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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국사회와 난민인권」4강 '에티엔발리바르와 관-국민적 시민권의 정치'참여 시민 후기(글 : 정윤주, 꾸르비)


 

※ 본 글은 시민 기고글로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난민인권센터에서는 난민과 관련된 

시민분들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기고글을 받고있습니다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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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난민인권> 4강 '에티엔발리바르와 관-국민적 시민권의 정치'참여 시민 후기(1)

 

<한국 사회의 관국민적 시민성을 기대하며>


글 : 정윤주(서울대 인권센터 자원활동가)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12)는 엄숙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와 비슷하게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촛불은 광주의 정신 위에서 국민 주권의 시대를 열었다고 역설하였다. 이렇듯 우리는 국민과 주권(sovereignty)을 함께 쓰면서 국민을 주권의 주체로 인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곤 한다. 특히 국민의 권리를 시민의 권리,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권리인 인권(人權)과 혼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국민은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권리를 갖는 사람은 국민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국적을 가지지 못한, 국경위에 서 있는 난민은 당장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료 시민들로부터 2등 시민, 2등 국민으로 여겨지곤 한다. 824일 강의에서 진태원 교수는 난민을 비롯한 소수자와 약소자들이 처한 상황을 에티엔 발리바르라는 철학자의 관점으로 파악하였다.


 

이른바 국민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가. 매 월드컵이며 올림픽마다 한국을 응원하는 애국(愛國)적인 국민들의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물론 개인으로서의 인간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사회를 통해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특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생에 걸쳐 속해 있을 국가 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정체성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통해 여지없이 발현된다. 우리는 국경 안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고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 국민이 되어가는 데에 익숙하다. , 국민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버린, 가장 강력한 형태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개인이 국가를 떠나야 한다면, 떠날 때가 된다면 어떨까. 국가의 질서 밖에 놓인 개인이 만나는 새로운 사회는 그 개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에티엔 발리바르는 국경밖에 놓인 인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틀을 철학적으로 제시한 인물이었다. 그는 묻는다. "국민적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뛰어넘어야 하는가?" 그의 우려대로 한국사회는 국민적 이데올로기, 혹은 한국적 민족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유연성이 부족한 세대들은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고깝게 여긴다. 작년부터 논란이 되어온 익산 할랄 단지 조성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들의 반대시위나, 포털 사이트에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기사가 보도될 때 우리나라는 난민 수용을 반대해야한다며 강한 철벽을 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나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해온 '민족'만이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이 난민, 새로운 사회 구성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경직된 사고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 자국민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순식간에 많은 다문화 사회를 혼란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발리바르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국민 이상의 개념인 세계 시민의 개념을 가져오는 것, 이것이 발리바르의 관국민적 시민성(transnational citizenship)이다. 국적에 제한되어 있는 기존의 국민적 시민권의 개념을 넘어서서 인간이면 누구나 시민임을 인지하고, 시민성을 보편적으로 개방해야 함을 그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계정세의 혼란이 계속됨에 따라 난민의 유입도 많아질 것이고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시민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가운데 기존의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단군의 후손이며 하나의 역사를 공유한 한국어를 모국어로 갖는 황인계열의 사람들- 만으로 적응하면 앞으로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내집단을 좀 더 확대하여 세계 시민, 인간을 우리의 동료 시민으로 바라본다면 이상적인 사회가 될 텐데, 이러한 인식을 교육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에는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난민은 현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지만 그것이 절대 그들의 인간성이나 시민성에 대한 부정이나 의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문화권을 갖고 모인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하루 빨리 대한민국에 정착하기를,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국민보다 더 넓은 시민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길 바라본다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4강 '에티엔발리바르와 관-국민적 시민권의 정치'참여 시민 후기(2)

 

<에티엔 발리바르와 관국민적 시민성 을의 민주주의와 난민문제>


글 : 꾸르비(난민인권센터 회원/자원활동가)


이번 강의에서는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를 통해 국민국가의 한계와 관-국민적 시민권(trans-national citizenship)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trans-national은 초국민적초민족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국민적 전개의 틀을 한정시키지 않고 가로지르기 위해 꿰뚫을 관()’을 써서 관국민적이라고 번역한다.


