일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저와 제 가족의 안전과 삶을 위해 투쟁하면서 한국 정부나 법무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저의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상고되었고 몇몇 좋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저의 난민 지위 신청을 다시 기각했을 때 대법원에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 지도 전혀 몰랐고 기각된 사실도 3개월 후에야 알게 돼 이미 3개월이 지나버려 나머지 3개월 내에 한국에서 머무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아야 했습니다.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저는 재정적으로 완전히 파탄이 났고 난민 비자의 문제 때문에 가족 중 아무도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아는 한 교회 친구가 저에게 얘기하기를 저희의 난민 신청이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된 이유가 제가 출입국 사무소에서 가졌던 면담과 그 때 작성된 문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며 교회도 다니지 않고 실제로 신앙 생활도 하지 않으며 그 외에도 저는 하지도 않은 말들이 잘못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황망했습니다. 이제 가지고 있던 것들은 다 잃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데 온 가족이 일도 돈도 비자도 없다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러 변호사들에게 얘기해 보았지만 모두 저와 가족이 한국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과 일자리와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놔두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면 처하게 될 공포와 위협을 생각하면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습니다. 제가 만난 NGO 사람들과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도와 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제 딸이 아직 미혼이고 예쁜 것을 보고 눈독을 들이고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결혼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것 외에도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를 도와주고 고통을 이해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지 모릅니다.


저와 저의 가족은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정말 마지막으로 시도해보자고 했습니다. 난민 신청자들에게 정의도 생명의 안전도 살 곳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느니 여기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어떻게 제 경우에 난민 신청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다행히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난민 신청 중에  G-1비자를 받았었습니다. 지금은 외국인등록증이나 비자는 없고 여권에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매월 두 번씩 출입국 사무소에 가야 합니다.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저희가 인간이 아닌 듯 쓰레기 취급합니다. 우리가 난민 신청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저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그런 대우는 너무 큰 상처가 됩니다. 저희도 느낄 수 있고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무비자’ 상태로 ‘합법적 체류 기한’을 매월 갱신해야 합니다. 난민 인정 여부를 재 신청한 뒤에 다시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온 가족을 다 불렀습니다. 저와 아내, 아들, 딸, 며느리와 가장 큰 손주가 가서 면담을 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거부하면서 저희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다시 이의신청했습니다.


J, 'Window', pencil on paper, 21x29cm.

 ⓒ The Refugee Art Project 



저희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한국에 살면서 종교의 자유와, 정의,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한국 시민으로 살면서 일하고 평화롭게 숨쉬고 자고 싶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편안하게 잤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없습니다. 그저 한국에서 정당하게 인정받고 파키스탄으로 추방당해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당할 두려움 없이, 비자 문제와 법정 수수료와 변호사 수임료 걱정 없이 새 삶을 가족과 함께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오직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이는 그저 어떤 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저희가 가슴에 담고 있는 고통과 이제까지 겪은 여정은 죽음보다 더 끔찍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아무도 겪지 않기를 희망하며 기도합니다.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저희가 겪은 고통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할 지 모르지만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일이 해결되고 저희의 서러움은 기쁨으로, 고통은 행복으로 바뀌고 언젠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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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및 감수: 장유진, 박경주, 고은지




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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