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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여름 활동가 이야기

 


이슬


7,8월에는 난센에서의 활동이 다만 저의 밥벌이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을 끌어나가는 게 아니라 단지 밥벌이로 난민이슈를 이용하는 사람이될까봐, 그렇게되기까지 안주하게 될까봐, 사무실에 왔다갔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위안삼는 가마니가 될까봐 두렵습니다. 언제쯤, 어느 때가오면 나는 이 활동을 정리하고 다른 곳을 바라봐야 하는걸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해야 활동 자체에만 고립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 시작한 난민인권강좌, 마음 울리는 영화로 저에게 찾아와주었던 난민영화제와 서울인권영화제, 러쉬와 함께하게 된 All are welcome-난민의 자리 캠페인까지. 가만히 멈춰있을 수만은 없게 만들어주는 일들에 고마워하면서 여름을 보냅니다.

 

그리고 저에게 “슬은 이 일을 왜해요?”라는 질문을 던지던 동료의 마음이 저와 같은 고민에서였을거라서, 월급받는 날 “이번 달엔 정말 고생했어요”라고 보낸 메세지에 ‘눈물이 날 것 같다’던 마음도 내 맘과 비슷한 거였을거라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웠어요.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하는 동료가 그 둘사이에서 얼마나 바쁘고 마음졸일지- 겪어보지 못한 저는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음은 알기에, 활동가이야기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은지

 

  활동하다보면 각종 언론으로부터 연락을 받게됩니다. 주로 난민을 촬영하거나 정책 제언 등을 듣고자 연락을 주십니다. 연락이 온다고 모든 언론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어떻게 하면 난민을 대상화(일종의 빈곤포르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 않을 수 있을지'나 '취재 과정에서 어떻게 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향후 조치를 취해야 할까'등의 고민이 부족합니다. 언론을 통해 국내 난민 실태를 알리는 활동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알리느냐는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할 사안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촉박한 시간 내에 '그럴듯한 스토리'를 담아내야하다보니 난민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아무리 유명한 방송사이거나 프로그램이라도 난민분들을 연결 하지 않습니다. 과정에서의 풍성한 고민이 없는 경우는 대부분 결과도 실망스럽기 때문입니다. 실제 언론 연결 이후 고초를 겪었던 타 기관 활동가의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 뿐만 아니라 방영 이후에도 난민당사자는 곤혹을 치릅니다. 그래서 난센은 난민을 언론에 연결하는 기준이 꽤 높은 편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엄격하고 고집스럽습니다.


  최근에 A 방송사에서는 난센에 '더 센 캐릭터'를 연결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꽤나 빈번히 있는 일입니다. 이런 요청은 '매번' 경악스럽습니다. 그들은 '난민을 위한 일이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면 특정한 난민분의 사례가 드러나게 되므로 더이상 이야기를 끌지 않겠습니다.)

 

  B 방송사는 '국내난민 실태'를 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싶다며 난센에 찾아왔습니다. 현재 현장에서 느끼는 우려들을 말씀드렸으나, 정작 결과는 엉뚱했습니다. 법무부 관계자들이 해당방송사에 찾아간 것입니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분명,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난민들은 법무부를 곤란하게 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꾸만 가린다고해서 자명한 진실이 은폐될 수 있는지는 두고봐야 알겠습니다. 

 

 난민법 시행 이후, 더 다양한 단체에서 난민 사례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난센에 실무 자문을 구합니다. 자문과정에서 보이는 것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난민이 처한 상황은 복잡하고,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언론의 제안은 달콤한 유혹입니다.

 

  실제 취재과정과 결과가 서로에게 좋은 효과를 남긴다면, 우려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언론 연결을 시도했던 단체의 이야기나 관련 취재의 결과를 보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프로그램에는 담기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남겨두려고 합니다. 여러모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여름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김연주

 

정말 유독 덥고 힘들게 느껴지던 여름도 거짓말처럼 지나갔습니다. 6월에는 재충전을 위해서 활동가들이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는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전[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을 보러갔어요. 난센에서 조력하는 난민분이 오디오 가이드에 참여하셔서 그 계기로 가게 되었는데, 가볍게 들어갔는데, 그 잠깐의 시간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그것을 곁에서 목격한 목격자, 이주민, 참전 군인.. 이 사회에 살아가며 잘 들리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가 공공장소에서 들리고 있었어요. 억눌려 있던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일이 너무나 힘겹게 느껴져서 같이 힘들었습니다. 이 들리지 않는 피해자의,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작가의 작업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느꼈고, 나를 포함해 여기 이 공간에 온 사람들이 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외면했던 혹은 몰랐던 현실을 듣고, 알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삶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그 전시 공간에서 들리는 피해자의, 소수자의 이야기는 제가 일을 하면서 만나는 난민들의 이야기와 많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전시공간에서 그 목소리를 듣는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힘겹고, 또 그들을 가해한 존재,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존재들에게 매우 화가 나고, 그 상황을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정말 무기력해졌는데, 정작 사무실에서 난센의 도움을 요청하는 난민들의 목소리를 나는 너무 건조하게 듣고, 매일 듣는 그런 이야기로 쉽게 생각해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다른 이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무엇이든 보탬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던 것인데 오히려 더 공감하고 몰입하는 감각을 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한편 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인 피해자들의 힘들었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 이것을 풀어내는 것이 이들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웠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근에 지인이 힘든 일을 겪고 그것을 법적 분쟁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인은 빨리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머리로는 알겠고, 그것이 내 사건이어서 내가 나서야 진행이 되고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그 과정에 그 힘든 기억들을 다시 기억하고 끄집어 내는게 힘들어서 묻어두고 가만히 일상을 보내게 된다. 너가 만나는 난민들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종종 난민분들을 조력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불만 같은 것이 '이건 당신에게 너무 중요한 분쟁과정인데 왜 내가 주도해서 증거를 고민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거지' 하는 것이었고, 간혹 체류연장을 놓치거나 이의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나 곤혹스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난민들을 만나면 '왜 지금 당신의 사건이 어떠한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채로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은연 중에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정말 나의 오만함이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긴 난민심사 과정은 당신의 심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고, 소송 과정은 변론기일에 참여하거나 나의사건검색 페이지에 들어가면 확인되지만, 대부분 한국어로만 소통되고 있어서 이 절차에 접근하는 것조차 참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거든요..


무튼..  짧지만 내가 이 활동을 왜 하는가를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6월부터 시작되어 지금 중반기에 접어드는 [한국사회와 난민인권] 강좌를 통해 또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난민에 대한 이해와 인식확산이라는 난센의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스스로에게 많은 자극이 되고 있어 참 좋습니다. 이 연속강좌를 진행해가다보면 강좌에 참여하는 많은 시민분들과 함께 박경주샘이 화두를 던진 "동료시민으로서의 난민"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될까요.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활동을 통해 구현할 수 있게 오늘도 힘을 내어야겠어요. 으랴짜 ㅎㅎ