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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국사회와 난민인권」2강 '국제협약으로 보는 난민의 정의' 후기(글 : 신일식, 정윤주)

 

 

※ 본 글은 시민 기고글로 난민인권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난민인권센터에서는 난민과 관련된 시민분들의 다양한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자 기고글을 받고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refucenter@gmail.com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2강 '국제협약으로 보는 난민의 정의' 참여 시민 후기(1)

 

<난민과 국제협약 난민의 정의> 강의 후기


글 : 정윤주(서울대 인권센터 자원활동가) / 사진 : 이다은(난센회원/자원활동가)


아무리 언론에서 난민관련 이슈가 등장하고 시리아 난민 아동의 사진이 화제가 되어도, ‘그래도 아직은 내 주위엔 없으니까라는 이유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내 주위에 난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경이 난민과 공존하기에는 너무나 높았던 것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강의를 듣기 전에 나도 편파적인 언론 보도만을 보고 난민이 한국 사회에 위험한 존재지 않을까하며 우려해왔지만 난민에 대한 정의를 법적으로 들여다보는 경험을 통해 난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테러를 피해서 온 동료 시민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전 세계에 난민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6500만 명. 우리나라 인구를 훨씬 뛰어넘는 수이다. 한국에서는 난민관련 협약은 1992, 의정서는 1993년에 비준하여, 과거에는 출입국 관리 법령 하에 난민관련 절차를 만들었다. 국제조약이 비준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출입국관리법에, 외국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취지의 난민 보호 협약이 하위 법으로 명시되면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두 법이 상충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난민법이 최근에 생겼고, 우리는 이 난민보호 조약에 정의되어 있는 난민의 요건을 강의에서 분석함을 통해 난민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난민의 정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한자 의미(難民)에만 집중한다면 난민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우리는 5가지 요건을 중심으로 난민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이 중 하나 혹은 복수에 해당할 경우 난민으로 인정되고그렇지 못하면 공항에서 불회부되거나 인도적 체류를 허가하는 등의 제한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정도로 마무리된다몇 가지 인상 깊은 요건과 사례를 적어보자면첫 번째 요건은 국적국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사실 이게 문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대부분의 난민들은 자신의 나라를 떠난 후에 타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예를 들어 아프리카 국가의 반군의 내전을 피해 어느 한 지역에 몰려서 난민캠프를 만들어 사는 국내 실향민의 경우는 그 국경 안에 있으니 난민 협약상의 난민은 될 수 없다북한이라는 특수한 형제를 갖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특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북한을 일탈해 다른 나라의 난민이 되려 하는 북한 이탈민은 한국 헌법에 한반도를 영토로 규정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난민신청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언뜻 간단해 보이는 규정 안에도 다양한 반례가 있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중압감이 느껴졌다.



출국관리사무소에서 부적격 사유로 많이 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박해를 실제로 받은 경우와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를 구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난민법이 생긴 이유를 떠올려보면, 부당한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국제 시민의 연대로서 보장하자는 것인데, ‘박해 받을 우려는 아직 박해를 당한 것은 아니니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다시 위협으로 시민을 내쫓는 것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런 안타까운 실태는 영어본과 번역본의 의미의 차이에서도 기인한다고 한다. 이런 국제법과 국내법간의 언어의 차이 때문에 번역과 광의의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법에서의 문구 한 글자의 차이로 인해 한명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을 받지 못한다면 그 법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를 좁혀 나가는 노력이 미래 세대에서 난민 인권의 실질적인 개선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으로 난민의 정의에 접근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다양한 반례와 판례로 난민의 정의를 따라가면서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난민 실태에 대해 어떤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최근의 지구는, 국민국가 시스템과 난민을 절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관료제, 군대, 세금 등으로 안정적으로 국민국가로 자리 잡은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과 달리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 국민에게 안정적인 국가로써 기능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난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내외적 환경이 있고 당장 발생하는 난민들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각종 노력이 필요한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난민이라는 인권 취약자가 생기지 않도록 전 세계 국가, 정부의 신뢰를 강화하는 등의 거시적인 노력이 국가 간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음 강의를 기대해본다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2강 '국제협약으로 보는 난민의 정의' 참여 시민 후기(2)


<국제협약 속 난민의 정의와 확장 가능성>


신일식(서울대인권센터 자원활동가) / 사진 : 이다은(난센회원/자원활동가)