국민이란 무엇인가


nation의 어원을 고려하면 그 의미는 국민보다 민족에 가깝지만 1950년대에 오면서 국가의 소수민족(예를 들어 중국의 조선족,묘족,만주족등)을 가리키기 위해 이와 구별되는 단어로서 ethnicity, ethnic group이 등장했다.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두 단어 사이의 편차가 매우 적다. 그래서 국민의 자격이나 조건이 마치 민족인 것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많다국민과 민족 사이의 편차를 될 수 있는 한 좁히려고 하는 세력이 대개 극우파이다. 가령 프랑스의 유명한 극우 정당국민전선(front national)’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대중적 지지를 얻어 세력을 확장해왔다. 이것은 유럽 극우파의 전유물로 볼 수 있는데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국민주의와 민족주의는 정치세력의 보편적 공유물로 여겨진다예컨대 중국은 수년간 국민적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한족(중국의 여러 민족 가운데 하나)중심의 국민적 질서곧 민족주의적인 국민국가질서(ethnic nationalism)를 추구해왔다이와 같이 동아시아에서 국민주의와 민족주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힘을 발휘해왔는데 이는 민족주의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수록더 강화된다.이를 바탕으로 최근 5·18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사에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렸다는 문재인 대통령의발언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우선 더이상 국민이 수동적인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정치의 주체가 되었으며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는국민배타성획일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국민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을수록 배타성과 획일성을 교정하고 해체할 기회를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그리고 국민의 의미가 강조될수록 소수자는 국민의 범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진다특히 난, 이주민다문화 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발리바르의 관점에서 본 국민국가 체제의 한계와 시민성


발리바르는 프랑스 정치철학자로 유럽연합의 건설을 난민과 같이 경계에 있는 사람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적 질서, 정치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으로 여겼다, 규모나 범위의 초과같은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양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동체를 추구했다여기서 유럽적 시민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쟁점인데 가장 공식적인 방식은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에게 본국 국적과 유럽연합 국적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이것이 시민권에 대한 관료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국민을 뛰어넘는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게 아니라 국민국가 수준의 배타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예컨대 프랑스나 독일에서 체류하지만 국민이 아닌 사람들은 그동안 국가차원에서 시민권을 제한받는 것에 그쳤지만 만약 유럽연합국적을 못받게 되면 이중으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유럽연합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장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정치공동체를 형성하고 진정한 의미의 유럽적시민권을 실현하려면 국민국가의 고유한 배제구조를 개조해야한다유럽연합 시민권의 핵심은 제도적으로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 넘을 것인가이며 한국이 당면한 과제는 민족적인 것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을의 민주주의와 난민문제


발리바르의 관국민적 시민성 개념은 국민적인 것의 논리와 제도,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시민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관국민적 시민성 개념은 난민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우선난민을 국적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령 데리다식으로 말하면 난민은 국경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리적 의미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에서도 항상 국경 위에 있는 사람이다. 난민은 흔히 국민이라고 불리는 국경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대척점에 있다.

 

또한 국적 없는 사람 또는 국경 위에 있는 사람으로써 난민은 시민으로써의 자격권리혜택에서 배제되고 이는 난민을 인간의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게 한다발리바르는 이를 시민의 권리가 제거되거나 역사적으로 파괴되면 인권 역시 파괴된다아렌트의 정리로 규정한 바 있다인권이 시민권의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적의 유무는 곧 인간의 유무로 직결된다. 인권이 자연발생적이라는 천부인권의 개념이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아렌트의 정리가 지니는 보편적 함의는 인권은 개인 주체가 본성적으로 지닌 자연적 성질이 아니라, 공동의 세계를 구성하는 개인들 즉동료시민들에 의해 보증되고 부여되는 자격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동료시민을 판단하는 기준은 동일 국적의 유무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민이야말로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금석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다음 강의 한나아렌트로 보는 난민문제에서 더 자세한 내용이 이어지니 더이상의 부연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국민으로 불리지만 난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양자 사이에는 여러가지 매개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을의 민주주의라는개념을 착안해 볼 수 있다을은 내적 배제의 대상이 되는 존재인데 내적배제란 경계안에 있지만 경계안으로 통합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경쟁적인 사회구조에서 을의 지위에 놓이도록 강제되는 사람들로 2등 시민, 2등 국민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내적배제의 대상이다.예컨대 소위 갑질을 당하는 사람으로, ‘에는 알바생, 대학원생난민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존재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사회적 연대 조직을 약화 또는 해체하고 나아가 개인들의 소속 관계를 불안정화함으로써(비정규직화,조기 정년,프리랜서,자영업 등) 대다수 개인들을 단자화하고 불안정한 존재들로 만든다이는 수적으로 우세한 을들이 자신들의 독자적인 조직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민이라는 단일한 명칭으로 묶인 존재자들은 사실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 다층적 위계적 권력관계 속에 놓인 이들이다따라서 을의 민주주의가 묻고자 하는 것은 국민주권을 넘어서 아래 쪽에 놓인 약소자/소수자/(정치적)미성년자들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을의 관점에서 국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탈-근대적인 정치를 실현하며 최소한의 인간성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까.

 

매년 장애인 시설에서발생하는 수백명의 자살, 고용허가제로 인해 사업장에서 사실상 노예생활 하는 이주노동 자들의 잇따른 자살. 최근에는 파트너가 미등록체류자라는 이유로 결혼을 할 수 없어 자살시도를 한 시리아 난민까지. 인간성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타살을 당한다. 얼마나 더 많은 인간성이 짓밟혀야 인간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인권의 허구성을 직시하고 동료시민으로써 을(, ,무를 포함한 포괄적 의미의 을)들의 역동적인 종횡적 연대를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이후의 강의에서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해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