법률은 대개 그 첫머리에 제정 목적을 두고, 그 다음 순서에 정의 조항을 둔다. 이 법에서 이야기하는 근로자’, ‘모성’, ‘예술인등 다양한 주체가 법에서 정의된다. 법의 정의에 포함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법이 보장하는 여러 권리들을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린다. 난민법과 난민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등 역시 마찬가지로, 각기 앞머리에 난민에 대한 정의규정을 두고 있다. 76일 김세진 변호사는 난민과 국제협약 난민의 정의강연에서 난민협약을 중심으로 현행 난민 정의를 소개하고 국내 적용 현황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난민협약 및 난민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난민 요건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난민신청자가 국적국 밖에 있을 것. 둘째, 난민신청자의 난민 신청 사유가 난민협약상 5가지 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중 하나에 해당할 것. 셋째, 난민신청자가 난민협약상의 사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을 것. 넷째, 박해에 대한 우려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것. 다섯째, 국적국의 보호가 부재할 것 등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국제협약을 근거로 국내법을 제정하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비판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영문 난민협약에서 “well founded fear of being persecuted”라고 정의한 부분을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라고 번역한 점이다. 해외 판례가 합리적인 가능성만 있으면 “well founded” 됐다고 인정하는데 비해, 국내법의 명문 조항은 충분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해 난민신청자의 박해 가능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법부가 난민신청자가 선의(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박해 원인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불필요하게 판단하거나, 입증 자료를 준비하기 어려운 난민신청자의 사정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점 등이 주요 비판점으로 꼽혔다.


강연은 현행 난민 정의에 대한 충실한 소개와 국내 적용과정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이 글에서는 정의규정을 더 폭넓게 해석하거나 개정하기 위해 토론해볼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 많은 신청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행 협약 혹은 법률을 더 유연하게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날 강연에서 김세진 변호사가 제시한 바와 같이,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은 모호하지만 폭넓은 요건이다. 이를 명문 그대로 해석하면 사실상 인종, 국적/민족, 종교 등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언급되지 않은 다른 요건들을 함께 포함할 수 있다. 다만 1951년 난민협약 당시의 제정배경, 이후 국제사회의 합의 정도, 국가별 협약에 대한 해석 등에 따라 특정 사회 집단을 얼마나 넓게 규정할 것인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규정을 폭넓게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환경난민이다. 이들은 극심한 기후변화나 재난 기타 환경 요인에 따라 본래의 국적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학계 일각(박병도, 2002)에서는 환경난민도 정부 등의 무능에 따라 박해를 받은 특정 사회 집단 구성원으로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으나,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의 제정 당시 상황을 비춰볼 때 다소 무리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박해는 단순히 어려움과는 구별되며 박해자가 존재해야 하는 상황으로 재난과는 구별되고, 이 경우 시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박해 주체가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환경 변화에 따라 국적국을 떠나온 이들을 환경난민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경우이든 현재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난민협약과 난민법 개정하거나 더 넓게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이 요구하기에 앞서 다시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어떤 철학적, 역사적, 윤리적 이유로 더 많은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일을 지지할 수 있는가? 이는 현재 환경, 전쟁, 경제적 이유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난민협약에서는 보호되지 못하거나 제한적으로 보호되는 사람이 많다라는 현상에 대한 주장과는 구별된다. 우리가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기에 이에 따라 국적국의 구분 없이 시민권을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민국가의 시민들이 세계시민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역사적 배경이 있는가? 혹은 이미 발전한 국가들이 아직 발전되지 않은 국가의 환경과 경제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역사적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이 경우 역사적 책임이 있는 국가들만 난민에 대한 책임지면 될까? 현행 규정을 넓게 해석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협약과 법률을 위해서도 여전히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설득과 합의의 문제도 있다. 개별 국민국가들이 더 많은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하거나 정의하는 일에 반대할 가능성도 크다. 한 나라에서 사회보장법이나 노동관계법을 만들 때에도, 제한된 예산 속에서라면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할수록 혜택의 정도는 줄어든다. 또 모든 시민들이 난민을 비롯한 외국인 권리에 대해 포용적이지는 않다. 한국만하더라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권리를 구 산업연수제와 현행 고용허가제의 방식으로 크게 제한한 역사가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외국인의 입국이 자국인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시선도 있다. 결코 외국 시민과 그들의 권리에 대해 포용적이지 않은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을 난민으로 정의하고 인정해야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난민신청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과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윤리적 설득이 함께 제시돼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난민의 정의에서 시작한 한국사회와 난민인권강좌가 난민 문제와 정치철학, 난민 현황과 실태로 이어지는 방식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어지는 강연에서 우리가 어떤 철학적, 윤리적 배경을 근거로 더 많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난민들이 처한 현황이 어떻기에 이들에 대한 권리 인정이 시급한 문제인지 함께 배우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